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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Requiescat in Pace (R.I.P) - 4. 일부로 네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어
NOAH | L:46/A: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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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7 | 조회 1,597 | 작성일 2012-06-20 16: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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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Requiescat in Pace (R.I.P) - 4. 일부로 네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어

 

 R.I.P- 4. 일부로 네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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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엔 커다란 나무들이 상당히 많았다. 나무의 그늘들은 햇볕을 가려주기가 매우 용이했는데, 그로인해선지 평소의 마을 사람들은 햇볕이 매우 뜨거운 날이면 힘들게라도 이 봉에 올라와 몇 시간동안이나 휴식을 취하고, 싸온 밥을 먹는 등 가볍게 시간을 때우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지금은 평소의 평화로운 마을을 바라보는 봉이 아닌 불에 타 처참해진 마을을 바라오는데 장관인 곳이 되어버렸다. ‘두번째’가 이런 처참한 광경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도 이 봉을 발견한지 3분이 채 되지 않아서였다. 

 

“큰 나무가 상당히 많군.”

 

봉의 길엔 떨어져있는 나뭇잎이 상당히 많았다. 걸을 때마다 나뭇잎의 부식-하는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의 ‘눈’에도 보이지 않겠다는 건가. 꽤나 세심한 주의인걸.”

 

길을 천천히 걷는 도중 발쪽에서 무언가를 알아차렸다는 듯이 ‘두번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한쪽 무릎을 꿇어 이내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흔적이군. 하나, 둘, 셋, 아니 그 이상인가. 은신마법을 활용해서 지면에 닿는 발바닥의 흔적만 깔끔하게 숨기려했군. 그렇지만...’

 

두번째’가 흔적이 남아있던 곳의 나뭇잎을 두어 개 주워 바람에 흩날리며 말했다.

 

“나를 속이기엔 백년 무르다.”

 

 

 

 

 

 

 

 

 

 

“헥...헥...”

 

흰 머리에 약간은 또래보다 작아 보이는 키에, 허름해진 바지 한쪽에 작은 단검 칼집을 억지로 꽂아 넣은 소년은, 봉으로 재빠르게 올라가던 중년의 남자가 갑자기 없어지자 조급한 마음에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젠장, 갑자기 사라지는 게 어디 있냐고! 제길. 그렇지만, 포기할 수는 없어. 반드시 죽이고야 말테다.’

얼굴 전체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팔소매로 대충 닦고 난 뒤, 다시 경사진 언덕을 고동치는 복수심을 재물삼아 억지로라도 올라가는 소년이었다.

 

죽이겠어. 반드시 죽이겠어!’

 

 

 


 

 

 

 

 

 

 

‘두번째’가 누군가가 숨겨놓았던 흔적을 하나하나 다시 제거하며 길을 걷는 도중이었다.

 

 

 

“끊겼군.”

 

주위를 바라보자 편히 쉴 수 있어 보이는, 마을과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 세련된 나무 의자 두 개와 그 의자를 중심으로 한 널찍한 공간이 나왔다. 이 주위에서 유일하게 큰 나무들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숲길이었다. 또한 이 숲길이 봉의 중심점이었는지 이 곳을 중심으로 네다섯 군데의 갈림길이 형성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다른 길에 비해 상당히 넓군. 큰 나무도 없이 상당히 하늘에 개방적이야. 이곳만큼은 햇볕을 받기에 충분하겠어. 거기에다.’

 

‘두번째’가 주위를 한 바퀴 휙 돌아보고는 말했다.

 

‘원을 그리고 있는 공간인가. 답 나왔군.’

 

남자가 갑자기 발밑에 있는 나뭇잎을 하나 들고는 작은 목소리로 캐스팅을 하자 나뭇잎이 공간의 중심으로 올라갔고, 이내 빙그르르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공간을 향해 중년의 남자는 말을 걸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숨지 말고 나와라. 은신마법을 조각내서 활용할 줄 아는 너라면 저 위에 돌아가고 있는 나뭇잎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 텐데.”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간의 중심, 즉 세련된 나무 의자에서 동물이 탈피를 하듯 사람의 ‘형상’이 하나씩 껍질을 깨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껍질이 발끝까지 다다르자 사람의 ‘형상’은 다시 인간의 신체 구조를 그리기 시작했다. 피부의 색, 눈, 코, 입의 모양과 입고 있던 옷 까지 전부. 은신마법이 풀리자 나타난 모습은 나무 의자에 너무도 편하게 앉아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20대 중반 쯤 되 보이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읏차.”

 

남자가 의자에서 살짝 일어나 ‘두번째’를 보고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당신 누구야? 신기하기도 하네. 흔적은 분명히 숨겼을 텐데. 더군다나 이런 촌마을에 마법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조차 못했고. 거기다 공중에서 돌아가는 저 나뭇잎, 은신저격용 마법인가. 위험하다고-”

 

두번째’가 오른쪽 가죽 바지 주머니에서 작은 돌멩이를 꺼내 오른손으로 공중에 던지고 잡는 일을 반복하며 남자의 질문에 대답했다.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던 나뭇잎은 마법이 풀렸는지 이내 바람을 타고 천천히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냥 지나가던 아저씨일 뿐이다. 꼬마야. 반대로 되묻지. 마을에 불을 지른 건 네가 한 짓이냐?”

 

의문의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늘을 살짝 바라보더니 이내 대답했다.

 

“글쎄, 음. 틀린 말은 아니야. 그 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그 대답을 듣자 ‘두번째’의 오른손에 들고 있던 돌멩이의 높이가 점차 높아져갔다. 돌멩이가 점차 높이 올라갈수록 던지고 잡는 시간도 그에 따라 길어져갔다.

 

“애초에 살라만드라의 ‘꼬리’를 혼자서 불러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네가 그 무리에 포함되어 있었는지가 궁금했지.”

 

의문의 남자가 오른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가볍게 툭-치더니 헛웃음을 치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 그래. 당신 덕분에 생각났네. 그 살라만의 뭐...였더라? 아무튼 그 ‘괴물’말야. 당신도 봤어야 했는데. 내 동료와 ‘줄’이 끊어졌을 때 그 괴물의 표정. 그것만큼 재밌는 게 없었지. 그래! 그 괴물의 당황하는 표정이 보였다니까! 괴물 따위가 표정을 짓더라고! 으하하! 웃겨 미치는 줄 알았지!”

 

남자는 자신이 말하고도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는지 이내 두 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다시 의자에 앉아 크게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 그 때 그 표정, 다시 보고 싶은걸.”

 

남자의 얘기를 끝까지 들은 ‘두번째’가 긴 한숨을 내쉬고 오른손에 힘을 주려 할 때 마음속으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나가게 해줘. 내가 싸우고 싶어."
“엘."

"부탁이야. ‘두번째’ 내가…"

 

‘두번째’가 아직 남아있는 오른팔의 물기를 왼손가락으로 살짝 쓰다듬으며 속으로 말했다.

 

“너의 심정은 충분이 이해한다. 하지만.”

 

그때였다. ‘두번째’의 오른발이 한 쪽 뒤로 물려지며, 오른손에 들고 있던 작은 돌멩이가 화염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곤 그 돌멩이를 전속력으로 의자에 앉아 배를 움켜잡고 있는 의문의 남자에게 던졌다. 남자는 갑자기 날아오는, 화염에 둘러싸인 돌멩이를 보고 흠칫 놀랐지만 별거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왼쪽 어깨 쪽으로 살짝 내렸다. 남자의 얼굴을 그대로 지나간 돌멩이는 갈림길의 입구 앞에 있는 큰 나무 앞에 도착하자 스스로 분해했다.

 

‘저 녀석은 내가 죽인다. 엘’

 

의문의 남자가 한 쪽 눈썹을 치켜들고는 ‘두번째’에게 말했다.

 

“어이, 뭐하는 짓이냐. 내 잘생긴 얼굴을 망칠 셈이냐.”

 

‘두번째’가 다시 오른쪽 주머니에서 작은 돌멩이를 하나 꺼냈다. 그 돌멩이도 이내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죽기 전에 말해라. 꼬마야. 너와 같이 ‘꼬리’를 불러낸 놈들은 어디에 있나?”

 

의문의 남자가 다시 의자에서 일어나 바람에 휘날리는 앞머리를 정돈한 뒤 ‘두번째’의 말투가 아니꼽다는 듯이 불쾌감을 드러내며 말했다.

 

“어이 당신. 계속 꼬마, 꼬마 거리는데 내가 그런 말 들을 나이는 훨씬 지났어. 그리고 나에겐 ‘리스벤’이라는 이름이 있거든. 꼬마는 좀 자제해주지 그래.”

 

슉- 화염에 휩싸인 돌멩이가 다시 리스벤의 얼굴 옆으로 날아갔다. 정확히 말하면 이번에도 얼굴을 노리고 던졌지만 리스벤이 가볍게 피했다고 봐야 옳았다.

 

“나에게 꼬마로 보이는 이상, 넌 그냥 꼬마다.”

 

이번엔 양손에서였다. ‘두번째’의 양손에서 여러 개의 돌멩이들이 한꺼번에 리스벤의 얼굴과 몸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두번째’의 손끝을 떠날 땐 단순한 돌멩이였지만 리스벤에게 다가오는 사이에 어느새 돌멩이에 불이 붙더니 이내 강력한 살인무기로 변해있었다. 리스벤이 한꺼번에 날아오는 돌멩이들을 피하기 위해 ‘두번째’와 거리를 점차 벌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아저씨, 딱히 마법을 외우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데 어째서 돌멩이에 불이 붙으며 날아오는 거지. 까딱하다 맞으면 저세상 행이겠군.’

 

돌멩이를 피해 거리를 벌린 리스벤과 ‘두번째’의 거리 차는 공간의 끝과 끝이었다. 리스벤이 거리를 벌리고 두 번째의 양손을 바라보니 손바닥 위로 작은 불꽃이 피어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손바닥에 불꽃을 계속 생성해둔채로 날아가는 돌에 일일이 마법을 분산시키는 건가. 불꽃 생성과 분산마법 동시 캐스팅이라니. 역시 보통 내기는 아니군. 괜한 싸움을 피해서 도망쳐봤자 잡히는 건 순식간이겠어. 싸워서 죽이는 수밖에!’

 

결심과 동시에 리스벤이 날아오는 돌멩이들을 피하며 한 쪽 구석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바지 뒤쪽에서 몰래 꺼낸 작은 은빛 단검이 리스벤의 오른손에서 특기 마법중 하나인 은신마법에 의해 가려졌고, 그 무기를 숨긴 채 돌멩이를 피하며 ‘두번째’와의 거리차를 점차 좁히기 시작했다.

 

‘두 마법을 동시에 캐스팅하고 있다. 은신마법에 의해 완전히 가려진 단검을 알아채기는 불가능해. 거리를 두고 보이지 않는 무기를 계속 던질 수도 있지만, 일부러 무기를 숨겨놓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할 순 없지. 이대로 거리를 좁혀서 즉사시킨다!’

 

리스벤의 거리차가 ‘두번째’와 불과 몇 발자국으로 좁혀진 그때였다. 퍽-하고 오른팔을 강타한 무언가가 있었다.

 

“으악!”

 

급하게 좁히던 거리를 다시 한 발자국 뒤로 내민 후 오른팔을 바라본 리스벤이 이내 경악했다. 거리를 좁히기 위해 달려갔던, 방금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날카로운 돌멩이가 오른팔에 박혀있기 때문이었다. 뼈에 부딪히기 바로 직전까지 박힌 돌멩이는 날카롭게 살점을 파고든 상태였고, 그로 인해 엄청난 양의 피가 리스벤의 오른팔에서 넘쳐흘렀다.

 

“어…어떻게!”

 

‘두번째’가 양손에 들고 있던 작은 돌멩이들을 하나씩 바닥으로 던져놓으며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리스벤은 피가 넘쳐흐르고 있는 오른팔을 왼손으로 살짝 감싸 간단한 회복마법을 검과 동시에 다가오고 있는 중년의 남자와의 거리를 조금씩 벌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전방을 주시하며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던 리스벤의 시야에 ‘두번째’가 갑자기 사라진 것은. 급하게 좌우를 둘러보고, 공중을 둘러보아도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은신마법인가! 은신마법이라면 내가 보지 못할리가! 제길!’

 

머리에선 뜨거운 땀방울이 계속 흘러내리고, 팔에선 작은 출혈이 계속되었다. 출혈로 인해 머리가 점차 어지러워지자 이내 걸어두었던 단검의 은신마법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은신마법이 풀림과 동시에 리스벤은 느꼈다. 자신의 뒤에 서있는 남자의 무게를.

 

스삭- 은신마법이 풀린 단검이 순식간에 두 동강 났다. 그 단단한 단검을 두 동강낸 것은 날카롭게 펴진 나뭇잎 한 장이었다. 자신의 무기가 고작 나뭇잎 하나에 두 동강 나자 두려워진 리스벤은 허겁지겁 남자의 반대편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는지 양손으로 바닥을 집고 기어가며 도망치는 리스벤의 모습을, 느린 걸음으로 뒤 쫒아 가는 중년의 남자가 말을 꺼냈다.

 

“묻고 싶은 게 상당히 많으니 입은 남겨두겠다.”

 

리스벤이 도망친 거리를 보기 위해 뒤를 살짝 돌아봤지만 커다란 그림자는 이미 그의 시야를 덮고 있었다. 푸슉- 도망치면 도망칠수록 상처가 깊어져만 갔다.

 

저 녀석이야 말로 괴물이야. 괴물이라고!’

 

깊숙한 상처들에 의해 신경 하나하나 깊숙이 파고드는 고통을 억지로 참아내어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는 리스벤의 눈에 보인 것이 하나 있었다. 흥분된 표정을 억지로 삼키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흰 머리의 소년이 그것이었다. 소년을 본 리스벤이 상기된 표정으로 생각했다.

 

‘하핫! 그래 신은 날 버리지 않았어! 저 소년을 인질 삼아 시간을 끌어야겠다. 몸을 숨길만한 은신마법의 캐스팅 시간을 벌기엔 충분할거다!’

 

탁- 마지막 힘을 짜내어 리스벤이 소년을 향해 달려갔고, 소년 또한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리스벤이 재빠르게 오른쪽 발의 힘을 지면에 닿게 하고 빠른 방향전환으로 소년의 등 뒤로 가 이내 소년의 목을 낚아채는데 성공했다. 두 동강 난 단검의 손잡이 부분이 소년의 목을 먹잇감으로 노리기 시작했다.

 

“어이어이, 이번엔 인질 놀이냐.”

 

‘여기선 대충 맞춰주면서 시간을 끌어야겠군. 뭣하면 소년을 죽여서라도 시간을 끌어 은신마법을 캐스팅한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지만 약간은 이 사태에 아주 약간은 짜증을 느낀 ‘두번째’였다.

 

“따라오지 말라고 바로 사라져 줬더니 여기까지 쫒아 온 거냐.”

 

콜록-콜록- 목을 조인 팔에 힘에 저절로 헛기침이 나온 소년이었다. 그러나 소년은 이내 온 정신을 집중하여 ‘두번째’에게 물었다.

 

“아저씨. 마을에 불을 지른 건 이 녀석이야? 아줌마, 아저씨를 죽인게 이 녀석이야?”

 

‘두번째’에게 하는 질문을 당연히 듣고 있던 리스벤이 대화에 끼어들어 소년에게 대신 대답했다.

 

“그래, 그래. 이 형이 한 짓이란다. 꼬마야. 그러니 형 말 듣고 얌전히…”

 

그때였다. 푸슉- 작은 단검이 리스벤의 왼쪽 허벅지에 깊숙하게 박혔다. 리스벤의 단검이 아니었다.

 

“으아악! 무슨!”

 

리스벤이 자신의 왼쪽 허벅지를 바라보았다. 소년의 바지 주머니 속안 칼집에 숨어있던 단검이, 소년의 그나마 자유로운 오른손에 의해 리스벤의 허벅지를 쑤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섯 차례를 반복하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아픔의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리스벤이었다. 자연스럽게 소년의 목을 감싸 쥐고 있던 오른팔의 힘은 빠지기 시작했고, 스르륵하고 소년의 목을 뱀처럼 휘감고 있던 압박감도 이내 사라졌다. 그대로 리스벤의 얼굴은 바닥을 향해 퍽-하고 부딪혔다. 소년이 앞으로 쓰러진 리스벤의 얼굴을 하늘을 향하게 돌려놓고 그 모습을 경직된 표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 건방진 표정으로 바라보지 마라.”
“영원히 저주하기위해 너의 그 더러운 얼굴을 기억하는 거야.”

 

리스벤이 자신을 향해 오는 뜨거운 햇볕을 가리기 위해 오른손을 얼굴에 올려놓은 뒤 쓴 웃음을 치기 시작했다.

 

“큭큭… 하지만 이미 늦었어. 너무나 늦었다고… 여기서 날 죽여 봐야 너무나 늦었다. 죽여라. 소년. 어서 원수를 갚고 너의 그 깨끗한 척 하는 손을 더럽혀라!”

 

소년의 눈동자는 하나의 미동조차 없다. 햇볕을 받아 더욱 반짝이게 빛나는 작은 단검이 소년의 오른손에 의해 오르고 이내 리스벤의 목을 향해 힘차게 내려오는 그 순간. 리스벤의 목을 단검이 찌르기 전, 그 찰나의 순간 소년의 손목을 잡아 저지하는 남자가 있었다. 소년이 남자의 얼굴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소년이 ‘두번째’의 힘을 이기고 리스벤의 목을 치기위해 온 힘을 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년의 손목을 꼭 잡은 그 손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리고 남자는 소년에게 말했다.

 

“네 손을 더럽히지 마라.”

 

소년은 자신의 오른손에 주던 힘이 점차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타의적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힘이었지만 이내 소년도 자의적으로 오른손에 주던 힘을 빼기 시작했다. 리스벤의 허벅지를 찔렀던 단검에선 피가 한 방울씩 계속 떨어지고 있었고, 소년의 눈에선 피와는 다른 투명한 눈물이 한 방울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 녀석을 죽여야… 아줌마, 아저씨의 원수를…”

 

챙-하는 소리와 동시에 소년이 꽉 쥐고 있던 단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단검에 뭍은 피는 나뭇잎을 하나, 둘 적시기 시작했다. 소년은 양 손바닥을 바닥에 두고 무릎 꿇은 채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런 소년에게 ‘두번째’가 다시 다가와 말했다.

 

“복수의 방법은 꼭 죽이는 것만 있는 게 아니야.”

 

‘두번째’가 흐느껴 울고 있는 소년의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니 몇 초 후 소년의 몸에서 스르륵 힘이 빠지며, 소년은 그대로 나뭇잎을 침대삼아 잠이 들었다. 쓰러져 급한 숨을 내 쉬고 있는 리스벤에게 남자가 다시 돌아와 말했다.

 

“여기서부턴 다시 어른들의 세계다.”
“… 어차피 난 살지 못해. 너도 이미 알았을 터, 저 소년은 이미 손을 더럽혔어.”
“흥, 적어도 목은 치지 않았지.”

 

후-하는 리스벤의 숨소리가 점점 긴박하게 들려온다. 바람은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큰 나무의 나뭇잎들이 바람을 타고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 한 가지. 딱 한 가지만 말해주지. 그 이상은 없다.”
“네 목숨 하나의 한 개의 질문이란 뜻인가. 좋다. 그렇다면 하지.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너의 동료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숨소리가 점점 더 급해져온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져간다. 바람은 더 세차게 불기 시작하고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들의 개수는 점점 더 많아져간다.

 

“내가 물었을 땐 헤르바 마을을 지나 국경을 넘는다는 소리를 했다. 아는 건 단지 그것뿐이야. 정말이다. 다 죽어 가는데 거짓말은 하지 않아.”

 

바람이 그쳤다. 떨어지는 나뭇잎도 그 수가 현저히 줄었다. 숨은 이제 아주 천천히 뱉고 내쉬고를 반복한다.

 

“그렇군.”

 

두번째’가 한 쪽에 스르륵 잠이 들어있는 소년의 옷소매를 한 손으로 잡고 소년을 집어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등에 태워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늘을 향해 쓴 웃음을 짓고 최후를 준비하는 리스벤에게 ‘두번째’가 살짝 고개를 돌려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 동굴에 은신마법을 건 것 또한 너의 짓이라면, 아이들을 유인하고 죽인 게 ‘네놈들’의 짓이라면,

그런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넌 신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될 거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러스트 그리고 소설 쓰고 하다보니 자주는 못 쓰겠네요ㅜ.ㅜ

내용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있을런지...;

 

항상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힘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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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39/A:543]
언트
복수란 덧없는 것이지요
2012-06-21 11:36:19
추천0
[L:46/A:443]
NOAH
당사자가 아니면 잘 모를 듯 한 느낌~
2012-06-21 13:38:58
추천0
[L:8/A:392]
accelerator
너무 착하잖아.. 두번째..

나같으면 갈기갈기 찢어버릴꺼라고!
2012-06-21 22:27:05
추천0
[L:46/A:443]
NOAH
죽여버려~!
2012-06-21 22:42:47
추천0
㈜모란
노아님은 많이 연재해본 필력같아요..ㅠ
2012-06-22 01:35:04
추천0
[L:46/A:443]
NOAH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영광스러울 따름입니다~~!
2012-06-22 02:14:48
추천0
[L:50/A:82]
lollollol
다음이 궁금함!
2012-06-26 13:19:29
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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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독(危篤) 제1호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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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4 0 667
10359 시 문학  
멀리서 빈다 - 나태주
2021-10-23 0 906
10358 시 문학  
즐거운 편지 - 황동규
2021-10-23 0 801
10357 시 문학  
별의 자백 - 서덕준
2021-10-23 0 791
10356 시 문학  
접동새 - 김소월
조커
2021-10-23 0 869
10355 시 문학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조커
2021-10-23 0 667
10354 시 문학  
장자를 빌려- 신경림
조커
2021-10-23 0 634
10353 시 문학  
월훈(月暈) - 박용래
크리스
2021-10-23 0 1127
10352 시 문학  
월광(月光)으로 짠 병실(病室) - 박영희
크리스
2021-10-23 0 692
10351 시 문학  
울음이 타는 가을강 - 박 재 삼
크리스
2021-10-23 0 1070
10350 시 문학  
장수산 - 정지용
조커
2021-10-17 0 714
10349 시 문학  
작은 짐슴 - 신석정
조커
2021-10-17 0 479
10348 시 문학  
작은 부엌 노래 - 문정희
조커
2021-10-17 0 599
10347 시 문학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 정채봉
타이가
2021-10-17 0 852
10346 시 문학  
가지 않은 봄 - 김용택
타이가
2021-10-17 0 652
10345 시 문학  
울릉도 - 유치환
크리스
2021-10-17 0 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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