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 김명인
모감주 숲길로 올라가니
잎사귀들이여, 너덜너덜 낡아서 너희들이
염주 소리를 내는구나, 나는 아직 애증의 빚 벗지 못해
무성한 초록 귀때기마다 퍼어런
잎새들의 생생한 바람 소릴 달고 있다.
그러니 이 빚 탕감받도록
아직은 저 채색의 시간 속에 나를 놓아 다오.
세월은 누가 만드는 돌무덤을 지나느냐, 흐벅지게
참꽃들이 기어오르던 능선 끝에는
벌써 잎 지운 굴참 한 그루
늙은 길은 산맥으로 휘어지거나 들판으로 비워지거나
다만 억새 뜻 없는 바람 무늬로 일렁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