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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m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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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5-0 | 조회 789 | 작성일 2012-08-15 16: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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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 최근엔 3월 14일을 파이 데이 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것 같다. 그렇지만 수학자도, 로맨티스트도 아닌 평범한 고등학생인 나에겐 단순히 새학기가 시작된지 2주정도 된 어느 날 이라는 그 정도의 인상밖에 없다.

기휘신, 행주 기씨에 이름은 꺼릴 휘(諱)에 귀신 신(神). 그게 나의 이름이다. 뜻을 풀이하자면 '기특하지만 꺼려지는 귀신' 이라는 뜻이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런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감도 좋지 않고 뜻도 이해가 잘 안간다.

지금은 사정상 외국에서 혼사 살고계신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들었는데... 아버지는 그다지 이름을 짖는데에는 재주가 없으신것 같다. 일만 하시느라 한국엔 돌아오시지도 않고 말이야. 어머니도 없이 혼자 고생하는 자식 생각도 좀 해주셨으면 좋을텐데. 참고로 말하자면 내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다. 내가 워낙 어렸을때 돌아가신 터라서 어머니에 대한 제대로된 기억조차 없지만 외국인이 셨다는 것과 누구보다도 상냥하셨다는 사실만은 기억난다. 그래도 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이 정도밖에 없더라도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낳아주신 나의 동생은 어머니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나 정도면 감지덕지 한거겠지.

뭐 어쨌거나 나에 대한 소개는 이정도면 충분한것 같고.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의 신분은 고등학생이다. 초능력 같은게 있지도 않으며 여자만 있는 고등학교에 나 혼자 남자인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재미없는 인생을 보내고 있는 갓 고등학교 2학년이 평범한 고등학생일 뿐이다. 뭐 그렇게 말하기엔 살짝 평범에서 벗어난것 같지만....

오늘 아침도 나는 교실로 등교하는 것이 아닌 학교의 본관 건물 뒷편에 있는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교실이 아닌 도서관으로 등교를 하는 이유는... 약간의 사정이 있어서 같은 반 친구들과 어울릴수가 없어서이다. 아니 뭐... 그... 뭐냐... 왕따 같은것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나를 거북해 하는 시선이 여러곳에서 느껴지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이쪽으로 오게 되었다고 할까... 그렇게 간단히 설명할수는 없는 이유가 있다. 되도록이면 깊게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은 사정이다.

교실로 등교를 하지 않으면 출석이 안되는거 아니냐? 라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는 일반 고등학교와는 운영 방식 자체가 달라서 별 다른 문제는 없다. 우리학교에 대해서 설명하면 긴 이야기가 되버릴 테지만 설명을 안하고 어물쩍 넘어가는 것도 석연치 않다... 그런고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쯤에서 우리 학교에 대한 설명을 잠깐 하도록 하겠다.

우리 학교의 이름은 연화 독립 고등학교. 이름에서 부터 독립 이라는 말이 들어가듯 우리 학교는 보통의 학교와는 상당히 다르다. 뭐 그런 이유때문에 독립이란 말이 붙은건 아니고, 원래는 우리 학교의 재단이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 운동을 하던 단체로 부터 시작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사정과는 별개로, 내 개인적 관점에선 '독립'이라는 말은 우리 학교를 정말로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교는 독립되어있다.. 아니 단절되어있다 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우리 학교는 대한 민국의 교육 제도와 완벽하게 동떨어져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우리학교는 보통의 학교처럼 학생에게 쓸모없는 규격화된 지식을 무리하게 채워 넣으려고 하지 않는다. 학생이 필요로 하는 내용을 학생이 학생의 의지로 선택해서 배우고, 학교에서는 그것을 잘 가르칠수 있는 사람을 교사로써 등용한다. 학교의 재정 상황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규모이므로 그 어떤 전문 강사를 고용하는데도, 수많은 건물을 신설하는 것에도 그다지 무리가 없는것 처럼 보인다. 뭐 학비가 나름대로 비싸기는 하지만 그래도 보통의 외고 보다는 낮고 게다가 장학금도 엄청나게 많이 나오는 편이라 대부분의 학생은 재정적으로 무리 없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리고 좋은 평판과 함께 학교는 점점 커져 버려서 지금은 초,중,고를 합쳐 전교생이 10000명을 넘을 정도의 대한민국 최대급의 학교가 되어버렸다.

뭐 이정도가 대충 우리 학교의 기본 스펙이고... 교육 방법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식이다.

초등부 까지는 보통의 학교와 거의 같은 교육과정을 따르고 있고 실질적으로 차이가 보이는 것은 중등 과정부터 이다. 중등부 부터는 과목 선택에 있어서 학생의 의지가 반영되기 시작한다. 기본 수업은 정해져 있지만 그 이후로는 학생이 따로 배우고 싶은 과목을 더욱 보충해서 배우던가 아니면 교과 과정에 없는 완전히 다른 과목을 배울수도 있다. 물론 기본 수업시간만 채운다면 그 이후로는 몇 시간의 수업을 듣던 자유이다. 그렇지만 단 한 시간도 보충 수업을 하지 않는 학생은 전교생의 5% 미만일 정도로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의지와 만족도가 높다.

그렇게 고등부로 진학하게 되면 학생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전공을 선택할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전공을 선택한 학생도, 선택하지 않은 학생도 그와 별개로 기본 과목은 의무적으로 등록할 필요가 있다.

특히나 전공 과목은 엄청나게 세분화 되어 있어서 제대로 조사해 보지 않는다면 몇가지나 있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다. 게다가 만일 기존의 전공 과목중에서 학생이 원하는 선택 과목이 없다고 하더라도 해당 학생이 학교에 신청서만 제시한다면 새로운 전공 과목이 창설 되어버리고 만다. 이 정도만 봐도 우리 학교가 학생을 위해 돈을 얼마나 쓰는지 알수 있겠지. 그리고 물론 학교 측에선 그 한명을 위해서도 최고의 강사를 섭외해 오고 있다. 대체 얼마나 돈이 많은건지 원...

어쨌거나 전공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은 기본 과목에서 D 이상의 학점만 받을수 있다면 유급하지 않고 다음 학년으로 진급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전공을 선택한 학생들은 전공 과목 하나에서만 B+ 이상을 받을수 있다면 나머지 과목은 E 학점 이상만 되도 진급이 가능하다. 참고로 E 학점은 수업만 잘 듣고 숙제만 잘해간다면 충분히 받을수 있는 학점이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숨만 쉬어도 받을수 있는 정도라고도 할수 있겠지.

그리고 우리 학교에는 수업 일정만 있을뿐 학생에게 정해진 시간표는 없다. 의무 과목 등록은 수업을 의무적으로 참가한다는 것이 아닌 의무적으로 해당 수업의 시험을 본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학생은 듣고 싶은 수업이 있다면 그 수업의 일정을 보고 그 수업을 들으러 가면 되는 것이다. 수업을 듣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학점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 그저 학기말의 시험만 잘 보면 좋은 학점을 받을수 있다. 수업의 출석과 숙제는 낙제 학생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이니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겐 그다지 상관이 없단 뜻이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생은 수업을 착실히 듣고 있으며 수업을 전혀 듣지 않고 있는것은 극소수로... 그런 괴짜들중 하나가 바로 나이다.

그런 우리 학교의 특징을 하나 더 말하자면 우리 학교는 등교를 할때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교문을 들어설때 학생증이 필요하다. 전철역의 개찰구 처럼 카드키로 인증을 해야만 들어갈수 있기 때문에 혹여 학생증을 잃어버린 다거나 깜박 잊고 온다거나 하면 꽤나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불편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익숙해지면 늘 몸에 지니고 다니게 되고 또 나름대로 장점도 있다. 그리고 그 장점중 내가 가장 큰 덕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등교와 동시에 출석 인증이 된다는 것이다.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 제도 덕분에 나는 괜히 거북하게 교실 까지 가서 출석 체크를 할 필요도 없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언제나 등교 직후 도서관으로 발길을 향한다 물론 놀러가는 것이 아니고 도서관에서 하는 것은 자습이다. 본래 도서관이라면 책을 읽는게 가장 주된 목적이고 우리 학교엔 자습만을 위한 건물도 있지만... 나는 도서관의 내음새가 좋다. 오래된 종이의 매캐한 냄새와 그와 상반되는 새로 인쇄된 잉크의 냄새. 도서관에 들어서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쉬어 그 냄새로 몸을 한껏 적시면 마음에 안정이 찾아온다.

내 이야기는 됐고 다시 우리 학교의 이야기로 돌아가도록 하겠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모두 자기가 들을 수업을 마음대로 정해서 개인적인 공부를 하고 있지만 반 편성은 제대로 되어있고 반 교실도 제대로 설비되어 있다. 굳이 갈 필요는 없지만 수업이 비는 시간 또는 쉬는 시간에 모여서 자습을 한다거나 놀거나 하는 용도의 공간이다. 나는 올해들어선 첫날에 살짝 반 구성원을 보려고 들른 것 외에는 방문한 적이 없지만(그것도 교실 안으로 들어간게 아니라 밖에서 살짝 엿보기만 했다) 반 교실은 꽤나 현대적이고 깔끔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었다. 기본적으로 수업을 하는 교실이 아니기 때문에 칠판은 없고 거대한 화이트 보드가 있다. 교실 벽에는 창문이 있고 창문을 열면 좁지만 테라스도 있다. 교실의 뒤쪽에는 학사 일정이라던가 반 인원 명단 이라던가 그런게 붙어져 있는 식이다. 만약 나도 이런 저런 사정이 없었다면 자주 방문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기분도 전혀 들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보다 여러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도서관에 도착해버렸다.

"후우...."

아직 들어서지도 않고 밖에서 바라보기만 했는데도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고 있다. 우리 학교 도서관은 신축된 건물들과는 대조적으로 꽤나 고풍스러운 서양식 건물의 모습으로 나로써는 신축된 건물의 현대적이고 깔끔한 디자인도 좋지만 이런 전통이 있는듯한 건물의 모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좋아한다. 멋지지 않나? 경복궁 이라던가 피사의 사탑 이라던가,

끼이이익 하고 육중한 소리를 내는 도서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역시 평소대로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자유로운 학교긴 해도 이런 이른 시각부터 도서관으로 등교하는건 나정도니까...

어머니의 품에 안긴것 같은 안정감을 느끼며 내 지정석(이라기 보단 멋대로 차지하고 있는 자리)으로 가려고 하니 접수처에 뭔가 대량의 팜플렛이 놓여져 있었다. 뭐지? 어제 밤에만 해도 이런건 없었는데...? 아니 있었나?

흠... 살짝 읽어볼까나.

살짝 흥미가 생긴 나는 가방에서 안경을 꺼내 쓰고 팜플렛을 읽기 시작했다.

타이틀은 이런 식이였다

[독고!! 그 모든것을 파해쳐 본다 ~7인의 유명인 편~]

우왓...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이름.... 아래쪽을 보니 역시나 발행처는 우리학교 신문부였다. 또 이런거 만들어 낸건가 신문부 녀석들... 참고로 독고 라는건 독립 고등학교의 줄임말로 우리학교 녀석들은 대부분 그렇게 줄여서 부르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름이 너무 길잖아. 참고로 연화 고등학교를 줄여서 연고... 라는 것도 있지만 연고... 는 좀 그래서 독고로 채택 되었다나 뭐라나.

하지만 실제로 우리학교에는 7인의 유명인 이란게 있다. 초등부에는 없고 중등부에서 7명 고등부에서 7명씩 각각 있는걸로 알고있다.

아... 그러고보니... 아 그런 이유였구만

지금은 3월 14일. 신입생들이 막 들어온 참이다. 그래서 결국 이 팜플렛은 7인의 유명인중 졸업해서 빠져버린 3학년들의 빈자리를 매울 1학년 유망주 들을 선배들에게 알리고 1학년들에겐 고등부의 유명인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발행된것 같다. 번거로운 짓 하네 신문부 녀석들. 뭐 그래도 나름대로 유익한 정보도 가끔 내놓는 녀석들이니까.

어쨌든 나는 팜플렛을 한장 넘겨보았다.

[7인의 유명인 그 첫번째]

[2학년 C반의 완벽무적 전지전능의 최강초인 논외 학생회장 제갈기현]

역시 첫번째는 이녀석인가... 이 녀석은 정말로 유명한 녀석이다. 나한테는 몇 없는 친구로 초등학교때 부터 친했던 녀석이다. 이 녀석이 유명한 이유는 학생회장이라서가 아니다. 그정도는 앞에있는 형용사를 보면 알겠지....

작년 초까지 우리 학교에 학생회장 이란 직책은 없었다. 이유는 학교의 이사장의 설립 이념에 따른거라나 뭐라나... 그 이념이란게 뭐냐면... 대충 이런 내용이였던것 같다 "그 어떤 학생에게도 분명한 가치가 있고 모든것에서 1위를 할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반대로 운동을 잘 못할수 있고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공부를 잘 못할수도 있다. 공부 중에서도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은 영어에서 어려움을 느낄수도 있고 농구를 잘하는 사람이 축구도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 개개인의 장점과 가치는 분명히 동등하며 그렇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누군가가 위에 서고 누군가는 아래 서는 상하 질서를 만든다는 것은 있을수 없다.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메워주고 우수한 점을 빌려주는것, 그것이야 말로 아름다운 것이다"

뭐 실제로 학생회장은 지도자 라기 보단 대표라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설립자의 이상인걸 어쩌겠는가? 뭐 그런 연유로 작년까지 우리학교에는 학생대표회 라는 이름의 학생회같은 집단은 있었지만 학생회장이라는 직책이 없었다.

하지막 작년에 기현이 녀석이 고등부에 입학하고 나서 첫번째 중간고사를 본 이후로부터 우리 학교엔 학생회장 이라는 직책이 생겼다. 아니 생겨버렸다.

그녀석은 기본 과목은 물론 체육분야, 과학분야, 특수분야를 포함한 2000개가 넘는 전공과목의 시험을 모두 치르고 모든 과목에서 역대 최우수 점수를 받았다. 우리 학교 시험에는 점수 상한선이 없다. 그렇기에 100점을 넘어선 101 점도 있을수 있고 150점도 있을수 있다. 하지만 작년 중간고사에서 기현이가 기록한 평균점은 500점에 약간 못 미치는 점수였다. 그렇다고 100점을 맡기가 쉬운것은 아니며 실제로 기본 과목에서 평균 140점 정도만 나오면 국내 최고의 대학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들어갈수 있다. 뭐 그런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은 녀석이라서 어째선지 더 이상은 학교의 성적 순위권에 들지 않는 논외로 쫓겨나 버리고 학생회장 직만 맡게 되었다. 어쨌거나 그래서 전교 1등이 아닌 학생회장으로 통용되는 녀석이다. 솔직히 말하면 난 그녀석이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양보해도 초능력자. 그정도가 아니면 그 녀석 이라는 존재는 성립할수가 없다고.

팜플렛의 내용을 읽어보니 역시나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비교해서 적으면 적지 새로운 내용이 적혀있진 않았다.

나 대체 어떻게 이 녀석이랑 친구가 되었던 거더라?

뭐 어쨌거나 이 녀석은 잘 알고 있는 녀석이니까 나는 팜플렛을 다음장으로 넘겨 보았다.

[7인의 유명인 그 두번째]

[2학년 A반의 교내 최강의 미소녀 선우연]

아... 이 녀석도 알고 있는 녀석이다. 기현이랑은 다르게 친한 녀석은 아니지만 이름 정도는 전부터 알고 있었다. 등교를 하던 안하던 나도 어디까지나 같은 2학년 A 반이기도 하니 반장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게 기본이다. 뭐 그렇다고 해도 잘 알고있는건 아니니까 나느 팜플렛을 쭉 읽어보았다.

어디보자... 음... 용모단정... 운동신경 발군... 가사능숙... 학력우수... 대인관계 원만... 바로 전 장의 기현이 때문에 스펙이 좀 밀리는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이정도라면 내 관점에선 충분히 완벽에 가까운데.

팜플렛에 실려있는 사진을 보니 역시나 예쁘다. 과연 미소녀라고 불릴만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현이를 제외하면 학년 2위의 성적을 달린다고 하니... 역시나 초인인것 같다. 게다가 1학년때 치른 시험의 평균 점수는 180이라는 것까지 상세하게 나와있었다. 그보다 내가 알기로 시험의 성적은 순위만 공게되고 점수는 공개되지 않을텐데? 이런건 대체 어디서 알아낸 거려나... 아 참고로 기현이의 평균 500점은 본인한테 직접 들었다.

팜플렛의 내용을 다 읽은 나는 팜플렛의 다음장을 펼쳤다.

[7인의 유명인 그 세번째]

[2학년 A반의 정체불명 유령 전교 1등 기휘신]

....?

어라....기휘신?

이거 나... 인가...? 나 분명 작년에는 이런 순위에 포함 안됐었는데!? 그보다 내가 정체 불명이라니 어째서!!!! 확실히 내가 전교 1등이긴 하지만 어째서 정체불명인거냐고!!

팜플렛을 보니 첫째장과 둘째장에는 대문짝하게 붙어있던 프로필 사진조차 나는 검은 실루엣에 '?'가 되어 있는 형태로 대체되어 있었다. 뭐야 이거! 게다가 기본 프로필 정보마저 모두 물음표라니... 이건 대체 무슨 천재지변이지....!?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나는 차분히 소리를 내서 팜플렛을 읽어보았다.

"작년 현 학생회장인 제갈기현의 연화의 난(제갈기현의 2000과목 제패 사건)이후로 제갈기현이 성적 순위권을 이탈한 이후, 기휘신은 언제나 전교 1등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그의 과목 평균점은 우리 신문부도 확인할수 없었지만 예상하기론 전교 2등인 선우연을 적어도 20점 정도 따돌린 200점 정도이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신원 확인 결과 분명히 생활기록부에도 등록이 되어 있고 매일같이 출석도 하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그 모습을 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유령이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지만 학교측에 물어보니 분명이 존재하는 학생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이런 정체 불명의 학생의 신원을 보다 확실하게 하고자 우리 신문부는 앞으로도 노력을......은 무슨!!!!!!! 대체 누구한테 유령이니 뭐니 하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나는 순간적으로 스스로가 서 있는 장소가 도서관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다행히도 이른 아침이라 사람은 한명도 없었지만.

그런 분노도 가라앉힐 겸  기분 전환 겸 나는 팜플렛의 다음장을 펴보았다.

[7인의 유명인 그 네번째]

[2학년 X반의 사신 귀신]

.....

나는 그 타이틀을 읽는 순간 바로 팜플렛을 덮어버렸다. 운 나쁘게도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귀신에 대한것만은 전혀 관련되고 싶지 않다고. 젠장.

X반 이란 것은 신원 확인이 어려운 학생에게 신문부에서 부여해주는 반 명칭이다. 고등부 전체를 통틀어서 10명 정도가 있다고 하며... 어째서 신원 확인이 안되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신원 확인이 안될뿐이지 목격자들과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니 어쩔수 없이 그 존재를 인정해주고 있는거다. 그런 X 반에 속한 녀석들은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며 대게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그 X반 중에서 가장 유명한게 귀신.... 별로 말하고 싶은 주제는 아니지만 귀신은 우리학교에서 가장 폭력적인 인물로 알려진 사람이다. 싸움에 관한 일화라면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이 떠돌고 있으며 그 피해자는 교내에도 그리고 외부 학교에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나로써는 역시나 관여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니 이정도만 말하도록 하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겨우 이 정도 말하는 것 만으로도 질려버렸다.
 
귀신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 순간을 기점으로 더 이상은 팜플렛을 읽어볼 기분이 나지 않았다. 나는 묵묵히 팜플렛을 원래 자리에 되돌려 놓고 나의 도서관 지정석으로 가 책을 펼쳤다. 전교 1등을 하고있긴 하지만 그 자리는 조금만 방심하면 분명히 빼앗겨 버린다. 아직 전공 선택을 하지 않은 나로써는 기본 과목에서 최대한 많은 점수를 따는게 유리하니까.

 

2

나는 왼쪽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오후 11시 53분

이런, 꽤나 늦은 시간이 되어버렸다. 등교 이후 점심시간과 저녁시간 외엔 앉아서 공부만 했던 나로써는 시간의 경과가 잘 느껴지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내 체감보다 훨씬 빨리 시간이 흘러버린 것 같다. 세월도 참 빠르지.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도서관 안에는 나 혼자였다. 물론 아침에도 혼자였지만 이런 밤 시간에도 나는 혼자인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물론 가장 먼저 와서 가장 늦게 나가기 때문... 이겠지. 그나저나 나도 이제 슬슬 집에 가볼까... 나는 방금까지 사용하던 필기도구와 책을 가방에 쓸어담았다. 그보다 지퍼가 고장났나 왜이렇게 안 잠기지... 이 가방도 이제 슬슬 바꿀 때인가? 잠시동안 가방과 씨름을 벌이던 나는 결국 지퍼를 잠그는걸 포기하고 도서관의 육중한 문 앞에 섰다.

여기 까지는 여느때와 다름 없는 나의 일상이였다.

그리고 도서관의 문을 나서던 그 순간...

육중한 도서실의 문을 연 나는 누군가와 부딪혔다. 아무래도 바깥 쪽에서 문을 열려고 손을 댄순간 내가 문을 확하고 열어버려서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고 내 쪽으로 넘어진것 같다. 물론 내가 넘어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번거롭게도 들고있던 가방을 떨어트려서 내용물이 와르르 하고 쏟아져버렸다. 난 신에게 미움받는건가. 왜 하필 가방이 고장난날 이런일이 생기지.

아니 아니 그보다 나랑 부딪힌 사람은 누구지?

바닥을 내려다 보자 그곳에 있는건 어깨까지 오는 생머리와 단발의 중간정도 되는 길이의 밝은 갈색을 띈 머리카락에 머리에는 꽃모양의 머리핀을 꼽고 있는 소녀였다.

그 머리모양과 그 단정한 얼굴은 이미 상당히 익숙했다, 나의 클레스 메이트이자 반장이자 최강의 미소녀로 알려져 있는 선우연이였다.

"아야야..."

바닥에 주저앉은채로 그녀는 넘어지면서 부딪힌 부분을 매만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뭐...뭐라고 해야 하지? 사과를 해야하나? 어.. 어떡하지? 이런 경험은 생전 처음이라고! 애초에 여자랑 말해본 적이 없는데!! 으아.... 누.. 누가 좀 가르쳐줘!!!

"........"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그녀는 얼빠진 표정의 나를 빤히 올려다 보았다.

아니 그렇게 보셔도 뭔가 저는 무척이나 당황스럽기만 할 뿐인데요...

"손정도는 잡아줘야 하는거 아닌가? 내가 누구 때문에 넘어졌는데!"

그녀의 호통에 나는 얼빠진 표정 그대로 손을 내밀었다.

부딪혀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가 이상했던 모양인지 그녀는 넘어진채로 나를 다시한번 잠시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이내 내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섰다. 대체 나는 뭐하는 놈이냐... 으... 애초에 학교에서 누군가랑 말 할 일도 거의 없으면서 이건 대체 무슨 해프닝 이냐고...

"저기 너말이야... 뭔가 할말 없는거야?"

그녀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가늘게 뜨고는 심술난듯한 표정을 짖고 있었다

으아... 나 최악이네... 사과 정도는 생각할 것도 없이 당연히 했어야지

"아.. 음... 미안..."

나는 서둘러서 꼴사나운 사과를 했다. 분명 또 뭐라 한소리 듣겠거니 싶었는데 돌아온 것은 의외의 반응이였다.

"응, 뭐 사과 했으면 됐어, 그리고 애초부터 내쪽도 잘한건 아니니까. 나도 미안."

그렇게 말한 그녀는 몸을 숙여서 내 가방에서 떨어진 책들을 집어들고 있었다.

"아... 내가 주우면 되는데..."

"그럼 내가 주워도 되는거잖아 뭐. 자 여기"

그녀는 미소 지으면서 나에게 책들을 건내주었다. 솔직하게... 정말로 솔직하게 그 미소에 대한 감상을 말하자면... 엄청나게 예뻤다... 방금 전에 보여줬던 까칠한 모습과 다르게 이렇게 예쁘고 착한 미소를 지어줘서 그런것일까. 그 미소는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으왓, 갑자기 긴장되네.

'아 으응...' 하고 시덥잖은 반응밖에 보여주지 못한 나는 스스로가 한심해서 '그럼 이만...' 이라고 말하고 재빨리 자리를 뜨려 했지만 그녀는 어째서인지 내 팔목을 붙잡았다. 

"왜... 그러시는지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말하며 돌아본 그녀의 얼굴은 살짝 홍조를 띄고 있었다. 그런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나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저기... 친구들이랑 같이 돌아가다가 두고 간 물건이 있어서 혼자 돌아와 버렸는데... 이 밤중에 혼자 집에 돌아가긴 무섭달까..."

그녀는 말 끝을 흐려버렸다.

아... 그런건가.... 바래다 달라는 건가. 확실히 요즘같이 흉흉한 때에 밤에 여자애를 혼자 보내는건 내 개인적인 도덕으로 부터 어긋난다. 분명히 말하지만 난생 처음으로 이런 미소녀랑 밤길을 같이 걷게 됐다거나 해서 들뜨거나 하진 않았다. 정말이라니까. 정말로 머리속으로 이대로 얘랑 일이 잘되서 사귀게 된다거나 하는 상상 같은건 1g도 하지 않았다니까?

"같이 갈래?"

내심 내가 잘못 해석해서 설레발 친건 아닌가 하고 걱정했는데 내 말을 들은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정답인건가. 다행이다....

"그럼 빨리 두고온 물건이나 챙겨와. 난 교문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응! 알았어!"

 


교문 앞에서 조금 기다리고 있자니 이윽고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묘하게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뭐지?

"너... 너... 걸음 되게 빠르네..."

"응? 걸음? 갑자기 걸음이 왜?"

"잃어버린 물건만 바로 챙겨서 바로 나왔는데... 뒷 모습도 안보이길래... 하아... 혹시 그냥 혼자 가버린건가 싶어서... 요 앞까지... 뛰어왔는데... 하아... 하아... 안가고 있었네... 다행이다..."

내 걸음이 그렇게 빨랐던가? 몰랐는걸... 애초에 누구랑 같이 걸어다니는 일이 없어서 그런가? 그보다 내 체감으론 내가 교문에 도착한 시간이랑 이 녀석이 도착한 시간이랑 큰 차이는 없었는데... 나 정말 사람이랑 안 지내다 보니 시간 감각이 마비된건가?

 

"그나저나 아직 이름도 안 물어봤네. 너 이름이 뭐야?"

그녀가 어느정도 숨을 돌리고 나서 그녀의 지시에 따라서 걷기 시작하자 그녀가 내 이름을 물어봤다. 좋았어. 내 이름 말이지? 당당하게 말해주겠어, 이 기회를 발판삼아 정체불명이란 오명을 씻어내주마! 나도 엄연한 사람이라고! 누가 정체불명이고 유령이냐!! 건방진 녀석들 같으니라고.

"기휘신이다. 너랑 같은 2학년 A반"

"!!?"

뭐랄까 방금 눈에 보일리가 없는 느낌표와 물음표가 등 뒤에 나타난 듯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까지 확실하게 놀랐다는 감정을 표현할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몇명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표정을 얼굴에 띄우며 그녀는 재차 내 이름을 확인해 왔다.

"기휘신이라고? 정말로? 진짜 니가 그 기휘신?"

"응 아마 니가 생각하는 그 기휘신이 맞을거라고 생각하는데"

"네가 그 '정체불명 유령 전교 1등' 기휘신이라고!!?"

"정체불명 이라고 하지마!! 이렇게 떳떳하게 실존한다고!"

그 소리가 듣고 싶어서 말한건데 오히려 더 듣게 됐잖아... 이러다간 정체불명 이라는 말에 트라우마가 생겨버릴것만 같아. 그나저나 나 설마 진짜로 여태까지 그렇게 불려왔던 건가... 우왓 창피해... 근데 그보다 고등부에서 가장 유명한 7명중 한분께서 뭘 그렇게 심하게 놀라는 거지. 자기 이름도 꽤나 부끄럽기 짝이 없으면서.

"너야말로 그렇게 까지 놀랄 필요는 없잖아. 교내 최강의 미소녀니 뭐니 하는 주제에..."

"하지마! 그 별명으로 부르지마!! 창피하잖아!"

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이 붉은빛을 띄기 시작했다.

거봐 너도잖냐...  그래도 확실히 창피한 별명이지 이런건. 대체 어떤 놈이 붙이고 있는거냐.

"아 그런데 저기 말이야..."

분명 방금 전까지 붉었던 얼굴이 거짓말이였다는 듯 갑자기 그녀의 얼굴에 우울한 빛이 드리우더니 그녀가 암울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왔다. 나도 모르게 그 분위기에 압도된다. 이 녀석 왜이렇게 감정 기복이 심해....

"으... 응, 왜?"

"나 있지... 친구랑 내기를 하나 했었거든?"

"어... 응... 근데 그게 나한테 갑자기 왜 그 이야기를 하는건데?"

"무슨 내용 이였냐면 말이지, 우리학교의 전교 1등에 관한 내용이였어... 그리고 나는 기휘신이 사실은 실존 인물이 아니고 10년전에 자살한 학생의 유령이였다는 쪽에 걸었었단 말이야!!! 어쩔꺼야 내 만원!! 물어내!!"

중간부터는 목소리가 바뀌어서 나를 압도하던 암울한 분위기가 확 깨져 버렸다

"그딴거 내가 알 바냐!!!! 그러길래 왜 그딴 내기를 하는거냐고!!! 살아있는 사람인게 당연하잖아!! 팜플렛 안 읽었냐!!!"

발끈해서 진심에서 우러나온 한마디를 하는 나를 보고 그녀는 갑자기 꺄르르르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좋다고 또 웃는거냐, 놀라고 우울해하고 화내고 웃고 지치지도 않냐 넌. 나로썬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렇게 많은 표졍을 연달아서 짓다니...

그나저나... 이 녀석.. 아까의 미소도 그렇고... 이 얼굴도 그렇고....

웃는 얼굴이 예쁘다... 반칙일 정도로. 반해버릴 정도로.

"전교 1등이라고 해서 좀더 딱딱한 사람을 기대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밌는 사람이라서 다행이야, 너처럼 재밌는 애랑 친구가 되는데 10000원이면 싸게 먹히는거지.

그녀는 아직도 꺄르륵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보다 아까는 유령이였을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무슨 기대를 했던거야? 귀신이랑 친구라도 할셈이였냐? 보면 볼수록 희안한 녀석일세. 나도 살짝 피식하고 웃음이 터졌다.

이런식으로 누군가랑 웃으면서 떠드는게 대체 얼마만이지? 애초에 한 사람이랑 이 정도로 말을 한것도 동생이랑 기현이를 빼면 꽤나 오랜만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누구랑 같이 하교하는것도 엄청나게 오랜만이네...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인가...."

그건 나지막한 혼잣말이였다. 평소에 자주 하는 그런 평범한 혼잣말.

그렇지만 역시 혼잣말은 듣고 있는 사람이 혼자일때만. 즉 스스로일때만 혼잣말로서 성립한다. 듣는 사람이 자신 의외에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더 이상 혼잣말이라고 할수 없다.

"저... 방금 한말..."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어쩐지 울것만 같았다. 아니 대체 왜 또!? 감정 기복이 왜 이렇게 심하냐고!!! 갑자기 왜 또 울려고 그래!!

"....호 혹시.... 그저 친구가 없어서 정체불명의 유령 전교 1등 이였던 거야? 그런거야? 미안... 나 그런것도 모르고... 정체불명이라던가 유령이라던가 말해버리고... 화내고... 미안해."

그러더니 정말로 눈물을 뚝뚝 흘렸다.

!!!!!?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그게 아니야 좀더 깊은 사정이 있는거야. 절대로 아니라고. 다 틀린말은 아닐지 몰라도 그건 간접적인 제 2의 이유지 주된 이유가 아니야. 아니라고!!! 그보다 그 정체불명 소리좀 그만해!! 트라우마가 생겨버리겠어! 그보다 울지마!!!!! 니가 왜 우는거야!!!!"

그후 약 3분 동안 그 자리엔 가진 어휘력을 총 동원해서 최선을 다해 우는 아이를 달래는 내가 있었다. 정체불명이란 이름을 만든 녀석은 대체 누구냐. 대체 나한테 어떤 악 감정을 품고 있는거냐. 이 모든 상황이 더 너 때문이야.

내 혼신의 해명 이후로도 그녀는 코랑 눈이 빨개진 채였다. 눈물만이라도 그쳐서 다행인가... 애초에 친구가 없는건 맞지만 못만드는게 아냐. 안 만드는거지. 정말로. 진짜로.

"그런데 휘신아, 집에 안 들어가도 돼? 지금 시간도 이런데... 나도 이정도 까지 왔으면 괜찮은데"

울어버린 탓인지 콧소리가 섞인 그녀의 목소리는... 솔직히 말해서 귀여웠다. 이게 그건가? 보호본능 이란건가?

그보다 남이 이름을 불러주는것도 상당히 오랜만이네. 아버지는 전화도 뜸하고 동생역시 날 이름으로 부를일은 없으니까... 학교에선...... 말 할 것도 없지. 최근에는 기현이 녀석도 못 만났고.

그런데 그보다 나를 걱정해 주다니... 세상에서 BEST 11에 들정도로 쓸모없는 일이였다. 이래 봬도 나는 꽤나 튼튼한 놈이라서 웬만하면 시비걸릴 일도 없다. 187cm 의 건장한 고등학생한테 덤빌려면 어떤 배짱이 있어야 하는걸까.

"응 괜찮아 이래봬도 남자니까, 그리고 애초에 어쩌다보니 아직까지도 길이 겹치고 있어. 우리 집도 이쪽이야."

"정말? 다행이다... 솔직히 좀 미안했는데"

그녀는 헤헷 하고 살짝 웃음을 보였다

또 웃었다. 그나저나 대체 왜이렇게 미소의 패턴이 많은거냐고... 그리고 왜 하나같이 전부다 날 두근거리게 하는 거지!! 날 노예로 만들 생각인가! 예쁜 미소엔 약하다고! 으... 이 녀석이랑 많이 대화 하다보면 위험할것 같은데....

그런 시시한 걱정을 하던 찰나

저 앞쪽에 뭔가... 돗자리 같은 걸 깔고 수상쩍은 물건들을 팔고 있는 잡상인 같은게 있었다. 이런 야심한 시각에 사람도 얼마 없는 이런 골목길에서 대체 뭘 하고 있는거지?

조금 더 가까이에 다가가서 보니 그 사람의 체구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어린애라고 생각될 정도로 작았다. 그리고 몸 전체에 검은 누더기인지 망토인지 모르겠는 천을 두르고 있어서 얼굴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이건 뭐 수상한 정도가 아니라 수상함 그 자체. 정관사를 붙여서 the 수상함 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정말로 저런건 관련되고 싶지 않았고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무리인듯 싶다. 내 옆에 있던 소녀 선우연은 이미 눈을 반짝 거리면서 성큼 성큼 걸어가 그 잡상인의 앞에 쪼그려 앉아서 물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소녀의 감성과 미스테리는 어딘가 통하는 점이라도 있는것일까? 나로써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쨌거나 바래다주기로 결정한 처지이니 일단은 나도 여기서 같이 서있어야겠지... 솔직히 말하면 빨리 가자고 재촉하고 싶지만 이렇게 눈을 반짝이면서 바라보고 있으니 쉽게 말을 꺼낼수가 없다.

어쩔수 없이 흥미를 잃을때까지 어울려 줄까 싶은 심정으로 나도 팔고 있는 물건들을 바라 보았다. 한쪽만 검게 칠해진 안경, 초록색인지 붉은색인지 구분이 안가는 반지, 낡아 빠진 접시, 부서진 십자가 모양의 목걸이 등등 요상한 잡동사니들 뿐이였고 도대체 어디 써야 하는건지 모르겠는 물건들도 수두룩 했다. 나라면 이런거 줘도 안 가질것 같은데. 그 중에서 연이가 눈을 반짝이면서 바라보고 있던 물건은 유리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수갑이였다. 진짜 별여별 물건이 다 있네 세상에는.


그렇게 그 자리에서 10분이 경과했다


하지만 투명하게 반짝이는 손을 수갑을 손에 쥐고 계속 쳐다보고 있는 연이는 움직일 기미가 안보였다. 너 아까 내 걱정해주던 그 녀석이랑 동일 인물 맞아? 집에 늦게 들어가도 되냐고 물을땐 언제고...

"저기... 이거 살려고?"

기다리다 지친 나는 그녀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빨리 가자는 재촉의 의미를 담아서...

"응... 그러고는 싶은데... 얼마전에 친구들이랑 놀러다녀와서 돈이 부족해"

그렇게 말하는 연이의 곤란해 보이는 표정은 꽤나 귀여웠다.

수갑이 놓여있던 자리를 보니 투박한 글씨로 20000 이라고 적혀있었다. 가격은.. 2만원인가...

흠....

"알았어, 내가 사줄테니까 슬슬 다시 가자"

"어?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진짜로 괜찮아!!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거짓말 하기는, 계속 내버려 뒀으면 몇시간이고 쳐다보고 있을것 같았다고 너"

"으... 정말로 괜찮은데..."

"그냥 내가 사서 너한테 억지로 선물해 주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 애초에 최근에 돈이 남아서 고민이였다고"

"아... 응... 고마워"

결국 그녀는 수긍을 하고 베시시 웃어주었다. 아... 대체 왜 난 이 녀석의 미소를 볼때마다 두근거리는 거지...

나는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만원짜리 두장을 상인에게 건냈다. 연이는 자기 왼손에 수갑을 철컥하고 채우고 있었다. 저러다가 안 풀려서 한번 혼나봐야 정신 차리지.

그나저나...

"저기요...돈 안받으세요?"

이 사람 어째선지 돈을 안 받고 있다. 나는 돈을 쥔 오른손을 조금더 앞으로 내밀어 보았다. 그리고 그 손에 갑자기 수갑이 채워졌다. 방금 전 연이에게 사준 그 투명한 수갑이였다. 나는 벙찐 표정으로 연이 쪽을 바라보았다.

"돈으로 순수한 여심을 사려고 하는 흉악범은 체포 대상이야!"

베시시 풀어진 얼굴로 그렇게 말한후 그녀는 자신의 왼손을 흔들어 짤랑거리는 수갑 소리를 냈다. 그나저나 대체 무슨 어이없는 대사를 내뱉는 거냐 너는, 나라면 그런 대사 인간으로써 부끄러워서 말 못한다고. 그러고 보니 이녀석 경찰 전공 이라고 했었던가?

확실히 수갑을 채우는 솜씨는 능숙했던것 같다. 하지만 어이 없는 대사랑 계속 생글 거리는 표정을 보면... 이래선 사람 잡기는 힘들지 않으려나?

어쨌거나 수갑의 값을 치르려고 나는 다시한번 그 상인에게 돈을 내밀었다. 그제서야 상인은 아이같은 손을 내밀어 돈을 받아갔다. 뭐지... 노인 인줄 알았는데 왜이렇게 손이 곱지?

뭐 그런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 나는 그점을 상인에게 물어보았다.

"그보다 이거 열쇠는 어디에 있나요. 이거 풀어야 겠는데"

나는 짤랑 거리는 오른손을 치켜들며 상인에게 보여주었다. 연이도 마찬가지로 왼손을 들어보였다.

"열쇠 같은건 없어..."

말도 안되는 대답을 돌려준것은 아이의 목소리였다. 정말로 애였던 건가 이 잡상인? 그보다 뭐야 열쇠가 없다는건!!! 그럼 이 상황을 어떻게 하라고! 기껏 사준 건데 부숴서 풀으라고!?

그런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순간적으로 멍한 표정을 짖고 그 잡상인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열쇠가 없다니!!!"

그렇게 소리지른건 내가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연이였다. 확실히 이 녀석도 당황했겠지 자기가 채워버린 수갑이니까.

"열쇠 같은건 없어... 그 수갑은 풀리지도 않고 부숴지지도 않아... 너희들은 평생 그런채로 살아가야 하는거야"

그 말을 들은 연이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굳어버렸다.

대체 이 망할 꼬맹이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요즘 애들은 티비를 너무 많이 봐서 문제라니까 정말.

"아아 그런 이야기는 됐고 열쇠는 어딨는건데. 빨리 열쇠나 줘. 돈도 받았잖아"

상대가 어린아이임을 안 나는 빨리 열쇠를 받고 이 자리를 뜨고 싶어서 위협적인 말투로 말했다.

"말했잖아... 열쇠같은건 없다고..."

돌아온 것은 또 똑같은 대답이였다. 이쯤 되면 나도 슬슬 짜증이 난다고.

"적당히 하고 열쇠 내놓지 못해!!! 우리도 바쁘다고!! 수갑이란건 열쇠랑 한 세트잖아!!! 수갑 값을 치뤘으니 빨랑 열쇠 내놔!!! 이 망할 꼬맹아!!!!!"

나는 그렇게 말하고 꼬맹이 상인이 두르고 있는 칙칙한 검은 망토를 벗겨 버렸다. 사람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딴걸 쓰고 있는거야 대체?

망토를 휙하고 제껴버린 그곳에 있던건, 망토를 벗겨버린 충격때문 인지 주저앉아 버린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금발의 외국인 여자아이 였다. 그 금빛 머리카락을 본 나는 순간적으로 엑? 하고 놀라 버렸지만 진짜로 놀라야 하는 점은 그런게 아니였다. 이 아이 어쩐지 처음보는 이상한 옷을 입고 있었고 또 머리엔 조그만 뿔같은 것도 돋아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엉덩이 부근에서는 쫄랑 쫄랑 움직이는 기다란 꼬리가 나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나와 연이는 정말로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뭐라고 해야 하나... 정말로 깜짝 놀라 버려서 뇌가 이 상황을 이해하는걸 거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쨋거나 그런 오묘한 감각은 처음이였기에 내가 할수 있는건 그저 멍하니 멈춰 있는것 뿐이였다. 연이 역시 그건 마찬가지 였던듯 하다. 아까 부터 굳어있던 연이는 이제는 마치 불상이 되어버린것 처럼 굳어있었다.

이 침묵을 깨버린건 우리를 굳어버리게 만든 금발의 의문의 소녀?였다.

"미안하지만 정말로 열쇠같은건 없어. 그 수갑은 그런 물건이야. 잘 봐, 애초에 열쇠 구멍처럼 보이는 것도 없잖아? 그 수갑은 애속의 수갑이라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구속하고 싶을때 쓰는 수갑이야. 열쇠가 없으니 풀수도 없고 부수려고 해도 부숴지지 않아. 하지만 그래도 서로로 부터 최대 5도르, 그러니까 인간의 단위로는 19m 정도 까지 떨어져 있을수 있어. 지금은 그렇게 길게 늘어져 있지 않을테지만 너희들이 움직이는 만큼 최대 19m 까지 그 수갑의 사슬의 길이도 늘어날거야."

아까와 똑같은 내용에 부가된 설명이 있었던 것 뿐이지만 어째서 인지 이번에는 그걸 부정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마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거겠지.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침묵에 빠진 나와 연이를 앞에두고 그 금발의 소녀는 이야기를 계속해간다.

"아 그리고 그 수갑은 너희들 외에는 아무한테도 보이지 않아.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한테도 지금 그 수갑은 보이지 않아. 너희 둘이 그걸 함께 찬 시점에서 이미 그 수갑은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거지. 지금 그 수갑은 너희 외에는 아무도 만질수도 없고 볼수도 없어. 그저 너희 둘을 언제나 직선으로 연결하고 서로를 구속할 뿐이야."

.....

이런 얼빠진 이야기를 믿어야만 하는건가... 절대로 믿고 싶지 않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이미 이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 말은 명명백백한 진실이다... 그렇지만 말이나 되냐고 이런게... 2시간 전만해도 난 학교에서 공부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말도 안되는 전개가 어디있어...

연이의 얼굴도 말이 아니다... 금방이라도 울것만 같다... 나 역시 지금 당장이라도 울고 싶다고...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믿을수 밖에 없다는걸 알고 있긴 하지만 믿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 할수가 없다. 아직도 마음이 혼란 스럽다. 지금 여기서 눈을뜨면 상쾌한 아침이라거나 아니면 도서관에서 깜빡 잠이 들어서 꿈을 꾼거라거나 하는 그런 전개 였으면 하고 마음 깊은 곳으로 부터 바라고 있다. 하지만 오른 손에서 절그럭 거리는 이 유리 수갑의 차가운 감촉이 이건 분명한 현실이라고 나를 일깨워 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에겐 최후의 지푸라기 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으로 한번더 물어보고 싶은게 있었다

"정말로... 이 수갑... 풀 방법은 없는거야?"

하지만 되돌아 온 대답은 무정한 것이였다.

"응 없어. 마족이 만든 물건을 인간이 어떻게 해볼수 있을리가 없잖아?"

훌쩍 훌쩍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래도 방금 그 한마디가 방아쇠가 된듯 연의의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으아아아아 어떡하지.... 지금 상황 자체도 혼란 스러운데 울어버리면 난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거냐고.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이미 다 했어. 그럼 난 이제 가보도록 할게. 행복하게 살아봐"

연이는 울고 있고, 나는 아직도 이 모든게 꿈이기를 바라는 상황 속에서 금발의 소녀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물건을 펼쳐 놓고 있던 검은 돗자리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런 기괴한 장면 마저도 지금의 내 눈엔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로 앞으로 이 수갑을 풀수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거지? 평생 이런 식으로 붙어 살아야 하는 건가? 말도 안되잖아... 그런건...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의문의 금발의 소녀가 사라진 자리를 넋놓고 쳐다보고 있는것 뿐이였다. 옆에서 울고 있는 소녀를 위로하는 것조차 사교성 없는 내겐 너무나도 벅찬 일이였다. 이 눈물은 아까 그 눈물이랑 비교해서 그 무게가 전혀 다르잖아...

소녀가 돗자리 속으로 사라지고, 소녀가 스며든 검은 돗자리도 사라지기 시작할때쯤 돗자리 안에서 소녀의 눈 윗부분 만이 스윽 하고 올라왔다.

"우와악! 뭐하는 짓이야!!"

솔직히 사라질때는 그렇게 큰 충격이 아니였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튀어나오는건 훨씬 괴기한 장면이였다. 넋놓고 보고 있었는데 그렇게 튀어나오지 마!! 엄청 놀라버렸다고.

"아니 그냥 두고간 물건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 소녀는 상반신 까지 몸을 드러내더니 내 왼손에 들려있는 망토를 빼앗아 갔다. 그리고는 나를 째려보고 한마디.

"그리고 너, 숙녀의 옷을 함부로 벗기는건 실례중의 실례라고."

그런 영문 모를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후 그 금발의 소녀는 정말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정말로 연이의 훌쩍거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아아... 나도 울고 싶어진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흐느껴 우는 연이가 소매로 계속해서 얼굴을 닦으며 나한테 사과했다.

"내가... 그런 장난만 안쳤어도.... 그런 장난만 안쳤어도 이런 일까진 안 일어났을 텐데... 정말로 미안해... 전부 나 때문이야...."

사과하지마.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잖아. 애초에 이건 내가 사준 물건이잖아. 잘못은 나한테도 있어. 오히려 억지로 사준 내 잘못이잖아.

"미안해.... 정말로... 정말로 미안해.... 나 때문에...."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울 일도 아니야. 나 따위 한테 미안할 일도 없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네가 울 이유는 없어. 그런 이유로 울지 마. 제발 나 때문에 울지 말아줘.

해주고 싶은 말은 셀수 없이 있었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흐느껴 우는 그 작은 두 어깨를 감싸주는 내게는 무리였다.

내 최선은 멋 없는 몇 마디를 뱉어내는게 고작이였다.

"가자. 바래다줄게"

그저 발길을 재촉하는 그 멋없는 한마디에, 얼굴을 가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그녀였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응, 가자"

그녀는 스윽 스윽 하고 마지막으로 교복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다시 한번 나에게 미소를 보여주었다. 울던 얼굴로 보여준 그 미소는, 오늘 그녀가 나에게 보여준 많은 미소들중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고. 나의 가슴을 가장 크게 두근거리게한 미소였다.

일단은 원래의 목적대로 연이를 집으로 대려다 주는것. 그것이 내가 지금 당장 할 일이였고 연의가 할 일은 나에게 에스코트 받는것. 그것이 이 수갑을 차게된 이후 우리가 처음으로 한 일이였다.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겠지. 떨어질수 있는 거리가 최대 19m라는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일반적인 생활은 무척이나 어렵고 오늘밤도 적어도 어느 한 쪽은 다른 한 사람의 집에서 묵어야 했다. 오늘 밤은 그렇게 보낸다고 치더라도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하지? 가족에게 사정을 설명해야 하나? 하지만 어떻게?

머릿속이 복잡하다.

 

"있잖아... 아까 그 아이는 역시 악마같은 걸까?"

복잡한 내 머릿속을 꿰뚫고 지나간건 연이의 조그마한 호기심이였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건 아니지만 나도 그녀석의 정체에 관해선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역시 그렇지 않을까...? 자기 입으로 마족 어쩌고 했었잖아. 마족이면 역시 악마같은 거겠지?"

"그런데 그 아이...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예뻤던것 같아. 역시 악마는 다 그런식으로 생긴걸까?"

이 녀석 울고 있었으면서도 볼건 다 봤나보다. 뭐 부정은 하진 않는다. 실제로 우리한테 이런 물건을 팔았다는 점만 제외하고 보면 그 외의 잘못은 우리한테 있는 거니까 별로 책망도 하지 않는다. 아마 그런게 악마의 일일테니 그 녀석은 자기 본분에 충실했던것 뿐이고 우리가 멍청했던것 뿐이니까. 그런고로 지금에 와서 잘 생각해보면 그 녀석은 분명이 예뻤다. 역시나 금발의 외국인 같은 외모였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한국말을 하는거지 그녀석? 악마라서?

"응 뭐, 그녀석 확실히 예뻤지. 이런 식으로 만난게 아니였으면 반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크억!"

느닷없이 연이에게 발을 밟혀버렸다.

"뭐하는 짓이야!!!"

"응? 아아 미안 붙어서 걷는게 익숙하지 않아서 밟아버린것 같네. 미안해"

아니 아니!! 그럴리가 없잖아!? 대체 어떻게 하면 실수로 이렇게 사람 발을 밟을수 있는건데? 그렇게 따지고 싶었지만 여태까지 보여줬던 미소와는 사뭇 다른 뭔가 무서운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에게 뭔가 반론을 할 용기따위 내겐 없었다. 어쩔수 없지만 물러서는 수밖에... 좋아. 말을 돌리자.

"그... 그럼 지금 상황이나 한번 정리해 볼까? 그... 그러니까 우린 지금 이 수갑 때문에 서로한테서 최대 19m 밖에 떨어져 있을수 없다고 했던가? 그리고... 다른 사람은 이 수갑이 안 보이고... 만질수도 없고... 아 그럼 아무도 못 만진다는건 이 사슬은 벽같은 것도 통과할수 있다는 뜻이려나? 어.... 일단 지금 당장은 이정도인가? 뭐 더 없지?"

"응 그리고 니가 로리콤 이라는 것 정도"

"그건 절대로 아니야아아아!!!!!!!"

이 여잔 대체 무슨 얼토당토 않은 소리를 내뱉는 거냐 대체. 대체 내 로리콤 의혹은 어디로부터 튀어나온 거냐!! 육하원칙을 사용해서 설명해!!!

"흥!!"

"뭘 니가 토라지는 거야!! 여긴 내가 눈물을 흘려야 할 장면이라고!!"

하아... 됐다.... 바보같은 짓 하는것도 질리네... 오늘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나 의논해봐야지.

"됐다.... 그보다 너희집은 어디쯤이야?"

"아... 응.... 이 모퉁이만 돌면 금방이야"

"그러냐.... 이 근처면 아파트는 아니겠네... 다행이다... 일단 오늘밤은 내가 너희집 근처에서 눈에 안띄는 장소를 찾아서 노숙이라도 할게"

"응? 무슨 소리야? 3월이라고 해도 아직 추운데 밖에서 어떻게 자려고.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면 되잖아?"

연이는 너무나도 평탄한 어조로 말도 안되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이런 오밤중에 딸아이가 이런 건장한 사내놈을 대려가서 하룻밤 묵게 해달라고 하면 어떤 부모님이 허락하냐!!!"

"응? 아 그거라면 괜찮아, 어차피 동생은 오늘 친구집에서 잔다고 했고 부모님은 제주도로 2박 3일 여행을 떠나셔서 나 혼자니까"

"오히려 더 위험해!!!!!! 그런 상황에서 잠이 오겠냐!!!"

내 외침을 듣고 그녀는 잠시 동안 '응? 그건 무슨 의미?'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이해한듯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푹 내리깔고 이따금 나를 째려보았다.

"됐어... 어차피 오늘은 너희집 밖에 적당한 장소에서 노숙하는걸로 결정이니까. 혹시 침낭 같은거 있으면 그거나 빌려주면 돼."

"나는 별로... 상관 없는데..."

그녀는 대답대신 뭐라고 작은 소리로 중얼 거리렸다. 말 할거면 크게 해, 안들리잖아.

그나저나 우리집도 이 근처인게 그나마 다행인가. 아니지... 오늘 하루로 끝나는 일이 아니니까 집이 아무리 가깝던 멀던 별다른 차이는 없구나.

참고로 바로 저기 있는 저 집이 우리집이다. 불이 켜져있는걸 보니 아직 동생 녀석은 자고있지 않은것 같다. 으... 동생한텐 이 사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아버지는 일단 해외에 있으니까 상관 없지만... 으... 동생한테 비밀로 하는건... 역시 무리겠지? 그래도 일단 최대한 해보는 수밖에.

내가 골치아픈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연이가 발걸음을 멈추가 말했다.

"저기... 우리집 다 왔어..."

"엑? 도착했다고? 어딘데!?"

그렇게 묻자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집을 가르켰다. 그리고 그 집은...

"우리 옆집이잖아...!"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 집이 한칸 더 왼쪽에 있는 집이고 연이가 자기네 집이라고 말한 집이 오른쪽에 있는 형태다. 대충 눈대중으로 거리를 재보니 우리집의 가장 왼쪽에서 연이네 집 가장 오른쪽 까지의 거리가 20미터 정도... 인듯 한데...

어... 이거 그냥 자기 집으로 들어가도 괜찮은거 아니야...?

"어? 옆집이라니 무슨소리야? 응? 무슨 소리냐구!!"

"어... 아 그러니까... 저기 회색 집 우리집인데..."

그렇게 대답하자 연이는 자신의 집과 우리 집을 번갈아서 쳐다 보고 말했다

"뭐어어!? 정말로? 저 정도면 가까운 수준이 아니라 딱 붙어 있는거잖아!!"

우리들은 발걸음을 재촉해서 빨리 걷는건지 뛰는건지 모를 정도의 속도로 서로의 집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보다 확신이 생긴다. 이정도면 충분히 가능해! 19m 정도만 있으면 충분히 평범하게 생활할수 있어!!

우리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연이의 표정에는 이루 표현할수 없는 기쁨이 나타나 있었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겠지. 이거 꿈은 아니겠지? 아니 수갑을 찬건 꿈이면 좋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집이 딱 붙어 있는건 꿈이 아니면 좋겠다. 서로 행동에 제약을 받는 다는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가장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희망적이다.

그래도 아무리 기본 생활에 무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서로 꾸준하게 연락하는건 필수겠지. 핸드폰 번호... 필요하겠는걸... 우왓... 갑자기 긴장 되네... 여자한테 핸드폰 번호 물어보는건 태어나서 처음인데, 어떻게 해야하지? 그래...!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하면 되는거야!

나는 아주 정말로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내 핸드폰을 연이에게 건내며 말했다

좋았어. 이건 제임스 카메룬 감독도 박수를 칠 정도로 매끈한 동작이였어.

"여...연아, 핸드폰 번호좀 알려답시오!?"

대체 뭔 소리를 하는거냐 난!!!! 어느 나라 말이야 이건 대체!?

"응? 무슨 소리야? 핸드폰이 왜?"

얼굴은 나름대로  포커 페이스를 유지했지만. 내면의 나는 마치 침몰하는 타이타닉에서 마지막까지 악기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아... 아니 그냥 핸드폰 번호 알려달라고"

"응 알았어, 여기, 나도 번호좀 줘"

연이는 내 핸드폰을 받아들고 자신의 핸드폰을 내게 건냈다. 그렇게 우린 서로 번호를 교환한 후 '내일 봐' 라고 인사한 후 서로의 집으로 들어갔다.


3

집에 들어서고 나니 급격하게 피로가 찾아와서 나는 '오늘은 늦었네' 라면서 반겨주는 동생의 인사도 그냥저냥 흘려버린채 내 방으로 들어가 옷만 갈아입고 침대에 쓰러져 버렸다.

으... 피곤해... 오늘은 그냥 빨리 자야지...

그렇게 의식이 점점 흐려져 내가 잠에 빠지려는 순간 갑자기 오른팔이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휙 하고 움직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오른팔을 보니 벽을 통과해서 연이의 왼팔로 이어져 있을 수갑의 사슬이 팽팽하게 늘어나 있었다. 이건 그러니까 한계 거리에 도달 했다는 뜻인가? 으... 역시 평범한 생활이 무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다는 것도 아닌가. 이래서 눈대중으로 재본 길이는 믿으면 안된다니까. 그나저나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한계 거리에 도달한걸 보면 연이가 움직였단 건데... 무슨 일이지?

그때 주머니에 있던 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누군지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애초에 내 핸드폰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이 적으니까... 일단 아버지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므로 각하. 동생 녀석은 바로 아래층에 있으니까 각하. 기현이 녀석은 남자한테 친절하게 전화를 걸어줄 위인이 아니니까 각하. 그렇다는 건...

"여보세요..."

[아... 여보세요]

역시나 수화기 너머에 있는것은 연이였다. 아마도 집 안에서 가야할 장소가 있는데 내 방으로 부터 그곳 까지의 거리가 19m가 넘어서 못가고 있으니 나한테 조금만 움직여 달라는 내용이겠지.

[저기... 있잖아... 쉬고있었을 텐데 미안하지만 조금만 내 쪽으로 움직여 주지 않을래?]

뭐 들을 것도 필요 없이 뻔한 내용이였다. 하지만 피곤해서 움직이기도 싫고, 로리콤이라고 불린것도 있고, 발을 밟힌것도 있고, 정체불명이란 소리를 몇번이나 들은 것도 있어서 나는 조금 심술을 부리고 싶어졌다.

"싫어.... 피곤하단 말이야, 지금은 침대에서 조금도 움직이고 싶지 않아. 그거 나중에 가면 안되는거야?"

[뭐어!? 안돼!! 그럴수 있을리가 없잖아!! 지금 당장이 아니면 안돼!]

"아아 대체 뭐길래 그러는 건데? 중요한게 아니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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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35/A:54]
고인
여기까지의 용량은 대충 사십몇 키로바이트
2012-08-15 16:48:16
추천0
[L:20/A:445]
MrNormal
다른거 필요없고 재밌으니까 추천인거예요!
2012-08-15 17:55:05
추천0
[L:35/A:54]
고인
목말라 있던 한마디였어요. 감사합니다.
2012-08-16 16:22:46
추천0
[L:5/A:45]
아르크
우...우와... 양도 많은데다가 재밌기까지...
2012-08-15 21:06:18
추천0
[L:5/A:45]
아르크
근데 주인공의 화이트데이는 플래그를 세우고 끝났다?!
2012-08-15 22:50:46
추천0
[L:35/A:54]
고인
생각해 보니까 화이트 데이였군요.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요. 내용만 잡아놓고 제대로 못쓰고 있는 터라서;;

이거 이후로 쓴 분량도 이거랑 같거나 못 미치는 정도 뿐이라..

미완성 중의 미완성 작이에요
2012-08-16 16:24:45
추천0
[L:23/A:416]
종이
저랑 삐까뜨는 분량ㅎㅎ
2012-08-15 21:09:28
추천0
[L:39/A:543]
언트
우선 엄청난 분량에 감탄을 ㄷ
2012-08-16 02:47:23
추천0
고인Klauds
하나 올리자 마자 로금을 먹었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2-08-17 20:08:56
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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