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믄 니는 하지마라. -14
가느다란 뱀 한 마리가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살며시 열려있는 문 뒤로, 대답 대신 타다닥 하고 조심성 없이 도망치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러나 김영민은 목격자를 쫒을 생각이 없는지 문쪽을 멀뚱히 쳐다만 봤는데 눈썹이 내려간 그의 표정이 우울해 보였다.
"...아... 오늘은 새벽부터 기분이 진짜 별로다"
김영민은 의욕없이 터덜터덜 걸어서 강의실을 나서려다가 흘깃 소녀를 보았다. 죽은 소녀는 변함이 없었다. 오른손에는 자신에게 바칠 심장을 든채 그 자세 그대로 굳어있었다. 사람이 죽은게 아니라 마치 기괴하게 생긴 고목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로테레스한 장면에 보통사람이라면 두 눈을 질끈 감고 헛구역질을 하겠지만 김영민은 한폭의 그림이라도 감상하는듯, 어두운 눈동자를 살짝살짝 굴리다가 닫을려던 문을 슥 열었다.
"미안 지은아, 쫌만 더 고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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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타타탁
공포감 때문일까?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숨이 바로 목까지 차고 심장은 고장난것 처럼 쿵쿵쿵 요동을 친다 이마에 땀도 흐르지만 덥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유태현은 비상등의 불빛에 의존해 2층으로 올라와 복도 끝으로 달리면서, 친구들과 도서관에서 얌전히 공부할걸 여태까지 도서관에서 자다가 괜히 혼자서 아늑하고 공부하면 잘 될것 같아서 이곳에 온걸 후회 했다.
'지랄하네, 거기가서 동면 할려는게 아니고?'
라는 친구의 말에 발끈해서
'나 공부할꺼니까 폰은 두고간다 너 쓰고 싶으면 쓰고 내일 줘'
라고 하며 핸드폰도 두고온걸 미치도록 후회했다. 친구가 '지릴하네'라고 말릴때 들었어야했다. 유태현은 훅훅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복도 끝에 있는 강의실의 손잡이를 다급하게 당겼지만 손잡이가 헛도는 소리만 날뿐 열리지는 않았다.
"아, 아, 아, 학생증 학생증"
유태현은 얼른 뒷주머니에 손을 가져다 대서 지갑을 꺼내는데 얼마나 다급한지 그의 손은 덜덜덜 떨었고 겁많은 사슴처럼 지갑과 중앙으로 올라오는 계단을 번갈아 쳐다보며 학생증을 꺼내서 도어락 장치에 얼른 가져다 대었다.
[승인되지 않은 카드 입니다.]
유태현은 파랗게 질려서 얼른 옆 강의실도 가져다 대어 봤지만 모든 도어락이 놀리는 것처럼 붉은색 X표시를 띄우며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제일 일찍 나와서 자신이 문을 열었는데 이제와서야 안될리가 없었다. 아마 경비실에서 새벽에 자주 일어난다는 도난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임시적으로 막아놓은것 같았다. 평소에는 저녁 이후에 자리에 코뺴기도 보이지 않는 경비아저씨가 하필 오늘, 이럴 때 일을 열심히 해줘서 원망스럽다.
"야야야 장난치지 말라고 아씨! 경비 아저씨는 왜 새벽에 문을 잠궈 놔가지고. 아... 맞아 경비 아저씨!"
불현듯 건물 안쪽 정문에 자리를 잡고있을 경비 아저씨가 생각난 유태현은 살았다는 희망에 순간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