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 [제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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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드득-”
내 목에서 뼈가 맞춰지는 소리가 나면서 동시에 통증이 느껴졌다.
“아야야- 어째서 내 말은 들어주지 않는 거냐고- 너무하네.”
“그, 그렇지만!! 선배가 나쁜 거라구요! 저런 여자 집에 쳐들어가서는 막, 이러고, 저러고!”
다시 정희의 눈에 폭력적인 기운이 감돌기 시작할 때 나는 당장 변명을 시작했다.
어쩌면, 내 최후의 변론이 될 지도 모른다고! 제길!
“그, 그러니까! 나는 그냥 이 녀석한테 받아갈 게 있었다고!”
“······? 받아갈 거라구요? 그게 뭐였는데요?”
좋아, 들어줄 것 같은 분위기다. 이제 제대로 말하기만 하면·······.
“나의·······. 흑흑·······.”
“서어어어어어언배에에에에에엣-?!
용서 못 해! 용서 못 한다구요!!!!!!!!!!”
“뭐, 뭐야! 이게 무슨 상황인데!! 쟤는 왜 울고 넌 왜 날 죽이려는 건데·······?!”
일단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발은 쉴새없이 그녀가 달려오는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그, 근데 살기가 눈에 보여, 저거 위험하다고오옷!!
“흐흐흐흐, 이리 와요. 어디 한 번 제대로 이야기 해보자구요·······?”
“이미 이야기 할 분위기는 아니잖아!!
그리고 벽돌 들고 달려오면서 그렇게 말하지마!”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옥상 한 쪽 귀퉁이에 치워져있던 한 벽돌이 들려있었고,
그녀가 달릴 때마다 그 벽돌은 위협적으로 흔들리며 공포스러운 상황을 연출했다.
“턱-”
“성, 공! 이에요!!”
정희는 다리를 뻗어 달려가는 나를 넘어뜨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정희의 팔을 잡고 필사적으로 넘어지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은 넘어지고 말았다.
“털썩- 툭-”
“으윽-”
아야야, 너무 아프다고······.
자, 잠깐만······. 위, 위험해엣-?!
“우우욱-”
내가 팔을 잡은 것 때문에 넘어진 정희는,
아니, 확실하게 말하자면 ‘내 위로’ 넘어진 정희는 어쩐지 묘한 자세를 취하며 약한 신음을 흘렸다.
위험해, 위험해에!! 이거 다른 사람이 보면 위험·······.
“·······. 신성한 학교에서 이성교제는 안 돼······.”
이번엔 당신입니까앗?! 어째서, 어째서?!
원인 제공은 당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건만?!
“서, 선배! 변태!! 이게 뭐하는 거예요?!”
“그, 그러니까 네가 다리를 걸어서 그렇잖아!!”
“제 탓이라는 거예요?!”
“·······. 사이 좋은 건 용서 못 해, 이런 건 반칙·······.”
“그러니까, 시작은 너라고!!”
“······. 그치만, 재밌을 것 같았는 걸······.”
“그게 사람 생사를 결정지을 이유냐앗-?!”
“서, 선배!! 이 자세나 풀라구욧!”
“네가 일어나면 되잖아!!”
“쩝-”
내 말을 듣고는 아쉬운 표정의 정희가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면서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입맛을 다신 것 같지만 잘못 들은 거라 생각한다.
응, 잘못 들은거야.
“·······. 이제, 내 차례·······.”
그렇게 말하면서 방금까지 정희가 있던 자리로 와서는 같은 자세를 취하려는 혜정이, 어, 어이?!
“어, 어이!! 뭐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양 손으로 어깨를 밀치는 나를 불만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면서 그녀는 말했다.
“······. 나도, 나도 할거야······.”
“어, 어이 너!”
그러고는 체격에 비해 말도 안 될만큼 엄청난 힘으로 나를 누르고는
그 위로 누우려는 혜정이를 정희가 저지하며 말했다.
“저는 실수였고, 이거야 말로 반칙이라구요!”
“······. 칫······. 치사해······.”
어, 어이 저 빼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반칙이요? 무슨 반칙이요?
그리고 왠지 모르게 승리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희도 이해되지 않았다.
응? 이게 무슨 상황? 뭐, 나는 풀려났으니 상관 없지만.
“선배, 괜찮으세요?”
나에게 초콜렛을 건네줄 때처럼 달콤한 눈빛과 목소리로 말하며 나의 옷을 털어주는 정희,
그 눈이 마치 빨려들어갈 것처럼 사랑스러웠다······.
어쩐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가 왜인지 모르게 자꾸만 그녀를 안고 싶은 마음이 들······.
“꽈악-”
“······. 한 눈 파는 거 금지······.”
“끄아아악- 헤드로오오옥-?!”
“아, 진짜! 방해 좀 하시지 말라니까요!”
“······. 네가 방해한 거야······.”
“아니, 근데 이 여자가 진짜······?!”
부, 분위기가 살벌해,
왠지 모르게 하늘이 보랏빛으로 보일 것 같은데······왜 팔에 힘을 점점 더 주는 건데?!
나한테 화풀이 하는 거지, 그렇지?!
“사, 살······.”
우와, 대단해 말이 안 나오다니······.
정희의 헤드록보다 더 감정이 실린 헤드록이라고 보여집니다만······.
근데, 사, 살려줘어엇-?!
감상할 때가 아니라고, 나······.
“어어?! 선배!! 정신 차려요 선배!”
“아하하, 괜찮아, 괜찮아.”
“·······. 미안, 힘조절했는데······.”
“괜찮으세요??”
“응, 아 잠깐만, 저기서 우리 증조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시는데? 가봐야 겠다.”
“네?”
“······. 응······?”
“저기, 저기 말이야. 난 갈게.”
“선배, 거긴 공중이라구욧?! 전혀 괜찮지 않잖아요?!”
“······. 그저 더위를 먹어서 그런 것뿐······.”
“싸우지마, 난 금방 다녀올게······.”
“안 돼요! 가지마요, 선배!!!”
무언가가 나의 옷을 강하게 잡아끄는 느낌과 동시에 무시 무시한 소리가 났다.
“쿵-”
“서, 선배 괜찮아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묻는 정희.
“응? 뭐가 말이야?”
아······. 목이 좀 아프네, 오늘만 헤드록을 두 번 당해서 그런가?
게다가 머리 뒷 쪽도 좀 아픈 것 같은데······. 아까 넘어져서 그런가?
“휴······. 다행이다······.”
“······. 무사하네·······. 다행······.”
“? 무슨 소리야?”
나는 일어서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근데, 슬슬 점심시간 끝날 것 같은데 나 이제 가봐도 되지?”
“······. 잠깐만······.”
“응? 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 혜정이는 나의 얼굴에 손을 가져가더니
부드러운 손길로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부드럽고도 따뜻한 손이 내 얼굴에 닿으며 내 심장이 두근거리기 충분한 상황을 만들었다.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귀여운 소녀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고, 그 소녀는 이윽고 말했다.
“······. 나뭇잎······.”
“아, 응······. 고마워······.”
그녀는 손을 나의 얼굴에서 떼었지만 나의 심장은 아직도 미친듯이 뛰고 있었으며,
마치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반칙이라구요, 반칙!!”
작은 목소리로 정희가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나에게까지 들리지는 않았고,
나에게 말하는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신경 쓸 수 없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다른 것에 신경이 써질 틈이 없었·······.
“빨리 가자구요, 빨리!”
이렇게 말하며 나의 팔에 팔짱을 끼고는 잡아당기는 정희.
“아, 그래.”
나는 정신을 차리며 정희가 이끄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도 혜정이의 머리가 바람결에 휘날리며 코 끝에 스치던 샴푸 냄새가 나는 듯 하다.
근데, 팔짱 끼는 거 꽤 자연스러워졌잖아, 이 녀석.
“부, 불편하지 않아요······?”
“으, 응?”
정희는 갑작스럽게 그런 말을 하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점점 더 빨리 걷기 시작했다.
“그, 그러니까······.”
그러고는 한숨을 크게 쉰 다음에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고개를 더욱 숙였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제가 팔짱 낀 거 불편하지 않으시냐구요······.”
“응? 아, 응······. 많이 늘었네?
혹시 연습이라도 하는 거 아냐?”
“윽······. 그, 그럴리가요!
제, 제가 원래 배우는 건 빠르니까요!
절대 연습하고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 그저 본 것만으로도 빨리 배운다구요!”
“그러냐? 어쨌거나, 빨리 안 가면 나 늦는다고, 나 이번에도 지각하면 둘러댈 거리도 없어.”
“음······. 나빴어요······.”
“뭐?”
“그 여자한테는 그렇게 시간을 많이 내주면서······.”
걸음이 빠른데다가 경적소리가 시끄러운 도로 옆이라 그녀의 목소리는 더더욱 들리지 않았다.
점심시간인데도 이 놈의 차들은 왜 줄어들지를 않는거야·······.
“뭐라고? 미안한데 못 들어서······.”
그러자 정희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됐네요, 이 바보 선배!”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뛰어가버렸다.
정말이지, 저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깐······.
매일 혼자 뛰어가버리고 말이야······.
“나도 빨리 뛰어야지.”
시간이 늦으면 안 되니깐······.
내 옆으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는 차들 옆에서 나도 달리기를 시작했다.
요새 들어, 운동 안 해도 살이 빠지는 것 같은 이유는 달리기를 많이 하게 돼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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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댕동-”
종이 치기 전에 세이프- 이번 시간은 영어였지?
아, 그 우진이 자식 얼굴 또 봐야 되는 건가?
“뭐, 상관은 없으려나······.”
나는 혼잣말을 남기고는 휘적휘적 걸어서 이동수업인 영어 시간에 맞추어 내 자리에 앉았다.
물론 내 반은 상반, 상중하 중에서 내 성적은 최상, 상반인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최상반이 없어서 성적표가 나와야만 증명이 되는 거긴 하지만······.
“자, 다들 자리에 앉아라.”
어느새 수업이 시작되고 나른한 오후 수업의 향기가 교실 곳곳으로 퍼져나가면,
상반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조는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빨리 잠에서 깨, 여기 중요·······.”
어, 어라? 선생님 말씀이 잘 안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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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야, 한형석.”
“네?!”
나는 몸을 반사적으로 일으키며 말했다.
“교실로 안 가냐?”
우진이 녀석이었다. 나, 설마 잠든 건가?
아무리 피곤해도 잠든 적은 없었는데······.
뭐, 요즘 그냥 피곤한 정도가 아닌 생활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 깨워줘서 고마워. 하마터면 다음 시간까지 잘 뻔 했네.”
“아니, 뭐······. 저번에는 미안했다.”
“응? 아니, 뭐······. 나는 딱히 맞지도 않았고······. 내가 미안하지.”
“그, 내가 말이 심해서 그렇게 된 거니까······.”
“괜찮아, 신경 안 써.”
“·······. 고맙다.”
항상, 이 녀석은 이렇다. 나랑 싸웠다가도 먼저 사과를 해준다.
내가 자존심이 세서 먼저 사과를 못 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에 대한 배려, 이해랄까······.
친구란·······. 그런 건가······?
나도 낯간지럽게 무슨 소리람·······.
뭐, 이 녀석이 좋은 녀석이란 건 변하지 않지만.
나는 우진이와 담소를 나누며 우리 반 교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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