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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해 - 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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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0 | 조회 93 | 작성일 2021-02-06 12: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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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해 - 담요

담요 / 최서해 

 

 

 

나는 이 글을 쓰려고 종이를 펴 놓고 붓을 들 때까지 ‘담요’란 생각은 털끝만치도 하지 않았다. 꽃 이야기를 써 볼까, 요새 이 내 살림살이 꼴을 적어 볼까, 이렇게 뒤숭숭한 생각을 거두지 못하다가, 일전에 누가 보내준 어떤 여자의 일기에서 몇 절 뽑아 적으려고 하였다. 그래 그 일기를 찾아서 뒤적거려 보고 책상과 마주 앉아서 펜을 들었다. ‘○○과 ○○’라는 제목을 붙여 놓고 몇 줄 내려 쓰노라니, 딴딴한 장판에 복사뼈가 어떻게 박히는지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그놈이 따끔따끔해서 견딜 수 없고, 또 겨우 빨아 입은 흰 옷이 까만 장판에 뭉개져서 걸레가 되는 것이 마음에 걸리었다.

따스한 봄볕이 비치고 사지는 나른하여 졸음이 오는데,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신경이 들먹거리고 게다가 복사뼈까지 따끔거리니, 쓰려던 글도 써지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기일이 급한 글을 밭아 놓고, 그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나는 한 계책을 생각하였다. 그것은 별 계책이 아니라, 담요를 깔고 앉아서 쓰려고 한 것이다. 담요야 그리 훌륭한 것도 아니요, 깨끗한 것도 아니지만 그것이나마 깔고 앉으면 복사뼈도 따끔거리지 않을 것이요, 또 의복도 장판에서 덜 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이불 위에 접어 놓은 담요를 내려서 네 번 접어서 깔고 보니, 너누 넓고 엷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펴서 길이로 세 번 접고 옆으로 세 번 접었다. 이렇게 좁혀서 여섯 번을 접을 때, 내 머리에 언뜻 떠오르는 생각과 같이 내 눈앞을 슬쩍 지나가는 그림자가 있다. 나는 담요 접던 손으로 찌르르한 가슴을 부등켜 안았다. 이렇게 멍하니 앉은 내 마음은, 때(時)라는 층계를 밟아 멀리멀리 옛적으로 달아났다. 나는 끝없이 끝없이 달아나는 이 마음을 그대로 놓쳐버리기는 너무도 아쉬워서 그대로 여기에 쓴다. 이것이 지금 ‘담요’라는 제목을 붙이게 된 동기이다.

3년 전 내가 집 떠나던 해 겨울에, 나는 어떤 깊숙한 큰 절에 있었다. 홑고의적삼을 입고 이 절 큰 방 구석에서 우두커니 쭈그리고 지낼 때 부쳐준 ‘담요’였다. 그 담요가 오늘날까지 나를 싸주고 덮어 주고 받혀 주고 하여, 한시도 내 몸을 떠나지 않고 있다. 나는 때대로 이 담요를 만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즉 이글에 나타나는 감정이다.

집 떠나던 해였다.

나는 국경 어떤 정거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때는 그 일이 괴로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오히려 사람다운 일이었을는지 모른다. 어머니와 아내가 있었고 어린 딸년까지 있어서 헐었거나 성하거나 철 찾아 깨끗이 빨아주는 옷을 입었고, 새벽부터 밤까지 일자리에서 껄덕거리다가는, 내 집에서 지은 밥에 배를 불리고 편안히 쉬던 그 때가, 바람에 불리는 감꽃 같은 오늘에 비기면 얼마나 행북이었던가 하고 생각해 보는 때도 많다. 더구나 어린 딸년이 아침저녁 일자리에 따라와서 방긋방긋 웃어 주던 기억은 지금도 새롭다.

그러나 그때에도 풍족한 생활은 못 되었다. 그날 벌어서 그날 먹는 생활이었고, 그리 되고 보니 하루만 병으로 쉬게 되면, 그 하루 양식 값은 빚이 되었다. 따라서 잘 입지도 못하였다. 아내는 어디 나가려면 딸년 싸 업을 포대기조차 변변한 것이 없었다.

그때 우리와 같이 이웃에 셋집을 얻어 가지고 있는 K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도 나와 같이 정거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부인은 우리 집에 놀러 오는 때마다 그때 세 살 나는 어린 아들을 붉은 담요에 싸 업고 왔다.

K의 부인이 오면 우리 집은 어린애 싸움과 울음이 진동하였다. 그것은 내 딸년과 K의 아들이 싸우고 우은 것이었다. 그 싸움과 울음의 실마리는 K의 아들을 싸 업고 온 ‘붉은 담요’로부터 풀리게 되었다.

K의 부인이 와서 그 담요를 끄러고 어린것을 내려놓으면, 내 딸년은 이미 무릎에서 젖을 먹다가도 텀벅텀벅 달려가서 그 붉은 담요를 끄집어 오면서,

“엄마, 곱다, 곱다.”

하고 방긋방긋 웃었다. 그 웃음은 담요가 부럽다, 가지고 싶다, 나도 하나 사다고 하는 듯하였다. 그러면 K의 아들은,

“이놈아, 남의 것을 왜 가져 가니?”

하는 듯이 내게 찡기고 달려들어서 그 담요를 뺏었다. 그러나 애 딸년은 순순히 뺏기지 않고, 이를 악물고 힘써서 잡아당긴다. 이렇게 서로 잡아당기고 밀치다가는 나중에 서로 때리고 싸우게 된다.

처음 어린것들이 담요를 밀고 당기게 되면 어른들은 서로 마주 보고 웃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 아내, 나, 이 세 사람의 웃음 속에는 알 수 없는 어색한 빛이 흘러서 극히 부자연스런 웃음이었다. K의 아내만이 상글상글 재미있게 웃었다. 담요를 서로 잡아당긴 때에, 내 딸년이 끌리게 되면, 얼굴이 발개서 어른들을 보면서 비죽비죽 울려 하는 것은 후원을 청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K의 아들도 끌리게 되면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서로 어울려서 싸우게 되면, 어른들 낯에 웃음이 스러진다.

“이 계집애, 남의 애를 왜 때리느냐?”

K의 아내는 낯빛이 파래서 아들의 담요를 끄집어다가 싸 업는다. 그러면 내 아내도 낯빛이 푸르러서,

“우지 마라, 우지 마라. 이담에 아버지가 담요를 사다 준다.”

하고 내 딸년을 끄집어다가 젖을 물린다. 딸년의 울음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아니! 응 흥!”

하고 발버둥을 치면서 K의 아내가 어린것을 싸 업는 담요를 가리키면서, 섧게섧게 눈물을 흘린다. 이렇게 되면, 나는 차마 그것을 볼 수 없었다. 같은 처지에 있건마는, K의 아내와 아들의 낯에는 우월감이 흐르는 것 같고 우리는 그 가운데 접질리는 것 같은 것도 불쾌하지만, 어린것이 서너 살 나도록 포대기 하나 변변히 못지어주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못생긴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어린것이 말은 잘 할 줄 모르고, 그 담요를 손가락질하면서 우는 양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다.

그 며칠 뒤에 나는 일 삯전을 받아 가지고, 집으로 가니 아내가 수건으로 머리를 싼 딸년을 안고 앉아서 쪽쪽 울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옆에서 아무 날 없이 담배만 피우시고,

“○○(딸년이름) 머리가 터졌단다.”

어머니는 겨우 울려 나오는 목소리로 말씀하시었다.

“예? 머리가 터지다니요?”

“K의 아들애가 담요를 만졌다고 인두로 때려……”

이번은 아내가 울면서 말하였다.

나는 나조차 알 수 없는 힘에 문 밖으로 나아갔다. 어머니가 쫓아 나오시면서,

“얘, 철없는 어린것들 싸움인데, 그것을 탓해 가지고 어른 싸움이 될라.”

하고 나를 붙잡았다. 나는 그만 오도가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나는 분한지 슬픈지 그저 멍한 것이 얼빠진 사람 같았다. 모든 감정이 점점 가라앉고, 비로소 내 의식에 돌아왔을 때, 내 눈은 문물에 젖었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길로 거리에 달려가서 붉은 줄, 누른 줄, 푸른 줄 간 담요를 4원 50전이나 주고 샀다. 무슨 힘으로 그렇게 달려가 샀든지, 사가지고 돌아설 때 양식 살 돈 없어진 것을 생각하고 이마를 찡기는 동시에 흥! 하고 냉소도 하였다.

내가 지금 깔고 앉아서 이 글 쓰는 이 담요은 그래서 산 것이다.

담요를 사들고 집에 들어서니, 어미 무릎에 앉아서,

“엄마, 아파! 여기 아파!”

하고 머리를 가리키면서 울던 딸년은 허둥허둥 와서 담요를 끌어 안았다.

“엄마, 해해 엄마 곱다.”

하면서 뚝뚝 뛸 듯이 좋아라고 웃는다. 그것을 보고 웃는 우리 셋— 어머니, 아내, 나— 는 소리 없는 눈물을 씻을면서, 서로 쳐다보고 울었다.

아, 그때 찢기던 그 가슴! 지금도 그렇게 찢긴다.

그 뒤에 얼마 안 되어 몹쓸 비바람은 우리 집을 치웠다. 우리는 서로 동서에 갈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내 딸년을 데리고 고향으로 가시고, 아내는 평안도로 가고, 나는 양주 어떤 절로 들어갔다. 내가 종적을 감추고 다니다가 절에 들어가서 어머니께 편지를 하였더니,

 

“추운 겨울을 어찌 지내느냐? 담요를 보내니 덮고 자거라, ○○(딸년 이름) 가 담요를 만낮 이쁘다고 남은 만지게도 못하더니, ”아버지께 보낸다“고 아니, ”할머니 이거 아버지 덮어?“하면서 군말없이 내어놓는다. 어서 뜻을 이루어서 돌아오기를 바란다.”

 

하는 편지와 같이 담요를 주시었다. 그것이 벌써 3년 전 일이다. 그사이 담요의 주인공인 내 딸년은 땅 속에 묻힌 혼이 되고, 늙은 어머니는 의지가지 없이 뒤쪽 나라 눈 속에서 헤매시고 이 몸이 또한 푸른 생각을 안고 끝없이 흐르니, 언제나 어머니 슬하에 뵈일까?

 

봄 뜻이 깊은 이 때에, 우례가 깊은 담요를 손수 접어 깔고 앉으니, 무량한 감개가 가슴에 복받치어서 풀 길이 망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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