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슬레이어 - 3화.
“얼마나 잔거지?”
횃불로 둘러싸인 방 안. 한쪽에 놓인 작은 침대에서 사내가 깨어났다. 피곤에 지쳐 침대에
잠시 누웠지만 잠시라고 해도 얼마나 잔 것인지 알 순 없었다.
“윽.”
잠깐 깨어서 나가려고 발버둥 쳤지만 도저히 나갈 곳은 없었다. 사내는 오랜만에 무리한 탓
에 온 몸에 알이 배겨 처음 깨어났을 때보다 몸을 움직이기가 더 힘들었다. 그렇게 또 잠시
누워있다가 사내는 머리맡에 위험하게 타고 있는 횃불을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상해. 내가 꽤 오래 잔건 알겠는데. 이 횃불은 그동안 다 타지도 않고 꺼지지도 않고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탈 수 있는 거지?”
사내는 횃불을 한동안 쳐다보다 횃불이 놓여있던 곳으로 불을 비췄다. 횃불이 놓여있던 곳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바람을 통하게 하기 위한 통로로 보였지만 그 구멍으로 흐르는 액체가 있
었다. 물 같이 투명했지만 특유의 냄새가 났다.
‘기름!?’
사내는 구멍에서 흐르는 액체를 손에 뭍이고 냄새를 맡아봤다. 분명 불이 꺼지지 않도록 촉매
역할을 하는 기름이었다. 원래는 검은색이어야 하지만, 정제를 통해 투명해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방 안에 무언가 장치가 되어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사내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횃불들도 확인했다. 모든 횃불들을 잇는 길이 있고, 거기에 투명한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횃
불들이 한꺼번에 켜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생각했다.
‘내가 빠트린 무언가가 있을 거야. 내가 찾아보지 않은 곳. 거기가 어디지?’
사내는 눈을 번쩍 뜨더니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이 앉아있던 침대를 들어올렸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것인지 사내는 꽤 무거워 보이는 침대를 가볍게 들어 한쪽으로 밀어버렸
다. 그러자 침대 밑에는 돌들로 이루어진 방 안과는 다르게 나무로 된 문이 눕혀져 있었다.
“이거다!”
사내는 처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었다.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로 붙여 놓은
것처럼 아니, 그냥 바닥과 이어져 있다고 할 정도로 꿈쩍하지 않았다. 사내는 눈 앞에 문을 두고도
열지 못하는 상황에 또다시 망연자실 했다. 그러나 곧장 태도를 바꾸고는 옷장이 있던 곳으로 뛰어
갔다.
“못 열면 부수면 되잖아?”
사내는 검을 들었다.
“아, 나가기 전에 챙길 건 다 챙기고 갈까?”
사내의 옷차림으로는 밖에 나간다고 해도 절대 돌아다닐 순 없었다. 천 하나를 두른 것 뿐이기 때문이
다. 사내는 옷장에 있던 갑옷을 입고 주머니를 챙긴 후, 마지막으로 검을 들었다. 갑옷은 무거워 보였
지만 경갑을 입은 듯 가벼웠고, 편했다.
쾅쾅쾅.
검집으로 땅에 박혀 있는 문을 쳐보기도 하고, 검자루로 쳐보았으나 문은 꿈쩍하지 않았다. 도리어 손만
아플 뿐이었다. 사내는 검을 내팽겨 던져놓고 바닥에 누웠다. 나가라고 만든 문일 텐데 두드리고 깨부수
려 해도 꿈적 않는다.
“뭐 이딴 문이 다 있어!”
바닥에 얼마나 누워있었을까. 귀를 댄 바닥에서 사람이 소곤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목소
리었다. 사내는 바닥에 귀를 더 바짝 대었다. 분명 여자의 목소리다.
‘역시 바닥으로 통하는 길이 있나? 지금 밑에 사람이 있는거야?’
사내는 흥분하여 바닥을 마구 때렸다.
“꺅!”
사내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란 것인지 밑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제길, 놀라게 했잖아. 설마 도망가거나 한 건 아니겠지?’
“거기 누구 있어요?”
다행이었다. 담력이 좋은 여자인지 아니면 호기심이 많은 여자인지, 둘 다인지 소리가 더욱 가까워져 마치
문 건너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저, 저기 여기에 갇힌 것 같아요. 문 좀 열어주시면 안될까요?”
사내는 문에 대고 소리쳤다.
철컥.
“설마?”
문이 열리는 아주 상쾌한 소리였다.
“저기요. 이거 위로 열리는 문이라 밑에 있는 제가 열기는 좀 힘들 것 같아요. 문이 너무 무겁네요.”
“아, 알겠어요.”
사내는 문고리를 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문 밑에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 위에 작고 여린 소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