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원정
전 기아 타이거스의 열렬한 팬으로 팬클럽에 가입하여
지방 원정경기까지 찾아가서 봤습니다.
그날은 대전에서 한화와 시합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팬클럽 특성상 경기가 끝날 때까지 남아 있다가 선수들을 배웅해야 했기에,
모든 일정이 끝나니 밤 11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전 외박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마침 8인승 승합차를 갖고 계신 분이 자신도 서울로 올라간다며 같이 가자고 하셨습니다.
차에 타신 사람은 모두 9명.
나이 어린 여고생들 네 명이 뒷좌석에 타고
저를 포함한 세 명이 가운데 좌석에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네 명이 정말 비좁겠구나 하고 뒷좌석을 돌아봤는데
여고생 사이에 못 보던 아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어이쿠, 다섯 명이나 타면 정말 좁겠구나…….
팬클럽이 워낙 연령층이 다양하여 누군가 데려온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하튼 차는 출발하고 한 시간 정도 달리다가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가 아이를 데리고 타지 않았냐고 물어봤지만
처음부터 그런 아이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전 분명히 출발 전에 아이를 봤는데
아이의 얼굴이나 옷차림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9명이 탔는지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계속 이야기 하다간 저만 이상한 사람 될 것 같고
괜히 운전하시는 분 신경쓰실까봐 잘못 봤다고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신경 쓰시다 사고라도 나면 안 되니 말입니다.
이윽고 서울에 도착하여 한 분씩 내리시고
마지막엔 저와 운전하시는 분 두 명만 남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저희 집 근처로 향하는 도중.
아까 일을 이야기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창 밖에 여자가 계속 보이고 있었습니다.
긴 머리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맨 발로 걷고 있었습니다.
새벽이 한참 깊은 시각에 여자 혼자 왜 다니나…….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차가 계속 속력을 내면서 가고 있는데
창 밖에 계속 여자가 보이는 걸 보니 온 몸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기분 탓인지 아까 뒷좌석에 아이가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고…….
내리는 순간까지 몇 분 되지 않았지만 정말 차 안이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운전자 분 혼자 가실 건데 이야기할 수도 없고.
차에서 내려서 정말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 왔는데
다행히도 더 이상 차에서 봤던 여자나 아이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팬클럽 활동도 뜸해지고 지인들과 야구를 관람하는 걸 더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때 지방원정가면서 겪은 일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