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아사(餞迓詞) : 신석정 시
전아사(餞迓詞) : 신석정 시
포옹할 꽃 한 송이 없는 세월을
얼룩진 역사의 찢긴 자락에 매달려
그대로 소스라쳐 통곡하기에는 머언 먼 가슴 아래 깊은 계단에
도사린 나의 젊음이 스스로워 멈춰 선다. //
좌표없는 대낮이 밤보다 어둔 속을
어디서 음악같은 가녀린 소리
철그른 가을비가 스쳐가며 흐느끼는 소리
조국의 아득한 햇무리를 타고 오는 소리
또는 목마르게 그리운 너의 목소리 //
그런 메아리 속에 나를 물어도 보지만
연이어 달려 오는 인자한 얼굴이 있어
너그럽고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고
두 손 벌려 차가운 가슴을 어루만지다간
핏발 선 그 한 눈망울로 하여
다시 나를 질책(叱責)함은
아아 어언 지혜의 빛나심이뇨. //
당신의 거룩한 목소리가
내 귓전에 있는 한
귓전에서 파도처럼 멀리 부서지는 한
이웃할 별도 가고 소리 없이 가고
어둠이 황하처럼 범람할지라도 좋다. //
얼룩진 역사에 만가(輓歌)를 보내고 참한
소리와 새벽을 잉태한 함성으로
다시 억만 별을 불러 사탄의 가슴에 창(槍)을 겨누리라.
새벽의 종이 울릴 때까지 창을 겨누리라. //
* 감상 : 올바른 참여의 방향 설정도 없이 허울 좋은 얄팍한 시의 껍질을 뒤집어 쓰고, 퇴영과 안일과 무책임한 순응과 타협으로 전전하는 역사의 齒車(치차-톱니바퀴)를 붙들고 늘어져 역행을 일삼기 전에 순수를 찾고 수호하자면 이에 따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순수를 가로막는 얼룩진 역사에 하루빨리 만가(상여가)를 보내야하고 혹시 사탄이 막거들 랑 그 가슴에 창을 겨누는 의지로써만 참으로 행복한 인류 사회는 건설될 것이다. 일제의 강점에서 민주주의가 찾아낸 조국에 다시 부조리의 좀이 슬거나 말거나 어둠이 범람하거나 말거나 화조월석(花朝月夕)에 파묻혀 잠꼬대만 할 수 없다
* 주제 : 새 역사에 대한 염원과 의지 (밝은 미래에 대한 염원과 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