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 - 김광규
바위가 그럴 수 있을까.
쇠나 플라스틱이 그럴 수 있을까.
수많은 손과 수많은 팔
모두 높다랗게 치켜든 채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빈 마음 벌거벗은 몸으로
겨우내 하늘을 향하여
꼼짝 않고 서 있을 수 있을까.
나무가 아니라면 정말
무엇이 그럴 수 있을까.
겨울이 지쳐서 피해간 뒤
온 세상 새싹과 꽃망울들
다투어 울긋불긋 돋아날 때도
변함없이 그대로 서 있다가
초여름 되어서야 갑자기 생각난 듯
윤나는 연록색 이파리들 돋아내고
벌보다 작은 꽃들 무수히 피워내고
앙징스런 열매들 가을내 빨갛게 익혀서
돌아가신 조상들 제사상에 올리고
늙어 병든 몸 낫게 할 수 있을까.
대추나무가 아니라면 정말
무엇이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