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어요 : 한용운 시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시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 감상 : 자연의 신비로운 아름다움 뒤에 있는 오묘한 원리를 의인화(擬人化)하여, 그를 향한 무한한 그리움과 불타는 정성을 노래하고 있다. 작품 속의 ‘누구’는 자연현상 중에서도 은은한 향기와 빛깔, 소리를 통해 느껴지는 ‘신비(神秘)로운 존재’이다. 작품 제목은 이 소중한 존재에 대해 완전히 알 수 없다는 겸허한 고백이지만 한편으로는 일시적인 어둠에도 불구하고 그의 존재와 심원한 사랑을 굳게 믿는 신념의 반어적(反語的) 표현이기도 하다.
* 주제 : 절대자에 대한 신앙 고백과 그 신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