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지도 - 윤동주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
눈이 나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우에 덮
인다.
방 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
다. 방 안에까지 눈이 나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든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나려 덮여 따라
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
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 년 열두 달 하
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나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