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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화 – 보라 순결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미쩌리 | L:0/A:0
26/50
LV2 | Exp.52% | 경험치획득안내[필독]
추천 1-1 | 조회 421 | 작성일 2019-01-01 17:3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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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화 – 보라 순결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1 화 – 보라 순결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태초의 사람들은 한 점의 티끌도 없이 무결했다. 그들에게는 죄를 짓지 않을 자유가 있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로서의 자유였다. 그러나 어떠한 사건, ―실낙원 이후 사람은 원죄를 입게 되었다.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늘 죄 속에 갇혔다. 타락한 사람은 스스로의 죄를 용서받거나 구원 받을 수조차 없었다. 사람들의 세상에는 시기와 질투, 폭력과 불신이 가득했다. 아우성과 비탄이 기도가 되어 천상에 닿았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오직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용서와 구원은 오직 신의 힘으로 밖에 이루어질 수 없다.」 이 두 가지의 대명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대한 신께서는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 그 분이 바로 원죄를 입지 않은 처녀의 아들, 우리들의 구세주, 신인(神人) 메시야였다.

  “상처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 곁으로 몰려들었어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 앉은뱅이. 가난한 자들, 또 부랑아와 창녀들, 제국의 앞잡이 매국노들과 강도들 살인자들까지. 그 행렬은 마치 구름과도 같았죠. 주님께선 자신에게 몰려드는 이들 누구도 막아서지 않았습니다. 설령 그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손가락질 받는다고 하더라도.”

  햇볕이 스테인드글라스의 유리를 통과해 아름답게 비추어 내렸다. 교회의 안에는 머리를 파르라니 깎은 젊은 남성이 있었다. 남자는 푸른색 수단 사제복 위에 장백포를 걸치고 있었다. 열의를 띄며 설교하는 그 모습은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나이들은 현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많은 아이들이 그 앞에 앉아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젊은 남성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누군가는 주님께 말했어요. ‘너는 신의 아들이라고 떠벌리며 어째서 바보와 머저리들, 강도와 창녀들, 살인자들과 어울리느냐!’ 그 질문은 매우 타당한 것처럼 느껴졌죠. 신의 아들은 올바른 자들과 함께하며 올바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왜 일까요? 아이작?”

  아이들 중 손을 들었던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홉 살, 혹은 열 살 쯤 되었을까.

  “어…음, 의사가 필요한 것은 병든 자들이기 때문이에요.”

   아이는 수줍게 말했다. 젊은 사제는 만족스러운 듯이 빙긋 웃어보였다. 아이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아이작, 저번 주 설교를 까먹지 않고 잘 기억하고 있었군요! 맞았어요. 주님께선 의인들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죠. 우리들도 어렵고 힘든, 죄 지은 자들을 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시겠죠? 자, 그럼 설교 끝! 모두들 간식을 먹으러 가죠! 오늘은 라니 수녀님께서 사과 파이를 구워오셨답니다!”

  젊은 남성이 짝, 하고 손뼉을 마주치자 아이들은 와하고 소리를 지르며 우르르 바깥으로 몰려나갔다. 모든 아이들이 빠짐없이 성당의 문을 박차고 나갔을 때 나는 비로소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솜씨가 좋습니다, 프란시스 사제.”

  텅 비어버린 성당 안으로 내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젊은 남성, 사제 프란시스는 그때서야 나를 발견하고는 멋쩍게 웃었다.

  “하하…가스펠 사제님, 언제부터 거기 계셨어요? 이거 미숙한 설교를 보여드렸군요.”

  “아닙니다. 훌륭했습니다. 저는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영 어려워서 말입니다.”

  “존경하는 가스펠 사제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그나저나 이 다미니크 수도원에는 어쩐 일로 오신 거죠?” 프란시스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변을 살핀 후 조용히 말을 이었다. “예의 일 때문인가요?”

  예의 일이란 일주 전 ‘깊은 숲 마을’에서 행했던 재판들일 것이다. 나와 프란시스를 포함한 도미니크의 사제들, 성당 기사단은 마을에 마녀가 있다는 신자들의 제보를 받아 근처 지방의 마을로 향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술과 간교를 부리는 마녀 네 명을 처형했다. 잠깐의 소란이 있었으나 비교적 모든 것이 깔끔하고 탈 없이 끝난 일 중 하나였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단지 이것을 전해주러 온 것일 뿐입니다.”

  나는 품속에서 둥글게 말려있는 두루마리 한 장을 꺼내 프란시스에게 내밀었다. 두루마리는 촛농과 인장으로 단단히 봉인이 되어 있었다. 프란시스는 조심스럽게 내게서 그것을 받아들었다.

  “이것은 성황청의 인장 아닌가요…?”

  “한 번 열어보시죠.”

  나는 사제복의 바짓단에 달린 주머니에서 편지 칼을 꺼내 프란시스에게 건네주었다. 프란시스는 편지 칼을 받아 인장 부분을 조심스럽게 뜯어냈다. 두루마리를 펼치자 사람의 얼굴만 한 서신이 되었다. 프란시스의 눈동자는 분주히 움직이며 빼곡히 적힌 글자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 눈동자가 서신의 끝을 향할 때 즈음 프란시스는 조용히 입을 움직여 글자를 소리 내어 읽었다.

  “에리알로 데 프란시스, 그 동안의 귀하의 노고와 신앙심, 선행을 인정하여 성황청의 심문관으로 정식 임명하는 바이다.”

  “잘 됐군요. 프란시스 사제.”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프란시스를 축하했다. 프란시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서신을 몇 번이고 읽었다.

  “제가 심문관이 되었단 말입니까? 가스펠 사제님과도 같은…? 별 다른 은총도 받지 못한 제가….”

  “이제 갓 스물 둘의 나이에 성황청 요직에 오를 만큼 출중하셨다는 것이겠죠. 저 조차도 심문관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3년 전인 스물넷이었으니.”

  당시 나의 임명조차 성황청 내에서는 상당히 빠른 편에 속했다. 나는 보기 드문 은총의 소유자니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지만 프란시스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성황을 3번이나 배출해냈던 프란시스 가문과의 연관을 때어놓을 수 없을 것이었다. 물론 그것을 떠나서 프란시스는 유능한 사제였다.

  “좀 더 자신을 가져도 좋습니다.”

  “정말 믿기지가 않는군요. 정말 믿기지가….”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듯 프란시스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프란시스 사제의 어깨를 다독였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프란시스 사제님. 축하도 할 겸 함께 식사라도 하러 가시죠.”

  “네! 가게라면 제가 최근에 알게 된 가게가 있어요. 돼지를 통으로 구워내는 가게인데…!”

  “네네, 좋습니다.”

  나는 말이 길어지려는 프란시스의 어깨를 잡아 끌어 성당의 바깥으로 향했다. 성당의 바깥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무척이나 정겨웠했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따사로운 봄날의 오후였다.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이 드넓은 수도원의 정원에서 해맑게 뛰놀고 있었다. 저 아이들은 언젠가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들이 뛰 놀았던 것을 기억할 수 있을까.

  “프란시스 사제, 가장 오래 된 기억이 무엇입니까?”

  “예?”

  서신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걷던 프란시스 사제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나는 잔잔히 웃었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걸으며 서신을 읽다간 넘어질 겁니다.”

  “하하, 예, 죄송합니다, 가스펠 사제님.”

  싱글벙글하며 웃는 프란시스의 사과에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크게 떠드는 소리가 귓가에 왕왕 울렸다. 이제 네가 술래야! 아니야! 내가 먼저 찜했잖아! 아니야, 내가 먼저 들어왔다고! 거짓말 하지 마! 

 

 

 

 

  “네가 하라고!”

  눈앞이 번쩍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흙탕물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아 있었다. 엉덩이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코에서 무언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손 등을 가져다 문질러보니 붉은 것이 닦여 나왔다. 아, 이것은 코피다. 나는 분에 못 이겨 상대를 흘겨보았다. 큰 덩치의 사내아이가 나를 내려다보며 이죽거리고 있었다. 나는 바지에 묻은 진흙을 아무렇게나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게 좋은 말로 할 때 잘 들어야지. 눈은 또 왜 그렇게 흘기고 있어? 한방 더 먹여 줄까?”

  사내아이, 델몬트는 굵은 짱돌 같은 주먹을 내 눈 앞에 가져다대며 윽박질렀다. 남작가의 삼남 델몬트는 13살 난 아이로 나보다 2살이나 더 많았다. 매 끼니 닭을 한 마리, 돼지를 반 마리 이상 먹어댄다는 소문은 진짜였던 모양인지 발육도 남달라 덩치도 나보다 머리 두 개쯤은 컸다.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벌써 코 밑이 거뭇하고 가슴과 어깨가 떡 벌어진 것이 큰 어른 같아 보이기도 했다. 델몬트는 그 성격도 워낙 망나니 같았던 터라 이곳저곳 치고 박기 일 수였고 큰 덩치로 인해 싸움 또한 잘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델몬트는 나를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또 일러 바쳐보시던가. 응? 가스펠, 네가 제일 잘하는 거잖아. 일러바치는 것 말이야!”

  델몬트가 나의 멱살을 붙잡아 올렸다. 나의 몸이 떠올라 지면으로부터 발이 닿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델몬트의 손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바둥거렸다. 그러나 억센 손아귀는 마치 곰 덫 같아서 몸부림칠수록 더욱 억세게 조여 오는 것 같았다.

  “이거 놔!”

  “억울하면 마르셀라에게 또 일러 보라고! 이 고아새끼야!”

  델몬트는 나를 허공에 내던졌다. 내 작은 몸이 공중으로 붕 날아올랐다. 날아가는 와중 나의 머릿속으로 한 소녀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아아, 마르셀라, 그것이 델몬트가 나를 싫어하게 된 계기였을 것이다.

  델몬트는 어느 날 나와 고아원의 아이들을 불러내어 뒷골목으로 데려갔다. 평소 델몬트의 패거리들은 고아원의 아이들을 어리고 멍청하다며 깔보고 무시했었다. 때문에 우리들은 그들의 아지트인 칼빈의 거리 뒷골목에는 얼씬도 할 수 없었다. 물론 고아원의 수녀님들이 우리가 뒷골목 근처에도 가까이 못하도록 주의했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커다란 어른들의 주의보다 눈앞의 덩치 큰 또래가 더 무섭게 느껴질 때도 있는 법이었다. 뒷골목과 델몬트는 일종의 터부였고 또 미지의 것에 대한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한 뒷골목에 델몬트가 우리를 초대했다는 것은 우리 어린아이들에게 있어서 크나큰 충격이자 놀라운 경험이었다. 처음으로 향한 뒷골목, 슬럼가는 온통 자극적이고 낯선 세계였다. 온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사람, 단검과 칼을 찬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고아원에서는 들을 수 없는 경건하지 못한 욕설들이 소음처럼 왕왕거렸다. 진흙탕 같은 땅 바닥에는 무엇의 부품이었을지 모르는 금속 조각과 오물들이 나뒹굴었다. 큰 쥐새끼들과 비쩍 마른 들개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를 해 집고 있었다. 파이프를 물고 있던 여인이 지나가는 우리를 향해 연기를 확 내 뿜었다. 목구멍이 콱 막히는 듯 하는 연기의 매운 냄새에 나와 아이들이 기침을 콜록거리자 여인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씩 웃었다. 그 순간 보인, 앞니가 전혀 없이 듬성한 그 공백에 나는 소름이 끼쳤다. 

  “어이, 애송이들처럼 이리저리 눈 돌리지 말라고. 확 잡아먹어 버린다. 킥킥.”

  “애새끼들 데리고 산책이라도 시켜 주는 거야, 델몬트? 착하게 용돈 벌기인가?”  

  벽에 기댄 채 알 수 없는 언어로 무언가를 떠들어대던 사내들이 우리들을 보며 킬킬거렸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닥쳐, 키스트. 누구 앞이라고 떠드는 거야.”

  “예이, 예이, 델몬트 남작 나으리. 조용히 합죠. 합!”

  사내들은 델몬트의 꾸짖음에 다소 과장스럽게 보일 정도로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멍청이들─이라고 델몬트는 낮게 중얼거리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델몬트는 마치 지하 세계의 주인인 양 당당했다. 속살이 다 보일만큼 앞섬을 풀어헤친 아가씨들에게 농을 던지거나, 동화나 이야기 속의 해적처럼 보이는 애꾸눈들과 인사를 건네는 델몬트를 볼 때에 우리는 숨조차 죽였을 정도였다. 나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짓, 보아서는 안 될 것들을 보고 있다는 배덕감에 가슴이 뛰었다. 어른에 한 걸음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늘의 일은 고아원의 아이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며 자랑거리가 되리라.

  “앞으로 너희들은 뒷골목으로 들어와도 좋아. 내가 여기 ‘형씨’들에게 잘 말 해 놓을 테니까. 해코지 당할 걱정일랑은 말고. 길들은 방금 걸어와서 잘 알겠지? 자, 이제 고아원으로 돌아가도 돼. 어른들에게 슬럼에 왔었다는 것은 비밀로 하고.”

  델몬트가 다시 입을 연 것은 뒷골목의 길이 끝나고 마차들이 오가는 대로변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을 때였다. 나는 무법과 악의 지대가 끝난다는 아쉬움과 함께 다시 질서의 땅으로 돌아왔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참, 너는 잠깐 남아라, 가스펠.”

  델몬트의 두꺼운 손바닥이 나의 어깨위에 턱 얹어졌다. 평소 델몬트의 행실을 알고 있던 터라 나는 괜히 경계하게 되었다. 혹시 내가 무언가 밉보이기라도 한 것일까. 뒷골목에서 봤었던 광경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무사히 고아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 내렸다. 그러나 뒷골목의 구석에서 델몬트가 내게 내민 것은 굳건한 주먹도 발차기도 아닌 작은 과자였다. 작고 예쁜 수가 놓인 붉은 주머니에서 꺼내지는 그것은 비스킷을 꿀에 발라 굳힌 것이었다. 금빛으로 번들거리는 것이 정말로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어서 먹어, 고아원에서는 이런 거 먹기 어려울 거 아냐.”

  몹시 상냥한 말씨였다. 델몬트는 붉게 여드름이 난 얼굴로 어설프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나는 더욱 낯설고 믿음직스럽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원장님께서 다른 사람이 주는 걸 함부로 받으면 안 된다고 그러셨어. 더 볼일 없으면 가볼게. 곧 예배시간이거든.”

  “아니 아니, 뭐가 그렇게 급해? 바깥에서 친구 좀 만나고 왔다고 하면 되잖아. 나는 남작가의 아들이야. 날 만났다고 하면 다들 이해 해줄걸?”

  너를 만나고 왔다는 게 더 문제인거야.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서 얘기하지는 않았다. 나의 팔을 붙잡고 있는 델몬트의 손이 그대로 내 몸을 비틀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하나 먹고 얘기하자고!”

  델몬트의 또 다른 손이 우악스럽게 과자를 집어 그것을 내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고개를 돌릴 틈도 없이 입 안으로 들어온 과자를 맛보았다. 혀에 닿는 것, 아, 그것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단 맛이었다. 과일에서도, 빵에서도 느껴본 적 없던 오로지 단 맛을 내기 위한 사치품! 고아원의 간식시간에 먹었던 그 어떠한 음식들도 델몬트가 준 과자에 비하면 푸석하고 딱딱한 빵 쪼가리가 되는 것 같았다. 달콤하고 바삭한 꿀 과자,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그것을 씹어 삼키고 말았다. 입 안에 단 맛의 여운이 감돌았다. 다시 한 번 더 그 맛을 느껴보고 싶다. 먹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델몬트가 나의 손에 과자가 든 주머니를 넘겨주었다. 적당한 무게감에 손이 묵직해졌으나 마음은 가볍게 뛰어올랐다.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델몬트가 말했다.

  “네가 다 먹어.”

  “그, 그래도 되는 거야?”

  아주 몰랐더라면 좋았겠지만 알아버리고 난 후 멈출 수 없는 것도 있었다. 인내와 자제를 요구하기에 나는 이제 막 11살 된 소년으로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델몬트가 사람들의 말처럼 나쁜 녀석은 아닐지도 모른다. 혹은 우리가 이 덩치 큰 어린아이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그럼 물론이고말고.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가져다 줄 수 있어. 네 고아원 친구들에게 전부 가져다 줘도 된다고!”

  델몬트가 미소 지었다. 한 없이 어색해보였던 웃음이 이제는 원장 선생님의 자비로운 미소와도 같아보였다. 그러나 델몬트의 얼굴이 곧 근심을 띈 표정으로 변했다.

  “아, 하지만 아무리 나라도 아이들이 전부 먹을 만큼의 고급 과자를 사는 건 좀 무리가 있을까. 역시 그 과자는 너 혼자만 먹어. 혼자 말이야. 다른 아이들에게 들켰다간 시샘할지도 모르잖아.”

  “확실히 그럴지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아원에서의 생활은 궁핍하지만 행복한 편이었다. 수녀원의 명망 높은 수녀장이었던 원장 선생님이 크나큰 인격자였기도 했었고, 또 마르셀라가 어린 아이들을 잘 챙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문제는 존재했다.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늘 배고팠고 불만족했다. ‘고기를 나누지 못한다면 그 굽는 연기조차 굴뚝으로 나가지 않게 해라’ 그런 말이 있듯이 나는 헛된 시샘과 질투를 불러일으킬만한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이걸 혼자서 먹어도 좋은 것일까? 하다못해 마르셀라 누나나 친한 친구 피핀, 아직 어린 노아에게만이라도 몇 개 나눠주고 싶은 기분이 생겼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혼자 그 누구도 보지 않는 사이에 전부 다 먹어버리자는 마음이 계속해서 자라났다.

  “가스펠, 너만 따로 남게 한 건 내가 너를 특별하게 생각해서야. 너는 다른 애송이들과는 달라. 너는 좀 더 남자답다고. 너에게서는 나와 같은 냄새가 나. 용자의 냄새 같은 것 말이야.”

  델몬트가 나의 등을 손바닥으로 팡 쳤다. 그 순간 내게서 묘한 자신감이 샘솟았다. 델몬트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 너는 나중에 큰 사람이 될지도 몰라. 예를 들어 성당의 기사나 사제, 심문관, 더 올라가 주교나 추기경 같은!”

  “아니, 그건 힘 들겠지. 나는 귀족도 아니고.”

  하물며 나는 고아였다. 멀쩡한 평민이나 귀족조차 되기 어려운 것을 고아인 내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픔과 고난은 어린아이들에게서 꿈을 뺏어가는 법이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른스러웠다.

  “뭐, 그것은 해봐야 아는 거지. 처녀의 아들, 가스펠! 기적의 아이! 그게 바로 너잖아. 안 그래? 유명하다고 너.”

  델몬트는 나를 띄워주려 했던 것 같았으나 나는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델몬트가 나에 대해서 그렇게나 많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어디론가 숨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나를 향해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내가 입을 굳게 다물어버리자 델몬트는 미간을 찌푸렸다. 델몬트는 듬성히 수염이 난 턱을 몇 번 긁적이더니 내 어깨에 자신의 한쪽 팔을 둘렀다. 말이 둘렀다는 것이지 나와 델몬트의 체격 차이에의해 마치 위에서 내리누르는 듯 하는 모습이 되었다. 델몬트가 내 귀에 은밀히 속삭였다.

  “그래서, 사실 너 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어.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 과자 뿐 만 아니라 다른 멋진 것들, 맛있는 것들도 고아원 아이들에게 먹여줄 수 있어.”

  “나밖에 할 수 없는 일?”

  “쉿, 조용히 말해.”

  내가 되묻자 델몬트는 주의를 주며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위험한 일은 더더욱 아니지. 그냥 너는 사람 한 명을 불러내기만 하면 돼.”

  “사람이라니 누구를?”

  “그 왜 너랑 친한 여자애 있잖아. 이름이 분명 마르셀라던가?”

  곱슬거리는 금발과 미소가 아름다운 천진한 소녀 마르셀라. 열여섯 살이 된 마르셀라는 로렌스 고아원의 최고참으로 모두의 누나였다. 열네 살에 이미 귀족의 자제들과 기사들이 말을 걸어 보기위해 줄을 섰을 만큼 아름답고 예쁜 소녀이기도 했다. 마르셀라는 내 년이면 고아원에서 독립을 할 나이가 되었다. 때문에 이곳저곳에서 마르셀라를 데려가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말조차 들려올 정도였다.

  “별 다른 것은 아냐. 내가 듣자하니 마르셀라는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며? 우리 아버지께서 그 아이의 딱한 사정을 들으시고 정원을 관리하는 하녀로 써주신다고 하셨거든. 물론 급여와 의식주도 제공하고. 급여는 무려 한 달에 금화 한 닢이나 말이야. 금화 한 닢이면 이깟 과자를 매일 한 달 동안 배터지게 먹어도 남는 거 알지?”

  평소 금전과 관련 될 일이 없었기 때문인지 금화 한 닢이 얼마나 큰돈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토록 맛있는 과자를 한 달 내내 먹을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은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그 말은 마르셀라가 더 이상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일 것이니까. 그럼에도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너희 아버지이신 남작님이나 네가 직접 얘기하면 되잖아?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 거야?”

  “귀족들에게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는 거야. 그럼 면접을 봐야하니까 정확히 일주일 뒤 오후 두 시진쯤에 지금 이 자리로 오라고 말해줘. 알았지?”

  꼭 혼자서 오라고 해야 해. 그 말을 끝으로 델몬트는 골목 더욱 깊숙한 곳으로 스르륵 들어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아니, 나는 한다고 말 한 적이 없는데….”

  델몬트를 불러내고 싶었으나 나 혼자서는 골목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아직 어려서 델몬트가 무엇을 바라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나는 손에 들려진 주머니를 멍하니 바라봤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역시 이 시궁창과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도 예쁜 자수가 놓여있었다.

   

 

   

 

 

 

 

 

전편 서장 보기 - 

http://www.chuing.net/zboard/zboard.php?id=crenovel&page=1&m_id=&divpage=1&best=&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625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탈자의 지적 감사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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黑수저
마르셀라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두근두근
2019-01-02 00: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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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야
2020-04-03 0-0 97
10366 창작  
Halloween Witch of Miracles ㅡ Ep 2
쇼타콘
2012-11-24 0-0 1164
10365 창작  
Nagisa
거기누구요
2016-07-15 0-0 865
10364 창작  
Nagisa 01화 속제목:검은고양이
거기누구요
2016-07-13 1-0 871
10363 창작  
[이벤트]金木歌 [7]
연동향
2017-09-16 3-1 1046
10362 창작  
[제 10화]나의 일상은 그날부터 시작 [13]
쓰르라미
2012-06-11 5-0 1074
10361 창작  
"두 번째 여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너" 책리뷰
미정계수
2017-07-15 0-0 284
10360 시 문학  
薄暮2(박모2) - 김시습
사쿠야
2020-08-19 0-0 173
10359 시 문학  
訪隱者2(방은자2) - 김시습
사쿠야
2020-08-20 0-0 173
10358 시 문학  
食粥(식죽) - 김시습
사쿠야
2020-08-25 0-0 217
10357 시 문학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 김남조
사쿠야
2020-05-06 0-0 126
10356 시 문학  
가을 편지 - 이해인
사쿠야
2020-04-30 0-0 148
10355 시 문학  
가을 햇볕에 - 김남조
사쿠야
2020-05-11 0-0 100
10354 시 문학  
감 익는 마을은 어디나 내 고향 - 유안진
사쿠야
2020-06-06 0-0 153
10353 시 문학  
걸식(乞食) - 도연명
이지금
2021-01-30 0-0 199
10352 시 문학  
겨울 나무 너 - 박두진
사쿠야
2020-07-11 0-0 181
10351 시 문학  
겨울바다 - 김남조
사쿠야
2020-05-07 0-0 211
10350 시 문학  
경술세구월중어서전확조도(庚戌歲九月中於西田穫早稻) - 도연명
이지금
2021-02-27 0-0 134
10349 시 문학  
고목 - 유치환
사쿠야
2020-07-23 0-0 207
10348 시 문학  
고한(苦寒) - 이곡
사쿠야
2020-10-31 0-0 182
10347 시 문학  
곡내(哭內) - 임숙영
이지금
2021-02-04 0-0 154
10346 시 문학  
공무도하가
사쿠야
2020-10-21 0-0 132
10345 창작  
구름위의 사람들 리메이크 1화.
슛꼬린
2013-05-10 0-0 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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