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 김종길
귀로 김종길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규범을 넘지 않는다는 나이인데도,
집으로 돌아갈 때면 흔히 고개드는 두려움.
오늘은 오후에 인사동 근방에서,
사람들을 만나 볼일을 보고
즐겁게 담소도 나누었건만.
늙은 주제에 주책이나 떨지 않았는지,
허튼 수작이나 늘어놓지 않았는지,
남의 험담이나 하지 않았는지,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차는 삼양동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멀리 도봉(道峯)이 정면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지금은 초여름의 신록을 허리에 둘렀지만
언제나 그렇듯 여윈 흰 이마를 높이 쳐들고,
조용히 저녁해를 받고 있는 저 천연스런 산봉우리들.
그 산봉우리들 앞에
몸둘 바 없이 부끄럽고,
여지없이 왜소해지는 나의 초라한 몰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