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행시 - 김영랑
1
임 두시고 가는 길의 애끈한 마음이여
한숨쉬면 꺼질 듯한 조매로운 꿈길이여
이 밤은 캄캄한 어느 뉘 시골인가
이슬같이 고인 눈물을 손끝으로 깨치나니
2
풀 위에 맺어지는 이슬을 본다.
눈썹에 아롱지는 눈물을 본다
풀 위엔 정기가 꿈같이 오르고
가슴은 간곡히 입을 벌린다
3
좁은 길가에 무덤이 하나
이슬에 젖이우며 밤을 새인다
나는 사라져 저 별이 되오리
뫼 아래 누워서 희미한 별을
4
저녁 때 저녁 때 외로운 마음
붙잡지 못하여 걸어다님을
누구라 불러 주신 바람이기로
눈물을 눈물을 빼앗아 가오
5
무너진 성터에 바람이 세나니
가을은 쓸쓸한만 뿐이구려
희끗희끗 산국화 나부끼면서
가을은 애닯다 속삭이느뇨
6
뵈지도 않는 입김의 가는 실마리
새파란 하늘 끝에 오름과 같이
대숲의 마음 기여 찾으려
삶은 오로지 바늘 끝까지
7
푸른 향물 흘러버린 언덕 위에
내 마음 하루살이 나래로다
보실보실 가을눈(眼) 이 그 나래를 치며
허공의 속삭임을 들으라 한다.
8
허리띠 매는 시악시 마음실 같이
꽃가지에 은은한 그늘이 지면
흰 날의 내 가슴 아지랭이 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