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 [제 8화]
--------------------------------------------------------------------
나는 지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눈에 받으며 화려하게 등교 중이다.
한 쪽 팔은 어딘지 모르게 행복한 촉감을 나타내고 있어서 일부러 팔을 좀 떼려고 노력하느라 불편하고, 다른 한 쪽은······.
“정희야?”
“네, 선배? 왜 그러세요?”
“아니, 저기 보통 팔짱을 끼면 이런 식으로 걸진 않잖아?
이런 건 그······. 관절기라고 불리는 것 같은데 말이야.”
“그, 그렇지만 팔짱 같은거 한 번도 안 껴봐서 어떻게 껴야하는지······.”
“그, 그러니까 저기 저 여자애처럼 끼면 되는데 말이야······.”
“서, 선배는 호, 혹시 그, 제 가, 가······. 하여튼!! 엉큼해요, 선배!”
어째서인지 자신만 알 수 있게 말해버리고는 관절기를 건 팔에 힘을 더 주는 바람에 나는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팔이이-?!”
“······.서투네······.”
그에 비해서 내 오른쪽에 긴 검은 생머리의 귀여운 아이는 어딘지 모르게 정희와는 다르게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뭐, 뭐야 어딘지 능숙해보이네······. 하긴, 생긴 거로 봐서는 연애 경험이 많아 보이니깐······.
“누, 누가 서툴다고 그래요?!”
“······. 풋······.”
“비, 비웃었어요?! 선배! 봤죠, 저 여자가 저 비웃는 거!”
“저, 저기 일단 관절기를 건 팔은 좀 풀어줬으면 하······.”
“용서 못 해요! 갑자기 잘 되고 있는 우리 사이에 끼어든 것도 모자라서 저를 비웃다니!”
“흐어억- 자, 잠깐만 팔에 힘 좀 풀어 너무 아프아-악?!”
왜 점점 세지냐고?!
게다가 솔직하게 팔짱 낀답시고 관절기를 건 건 심하게 웃겼다고!! 물론 나만 빼고······.
“······. 나, 학교 도착······. 형석아, 핸드폰······.”
정희의 말을 무시하고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며 손을 내미는 그 검은 생머리의 여자아이에게
나는 멍하니 있다가 관절기를 당하지 않은 손으로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관절기가 걸린 팔에 통증이이-?! 더 세진 것 같다고!!!!
기분 탓인가······.
“탁탁탁탁-·····.”
“······. 자, 여기······.”
그녀가 내게 돌려준 핸드폰에는 그녀의 전화번호로 보이는 번호가 ‘임혜정’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어, 어······.”
“······. 끝나면 그 번호로 전화·····.”
“아, 응!”
아, 그러고보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안 하게 됐네······. 편해진 거려나?
“뭐, 뭐가 ‘응!’이에요 선배! 정말!! 곰돌이랑 연습할 때와는 너무 다른 쪽으로 흘러간다구요······.”
“응? 너 방금 뭐라고·····?”
“됐어요! 여자 맘도 모르는 멍청이는 몰라도 되네요, 뭐!!
저 여자랑이나 잘 해봐요, 뭐!”
그런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토라진 표정으로 우리 학교로 뛰어가는 정희, 팔이 드디어 해방됐다!
저릿저릿한 느낌은 아직 남아있지만······.
“지금 시간이······. 자, 잠깐만 몇 분?”
시계를 몇 번이나 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지금 시각은 7시 50분······.
“끄아아악-!! 벌써 20분이나 지각?!”
크, 큰일 났다! 정희는 일단 3학년이 아니니 7시 50분까지 가면 되지만 3학년인 나는······.
7시 30분까지 등교이다······. 즉, 나는 20분이나 지각했다.
아, 혜정이라는 여자애는 나와 학교가 달라서 잘 모르지만 3학년이 아니라면 늦은 시각은 아닌 것 같고·····.
“지, 지각은 나 뿐인거냐아앗-?!”
억울해 억울해! 이건 좀 아니라고!! 나만 지각이라니?!
“이, 이럴 시간 없어! 어서 뛰어야······.”
순간, 나는 머리에 번뜩 좋은 생각이 들었다.
--------------------------------------------------------------------
“야, 너 거기! 이리 와. 너 지각이지?”
“선생님, 지각이라뇨. 저는 지금 학생 부회장이 일을 좀 시켜서 그 심부름 좀 하다가 늦었습니다.”
“그래? 그럼 빨리 들어가라.”
“넵.”
휴우~ 1단계는 통과고, 2단계는 이제 담임인가······.
“드르륵-”
급우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리고 나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서 가방을 놓고
나에게 무언가 말하려는 선생님을 정면으로 쳐다보고는 말했다.
“선생님, 자퇴서를 쓰는 방법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뭐, 뭐라고?”
“자퇴서요.”
그러자 선생님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가, 갑자기 무슨 일이냐? 갑자기 왜 자퇴서를······.
네가 요즘 힘든 건 잘 알지만 그래도 힘들게 했는데, 여기서 자퇴서를 쓰는건 아깝지 않니? 조금만 더 참으면 될텐데.”
“죄송합니다, 힘들어서 좀 욱했나봅니다.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어서 자리에 앉으렴.”
작전 성공!!! 자연스럽게 선생님이 지각에 대한 이야기를 안 꺼내시고 넘어가게 만들었다.
분명 자퇴 이야기 같은 무거운 이야기를 하면 선생님이 당황하시고,
분위기가 지각이야기를 꺼내면 상황이 악화될 것 같아서 말 못 하시게 만들면 지각이 없던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적중했다.
특히나 내 성적은 전교 탑 클래스, 내가 자퇴서를 낸다고 하면 다른 학생들도 많이 흔들릴 위험이 있고,
학교에도 손해이므로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도 내 계산이 들어맞았다.
그래도 다음부턴 늦으면 안 되겠지······.
--------------------------------------------------------------------
“딩동댕동-”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다들 밥 맛있게 먹고, 밥 먹고 학교 뒤에 숨어서 담배 피다가 걸리면 머리를 깔끔히 밀어줄테니 그렇게 알아.”
<<네에->>
선생님이 나가시고 우리 반이 급식을 받을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는데······.
“뚜르르르-”
전화가 왔다.(아참, 우리 학교는 핸드폰을 걷지 않는다. 학교 재량이기 때문에 다른 학교 아이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점이기도 하다.)
발신자는 ‘임혜정’이었다.
왜 전화를 한 거지? 왜, 왜인지 떨린다고,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
“딸깍- 여보세요-?”
[······. 여보세요······.]
“아, 그······. 무슨 일이야?”
[······. 지금 우리 학교로 와······.]
“나, 나 아직 밥 못 먹······.”
[······. 기다릴게······. USB 가지고······.
우리 학교 옥상으로 10분 내로 와. 늦으면 USB는 우리 학교 어딘가에 묻어버릴거니까······.]
“뭐, 뭣?!”
[뚜-뚜-]
끊어졌어?! 어, 엄청나?!
차분한 목소리로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었다고!!!
“10분이라, 지금부터 뛰면 되려나······. 아니, 되야만 해!”
--------------------------------------------------------------------
“헉- 헉-”
시간내에 도착······. 아슬아슬했다.
교문에서 감시하는 선생님이 따라온 덕에 더 빨리 뛸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고마운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너, 너 말이야, 구교사인지 신교사인지 말 안 해줘서······. 헉- 헉- 둘 다 다녀왔잖아!!”
“·······. 어서 와, 시간에 맞춰왔네······.”
“조용조용히 내 말 무시하지마!”
“·······. 빨리 점심 먹자······.”
“난 너 때문에 점심도 못 먹고······.”
“······. 여기, 네 거······.”
혜정이가 나에게 건네준 것은 도시락, 혜정이의 도시락과 똑같이 생긴 도시락통에 담겨있었고,
그걸 건네주는 혜정이는 왠지 모르게 쑥쓰러워 보였다.
항상 같은 그 조용조용한 말투도 오늘은 왠지 떨리는 듯하여 나도 모르게 설레고 말았다.
“그, 내 것까지 준비해준 거야? 고마워······.”
“······. 네가 아침에 내가 옷 갈아입는 소리에 신경쓸 때 빨리 만들었어······.”
아, 아침에 왔다갔다 하면서·······.
“자, 잠깐!! 그렇게 말하면 남들이 오해하기 딱 좋······.”
“꽈악-”
내 목을 뭔가 단단한 무언가가 휘감는 느낌이 나면서 내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무슨 소리일까요, 선배······?”
“그-구-구궤엑-”
‘그게’라는 단 한 마디도 마치 돼지가 우는 듯한 소리로 만들어버리는 엄청난 목조르기에 걸린 나는
황급히 탭을 치면서 정희에게 자비를 구하고 있었다.
“헥- 헥-”
목이 공기를 급하게 탐하면서 마치 갈증에 찬 개들이 낼 법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 정말!! 선배가 나쁜 거라고요! 그런 불건전한 생활은 그, 그러니까······. 학교 생활에 안 좋다구요!!!”
“그게 아니야! 헥- 음, 음! 그건 다 사정이 있어, 정희야!!”
“그, 그럼 설명을 한 번 해보세요!”
이제야 내 말을 들어줄 것 같은 태도를 취하면서 정희가 말했다.
드디어, 들어주는 건가? 아······. 일이 잘 해결될 것 같다. 좋아, 제대로 설명만 하면······.
“······. 얘가 내가 자고 있는데 집으로 쳐들어왔어······.”
“서어어언배에에에-?!”
“자, 잠깐!! 내 얘기도 들어달라고!!!”
“남은 이야기는 옥황상제와 토킹 어바웃 하시라고요!!!!”
“그럼 이미 얘기를 하는 의미가 없잖아?!”
“어서 얌전히 멈춰서!!예요!!!!”
“······. 하아······. 왜들 저러는지······.”
“너, 너 때문이야!!!!!!!!!!!!!!!!!!!!!!!!!!!!”
오늘도 만만치 않은 하루가 될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건 내 기우일 거라고 믿고 싶다······.
커플이 되고 싶은 작가도 웁니다...ㅋㅋㅋ
OTL
추천0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