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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ll] 001. 세계가 말하려고 하는 것
Nearbye | L:25/A:107
305/1,150
LV57 | Exp.26% | 경험치획득안내[필독]
추천 8 | 조회 1,835 | 작성일 2012-11-23 01: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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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ll] 001. 세계가 말하려고 하는 것

 

 

001. 세계가 말하려고 하는 것
 
 
 
 
 
 
 
 
 
 
 
 손발이 차갑다. 언제부터냐고 물어봐도 대답해줄 수는 없는 것 같다.
기억나지 않으니까. 아마 바꿀 수 없는 체질 같은 것이리라. 
 
 
언젠가 아버지라는 사람에게는 물어본 적은 있었다.
 
 
 "아빠도 손발이 나처럼 차가워?" 하고.
 
 
 
 
 
 
 
 대답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긍정이었던 듯하다. 휴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기억만이 간지럽게 되살아난다.
집에서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몰두할 때면 여지없이 손발이 차갑게 식어버린다. 마치 전원이 툭하고 꺼져 버린 가전제품처럼. 
 
 
 
 
 
 왜일까. 그럴 듯한 이유를 누운 채로 몇 개 대어본다. 하지만 어느쪽도 말도 안 되는 공상뿐. 얼른 폐기해버려도 가치는 없겠지. 
 
 
 
 이렇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에 답을 하며 끝도 없이 이어진다. 눈은 감고 있지만 어쩐지 내가 깨어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둥둥 떠다니던 의식이 직접 만질 수 있게 된 실체화듯한 이 느낌.
 
아아, 싫지만 이제 정말로 일어나야할 시간인지도. 
 
 
그래도 꽤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무슨 버섯도 아니고 집에 추욱-하고 오래 붙어 있는 건 싫으니까.
 
 
 
 
 
 
다음 일과의 선택으로 아침 풍경이 어떻게 변할지 결정된다.
 
 
 
실용적으로 부산을 떨며 밥을 챙겨먹을 지.
 
뭐라도 된 거마냥 아침부터 고독을 즐길 지.
 
 
 
 
 
 
 
 
.....
 
 
 
  
일단 씻고 나서 생각하자..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화장실 불을 켜고 안에 들어가 거울을 본다. 평소의 나의 얼굴이다.
안경을 끼고 부스스하게 뻗친 머리, 눈 밑에 보이는 다크서클의 잔해까지. 
 
 
 잠깐만. 안경? 안경은 왜 쓰고 있지? 음..
 
 
 
 
 
 
 
 
 
 
아.. 어제도 안경을 쓰고 잠이 들었나보네. 최근엔 좀처럼 그런 일이 없었는데.
 
어쩐지 일어나자마자 얼굴 주변에 있던 위화감은 안경에 눌린 것 때문이었는지도. 아니, 분명 그렇겠지.
 
 
 
 
 
 
 
 
 잠시 어젯밤 일을 떠올려본다. 어제는 밤늦게까지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아니, 스케치라기보다는 조합인가?
아무튼 그 작업을 거의 완성단계까지 이끌어내기 위해서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고 결국 마지막엔......
 
 
 
 
 
 
 
 
 
 
 "성철아, 씻고 학교 가야지."
 
내가 화장실에서 멍 때리는 것을 본 누군가 한 마디 한다. 
 
 "안 자요."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다. 하루도 바뀌지 않는 이 순서.
일부러라도 순서를 좀 바꿔볼까 싶기도 하지만 아마 웬만해서는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일단은.. 그래, 귀찮으니까.
 
 
 
 
 
 
 
 
 
 
 
 
 
 
 
 오늘도 마치 짠듯이 내가 나가기 직전에 피워진 매캐한 연기를 맡으며 집을 나선다.
 
뭐야, 이건. 아침 댓바람부터 피시방에라도 온 것만 같네.
 
 솔직하다 못해 털털한 감상을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입밖으로 내뱉는다. 폐에 가득찬 담배연기를 몰아내듯이.
 
 
 
 
 
 
 
 
 
 
 
 이상하게도 화장실의 그 시간이 길었던 건지 선택한 것에 실용성이라고는 전혀 없었는데도,
늦어버려서 삼거리에서 시끄러운 동행을 한 명 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안녕!" 
 
 
 오늘도 그 생생한 인사는 여전하다. 마치 소설 속에 들어간 기분. 으으.. 그야말로 순식간.
 
 
 
 숨을 쉬어보면 알 수 있다. 좀 전까지와는 완연히 다른, 쌉싸름한 공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마치 큰 상자가 나에게 덮여진 느낌?
이론적으로 증명해보라고 하면야 증명할 수는 없지만 감각적으로는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해야 할까.
 
 
 
 
 그 사이에 밝고 높은 톤으로 지원이는 쉴새없이 재잘거린다. 그 안엔 쓸모 있는 것도 쓸모 없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 구별은 쉽지 않은 것 같다. 특히나 그 커다란 상자 안에서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친구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다. 낯가림이 심하다고 해야할지,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정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딱히 친구를 만들고 싶지 않다거나 그런 것은 아닌데 일은 늘 그렇게 되어버린다. 
 
그러고보니 이런 패턴, 어디서 본적이 있는데.. TV에서 왕따 심하게 당하는 학생들이...
 
 
 
 
혹시 이쪽에서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성철아, 듣고 있어?"
 
 아, 방금 막 지원이의 첫번째 주제가 다 끝났나보다. 어디보자.. 그러니까... 오늘은 바로 그 게임 얘기였지.
최근에 나온 수많은 가상현실 게임들 중에서 최초로 인공지능을 접목시키는데 성공한 바로 그 선구자적 게임.
이하는 지원의 친절한 설명 되시겠다;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귀담아 듣고픈 생각은 없지만.
 
 
 기술은 끊임없이 진보하지만 인간은 그러지 못한다.(내 생각에는 인간의 무언가라고 하고 싶지만...)
가상현실은 그 시간 비율을 엄격히 통제함으로써 어떻게든 도입할 수 있었지만 인공지능은 아직까지는 세상에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고 판단한 나머지, 세계 각국은 인공지능의 특허가 채 식기도 전에 범국가적으로 새로운 조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에 가입되지 않은 나라는 기술이 현저하게 떨어져 인공지능은 물론 그 어떤 첨단 기술도 원조를 받지 않고서는 시용도 힘들 나라들 뿐이었다. 혹은 가입해도 이름뿐일.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상현실에 우선 인공지능을 도입해서 그 실용화에 대한 실험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두말할 것도 없이 여성부의 엄청난 반발이 뒤따랐지만, 제2차 아청법 확대-적용 때 겜덕들과 오덕들이 힘을 모아 승리를 쟁취해낸 것의 여파인지 결국 그 계획은 그대로 추진되었고 미, 일, 한 삼국 중 가장 많은 투자를 한 이곳 한국부터 그 첫 실용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흐름은 아마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이상하다면 이상하고 뭐 딱히 나도 큰 관심은 없다.
 
 
 
 
 
 
 
 
 
 
 
 
 
 "너도 접속기만 있으면 같이 재밌게 할텐데." 
 
 그 말이 날 확 끌어낸다. 마치 커다란 동물들 우리에 정신이 팔려 있던 어린 자식을 확 들어올려 주는 힘세고 자상한 아버지처럼.
어디 무슨 가족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데..
 
더 패밀리 맨 정도? 꼭 가 붙는 게 늘 웃긴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또 표정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렸는지 입을 꾹 다물고 그 자리에 멈춰선 지원이가 뒤로 보인다.
음, 오늘은 아무래도 이 이상 선을 넘게 되면 한 대 맞을지도 모른다. 맞으면 무지 아프다. The REal.
 
 
 
 에.. 일단 나는 접속기가 없다. 그런 건 너무 비싸다. 당장 사도 집이 망해버릴 정도로 비싼 건 아니지만... 뭐 중저소득층의 삶이란 대충 그런거다.
 
 
 
 "아쉽지, 나도 아쉬워." 
  
진심이다. 너무 아쉽다. 하지만 태어나는 죄책감이, 혹은 그것과 유사한 감정들이 내 마음을 어지럽힌다.
요컨대 나는 '그녀'를 속이고 있다거나...
 
 
 
 
 
 
 
 
 
 
 
 
 
 "다 왔다." 
 
지원이가 선고한다.
 
 "아, 또 정문에 선생." 
 
 "넌 늘 교문에 선생님이 계시는지 체크 하더라?"
 
지원이는 가만히 내 머리를 올려다본다.
 
 
 "아니, 그 머리 문제가 아니고 그냥.."

 "어차피 자율화 될텐데 왜 검사를 계속하는 건지 모르겠어."
 
 
 
 
 
우리 둘은 인사하고 지나친다. 둘 중 하나는 대충 고개만 끄덕이고 하나는 밝은 톤으로 "안녕하세요?" 한다. 
 
저정도로 활기찬 인사를 받는 누군가는 분명 두 가지 감정 중에 하나일 것이다.
멋쩍음이나 상쾌함. 무엇을 느끼는가는 지금까지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쳐 왔느냐에 따라 결정되겠지.
 
 
 흠.. 오늘은 혼자도 아닌데 너무 잡생각에 선비 분위기를 잡는 것 같으니 이만;;
 
 
 
 
내려갈 때는 짧게, 올라갈 때는 길게 느껴지는, 오즈의 마법사에나 나올법한 1층의 마술계단을 지나서 교실에 앉는다. 
 
 
 
 
 
 
.......
 
 
 
 
 
 
 
 
 
 
 
 
  어느덧 집에 갈 시간. 갈 때도 올 때와 마찬가지다. 시끄러운 누군가과 같이. 단, 아침과 마찬가지로 단지 내 삼거리까지만.
 
 "내일 봐~"
 
인사가 언제나 쾌활하다. 듣는 이들은 그 기운을 조금이나마 받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내가 늘 대단하다는 듯이 띄워 말하는 것도 뭐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응, 내일 봐."
 
이 평범한 쪽이 언제까지나 나겠지.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은 가볍다. 지금은 집에 아무도 없을 시간이니까. 하지만 그는 그의 집을 가볍게 지나친다.
발걸음이 마치 목표가 없는 '방황'의 그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조금 차이점이 존재할지도.. 
 
 
 몇 번인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핀다. 무엇을 찾는지는 모르지만 찾는 것을 아직까지는 찾지 못한 듯하다.
그리고 그 정처없음은 계속 지켜본다면 끔찍할 정도로 혼란만을 야기할 것만 같아서.. 점점 보기조차 꺼려진다.
 
 
 
 
 '내가 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지?'
 
이 문장을 믹서기에 넣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갈아서 주머니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흘리고 있는 것 같다.
 
이윽고 총총 뒤따라와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쪼아먹어버릴 작은 새들의 무리를 조롱하는 것처럼.
 
 
 
 
.....
 
 
 
 
 
 
 느닷없이 발걸음이 빨라진다. 목표로 하는 방향이 확실하게 보이는 걸음걸이다. 하지만 그가 가는 길에는 특별한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가 지나온 길은 대형 마트, 놀이터, 그의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 그리고 한산한 공원뿐이다.
특별한 도착점이라고 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이제는 꽤 익숙해, 정말."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람처럼 살랑하고. 아니, 실제로 바람이 불은 걸지도.
 
그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쪽으로 인사를 한다. 정말 끔찍이 다행스럽게도 원하는 걸 찾은 모양이다.
 
 
 
 
 
 
 
 "이번 건 어떠셨는지 모르겠어요."
 
 "조잡함은 사라졌지만 그대신 무거움도 그만큼 반토막이라고 해야할까? 마트, 놀이터, 공원은 별로 좋은 포인트들이라고 생각이 들진 않는데?"

 "네? 하지만..."    내가 그걸 위해서 어젯밤에 안경을 쓴 채로 잠을 잤다고요....;

 
 
 
 "나쁘지는 않았죠, 그래도?"

 "오히려 네 말투가 나아진 게 더 맘에 들어."
 
그녀가 말하는 말투란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죠?'를 저렇게 앞뒤를 바꿔 말하는 형식이다. 어째선지 엄청 고집한다..
 
 
 
 
 일단 간단하게 사무적으로 소개하자면 그녀는 내 선생님이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도, 그러니까 비사무적으로도 지금처럼 그녀는 다분히 호감이 가는 인간상이다. 단지 성별을 비롯해서 그녀에 대해 내가 알지 못하는 '기본적인' 것이 너무 많을 뿐.
부끄럽지만 나는 그녀의 성별조차 확신하지는 못하니까..
 
 
 눈앞에 보이는 실체를 어떻게 성별조차 구별해내지 못하냐고, 게다가 이미 '그녀'라고 부르고 있지 않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는 않다. 물론 일단 부끄럽긴 하고...
 
 
 
 
 
 
 
 
 먼저 '그녀' 부분에 대해서 대답하자면 그녀는 인간이 아니다. 그래서 겉모습만으로는 확신할 수가 없다. 회색빛 머릿칼이 너무 아름다워서 상대적으로 그녀의 겉모습이나 분위기를 가려주는 데에도 한 몫을 하고 있는데다가 처음 만났을 때는 그마저도 지금보다 길었으니. 하지만 그녀를 만나면 만날수록 나의 판단에 확신을 갖게 되긴 했다. 그래도 그것이것은 별개의 문제다. 
 
 
 
 
 
 
 "저기, 그런데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언젠가 그런 질문을 했었다. 
아마 첫만남 때였던 것 같은데 아니 두번째였나. 그때도 바보 같았을까.
과거 일들은 어째선지 바보짓들뿐인 것 같다. 
 
 
 
 "난 이름이 없어. 지어 주지 못 하셨어, 아버지께서.. 별로 유쾌하지는 않은 기억이네, 그거." 
 
그리곤 살짝 내 눈치를 보며 웃음을 흘리는 그녀였다. 하지만 평소의 웃음이 아니었다.
감기에 걸린 여주인공을 눈치없게 남주인공이 억지로 웃게한 상황 같았다. 그래, 바로 그것..
 
 
 
 
거기에까지 생각이 이르자 정말로 참을 수 없었다. 이름이 없다니. 이 모순은 무엇인가..
 
으으, 창피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아버지가 지어 주지 않았다고 그대로 산다니 그게 말이 돼요? 자기 이름이잖아요. 뭐라도..."
 
 "아버지께서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셨어. 그리고 이름 비슷한 게 있긴 하지만 그건 대용에 불과해. 정작 한 번도 그렇게 불린 적도 없고."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잘만 돌아가는 대가리야, 제발 이럴 때 진가를 좀 발휘해 봐라.. 쓸데없는 거 외울 때는 잘만 돌아가면서.
 
 
 
 
 
 
 
 "괜찮으니까 우리 얼른......"   
  
 "라엔 어때요? R.A.E.N.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라엔..?"
 
그녀가 물었다.
 
 

 "이름은 정말 소중한 거라고 생각해요. 아니면 에.. 제가 다른 예쁜 이름을 더 찾아볼까요???"

좀 전의 기세는 어디갔는지 다소 처진 목소리로 말한다.
 
 
 
 
얘기해놓고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바보짓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에게 이름만은 반드시 있게 하고 싶었다.
이름이 없다니. 삶에 있어서 그 어떤 것보다 한이 되지 않았을까...
 
바보라도 좋았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바보짓이어도 좋으니까..
 
 
 
 
 
 
 
 
 "라엔?"
 
그녀가 다시 물었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그녀의 눈길에 제대로 마주치기도 힘들었다. 뭐랄까, 상당히 부끄럽고 민망했다.
 
 
 "아, 그러니까.. 라엔은 지금 생각해 보니까 너무 급하게 지은 것 같아요. 다른 이름도 얼마든지......" 
 
하지만 이제는 그녀를 보면서 말을 잇고 싶어도 이을 수 없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기에.
 
 
 
오, 주여.. 교회를 다니지 않은 걸 충분히 후회할만한 상황이었다. 충실한 기독교신자님들께는 죄송하지만 사실이니까...
 
 
 
 
 
 
 
 
 
 
 
 
 
 
 
 
 
 "라엔. 너무 마음에 들어. 괜찮다면 그걸로 하고 싶어."
 
 "네? 네.. 네???"
 
조금 의외였던 것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의 눈물을 본 것 때문인지 나는 조금 지나치게 당황해버렸을지도.
 
 
 
 
 그날, 성까지 짓지는 못 했지만 그녀가 만족했고 나도 다시 생각해 보니 그리 나쁘지 않은 이름인 것 같아 일은 그걸로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어쩐지 가슴 속에 뭔가 남아서 부유했다. 간지러웠다.. 특히나 그녀의 눈물이라니. 상상도 하지 못했다.
 
 회색머리를 제외하고서도 한국적인 느낌은 전혀 없는 그녀였기에 '라엔'이라는 이름과 일단 괴리감은 없어 보였지만..
 
 
저렇게나 좋아할 일인가, 이거? 
 
 
 
 
 
 
 
 
 
 
 
 
 
 뭐 이 정도로 회상을 끝내고 두번째 답변을 하기 전에 역질문. 질문자는 그레이의 성별을 구별하는 걸 본 적은 있나 모르겠다.
 
 
 
 인류 기원 최대의 미스터리, 그레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사라지는지. 인류라는 종에 의식이 시작되는 그 여명의 무렵부터 두 질문 중 어느 쪽의 대답도 인류가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완벽한 수수께끼.
 
 인류의 기록이 시작될 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기록되어왔던 인간의 형상을 한 이체. 인간과 똑같은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그들을 부르는 것처럼 우리로부터 떼어내고 구별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그들은 머리색이 회색이라는 점뿐이다. 
 
 
 뭐 거기에 대해서는 현대에 들어서서 염색이라는 매우 휼륭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레이인지 아닌지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확신을 갖긴 힘들다. 물론, 전문가도 그레이와 말 한 마디 나눠보지 않았을테니 100%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도 회색머리가 많지 않은 걸 보면 역시 그레이는 미묘하게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인간과는.
 
 
 각설하고, 전문가보다 훨씬 잘 아는 내가 몇가지 특징들을 말해보자면 우선 그레이가 나타나는 장소는 지극히 불특정하고 제한적이다.
물론 우리에게 있어서 그렇다는 거지만. 
 
 또, 그들은 공간의 제약 또한 받지 않는다. 순간이동이라고 표현해야 될 지, 아니면 텔레포트라고 표현해야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태생적으로 그 어떤 구속도, 속박도 당하지 않는다.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친절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딱히 생기가 있지도 않은 모습으로 그저 돌아다닐 뿐이다. 덕분에 그들에 대한 연구성과는 몇 만년동안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또다시 사라진다.. 존재 자체가 마치 없었던 것만 같다.
겉모습은 인간처럼 제각각, 가지각색이다. 머리의 그 회색만을 제외하고는..
 
 
그 이외에는 뭐 정말이지 인간과 똑같은 '개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의 것들..
 
 
 
 
 
 
 
 
 
 
 
 
 
 
 
 
 
 
 
 
 
 
 
 
 
그날의 과제제출도 끝났고, 그럭저럭 회상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밤은 성큼 다가온다. 
 
 
 
 
 
 "그럼 다음번엔 좀 더 복잡하고 '무게감 있게' 준비할게요. 자, 이제 오늘밤은요!?"
 
 
 
.....
 
 
 "오늘은 없어. 휴가야."
 
 "네? 그게 무슨......"
 
말은 단순했지만 머릿속에 따라 들어온 그 이름 모를 파장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치 지금 어디선가 들려 오는 저 이름모를 짐승의 울음소리의 그것과 같이.
 
 
 
 
 
 
 
 "말 그대로야. 자~ 가자." 

 "어딜요?" 

 
 
 
 "이 세계의 밤이 이끄는 곳으로."

 "우왁, 잠시만요. 잠깐, 스톱. 이것 좀 놔봐요!" 하고 뿌리쳐보지만...
 
그에도 그치지 않는 손길은 나를, 우리를 어디론가로 이끌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혹시 그녀가(성별은 후에 직접 확인한 내용이다 오해없으시길) 그날 수업을 진행을 방해한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고, 일부러 그것을 피한 게 아닐까 하는.
 
그녀는 그 이유를 알고 있기에 그것이 우리 앞에 나서기도 전에 미리 손을 쓴 것은 아닐까. 
 
 
 
기우 아닌 기우는 길고 깊은 울음소리를 한 번 뽑아내는 것을 끝으로 사라진 짐승과는 무관하게 그렇게 깊어만 갔다. 
 
 
 
 
 
 
 
 
 
 
 
 
그래도 오늘.. 세계가 말하려고 하는 바, 과제는 비교적 간단해 보였다.
 
 
 
 
 
이끄는 곳으로 가라.
 
 
바로 그것이 아닐까..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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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15/A:598]
깎깎
잘봤습니다 ㅋ 음.. 잘봤어요 꽤 ㅋ
2012-11-23 01:38:29
추천0
[L:25/A:107]
Nearbye
다행입니다.

이건 공통된 사항이라 다는건데요

솔직히 중반부는 가셔야 뭐든지 이해가 되실거에요;
2012-11-23 01:41:25
추천0
[L:23/A:416]
종이
잘봤습니다.
2012-11-23 02:20:22
추천0
[L:26/A:107]
SWAT
이거 1인칭이었구나.............



줸장! 내 미래에 걸림돌이라니! 니어주제에!

쩃든 잘봄~ 하지만 평가는 내리지 않겠다! 하하핳
2012-11-23 06:26:08
추천0
[L:2/A:178]
AcceIerator
헐, 좋은데요?! 특히 묘사부분, 전개부분 너무 자연스럽고 깔끔해서좋아요!!
제가 쓰고있는 소설이랑 느낌이 많이 비슷해서 놀랐습니다 ㄷㄷ
아, 내용이나 이런개 아니라 전체적인 가라앉은 분위기랄까. 그런거 좋아하거든요!
정말 재밌게봤어요! 전 추천을 박습니다!
2012-11-23 08:40:30
추천0
[L:25/A:107]
Nearbye
@_@

분위기 비슷하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그래서 제가 남의 소설을 정독하는 일이 거의 없...

ㅁㄴㅇㄹ
2012-11-23 15:44:50
추천0
[L:2/A:178]
AcceIerator
아아니 ㅋㅋㅋ
알게이드 말고 다른거요 ㅎㅎ 흡혈귀물쓰는 중이라 훗
2012-11-23 16:01:23
추천0
[L:25/A:107]
Nearbye
에구구.. 다행;
2012-11-23 16:34:26
추천0
KlRITO
우와; 프롤로그 보고 오는 길입니다만, 왠지 대단한 소설이 될것만 같은!!
2012-11-23 09:15:00
추천0
[L:42/A:504]
라스트오덕
잘 보고 갑니다! ㅎ
2012-11-23 13:18:59
추천0
[L:12/A:574]
샘화
잘보고 갑니다~+ㅅ+!!!
2012-11-23 19:25:00
추천0
절검
잘보고가요 +ㅅ+
2013-06-21 19:32:28
추천0
[L:19/A:547]
룰루
읽고갑니다
2013-06-23 00:47:21
추천0
[L:13/A:301]
kiritoo
잘봤습니다!!
2013-07-23 12:02:24
추천0
AkaRix
잘보고갑니다
2013-07-24 20:35:20
추천0
케이카인
재밌게 보고 가요~
2013-08-11 17:07:38
추천0
Niter
잘 보고 가요~
2013-08-14 00:06:24
추천0
심플
잘 보고 갑니다!
2013-08-15 16:09:39
추천0
별명
책 읽는 것은 싫어하는데 이런 건 볼만하네요 ㅋㅋ
2013-08-19 19:36:23
추천0
별명
추천ㅋ
2013-08-19 19:36:47
추천0
[L:8/A:221]
ShinobuOshino
이제껏 읽던 라노벨과는 다른느낌.
잘 읽고 갑니다~
2013-09-04 22:31:08
추천0
[L:48/A:52]
리어링
글씨 읽기가 힘들어요 글체좀...
2013-11-17 22:59:02
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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