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m 2장
안녕하세요. 저번에 써둔 소설 1장을 올렸더니 내용이 재밌다는 글보다 분량이 많단 글을 더 많이 받아서 조금 씁쓸한 구름입니다.
사실 로금을 먹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2장은 완성은 못했어도 내용적으로 진행은 끝난터라 올리러 오긴 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에도 분량은 거의 저번과 같습니다. 두개 합쳐서 텍스트 파일로 92kb가 나오네요.
내용은 어째선지 빵상으로 치닫고 필력도 수정은 몇번 못한터라 떨어지지만 그래도 시간이 남는분들은 쭈욱 하고 한번 읽어봐 주세요.
작가의 다른 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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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1
오전 5시.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눈이 떠졌다. 아니 딱히 잠을 설쳤다거나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며 그저 이게 나의 평소 기상시간일 뿐이다. 약간 이른감이 없는것도 아니지만 체내시계라고 해야할까... 나만의 그런 무언가가 있는지 이상하게도 이 시간엔 자동으로 눈이 떠지게 된다. 그렇다고 피로가 남는것도 아니니 편리하다면 편리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뭔가 미스테리한 체질이다. 뭐 그렇다고 학교의 등교 시간이 빡빡하다거나 하는것도 아니고 아침에 따로 해야할 일이 있는것도 아니니 나의 아침은 대단히 여유롭다고 할까. 그냥 느긋하게 씻고 아침을 먹고 나가도 꽤나 이른 시각이여서 등교는 꽤나 한산한 시간대에 할수 있다. 돌아올때도 언제나 늦은 시각이라 등교도 하교도 거의 대부분 혼자하고 있다. 고독한 인생이란 말이지 나도 정말.
"흐아아암"
입이 찢어질듯 크게 하품을 한 나는 눈을 비비며 화장실을 향했다.
짤랑
어라...? 짤랑?
귀에 들어온 맑은 소리에 등에 약간의 한기를 느끼며, 나는 아주~~ 아주~~ 조심스레 시선을 오른팔로 옮겼다.
그리고 그곳엔
잘 만들어진 유리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하아... 역시 꿈일리가 없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확률에 걸어보고 싶었는데... 정말로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를 않는것 같다. 아니 애초에 따지고 보면 이 수갑의 존재 자체가 기적인가...
그런 내 마음과는 별개로 여전히 유리빛으로 반짝이는 수갑을 머릿속과 시야에서 밀어낸후 나는 등교할 준비를 시작했다.
2
"나 혼자 준비해 봤자 둘이 함께가지 않으면 학교에 갈수가 없잖아!!!!"
아니 장난하냐고! 최대한 일상대로 행동하고 싶어서 냉큼 씻고, 밥 먹고, 교복까지 다 입었는데!! 처음부터 너무 허들이 높은거 아니야!?
그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건데 나란놈은 대체 왜 이걸 못 알아챈거냐. 사실 멍청한건가 나는!?
신발을 신으려고 하니까 생각나다니... 하아... 진짜 미치겠네....
"그렇지..! 전화..! 전화를 해야지..!"
나는 급하게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왼팔에 유리수갑을 차고 있을 녀석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은건 꽤나 시간이 지나고 난 후였다.
[여브세여...]
막 잠에서 깬듯한 비몽사몽한 목소리였다.
[아우... 씨... 누구세요 대체. 아침부터 진짜...]
게다가 짜증까지 내고있다.
"어... 여보세요? 그... 난데... 학교 안가?"
아침에 짜증을 내는 여자가 위험하다는걸 여동생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나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니 그러니까 누구 시냐구요... 진짜... 아침부터... 씨...]
위험하다. 이건 분명 휴대폰을 들여다 봐서 전화 상대를 확인한다는 이성적인 생각마저 불가능한게 분명하다.
"그러니까 난데. 기휘신..."
[아?.......]
뭔가 바보같은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나 싶더니 그 이후로 침묵이 계속된다
[.......]
..... 나도 침묵....
......
[자...자...자.. 잠깐만!! 근데 왜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전화 한거야!?]
"오오, 이제야 잠이 깼나 보네. 그보다 왜긴 왜야 학교 가야할거 아니냐고"
참나, 오늘이 사실 일요일이였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없단 말이다. 아무리 멍청하더라도 그렇게까지 멍청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진 않다고 나도.
[뭐어어? 학교? 6시도 안됐구만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난 잘래...]
뚝
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
참고로 말하자면 우리학교 등교 시간은 8시 30분 까지. 다른 학교에 비해서 꽤나 늦은 편이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20~30분 정도가 걸린다. 고로 지금 집에서 나선다면 학교에 도착하는건 6시 20분 정도. 등교 시간보다 2시간은 빠르다.
어쩔수 없나... 이건 명백히 내가 이상한거니 맞춰주는 수밖에... 그보다 이 녀석 그럼 대체 몇시에 일어나는거지? 하루 스케쥴 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으면 안되겠는걸... 오늘 의논 해봐야 하려나.
아니지... 지금은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뭐 하면서 기다리지..."
게임같은건 하지 않고, 당장 읽을만한 책도 없으며, TV도 그다지 보지 않는 편이므로 연이가 일어날때까지 내게 무척이나 할일 없는 시간이 주어졌다. 평소같으면 학교에 가서 바로 공부를 하면 되는 시간인데... 뭐 하지...
3
"하아아아아암"
여동생의 찢어지는 하품소리가 들려왔다. 하만줄 알았네. 현재 시각은 6시 40분. 저 녀석 평소에도 이 시간에 일어나는 건가. 생각외로 부지런 하네.
그리고 여동생은 부엌으로 들어가 물을 한잔 마셨다. 그리곤 거실로 들어와 소파에 앉아 있는 나를 보더니
"우프헉"
그대로 입에 있던 물을 뿜어 버렸다.
"우왓! 뭐 하는 짓이야! 맞을뻔 했잖아!!!"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오빠 학교 안가고 뭐해!? 아직까지 오빠가 안나갔다니. 뭐야? 나 아직 꿈꿔? 아니면 빙하기라도 찾아온거야? 아니면 오늘이 지구가 멈추는 날이냐고!?"
내 동생이지만 생각하는 것도 정말 가지가지다. 그보다 너는 오빠가 집에 붙어 있는게 그렇게 싫냐. 뭐 최근 1년간 이 시간에 집에 있는게 처음이긴 하지만.
"아... 그... 뭐냐... 사정이 좀 있어서 말이지"
"역시 빙하기야!? 빙하기가 찾아와서 문이 얼어버려서 밖에 못 나가는 거야?"
"그러니까 아니라고!! 그냥 뭣 좀 하느라 안 나간것 뿐이야!"
"크윽... 이 세상은 아직도 내가 모르는 신비로 넘쳐나고 있어.. 오빠의 등교를 막을 정도라니... 대체 뭐지 그건!? 현실 세계에 그런게 있을리가 없잖아!!"
뭐... 그건 맞는 말이네. 확실히 현실 세계엔 없겠지... 이 수갑만 없었으면 이러고 있을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치만 이런거 제대로 설명해 줄수 있을까 보냐.
"됐고, 시끄러우니까 그냥 씻고 나와라 좀. 너도 학교 갈거 아니야"
"아 맞다, 학교 가야지. 하마터면 오빠의 충격 퍼포먼스 때문에 학교 가는걸 까먹어서 학교에 못 갈뻔 했잖아. 보상으로 용돈 줘 용돈"
그 대사를 마지막으로 나의 이루 말할수 없을정도로 괴상한 여동생은 욕실로 들어갔다. 저 녀석도 정말 애먹인단 말이지... 생긴건 엄마를 닮아서 나름대로 곱상한데... 왜 저럴까.
짤랑 소리를 내며 오른손의 수갑이 살짝 움직였다. 아무래도 연이가 일어난것 같다. 내가 아까 전화건 이후로 한시간 정도 지났으니... 이 정도면 보통인가?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오히려 여자가 더 빨리 일어나지 않나 보통은?
속으로 온 세상 여자들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고 있자, 마침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상대방이 누구냐 하는건 예상할것 조차 없이 당연하다. 아니 이젠 이렇게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인가.
"여보세요"
[아. 나야. 이제 일어났어... 금방 준비할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
잠에서 막 깬것 치곤 목소리가 이상하게 맑다 싶지만... 뭐 상관 없나
"아아 그래, 나야말로 미안했어. 괜히 아침부터 전화해서 소란만 피웠네. 느긋하게 준비해. 어차피 아직도 시간은 한참 남았으니까."
[응. 알았어. 고마워]
그걸로 전화는 끊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좀 더 빨리 일어날순 없냐고 불평하고 싶은 맘도 없는건 아니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생활을 해야 할걸 생각해보면 양보와 배려는 빠질수 없다. 내 쪽에서 이상했던 점인 만큼... 이건 내 쪽에서 맞춰주는 수밖에.
어쩌면 이 이상가는 민폐도 끼칠지 모르니까....
아니... 분명 끼치겠지... 그러니까 이런 부분에선 양보해주자... 뭐가 됐든간에...
그보다 이거 내가 치워야 하나...
여동생이 뿜어놓은 물을 보니 어쩐지 가슴이 막막해진다.
"하아..."
......
"으와아아앗!!!"
여동생이 분사한 물을 치우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나 싶었더니 어느샌가 여동생이 거실에 돌아와 있었다. 그것도 소리를 지르면서. 알몸으로. 뭐 알몸인건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녀석 작년까진 제작년 가지 내가 씻겨준적도 허다하고.
"왜 넌 아까부터 오빠를 볼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너한텐 니 오빠가 그렇게 놀라운 인간이냐"
"아니 아니 그런건 아냐. 이번엔 그냥 기세로 질러봤어. 그래도 놀란건 사실이야. 아깐 오빠가 집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라서 알아채지 못했는데... 안경은 왜 끼고 있어? 원래 집에선 안경 잘 안끼잖아?"
"아... 뭐 그냥 기분 전환겸"
"흠... 뭐 확실히 오빠는 안경을 안끼면 엄청 험악해 보이긴 하지, 그래도 벗는게 더 잘생겼는데"
아 그러세요. 그럼 앞에 험악해 보인단 말을 빼라고 임마. 콤플렉스니까. 넌 진짜 딴 집 여동생이였으면 엄청 맞고 살았을텐데... 넌 진짜 내가 오빠란걸 감사하게 여기고 살아야 해
그렇게 말하려다 문뜩 여동생 쪽을 잘 보니 여동생은 오른손에 헤어 드라이어를 들고 있었다. 이 녀석 언제나 거실에서 머리 말리고 있던건가... 어쩐지 청소할때 보면 거실에 머리카락이 잔뜩 떨어져 있는 이유가 있었구만...
흠....
"야, 이리 와봐"
"응? 왜? 나 머리 말려야 하는데"
"그러니까 이리 와보라고. 내가 말려줄게. 너 머리가 길어서 혼자 말리려면 힘들잖아"
"진짜로? 무슨 바람이야? 뭐 나야 고맙지만. 이거 꽤나 중노동이란 말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귀찮아 죽겠다니까. 저번주에는 미용실에가서 반삭해달라고 했는데 미용실 언니가 극구 반대해서 못했어"
아뿔사. 내 여동생을 너무 얕봤던것 같다. 어지간한 바보인건 알았지만 설마 이정도 였을 줄은...
어쨌거나 여동생은 나에게 순순히 헤어 드라이어를 넘기고 내 앞에 앉았다. 소파에 앉아있는 내가 바닥에 앉아있는 동생의 머리를 말려주는 형태다.
말한적이 있는것 같은데. 우리 어머니는 외국인 이셨다. 어느 나라인지는 모르지만 백인 이셨던건 확실하다. 나도 그 어머니의 영향을 받지 않은건 아니지만 동생쪽은 확실히 어머니의 유전자를 많이 받았다. 그 영향중 하나가 머리카락이다. 내 동생의 머리색은 붉은 색이다. 그것도 상당히 선명한 예쁜 붉은색 머리카락이다. 눈동자 색도 살짝 붉은기가 감돌며 외모도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직은 중학생이라 어린티가 남아있지만 성장하면 굉장하지 않을까.
"오빠"
"왜"
"아니 그냥.. 머리 잘 말리네..."
"당연한거 아니냐. 니가 중1때 까지만 했어도 내가 머리 말려줬잖아"
이것도 말한적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아버지는 지금 해외에서 근무중이시다.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은 1년중 2달도 되지 않는다. 이런 생활이 시작된건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됐을 무렵이였다. 그 무렵부터 우리집 가사는 내가 도맡았고, 여동생도 내가 보살펴줬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식으로 머리를 말려주는 것도 꽤나 그리웠다고 하면 그리웠던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것도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어쩐지 싫어할것 같아서 안해주게 되었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시간도 남고 해서 해주고 있지만 앞으론 다시 매일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려나. 그리고 이 녀석 머릿결이 되게 좋아서 만지고 있다보면 기분이 꽤 좋아진다. 보들보들? 아니 찰랑차랑 이라고 해야하나?
"너 근데 맨날 이 시간에 일어나냐? 중등부는 등교시간 9시 까지 아니던가? 꽤 빨리 일어나네"
"훗 동생을 무시하지마. 이 정도는 기본이야. 뭐 의식하는건 아니고 사실은 그냥 6시 반만 되면 눈이 떠진단 말이지. 마음 같아선 더 자고 싶은데 아무리 더 자려고 누워 있어봐도 잠은 전혀 안오고... 그래서 그냥 일어나고 있어"
헤에. 별 신기한 체질도 다 있네
"그러냐? 근데 이제 거의 다 말렸는데 머리는 묶어줄까? 아니면 그냥 스트레이트?"
"양 갈래로 묶어줘. 여기 머리 끈"
동생한테 머리띠를 받은 난 머릿 속으로 보기 좋은 트윈테일을 구상하곤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나저나 이 녀석도 꽤나 어려운걸 부탁하네. 자기가 묶을땐 맨날 하나로 묶으면서.
"오... 예상외로 테크니션! 나보다도 훨씬 잘해!!"
"아까도 말했지만 니 머리는 너보다 내가 더 많이 묶어봤다"
동생은 내가 묶어준 머리에 만족한듯 거울로 자기 머리를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었다. 뭐 마음에 안 들리가 없지. 누가 묶었는데.
"아 그리고 니 교복 대려놨으니까 입고 가. 그리고 식탁에 아침 차려놨으니까 먹고."
"괜찮은거야 오빠? 혹시 진짜 오늘 무슨 날이야? 저번 생일때도 오빠가 이렇게 잘해주진 않았어!! 진짜로 어디 아프거나 한거 아니야?"
내가 여태까지 그렇게나 나쁜 오빠였나 기억을 되뇌어 본다. 흠... 뭐 확실히 작년 생일때는 어쩌다 보니 챙겨주질 못했네. 올해는 신경좀 써 줄까나...
"됐고. 그냥 시간이 남아서 그런것 뿐이다. 그러니까 잘해줄때 곱게 받아, 괜히 이상한 소리 했다가 본전도 못 건지는 수가 있어."
여동생의 머리에 손을 얹고 적당히 쓰다듬어 주면서 대화를 하고 있자니, 핸드폰에 메세지가 도착했다.
[나 이제 준비 다 됐는데.. 너희 집 앞에서 기다릴까?]
타이밍 좋네. 마침 동생 보살피는 일도 끝나서 심심하던 참이였는데.
[오케이, 나도 곧 나갈게] 라고 간단하게 답장을 보냈다.
"누구야!!?"
여동생은 내 얼굴 앞에서 눈을 초롱 초롱 빛내며 그렇게 물어왔다. 쳇 귀찮게스리...
"너랑은 상관 없는 이야기야. 어쨌든 난 이제 나갈거니까. 밥 꼭 챙겨먹고 나가라."
"에에엑!? 내가 오빠랑 몇년을 같이 살고 있지만 이렇게 이른 아침에 오빠한테 문자가 온 일은 처음이란 말이야!! 여자야? 여자인거야!? 나 외에 여자가 생긴거야!!?"
"너 따위 처음부터 여자도 아니였어!!"
그렇게 여동생에게 소리 지른후 나는 드디어 일어난지 두시간이 넘은 후에야 집을 나설수 있었다.
그리고 문 밖에는 내 오른손의 수갑의 사슬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그 끝은 어떤 소녀의 왼팔에 도달해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선우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
웃으며 인사하는 그녀에게 나는 가볍게 손만 올려 대꾸했다.
그런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는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야, 사람이 인사를 하는데 제대로 받아야지."
"어차피 대충 손짓만 해도 인사인거 알잖아?"
"그래도! 기분이란게 다르잖아 기분이란게."
'이상한걸 신경쓰네' 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은 굴뚝 같았지만 말해버리면 뭔가 또 무슨 소리를 들을것 같았기에 적당히 대답을 흐렸다.
"근데 너, 아침에 뭘 그렇게 빨리 일어나는거야?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 꼭두 새벽부터 학교 가자고 전화가 와서는..."
"아니 그냥 평소에 그 시간에 눈이 떠지는걸 어쩌겠냐. 앞으로도 맨날 그 시간에 일어날테니까 니가 좀 봐줘."
"에엑!? 싫어!!"
"바로 거절하기냐..."
물론 나도 희망을 품고 한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민하는 척이라도 해주면 어디 덧나냐.
"그래도 확실히 앞으로도 이렇게 생활하려면 여러가지 서로에 대해서 알아둬야 겠네... 너 오늘 수업 뭐뭐 들어? 일단 시간을 내서 이야기 해봐야 될것 같은데."
"나? 난 수업 하나도 안 듣는데?"
"아... 맞다... 그랬지... 나도 들은적 있어. 전교 1등 기휘신은 수업은 하나도 안 나온다는 소문."
"그런고로 하루종일 프리타임이다. 이 말씀이야. 늘 도서관에서 보내고 있지."
난 스스로를 도서관의 주인이라고 자부하고 있다고!
"그런 소릴 자랑스럽게 하지마... 뭐 어쨌거나 그럼 따로 시간 낼 필요는 없겠네. 나도 오늘은 수업 몇개 없으니까."
자랑스러워 하고 있었는데... 내 마음을 읽은거냐...
어쩐지 기운이 빠진다.
아... 그나저나 학교에선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난 되도록이면 평소대로 도서관에서 보내고 싶은데. 근데 그러면 연이가 수업을 못 듣고... 음... 일단 나도 그 수업을 같이 들어야 하려나? 귀찮은데...
"나 오늘 수업은 4교시랑 6교시 때만 있어. 그러니까 점심시간때 부터 계획을 세워보자."
"점심 시간때 부터?"
1,2,3 교시때는 뭐하고? 어차피 그때도 둘다 한가하지 않나?
"응. 그 전까진 회의때문에 시간이 없잖아? 아 걱정하지마 6교시 수업은 안 들어도 큰 문제 없으니까 빠질꺼야"
아 맞다. 그랬었지, 생각해 보니까 이 녀석은 우리반 반장이였다. 목요일인 오늘은 격주로 행해지는 학생회의가 있는 날이다. 1교시 때는 반 학생들이 모여서 반의 의견을 정하고 2,3교시 때는 반의 대표, 즉 반장들 끼리 모여서 회의를 하게된다. 우리 학교는 아무래도 학교가 학교이다 보니 학교 운영에 대한 학생들의 영향력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이 회의도 무늬만 회의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여러가지 사항들이 결정되는 중요한 회의인 것이다. 뭐 나야 한번도 참가해본 적이 없지만.
"그나저나 너 교실엔 들어가도 되는거야? 그러다가 정체불명의 이름에 흠집이라도 가면 어떡해?"
"그러니까 정체불명이라고 하지좀 말라고!! 그리고 그딴 이름 오히려 없어지는 편이 몇배는 나아!"
"그보다 너 애초에 내가 들어가지 말자고 해도 들어갈꺼잖아"
"뭐 그렇지만"
"그럼 말을 꺼내지 말라고!!!"
그렇게 소리치자 연이는 또 까르르르 하고 웃었다. 진짜 사람 속은 알고 웃냐. 내 쪽은 여러가지로 미치겠는데 웃음이 나오냐고.
학교에 점점 가까워 지니 주변에 우리학교 학생들도 몇몇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 몇명은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기까지 하다.
하긴 그럴만도 한가... 학교 최고의 아이돌이 누군지도 모를 놈이랑 즐겁게 웃으면서 같이 걸어가고 있는데... 시선을 끌만하다. 아니 오히려 못끌면 이상할 정도다. 다행이 아직은 비교적 시간이 이른편이라 사람이 적어서 다행이다. 사람이 많은 시간이였다면 분명 몇명은 다가와서 귀찮게 굴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이거 소문은 쫙 퍼지겠는데... 점심시간 쯤이면 온 학교에 퍼질지도 모르겠어... 하아... 사람들한테 얼굴 팔리는건 싫은데...
"흠...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하는게 좋을까? 어쩐지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별로 상관 없지 않을까. 어차피 늦든 빠르든 소문은 날꺼고. 뭐 일단 지금은 평화롭게 학교까지 갈수 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지만."
"칫, 여심의 여 자도 모른다니까 진짜!!"
"네, 네 죄송합니다. 모태 솔로 라서요"
그렇게 투닥투닥 거리며 우리는 등교길을 즐기고 있었다.
4
"어, 일찍 왔네? 니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벌써 온거야?"
교실에 들어온 우리, 정확히는 연이(참고로 회의가 시작하는 1교시 전까지는 도서관에서 조용히 시간이나 때우자는 내 의견은 묵살당했다)를 반겨주는건 안경을 낀 소녀였다. 뭐라고 해야하지? 원래는 이쪽이 반장이 되어야만 할것 같은, 그런 외모를 가진 소녀였다. 아마 같은반일 거라고 생각 되지만... 도통 교실에 오는 일이 없는 나로써는 전혀 모르겠다.
"그냥 어쩌다 보니... 랄까? 그냥 일찍 왔다 왜!"
"에엑? 말도 안돼~ 내가 작년에도 너랑 같은 반 이였다만 니가 이 시간에 온 일은 한번도 없었어. 확률로 따지자면 올해안에 송이버섯맛 우유가 출시될 확률 정도인가?"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비유야... 그보다 반의 이야기가 나와서 말하는 거지만 현재 우리 학교의 고등학교 2학년은 약 2000여명. 반은 한반에 약 40명씩 50반이 구성되어 있다. 알파벳 26자와 1~24까지의 숫자로 나뉘어져 있으며 명확한 구분은 없지만 알파벳 쪽이 일반 인문계 학교의 문과에 가깝고 숫자쪽이 이과에 가깝다. 즉 2년 연속으로 같은 반이 될 확률은 꽤 어려운 일이다. 악연이구만.
"그냥 왔다니까 그러네 참! 이럴땐 이상한 말좀 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
"송이 버섯맛 우유가 뭐 어때서!! 나온다면 난 매일같이 사 먹을거야"
"자랑이다!!"
나는 요 1년간 여동생과 아버지, 그리고 기현이를 제외하면 제대로 누군가와 대화를 해본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것은 꽤나 거북하다. 연이랑은 어찌저찌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말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솔직히 아직까지는 타인과 대화 하는데에 있어 두려움이 있다. 특히나 내 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즐거운 듯이 이야기 하고 있으면 상당히 긴장이된다. 그런 이유에서도 나는 도서관이 좋았다.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으니까.
지금은 우리반 교실에 학생이 거의 없으니 별 무리는 없지만 곧 이렇게 좁은 공간에 4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설 것을 생각하니 숨이 턱턱 막힌다. 게다가 내가 있으면 다른 아이들도 꽤나 불편해 할테고... 하아... 이래서 교실에 오기가 싫었는데... 그래도 연이가 반장이니 계속 이 쪽으로 등교할 수밖에 없는건가. 수업이 없는 시간은 도서관 쪽으로 빠져 달라고 부탁해보면..... 거절 당하겠지...
"근데 있지 혹시 네가 연이 남자친구야? 어느 반이야? 전공은?"
혼자 생각에 열중하고 있었기에 이 질문이 나를 향한 질문이였다는 것도 일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보다 둘이 잘 떠들다가 왜 갑자기 나한테 화살이 날라옵니까. 긴장되게 스리...
"아니 남자친구는... 아닌데."
스스로도 당연한 사실을 말한것 뿐이지만. 뭔가 가슴을 후벼파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요 나는 18년 동안 여친 한번 없었던 인기 없는 놈입니다. 쳇, 모태 솔로인게 나쁘냐.
"하긴... 연이가? 그래서 연이랑은 어떤 관계? 아침부터 같이 교실에 왔으면 뭔가 용건이 있는거 아냐?"
궁금한것도 많네... 뭐 적당히 둘러댈까.
"용건이 있어서 온건 아니야. 그냥 나도 A반 이니까 교실에 온것 뿐이고, 이 녀석 이랑도 그냥 어쩌다 학교 앞에서 만나서 같이 오게 된것 뿐이야."
그렇게 대답하자 안경의 여학생은 상당히 표현하기 난해한 표정을 얼굴에 띄웠다.
"아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니가 우리 반이라니... 난 매일 시간만 나면 교실에 있는데 너는 한번도 본적이 없어. 학기가 시작한지 2주나 됐는데 이름이면 몰라도 사람 얼굴을 못 외울리도 없잖아."
"뭐 그렇긴 하지... 교실에 나온적이 없으니까"
"후후후후... 잘 생각해봐. 우리반엔 분명 누군가가 있었을텐데?"
연이는 재미있어 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보다 진작좀 대화에 끼어들라고...
"너까지 무슨 소리야..? 우리 반에서 내가 못 본 사람이라고 해봐야..."
그녀의 말은 거기서 멈췄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르킨채 입을 뻐끔 뻐금 거리더니
"서...서..서... 설마!! 그 기휘신!? 전교 1등 정체불명 기휘신!?"
"정체불명 이라고 하지 마!! 그런 이상한 이름 100번을 불러줘도 100번 다 사양이라고!! 이름으로 불러 이름으로!!"
아... 이런... 진짜로 정체불명 이란 말이 트라우마가 될것 같아... 이건 심각한데. 또 소리 질러 버렸어. 좀 더 감정을 컨트롤 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맞다!! 맞아!!! 돈 내놔!! 내기 내가 이겼지!? 이긴거지!!? 거 봐 사람 맞다니까!!"
안경을 쓴 이름도 모르는 소녀는 잠깐 놀라움에 얼어 붙었나 싶더니만 내 고함 소리에 정신을 차렸는지 두 눈에 를 불태우며 연이에게 달려들었다.
"쳇! 아침 일찍부터 돈을 뜯어가다니... 너란 여자는 정말..."
연이 역시 지갑에서 만원 짜리 한장을 꺼내 그녀에게 건내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어제 일을 잘 떠올려 보니 그런 이야기가 있었던것 같다. 내 정체를 두고 내기를 했었다고 했지... 대체 그런 웃기지도 않는 내기를 받아들이는건 또 누구인가 궁금했었는데 이 녀석인가... 이 녀석들 둘다 생긴건 멀쩡해 보이는데 그런 내기를 하다니... 역시 이 세상은 겉모습 만으로는 판단해선 안될 일이 수두룩 하단걸 다시금 깨닫는다.
"헤에 근데 대단하네. 아무리 너라고 해도 기휘신을 어디서 찾아낸거야? 솔직히 말하면 나도 사람이다 쪽에 걸긴 했었지만 반신반의 했었는데"
안경을 쓴 그녀는 연이가 준 돈을 공손히 받아 주머니에 넣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보다 사람쪽에 걸면서도 반신반의 했던거냐... 울고 싶어지잖아
"그건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데"
이 대사를 말한건 연이가 아니라 나였다.
"어? 아... 응. 맞아 나도 별로 말하고 싶지 않네. 비밀로 해두고 싶어"
내가 그렇게 말한 의도를 알아챘는지 연이 역시 그렇게 말해주었다.
"쳇! 본인 앞이라고 그렇게 말하긴!! 됐어!! 나도 안 듣고 싶어!! 치사해서 안들어!!!"
안경을 쓴 소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가 오기 전까지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뭐랄까 외모랑 좀 반대구만.
나도 익숙치 않은 교실을 둘러보며 어디에 앉을까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연이가 자신의 옆 자리로 오라고 손짓하는 것을 보고 어쩔수 없이 그 자리로 갔다. 굳이 옆자리에 앉을 필요가 있나. 19m나 있는데... 뭐 그래도 가까이 있는편이 대화하기는 편하겠지.
"누구야?"
거의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나는 작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물론 방금 전까지 이야기를 하던 안경 소녀가 누군지 물은 것이다.
"친구. 이름은 서지우. 작년부터 같은 반인 앤데... 뭐 착하긴 한데 돈을 좀 밝혀. 누가 보면 전공이 사채업자 라고 착각할 정도로!"
"그러냐..."
아무리 우리학교라도 사채업자 전공은 없겠지....? 기현이 녀석한테 나중에 물어볼까...
어쨌거나 나는 가방 속에서 적당히 책들을 꺼내며 공부를 시작했다. 이런 상황인데 손에 책이 잡히냐... 라고 물어본다면 솔직히 나도 안 잡힐줄 알았지만 의외로 별로 차이가 없는것 같다.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란 느낌. 아니 역으로 생각하자면 이런때야 말로 더 공부를 해야한다. 도서관에서 하지 못하는 만큼 효율이 더 떨어질테니 좀 더 집중하지 않으면...
"우와... 역시 전교 1등... 자리에 앉자 마자 공부라니."
집중하고 싶었는데... 말을 걸어 오다니...
"어쩔수 없잖아. 나는 아직 전공 선택을 안했으니까 일단은 공부밖에 할게 없어. 너처럼 전공 선택자랑은 다르다고. 애초에 너도 전교 2등 이니까 어느정도 공부 할거 아니야?"
"뭐... 그렇긴 하지만 나는 단기 집중형... 이라고 해야 하나? 벼락치기가 전문이라"
부러운 녀석이네... 누군 이렇게 뼈빠지게 공부해서 겨우 전교 1등인데...
"예, 예, 천재라서 좋으시겠습니다"
"아니... 뭐 천재인건 아니고. 평소에도 아예 안하는건 아니거든!."
그 이후로도 연이는 조잘조잘 옆에서 계속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묵묵히 수학 문제를 풀어 넘길 뿐이였다.
5
"자, 그럼 이걸로 회의는 종료해도 되겠지"
연이는 칠판에 깔끔한 필체로 '종료' 라고 쓰고 있었다.
1교시의 회의는 종이 치기도 전에 별다른 문제 없이 끝났다. 회의라고 해봤자 반 회의는 그냥 적당히 불편한 점을 말하고 학교로 부터의 공지 사항을 전하는 일 정도를 하는 것 뿐이라 별다른 일이 생기는 쪽이 이상할 정도지만.
회의는 반장과 부반장 서기 세명이 진행을 하는 구조였다. 세분화 하자면 반장이 전체적인 진행을 맡고 서기는 안건의 서류화 그리고 부반장은 칠판 담당...
"""종료는 뭐가 종료야!!!!!!!!"""
반 일동이 그렇게 외쳤다. 미안합니다. 소동이 없었다는거 거짓말이였어요. 사실은 대 파란이였어요. 그리고 그 이유는....
"""기휘신이 나타났는데 그렇게 가볍게 끝내지마!!! 자기 소개라도 시키라고!!!"""
나 때문이였습니다. 평화로운 반이였다고 생각했는데... 이 팔만 안 묶여 있었다면 벌써 도망가고도 남았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단한건, 나 알고보니 부반장 이였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나오지 않는 사이에 투표가 있었던 모양이라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던 부반장을 내가 떠맡게 된듯 합니다. 젠장.
참고로 말하자면 서기는 아까 만난 서지우라는 여자애 였다. 확실히 지금 생각해 보면 서기처럼 생긴것 같기도 하네.
방금 전까진 회의라는 핑계로 어찌어찌 반 아이들의 호기심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회의가 끝나니 이젠 연이도 이 상황을 잠재울수 없는듯 어쩔줄 몰라하고 있을 뿐이였다. 이렇게 된 이상 할수밖에 없나. 자기소개.
마침 부반장인 터라 교실 앞에 나와 있었기에 나는 그 자리에서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가 그대로 교실을 향해 말했다.
"전교 1등 기휘신 이다. 정체불명도 아니고 유령도 아닌 살아있는 인간이야. 전공은 선택하지 않았고 특별히 부활동도 하고 있지 않아. 여동생 한명이랑 같이 살고 여자친구는 없다"
내가 말하는 순간 교실에 잠깐 정적이 찾아왔나 싶었지만 그 잠깐의 고요를 아쉬워 하는듯 교실은 다시한번 뜨겁게 타올랐다.
"우오오오오오!!! 진짜다!!!!!!!"
"우와!!! 사진 찍어!!!! 빨리!!!"
라면서 큰 소리로 떠들어 대는건 주로 남학생 이였고 여학생 쪽은...
"생각보다 괜찮게 생기지 않았어?"
"목소리도 낮아서 멋있고"
"사귀자고 해볼까!?"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어쩐지 연이가 그 쪽을 매섭게 쳐다보는 듯한 느낌도 들지만 착각이겠지.
그리고 그때 데에에엥 하고 맑고 커다란 종소리가 학교에 울려퍼졌다.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면 그저 평범한 학교 종소리일 뿐이다. 아니... 그렇지만 우리 학교 종은 진짜 종이다. 그것도 꽤나 규모가 큰 것으로 학교 부지 중앙에 있는 탑 꼭대기에 있는 건데도 고등부, 중등부, 초등부 전체에 울려퍼진다. 소리도 맑고 울림이 깊어서 운치가 있다.
물론 지금 이 종소리가 울려퍼졌다는 건 회의시간, 즉 1교시가 끝났다는 소리다.
그리고 종소리가 울려퍼진 직후.
우르르르르릉 하고 학교가 흔들렸다. 일본도 아니고 우리나라에 지진이 날리가 없는데!! 라고 생각한 순간 해답이 눈 앞에 나타났다.
정답은 바로 사람... 이 흔들림은 지진(地震)이 아니라 인진(人震)이였다
엄청난 인파가 A반의 교실로 밀어닥쳤다. 서.... 설마 이 사태는...
"찾았다!!! 진짜 기휘신이야!! 이... 인터뷰다!! 당장 잡아!!!"
나... 때문?
선두에 선것은 신문부. 그리고 그 뒤는 모두 구경꾼 이였다. 설마 소문이 이렇게나 빨리 퍼질줄이야...
시야를 가득 메운 인파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아 이제 끝났다. 다 밝혀질거야.
그때 누군가가 나를 끌고 가는게 느껴졌다.
"뭘 멍하니 있는거야!! 도망가야지!!!"
망연자실한 마음으로 서 있던 내 손을 잡고 인파를 뚫으며 뒷문으로 나를 이끌고 달려가준건.
연이였다.
순간 아득해졌던 정신이 돌아온다. 그렇지. 아직 이렇게 포기할순 없다고. 도망치는거야!!
"자... 잡아라!!!! 기휘신이랑 선우연이야!!! 이건 특종이야!!"
교실을 뛰쳐나와 복도 중앙의 계단으로 향하는 우리의 뒤에서 신문부의 학생의 외침이 들려왔다. 집요한 녀석들...
"저 녀석들 정말 악질이야!! 절대로 잡히면 안돼!!! 나도 저번에 잡혀버렸다가 나도 모르게 있는말 없는말 전부 다 해버렸어!!."
설마 그 결과물이 저번의 그 팜플렛 이란 건가... 무서운 녀석들이잖아 저거...
"일단 이대로 1층까지 내려가자!!"
하지만 그렇게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찾았어!! 기휘신이랑 선우연이다!!!!! 엄청난 콤비야!!! 빨리 사진찍어!!! 아니 잡아!! 죽이면 안돼!!! 산채로 잡아!!!"
어떻게든 계단을 내려와 2층에 도달했지만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카메라를 목에건 무리와 마주쳐 버렸다. 설마 이 녀석들도 신문부 인건가!? 귀찮게 됐잖아!! 대체 몇명이나 있는거야 신문부는!!! 그보다 대사가 왜그래!!! 불안해지잖아!!
"어쩌지!?"
연이가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아무리 체력이 좋은 연이라지만 뒤에 엄청난 수의 사람을 달고 순식간에 8층부터 2층까지 내려오느라 지쳤는지 숨까지 헐떡이고 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왼쪽 계단으로 가자!!!"
이번에는 내가 연이의 손을 잡은채로 우리들은 중앙 계단을 뒤로하고 좌계단 쪽을 향해 달렸다. 뒤에서는 신문부는 물론 1학년 구경꾼들까지 섞여 더욱 인파가 몰려들었다.
"잡아!! 저 둘을 잡으면 누가 됐던간에 학생 식당 식권 10장!! 아니 20장을 주겠어"
이번엔 뒤쪽이 아닌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기억이 난다.. 몇번인가 들은적이 있는 목소리인데... 누구지?
앞을 바라보니 저 끝에는 또다시 수많은 인파가 있었고 그 가장 앞에는 호리호리한 체구의 남학생이 서 있었다. 아... 기억났다.. 저 녀석...
"저기!! 앞에 저 사람 신문부 부장이야!! 어떡하지!?"
"내쪽이 묻고 싶다고!!!"
앞까지 막혀버렸다니...
"시... 식권이...!!?"
"2.. 20장이라고!!? 자... 잡아!!! 빨리 잡아!!!"
"우오오오오오옷!!!! 20장이면 2주치야!!!! 내... 내가 잡는다!!!"
뒤쪽에선 식권의 꼬드김에 넘어간 운동계 전공 학생들에 의해 과거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투기가 솟아올랐다.
이 학교는 바보밖에 없냐!!!!!
앞쪽에선 신문부 패거리가.
뒤쪽에선 식권의 부름에 넘어간 거대한 덩치의 사내 녀석들이 한가득.
반사적으로 고개를 연이 쪽으로 돌리자 연이와 눈이 마주쳤다. 반쯤 포기한듯한 눈빛. 하지만 나머지 반은 나에게 모종의 기대를 걸고 있는걸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나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줄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부응해줄수 없을지도 모르는 기대.
그 기대에 답하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기도 전에 이미 머릿속에서 상황에대한 분석이 시작된다. 오른쪽은 교실. 왼쪽은 벽면 전체가 유리된 커다란 창문. 앞과 뒤는 돌파할 길이 없는 인파.
저 인파를 뚫고 지나가는건 불가능하다. 교실에 들어가 봤자 갇히기만 할 뿐이다. 창문은 안전을 위해 처음부터 열리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고로 극단의 선택인 뛰어내리는 것 마저 불가능.
앞뒤에서 시시각각 조여오는 인파속에서 다시 한번 정신이 아득해진다. 두뇌 회전은 굳어간다. 숨도 차오른다.
그렇지만 그때
쨍그랑!! 하는 소리가 머리속에서 울려퍼졌다. 그 소리에 아득해진 정신이 강제적으로 제 자리를 되찾는다. 그와 동시에 의식은 한없이 빠르게 흘러간다.
방금 그 소리는 무슨 소리지? 뭔가가 깨졌나!? 아니 이 주변에선 아무것도 깨지지 않았어... 그렇다면 방금 그 소리는 내 머릿속에서 들린 소리다. 그렇다면 내 기억에서 흘러나온 소리겠지.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의 기억이지?
기억을 펼쳐낸다. 그 가운데서 쨍그랑 하는 소리를 찾아낸다. 어제 점심시간. 아직은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시각의 기억이다. 그렇다면 어디서 들었지?
어제 점심시간엔 식사를 해결하고 가볍게 소화라도 시킬겸 2학년 교실동 건물 뒤편의 산책로에서 시간을 죽이며 걷고 있었다. 지금 이 장소에서도 보이는 산책로다.
그렇다면 내가 들은 소리는 뭐였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나 유리가 깨지는 소리였다. 어디의 유리가 깨진 소리였지?
머리를 헤집어 그때의 기억을 최대한 크고 선명하게 펼쳐낸다. 쨍그랑 소리에 놀란 나는 분명 그 소리의 발원지를 찾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2학년 교실동 건물 2층 왼쪽에서 17번째 창문. 그 유리가 깨져있었다.
그 기억이 완전해짐과 동시에 한 없이 가속되었던 의식이 다시 본래의 상태를 되찾는다.
"아직 도망갈수 있어!!!"
난 연이의 눈을 바라보고 그렇게 말했다. 눈에비친 연이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몇 시간이라도 가만히 바라볼수 있을것만 같은 예쁜 얼굴. 하지만 지금은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여유가 없다.
나는 재빨리 17번째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언뜻 보면 유리는 새것으로 교체되어 있는듯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이건 유리가 아니다. 플라스틱이다. 아마도 깨진 유리의 재고량이 없어서 바로 갈아끼우진 못하고 깨진 유리의 파편만을 제거한체 안전을 위한 대용품으로 플라스틱을 유리대신 넣어둔게 분명하다.
이게 유일한 돌파구.
연이는 아직 그 눈빛 그대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지금부터 뭘 하더라도 놀라지 말고 꽉 잡고 있어."
나는 작은 목소리로 연이에게 그렇게 말하고 연이를 안아 들어올렸다. 달리고 있던 다리는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빨라지기 시작한다.
"핫...!"
하고 연이는 귀엽게 작은 소리를 냈고 얼굴은 더더욱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한테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생 의외의 여자아이를 안아 올렸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할만할 여유는 없었다. 내게도 여기서 절대로 잡혀선 안되는 이유가 있으니까.
유일한 탈출구 앞에 도달한 나는 달리는데 쓰고 있던 운동에너지를 모두 발에 담아 플라스틱 유리 대용품의 오른쪽 아랫 부분을 강하게 찼다. 제발 성공해라...
내 기도를 들어주듯 플라스틱 판은 심하게 진동하더니 그대로 제 자리에서 벗어나 아래로 떨어졌다. 한순간 복도 안으로 바람이 들이닥쳤다. 내 목을 안은 연이의 팔에 힘이 들어가는게 느껴진다.
나는 한번 크게 쉼호흡을 한후
연이를 더 강하게 끌어안고 뛰어내렸다.
괜찮아 2층이니까 분명 크게 다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상처하나 없이 착지하는것도 가능해. 그런데....
생각보다 높네...?
한가지 까먹고 있는게 있었다. 이 신축 교실동 건물의 높이가 우리 학교 내의 다른 건물과 비교해 그 층당 높이가 훨씬 높다는걸...
쿠웅
하는 착지음과 함께 다리에 고압의 전류가 흐르는 것만 같은 고통이 엄습한다.
고개를 돌려 위를 바라보니 추격자들은 멍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였다. 건장한 남학생 들도 겨우 식권 20장에 뛰어내릴 용기까지는 없었는지 질색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다이브에 놀라 순간 정적이 찾아왔지만 그 고요함이 거짓말 이었다는듯 다시 우뢰같은 소리들이 터져나왔다.
"말도 안돼!!!!!!! 아무리 2층이라지만 다른 건물 2층보다 훨씬 높은데!!!"
"저거 뭐야!!!! 저런 운동신경으로 전교 1등까지 한다고!?"
"미친놈!! 도망 갈려고 뛰어내리기 까지 할줄이야!!!"
"저녀석은 반드시 우리 부로 끌어들여야 돼!!"
"아니!! 저녀석은 반드시 우리 축구부가 대려간다!! 새치기 하지 마!!"
마지막으로 들린 소리들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설마... 나를 표적으로 하는 녀석들이 더 늘어났단 건가...?
어쨌거나 곧 있으면 저 녀석들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쫓아올게 분명하다. 그러기 전에 최대한 멀리 도망가야 한다. 일단 산책로가 있는 숲쪽으로 가서 숨을까...
"일단은 쉬는 시간이 끝날때 까지만이라도 숲속에서 숨어있자."
"아... 안돼!! 숲쪽으로 가면 안돼!!! 반대 쪽으로 가! 대표 회의는 본관에서 한단 말이야! 숲에서 가면 회의에 늦어!"
내 품에 안겨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오른 채로도 연이는 무척이나 성실한 대사를 내뱉고 있었다. 방금까지 본 비정상적인 바보들에 비하면 이런 성실한 반응이 얼마나 기쁜지...
"알았어 그럼 최대한 안보이게 숲쪽으로 빙 돌아서 갈테니까"
"그보다 이제 좀 내려줘!! 언제까지 안고 있을 생각이야!!?"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 품속에서 그렇게 말하는 연이의 얼굴이 무척이나 귀엽다고 생각하는데 걸린시간이 0.07초
그 귀여운 얼굴에 넋을 빼앗겨 멍하니 바라본게 0.74초
내가 연이를 안아올려 숨결이 닿을 만한 거리에서 얼굴을 맞댔다는 사실이 창피하다고 느낄때까지 걸린 시간이 1.19초
내가 연이를 내려주기 까지 걸린 시간 1초
총 3초의 시간이 걸려서 연이는 내 품에서 벗어났다.
"어쨌거나 지금은 본관으로 가야 돼!!"
그렇게 우리들은 사람들을 따돌리고 무사히 본관에서 열리는 학생 대표회의에 참가할수 있었다.
6
"어째서 그딴식의 결론 밖에 내놓지 못하는 거지!!?"
회의실의 혼란스러운 공기속에서 난 높아진 언성으로 소리쳤다.
"그러는 그 쪽이야 말로 1년 넘게 학교에서 모습한번 비추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뭐!? 교내 폭력 문제에 대해서 좀더 합당한 대처법을 제시하라고!?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줄 알아?"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 하지만 분명 머리를 맞대고 생각한다면 무언가의 해결 방법이 나오지 않을리가 없어!!! 단 한번이라도 이 회의에서 그 주제를 가지고 열띈 토론을 거쳐서 해답을 도출해 내려는 시도라도 한적이 있나!? 아니 없겠지. 만일 그런 시도라도 있다면 분명 상황이 이렇게 까지 나빠지진 않았을 거야!!"
"크읏... 그건..."
상대방의 반응이 약해졌다. 논리적인 싸움에선 내가 이겼다는 증거다. 하지만 상대의 성격을 보아 여기서 간단히 물러나진 않을것 같다. 억지를 부려서라도 스스로의 정당성을 주장하려 들겠지. 그렇기에 기를 제압한 지금 이 상황에서 확실한 쐐기를 박아 넣어서 승리를 확실시 하고 내가 이 회의의 주도권을 쥐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현재 우리 학교의 교내 폭력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 학교는 세계에서도 우수하다고 손꼽히는 시스템과 그를 지탱할수 있는 넉넉한 재정 상황을 겸비한 명실상부한 명문 고등학교이다. 그리고 학생회장 제갈기현의 카리스마를 양분 삼아 학생의 자치권도 날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는 학생 자치 고등학교 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재정의 문제를 뺀다면 학생들에 대한 어른들의 간섭은 극히 드물다. 학교의 방침을 정하는것도 학생이며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도 학생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 학교 고등부의 학생수는 6000천명. 제갈기현의 햇빛은 그 구석구석까지 뻗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분명히 그림자가 존재하고 있다. 2학년 X반의 유명인 귀신이라 알려진 인물의 존재만을 봐도 알수 있는 일이다. 만일 이 학교에 그런 그림자가 없었다면 '귀신'이 탄생할 이유도 분명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폭력은 학교 내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학교 1학년 여학생 두명이 근처 다른 고등학교의 남학생 무리에게 돈을 뺏긴 일이 있었다. 근처의 학교에는 우리 학교가 부자 학교라는 인상이 심어져 있어서 여학생들을 노린 금품 갈취는 지금까지도 몇번 일어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의 사건은 이전까지의 사건들과 그 내용이 크게 달랐었다.
여학생들이 돈을 뺏기는 그때, 마침 주변에 지나가던 우리 학교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이 그 모습을 발견하고 용감하게도 그 자리에 뛰어 들었었다. 하지만 상대의 수가 남학생 한명이 상대하기엔 너무나도 많았었다. 결국 그 학생은 그 자리에서 구타로 인하여 기절, 팔뼈가 부러지는등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리고 난 그 모습 전부를 이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 일... 다시 한번 내 눈 앞에서 일어나게 둘까보냐!!
"얼마전 우리 학교 남학생이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구타를 당해서 큰 상처를 입었던 일...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
내가 다소 언성을 낮춘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회의실에 모여있던 대표 학생들 일부가 흠칫 하며 반응을 보였다.
"내가 바라는건 피의 학생들에 대한 강경책이 아니야. 내가 바라는건 피해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보호다. 그것 만으로도 분명 학생에 대한 폭력 사건은 분명 줄어들겠지"
아까 까지 내 의견에 반론을 펼치던 그 학생도 이번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였다. 좋아. 이겼다.
"의견 잘 들었습니다. 2학년 A반 대표 기휘신 학생"
묘하게 귀에 잘 들리는 아주 부드러운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학생회장이자 나의 친구 제갈기현 이였다.
"저도 그 생각엔 동의하고 있으며 그 해결을 위한 정책 구상중에 있습니다. 휘신 학생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반드시 만족할수 있을만한 해결책을 찾아내보이겠습니다. 그리고 저번 사건에 대한 조사도 개인적으로 착수중에 있습니다. 아마 이번주 내로 해당 학생들을 찾아낼수 있을것 같고 찾아낸다면 즉시 정식으로 고소할 생각입니다."
역시나... 그렇게 까지 하고 있었던 거냐... 대단한 녀석.. 그보다 존댓말 쓰지마! 기분 나쁘잖아!!! 학생 회장이라 어쩔수 없다는건 알지만 소름 돋아!! 평소랑은 전혀 다른 이 느낌은 대체 뭐냐고!!!
"뭐... 너한테 맡긴다면 문제는 없겠지... 내 무리한 요구지만 잘 부탁한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난 자리에 앉아 그 이후로 회의가 끝날때 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후 다른 참가자들의 발언 몇번과 기현이의 중재, 그리고 마지막 정리를 마치기 까지의 시간은 이상하게도 내 체감상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피곤해서 그런건가...
데에에엥 하고 아름다운 종소리에 잠깐 정신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이윽고
커다란 회의실에는 나와 연이 단 두 사람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저... 저기? 우리 안 나가?"
어째선지 연이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아니 나가야지. 그냥 조금 피곤해서 그래. 아까 뛰어다닌 것도 있고 방금 열변한 것도 있고 해서. 조금만 쉬었다가 나가면 안될까? 그리고 아직은 사람이 많은 장소가 그렇게 익숙치 않아서..."
나는 의자에 등을 한껏 기대 천장을 바라보았다. 별다른 특징도 없이 하얗기만 한 천장이 있을 뿐이였지만.
"미안... 사람이 많은게 그렇게 까지 힘들줄은 몰랐어... 미안해."
"별로. 니가 사과할 일이 아니잖아. 내 체질이 나쁜것 뿐이고."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곳엔 몇번이고 반할 정도로 예쁜 얼굴이 있었다....
어라...?
"혹시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얼굴이 조금 이상한것 같은데?"
"그... 그래 보여? 나..나. 난 잘 모..모르겠는데? 뭐...뭔가 착각한게 아닐까아?"
....
거짓말 못하네 이 녀석. 이렇게 간단한 거짓말도 못하면서 여태까지 잘도 살아 왔구나...
"잘 하지도 못하는 거짓말 할 필요 없으니까 그냥 말해. 신경 쓰이잖아"
"아..아니거든!! 진짜 없거든요!!"
그런 주제에 또 고집은 세가지고...
"혹시 너도 그래? 아까 내가 말한 의견에 찬성할수가 없어? 역시 불가능한 이상론이라고 생각해?"
"그건 아니야!!!"
연이가 살짝 볼륨을 높인 목소리로 강한 의지를 담아 대답했다.
그 반응이. 어쩐지 살짝 기뻤다.
"나가자. 4교시 수업 있다면서."
"아 그랬지! 빨리 가야 겠다!!"
우리들은 그렇게 회의실을 나섰다..
7
"형! 형! 형이 연이 누나 남친이야!? 남친!?"
뺨에 반창고를 붙인 남자아이가 말했다.
"오빠가 연이 언니 남친이구나!!"
이번엔 갈색 머리의 여자아이가 말했다.
"연이 언니가 아깝지 않아...?" "그러게... 언니는 이쁘고 착하고 똑똑하기까지 한데..."
저 뒤쪽에선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이 모여서 나를 째려보며 속닥거리고 있었다.
.....
.......
숨이 턱턱막혀온다.
그렇다. 이곳은 지금 초등부의 교실. 어째서 이런곳에 있는지는.... 내가 묻고 싶은 처지다.
"너희들!! 무슨 소릴 하는거야!! 나..나 남자친구일리가 없잖아!!!"
연이는 어린애들이 한말에 일일히 얼굴이 빨개지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사귄대요~ 사귄대요~ 연이 누나는~ 허우대 형이랑~ 사귄대요~~ 사귄대요~"
"야 태우!! 너 이리 안와!!!"
태우라고 불린 짧은 머리의 남자아이는 이미 저 멀찍이 도망가고 있었다.
주변에는 30명 정도의 초등학생들이 몰려들어 시끄럽게 재잘거리고 있는... 이곳의 이름은 지옥인가...?
아... 어지럽다... 숨이 턱턱막혀...
우리 독립 연화 고등학교에는 초등부 학생이 압도적으로 적다. 초중고를 합쳐서 약 만명 이상이 다니는 초 거대 규모 학교지만 고등부에 6000명, 중등부에 3000명, 초등부에 1000명이 다니고 있어 인구가 상당히 고등학교
그래도 1장을 올릴때쯤엔 2장은 반 정도 써둔 상태였는데.
3장은 아무것도 써둔게 없네요. 생각은 해뒀지만 글로 쓰려면 얼마나 걸릴지 도통 감 잡을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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