해군의 두가지 정의와, 대립
"정의에 반대는 악이 아닌 또 다른 정의이다."
짱구에서 나온 명대사 중 하나입니다.
해군은 2년 전과는 다르게 2년후 추구하는 정의의 길이 극과극을 이루는 인물들이 여럿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를 강건파와 온건파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이해하기 쉽게 분류해보겠습니다.
강건파
아카이누
오니구모
도베르만
온건파
후지토라
아오키지
스모커
타시기
코비
이 밖에 몇명의 해군은 이렇다 할 분류가 어렵기에 잠시 배제하겠습니다.
먼저 강건파에 대한 소개입니다.
강건파의 이름을 올린 인물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아카이누일 것입니다.
아카이누를 살펴보며 강건파와 온건파의 차이점과 이들의 대립을 살펴보죠
아카이누는 오하라 당시 민간인이 탄 배 마저도 학자들이 숨어 있었을 수 있다는 논리로 포격해 버립니다.
이와는 반대로 아오키지는 로빈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살려줍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극단적인 정의는 때론 사람을 광기로 몰아세우지"
이 장면을 통해 아오키지와 아카이누의 성향은 극과 극임이 증명된 셈이기도 합니다.
아오키지가 원수 자리를 놓고 아카이누와 그렇게 긴 시간 혈전을 벌인 이유와, 아카이누 밑에서 해군으로 있고 싶지 않아했던 이유가 여기서 나타난 셈이죠
아카이누의 정의에 대한 집착은 광기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잘못된 정의로 변질 될 가능성이 있는거지요
다음 장면은 아카이누 vs 스모커, 타시기의 정의관에 대한 의견차이입니다.
아카이누는 정상결전에서 흰수염이 죽고 도망치는 잔당들을 향해 끊임 없이 공격을 계속하죠
그리고 나오는 나레이션
이겼음에도 더욱, 목말라 할 뿐
또한 타시기와 스모커는 이 모습을 보고 이상함을 느낍니다.
이들이 이상하게 느낀 이 순간은 온건한 사상을 보유 한 정의관과 철저한 정의관 즉 강건한 정의관을 가진 이들의 이념 차이를 전면적으로 나타낸 장면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은연 중에 강건파와 온건파와의 의견차이는 한번씩 보여주기도 했으나 2년전에는 이 둘이 정면으로 의견대립을 나타낸 장면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2년후 후지토라의 사죄로 인해 아카이누는 분노하여 해군의 얼굴에 먹칠을 한 것이냐며 일갈하지만
후지토라는 이를 듣고 이따위 일로 땅에 떨어질 신뢰라면 차라리 없는게 나았다며 받아칩니다.
이 장면은 생각보다도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아오키지와는 다른 태도
아오키지는 정면에서 이런 정의관을 부정하려 들고 대놓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무엇인가 잘못됐음을 느낀 인물이지만
후지토라는 잘못됐음을 알고 있고 세계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생각을 실천으로 옮깁니다.
이는 같은 사상을 보유한 둘이라 할지라도 이를 접근하는 방식이 틀리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둘째, 생각의 차이
아카이누의 생각은 사람보단 정의를 우선시합니다. 도플라밍고의 잘못으로 드레스로자의 시민들이 어떤 피해를 받았건간에 해군의 얼굴 즉, 정의에 먹칠을 한 그 모습을 보기가 싫었던 것이고
후지토라의 생각은 정의보단 사람을 우선시합니다. 자신이 행하는 정의가 어떻게 되었건, 잘못된 점은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며,
비록 해군의 얼굴에 먹칠을 할 지언정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죄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셋째, 강건파와 온건파의 중점
이게 핵심입니다.
두번째 내용에서도 설명했듯이, 아카이누는 사람보단 정의 그 자체, 후지토라는 정의보단 사람을 더욱 신경쓰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강건파와 온건파의 가치관과 일치합니다.
먼저 강건파를 봅시다.
위에 아카이누의 예시는 충분하니 다른 예시를 들어보죠.
오니구모의 사례입니다.
오니구모는 1000명의 아군이 탄 군함에다가 포격을 해버립니다.
포격을 한 이유는 "놓쳐버린 흉악범으로부터 넌... 미래를 지킬 수 있나?" 즉, 그 배에 흉악범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 하나 때문에 아군 1000명을 죽여버린 것이지요
이 장면은 아카이누가 오하라에서 했던 행동과 같은 양상을 보입니다.
"학자들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흉악범들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강건파의 정의관은, 악에 가능성이 조금만 있다면 이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설사 정의집행 과정에서 아군이 죽건, 민간인이 죽건 악을 멸하기 위해서라면 소수의 희생따위는 궤념치 않습니다.
다음은 온건파입니다.
아카이누 vs 후지토라로 강건파와 온건파의 의견 대립을 보여줬다면
이 장면은 온건파의 사상에 대해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위에서 설명해드렸다시피 온건파는 정의의 구현 보다도 사람의 생명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코비가 한 말들을 인용해봅시다.
"이제 멈추자고요! 여기서 싸움을 멈추자고요!! 생명이 아까워!!"
-> 이 대사는 그저 죽기 싫은 코비의 아우성이였을까요? 아닙니다. 당장 저 사진을 보면 해적들을 쫓는데 급급한 나머지 "누가 좀.."이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해군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적을 죽이는데만 혈안이 돼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현 상황에서 목숨을 버리지 말자는 의미의 이야기입니다.
"목적은 이미 이루었음에도.. 전의가 없는 해적들을 뒤쫓으며.. 멈출 수 있는 전쟁에 욕심을 내고"
-> 정상전쟁에 목적. 에이스의 처형은 이뤄냈고 거기다 흰수염의 목숨까지 가져가며 해군으로서는 더 할 나위 없는 승리를 거뒀음에도 욕심으로 살 수 있는 병사들마저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 상황을 비판하는 코비의 또 다른 대사죠.
이 밑에 대사를 봐도 알 수 있겠다시피 코비의 경우는 해적들을 말살하는 "정의구현"보다는 전쟁을 서둘러 종료하고, "쓰러져 가는 사람을 살리는게 먼저다."
라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설명이라면 온건파라는 사상에 대해 어느정도는 다들 이해하셨을꺼라 믿습니다.
다시 한번 둘의 차이를 강조해봅시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해적들을 죽이기 위해 아군의 죽음은 개의치 않는 강건파 해군 "도베르만"
전쟁이 끝났기에 무고한 생명을 그만 잃자는 온건파 해군 "코비"
생명과 정의의 무게를 저울질 했을 때
강건파는 정의의 무게가 더욱 무거울 것이며
온건파는 생명의 무게가 더욱 무거울 것입니다.
자신의 부하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스모커
자신의 부하에게 까지 망설임 없이 총을 쏴 버리는 오니구모
정의 그 자체를 중시하는 철저한 정의관
생명 그 자체를 중시하는 인의의 정의관
이 둘 중 어떤 것이 올바른 정의관에 가까울까요?
이상으로 해군의 두가지 정의관에 대한 분석글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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