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토의 시 - 구상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고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드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 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삽십(三十) 리면
가루 막히고
무주 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 가고
어디서 울려 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