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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169)
에단헌트 | L:0/A:0
225/390
LV19 | Exp.57% | 경험치획득안내[필독]
추천 0-0 | 조회 184 | 작성일 2020-09-13 03: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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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169)

 

 


그리고,


그렇게 

무시무시한 시가전을 벌이고


그 곳에서 전투를 하던 북한군 정찰병 70명을

결국 모두 다 전멸시킨 것도 모자라


그곳에 고립되어 있던

시즈카와 리즈벳를 포함한 귀환전수학교 ( SAO 귀환자 학교의 명칭 ) 의 학생들과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같이 싸우다가

완전히 박살이 난

일본 경찰 기동대와

순찰 경찰관의 생존자들,


그리고

그들을 구출해서 돌아온

모리 일등육좌와 올림푸스의 사촌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전역합동대테러본부가 위치한

그 지역 근처의 사설 공항에 도착하고,

 

그들을

그나마 다행이다 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키리토의 모습을

멍한 눈빛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고,

 

그럭저럭 마음을 진정시킨

시리카와 리즈벳


그리고


클라인과 그의 길드 맴버들과

귀환전수학교 ( SAO 귀환자 학교) 의 학생들은


키리가야 카즈토 (키리토) 가 입고 있는 옷이

미국 육군 제복


그것도

1종 군복 ( Pink & Green ) 인 것을 보고는

놀란 얼굴로 키리토를 바라보다가


키리토의 제복 어께에 달린 4성 장군 계급장에

자신도 모르게

눈동자가 완전히 왕방울처럼 커지고,


클라인조차도

지금 저 키리토 저 소년이

지금 이곳이

밀리터리 코스프레 차림으로 올 수 있는 장소인가


그리고


키리토가 저런 취미가 있었나 하는 의문으로

키리토를 바라만 볼 뿐이었고


그런 그들의

놀란 눈을 뒤로 한 채로

 

모리 일등육좌와 올림푸스의 사촌형은 성질이 난 듯한 모습을 하면서

키리토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거친 말투로,

 

 

 

 

 

 

 

 

 


"장군님!

 거기서 진짜 이런 고생을 하게 될 거라는 것은 미리 알려주지 않았잖습니까!

 적어도 근접 화력지원정도는 해 줘야지!

 보병 대 보병 식의 전투를 하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지금이 1차 세계대전 초창기도 아닌데?

 마지막에는 탄약까지 바닥나서

 내 부하와

 그....쪽에서 온 지원병력들

 그리고

 미국 델타 애들도 모자라서

 우리와 같이 온 그 키쿠오카 일등육좌 부하 놈들 탄약까지

 그때 추락한 치누크 헬기에 있던

 그 육상자위대 특수작전군 녀석들 것들을

 거의 반 강탈하다시피 해서 얻어서 싸워야만 했습니다!

 그...그렇게

 아무런 공중 지원이나 화력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그 빌어먹을 정찰병놈들과 싸우느라

 저희들이 얼마나 고생한지 압니까?

 게다가

 그 특수작전군 녀석들도

 침투를 하고 있던 치누크 헬기가

 한 대도 아니고 두 대나 추락하는 바람에

 거의 50명이나 죽고 다쳤습니다!

 도대체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겁니까!!!"

 

 

 

 

 

 

 

 

 

 

 


그런

모리 일등육좌의 거친 말투에


키리토는

한숨을 내쉬면서


임시 상황실 안에서

전화기와 무전기를 붙잡고 신나게 떠들어대는

자위관들과 경찰 관료들을

경멸하는 듯한 눈으로 째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서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시작하고


그런 키리토의 설명을 듣고 있던


아까 전

그들을 지휘하던 고참 경찰관과

그 지옥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다른 경찰관들의 얼굴은

점점 분노와 살기가 뒤섞인 듯한 모습으로 딱딱해지고,


시리카와 리즈벳를 포함한

고등전수학교 ( SAO 귀환자 학교 ) 의 학생들과

클라인을 포함한 길드 풍림화산의 맴버들의 모습은

기막힘과 분노가 뒤섞인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갔으니.....

 

 

 

 

 

 

 

 


"진짜로

 지금 이 곳 사정이 생각보다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저기 상황본부 윗대가리들이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고 헤매고 있는 것 같아요.

 저 얼간이 병신들이

 해외에 자위대 파병하고

 북조선 놈들이 도발하면

 지들 자위대를 북조선에 보내네 어쩌네 해도

 막상 일 터지니까

 뭘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요.

 뭐 전쟁 좀 해 볼려면

 다들 윗대가리에 물어봐야 한다고 한참이나 머뭇거리더라구요."

 

 

 

 

 

 

 

 

 

 


그런 키리토의 말에


올림푸스의 사촌형과

모리 일등육좌의 한 쪽 눈썹이 치켜세워지자,


키리토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아. 진짜에요!!

 염병할!

 그때

 시리카와 리즈벳과 같이 있던

 고등전수학교 (SAO 귀환자 학교) 학생들과

 클리안과 그의 길드 맴버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그 때 같이 있던 경찰들이 보낸 구조 요청 무선을 듣고
 
 저기 추락한

 저 육상자위대 특수작전군 바보들과

 같이 때를 맞춰서 진입하려고 했던

 경찰 헬기 두 대가

 그 정철병 놈들이 7호 발사관으로 쏜 대전차 로켓탄과

 화승총에 맞아서

 결국 추락하고 격파되었을 때에도

 여기 공항 외각에 대기 중이던 코브라 헬기를 투입해야 한다고

 제가 이야기하니까,

 처음에는

 내가 장군이라는 것도 못믿고

 뭐 그거는 이해는 하지만

 결국 그쪽이 처리한

 그 북한군 정찰병종 잔여부대를 처리하고

 간신히 여기에 도착한

 키쿠오카 일등육좌를 통해서

 그나마 간신히 이야기를 하니까

 상황실에서

 육자대 간부하고 공자대 간부가

 뭐라고 한참을 쑥덕쑥덕하더니,

 이 지역 시경 본부장과

 지금 연결이 안 되니

 그 다음 상급자에게 뭘 물어봐야 하네 어쩌네 하면서

 한참을 전화통을 붙잡다가,

 어떻게 허가를 받았는지 몰라도

 결국

 그 지역 상공 진입 허가를 받아서

 코브라 헬기들이

 그 경찰 헬기 추락 지점과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지점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내각 뭐시기 하는 인간이

 갑자기 또 전화를 해서는

 뭐라고 씨부렁거리니까,

 또 헬기를

 임시 대기 공역으로 다시 대기시키더라구요.

 그런데 또

 이 근처 지방 공항 항공 관제를 하는 인간들이 또 와서는

 그 근처의 다른 민간 공항 관제소에서 난리 치니까

 빨리 그 대기 공역에서 나가달라고 했대요.

 지랄 삽질할 것들,

 그래서,

 이 공항 외각 지역으로

 코브라 헬기들이 가 버린 동안,

 두 분과,

 키쿠오카 일등육좌의 부하들과

 그....쪽에서 온 옵저버(조언자)들 뿐만 아니라,

 그리고

 그 육상자위대의 그 특수작전군 병사들까지

 그 빌어먹을 곳에서

 더티 더즌(특공대작전)과 나바론 요새 찍은 거지요.

 참----나!

 진짜 일본 군바리들 이래서 어디 전쟁하겠어요?

 병력하고 장비를 도심 지대에 투입시커서 훈련을 해 본 경험이

 아예 전무하니까

 뭘 해도 아마추어고

 뭘 해도 다 실험이에요.

 실험!!!

 그것도

 저기 서 있는 민간인들과 경찰들을 교제 삼아서 말이에요."

 

 

 

 

 

 

 

 

 

 

 

거기까지 단숨에 말하고

한숨만을 내쉬던 키리토는


곧 경악과 분노의 눈으로 눈동자가 커지면서

동시에

너무나 어이가 없다는 모습으로

입까지 벌린

클라인과 길드 맴버들


그리고


리즈벳과 시리카,


그 뒤에 서 있는 경찰관들과

SAO 귀한자 학교 학생들을 한 번 바라본 뒤에


감정을 진정시키지 못한 듯한

격한 말투로,

 

 

 

 

 

 

 

 

 


"얼뜨기들도 이런 얼뜨기들이 없다니깐!

 제기랄!!!

 특수작전군이다 뭐다,

 다들 해외에서 난다 긴다 하는 최정예들에게 교육받고

 교환 훈련하면 뭐해요?!!

 그런 최정예급으로 훈련받은 특수병력을 지휘하는 놈들이

 죄다 책상물림 아마추어 아니면

 간단한 응용문제 하나도 못푸는 얼치기 공부벌레들인데!!!

 니기미,

 전쟁을 모두 책이나 문제집으로만 배운 새끼들이에요,

 진짜 바보 멍청이 만도 못한 얼간이들!!!"

 

 

 

 

 

 

 

 

 

그렇게 말을 내벹으면서

고개를 올려서 속을 다스리려는 듯이 한숨만을 쉬고 있는

키리토와,


그런 그의 모습을

쓸쓸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리 일등육좌와 올림푸스의 사촌형은

한동안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할 뿐이었고,


그런 신이치의 말을 듣고 있던

클라인과 그의 길드 맴버들

그리고

리즈넷과 시리카를 포함한 다른 학생들과

경찰관들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과

누구에게 이 울분을 퍼부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분노가 뒤섞인

돌을 씹어 먹은 듯한 딱딱한 얼굴을 하면서

그 자리에 장승처럼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곧 그들은

모리 일등육좌가

자신의 성질을 못 참겠다는 듯이 내벹는 말에

기가 막힌 정도가 아닌

경의 그 자체의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그것은

그 곳에 있던 학생들을 비롯한

다른 경찰관들에게

거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으로 다가왔으니.........

 

 

 

 

 

 

 

 


"빌어먹을 개새끼들!

 적어도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는

 적어도 헬기의 지원 사격이라도 있었는데

 그것도 없는 상황이라니!

 진짜로 일본의 자위대의 능력은

 그 때 파견된 델타포스와 레인저 급의

 빈약하다고 할 수 있는 화력지원도 못 해준단 말이야?

 그리고 지금 상대하는 놈들이

 소말리아의 그 거렁뱅이 민병대나

 그 지역의 해적인줄 아는 거냔 말이야!?"

 

 

 

 

 

 

 

 

 

라고 투덜거리면서

어디론가로 가는 키리토와 올림푸스의 사촌형,

두 사람을 바라보는

모리 일등육좌의 모습을 보면서


클라인은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공포를 얼굴에 드러낸 모습으로

 

 

 

 

 

 

 

 

 

 


"모..모가디슈라니.....?!

 그...그러면

 저 육상자위대 일등육좌가

 그 ' 블랙 호크 다운' 이라고 하는

 그 미국 영화에서 묘사된

 그 모가디슈 전투에 진짜로 참전한 적이 있다는 거야?"

 

 

 

 

 

 

 

 

 


라고 묻는

그런 얼빠진 물음에

 

그의 길드 맴버들은

밀리터리 매니아 아니랄까봐

순식간에

경외와 존경


그리고

공포가 뒤섞인 기묘한 빛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임시 전역합동대테러본부 쪽을 바라보는

모리 일등육좌를 말없이 바라만 보고


스즈카와 리즈벳은

자신들이 2년간 겪었던 그 소드 아트 온라인의

잔혹한 살인게임 아니 전쟁을 능가하는

진짜 사람들이 자신들의 눈 앞에서 죽어가는 피튀기는 전쟁을

다시 한 번 목격했다는 충격으로

완전히 소금 기둥이 된 것 마냥

모리 일등육좌가 투덜거리는 모습을 바라만 볼 뿐이었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다른 사람들 중

SAO 생환자 학교의 학생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그 소드 아트 온라인의 끔찍한 기억을 다시 상기시키는

무서움과 공포에

자신들도 모르게 가늘게 떨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운 경찰관들조차,


지금까지

그들이 맛보지 못한 진정한 공포의 세계를 엿보았다는 두려움을 간직한 창백한 얼굴로

그들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게다가

거기 있는 사람들은 도저히 상상을 하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 블랙 호크 다운' 영화 속에서 활약했었던

미국 델타 포스 대원으로 나온 ' 후트 ' ( 영화 속에서 에릭 바나가 맡았던 역활 ) 의 실제 주인공이

비로 그 모리 일등육좌였다는 사실을.......

 

 

거기에 그들을 충격 속으로 빠뜨린 것은

그렇게 그곳을 바라보면서 내벹는

모리 일등육좌의 마지막 말이었으니.......

 

 

 

 

 

 

 

 

"우리 같은 군인은 저런 민간인들이 알아주기 않거나

 우리들을 경멸한다고 해도

 싸우는 것이 우리의 운명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불쌍한 존재일지도 모르지,

 우리는 나라의 명예나 긍지

 그리고 우리 개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혹은 사람을 합법적으로 죽이는 것을 즐기는 피에 굶주린 살인자들이 아니니까........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단 하나지,

 나의 오른쪽과 왼쪽

 그리고 나의 등 뒤에 있는 전우의 등을 지켜 주기 위해서 싸우는 거지.

 내가 전우의 등을 지켜 줄 수 있다면

 그 전우도 나의 등을 지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서로의 등을 지켜줄 수 있다는 그런 믿음 하나만을 방패로

 군인이 진정으로 수행해야 할 첫 번째 임무인

 평범한 시민들을

 그들을 해치려고 하는 적의 악랄하면서도 직접적인 공격으로부터

 반드시 지켜야 하는 수호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다시 말해서

 군인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는

 방어 임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일테니까............."
                                     

 

 

 

 

 

 

 

그런 모리 일등육좌의 넋두리를 들으면서


리즈벳와 시리카를 포함한 다른 학생들과

클라인과 그의 길드 맴버들


그리고


그들에 의해 간신히 구조된 모든 경찰들은

도저히

저들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졌다는 것 만으로도

양심상으로 용서받는다는 것조차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일 수 없을 거라는 자괴감과 죄책감으로

얼굴이 완전히 구겨지면서


자신들을 구해준 사람들인

저 두 사람과


그리고


그들이 지휘하고 있던 특수부대원 같은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도 못 붙일 거라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얼굴이 완전히 돌덩이처럼 굳어져갔고,

 


곧.

그 곳에 있던 고참 경찰관과

그의 동료들은

당장 누군가라도

자신들에게 잡히는 즉시 회를 쳐 버릴 듯한

살기등등한 모습을 하면서


자신들의 옆에 서 있던 순찰 경찰관들이 허리에 차고 있던 경봉을

잠시 빌린 뒤


그것을 각각 손에 쥔 채로,

중구난방급으로 떠들고 있는 임시 대책본부로 발걸음을 옮긴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곳에서

입으로만 떠드는 경찰 관료들과 자위관들을

말 그대로

미친듯이 박살을 내기 시작했고,


그런 난리법썩을 바라보는 리즈벳과 시리카


그리고

SAO 귀환자 학교 학생들과

클라인과 그의 길드 맴버들과 같이 있던

생존한 경찰관들은


그나마 좀 속이 풀린다는 후련해하는 얼굴로

자신들을 지켜주기 위해서

그 곳에 있었던 기동대원들과 순찰 경찰관들을 지휘했던

그 고참 경찰관과

그의 동료들이

주먹과

손에 들고 있던 경봉으로

그 곳에 있던 경찰 관료들을 두들겨패거나 후려갈기고,

자위관들에게도

분노가 듬뿍 담긴 모습으로

힘껏 발길질하는 모습을

아주 통쾌하다는 모습으로 바라보고,


그들에게

거의 떡이 되도록 두들겨맞고

대책본부가 있는 텐트에서 쫓겨나온

경찰 관료들과 자위관들은


그들에게

침을 뱉거나 욕설을 퍼붓는

기동대원들, 순경들과

그들을 경멸하는 듯한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SAO 귀환자 학교 학생들과

클라인과 그의 길드 맴버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굴욕과 치욕감으로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그런 그들을

당장에라도 쏴 죽여 버릴 듯한 얼굴로

허리에 차고 있던 미네리아 뉴난부 M60 리볼버 권총을

그들 이마에 찌르면서

당장에라도 방아쇠를 당길듯한

순찰경관과 기동대원들


그리고


학생들과 다른 사람들의 살기등등한 모습에

 


속에서 올라오는 울분과 수치심


그리고


분노를 간신히 눌러 참았다.

 


왜나면은

그들이 상급자라고 큰 소리를 내기도 전에

권총탄이 아닌

그 주위에 있던 기동대원을 포함한 다른 경찰들과 학생들에게

그 자리에서 맞아죽을 수도 있다는 강한 예감을 느꼈기 때문이었고,


그들의 그런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그들이 큰 소리 한 마디라도 내는 순간

그곳에 있던 생존자들은

말 그대로

그들을 산 채로 찢어죽여버리고도 남을 정도의 분노와 증오로

똘똘 뭉쳐있었기 때문이었다.

 

 


맨패즈 (화승총)

 

목차

1. 개요

2. 특징

3. 역사


3.1. 실전

4. 기능

5. 대비책

6. 한국

7. 목록

1. 개요[편집]


MANPADS(MAN, Portable Air Defence System) 휴대용 방공 체계이다. 보병이 갖고 다니면서 쏠 수 있는 지대공 미사일을 의미한다.

맨패드(MANPAD)라는 오타가 흔히 보이는데, 엄밀하게는 맨패드가 아니라 'S' 를 붙여 맨패즈라 해야 맞는 말이다. MANPAD 뒤의 S는 복수형 어미가 아니라 '시스템'의 머리글자이므로 빠뜨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2. 특징[편집]


알보병도 전차를 잡을수 있도록 바주카나 대전차 소총 등의 갖고 다닐수 있는 대전차화기가 등장한 이래 이에 '하늘을 나는 적기도 잡을수 있는 휴대형 무기를 만들어 보자는 발상에서 비롯된 무기 체계이다. 대공포나 중/대형 대공미사일에 비한다면 운용이 간편하며 보병에게 손쉽게 최소한의 대공전투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작고 가벼운만큼 파괴력과 사정거리, 기동성이 제한되고 발사준비과정 때문에 비유도탄 체계에 비해서는 즉응성이 다소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1] 다만 이 단점은 사전에 적기의 위치와 경로를 포착하는 아군 레이더 체계와의 연계를 이용해 극복하고 있으며[2], 저공 저속으로 날아오는 헬리콥터나 경공격기, 혹은 근접항공지원기 정도는 원활한 요격이 가능해 이들 항공기들에게 큰 부담을 안겨줄수 있다. 특히나 유사시 국군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AN-2 기에 대해서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만 맨패즈같은 소형 미사일은 높은 고도까지 올라가는것이 어렵기 때문에 [3] 중고도~고고도에서 비행하는 항공기는 요격하지 못한다.

현재 세계적인 개발추세는 크게 미스트랄이나 신궁처럼 거치대를 사용하는 방식과,[4] 이글라나 스팅어처럼 어깨 견착식으로 사용하는 방식, 두 종류가 있다.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은 아무래도 무게가 제법나가는데다가 생각보다 적기를 포착/조준완료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좀 있다. 그래서 발사순간에 사수가 힘들어 한다거나 해서 흔들리거나 하면 초반 경로부터 삐끗하게 되는 셈이라 명중률에 큰 악영향이 온다. 그래서 미스트랄이나 신궁 같은 미사일은 미사일 자체의 성능을 더 강화하고, 탄두를 키우는 방향으로 가는 대신 무거워진 미사일을 사수가 원할하게 쓸 수 있도록 거치대 방식으로 만든 것. 반면 이글라나 스팅어는 미사일이나 탄두 성능을 희생하더라도 미사일자체를 작고 가볍게 만들어 휴대성을 높였다.

참고로 어느쪽이건 적기가 나타났다고 게임이나 영화처럼 바로 쏠 수는 없다. 스팅어를 예를 들자면 휴대하고 다니다가 적기가 나타났다면 IFF 안테나를 펼치고, 배터리와 냉각가스가 들어있는 BCU를 조립한 다음[5] BCU를 켜서 배터리와 냉각가스를 공급하고, 미사일의 발사준비가 최종적으로 완료된 다음 적기를 조준하여 발사하게 된다. 즉 애당초 맨패즈란 물건이 RPG-7 쏘듯 꺼내서 바로 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므로 거치대 방식이 생각보다 견착식에 비하여 발사준비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지가 않다.

이렇게 발사준비시간이 오래걸리기 때문에[6] 보통은 휴대용 대공미사일을 운용하는 인원들은 상술하듯 별도의 통신장비나 지휘통제시스템을 통하여 주변 아군 레이더가 포착한 적기정보를 통보받으면 발사준비를 하고 해당주변을 사수와 지휘관이 경계하게 된다.


3. 역사[편집]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공군에 시달리던 독일군은 루프트파우스트(Luftfaust)라는 신병기를 개발했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맨패즈로 불릴만한 병기였지만, 워낙 옛날이라 제대로 유도가 되는 미사일을 사용할 수가 없어서 명중률이 떨어졌고[7] 이를 보완하기 위해 9발의 20mm 로켓탄을 연속으로 발사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8] 독일군은 이 병기를 1만 정 정도 생산하려고 했지만 독일군의 신병기가 언제나 그렇듯 그 전에 전쟁이 끝났다.(...) 실전 투입은 80정 정도라고.


3.1. 실전[편집]


냉전이 시작된 후 소련제 SA-7(스트렐라/NATO 코드명 그레일 Grail)가 1969년 이집트군에 의해, 당시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대치하던 수에즈 운하 접경지대 상공에서 이스라엘측 A-4 공격기를 상대로 선을 보였으며,[9] 1980년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반소 저항 게릴라들이 미국으로부터 제공받은 스팅어로 소련군 항공전력을 괴롭히기도 했다. 산악지대가 많은 아프간의 지형 특성상 헬기를 운용하는 경우가 많아 저속, 저공비행 헬기는 맨패즈의 좋은 먹이였다. 다만 맨패즈의 짧은 사거리와 도달고도 특성상, 맨패즈만으로 넓은 지역에 대하여 방공라인을 설정하긴 어렵기 때문에 산과 산 사이 골짜기로 요리조리 헬리콥터들이 포복비행하면 도리어 맨패즈로 헬기들을 요격하기 어렵기도 하다. 포복비행시에는 아무래도 접촉시간이 극도로 짧아지기 때문. 아프간의 경우 워낙 게릴라전 상황이 되다보니 '설마 여긴 적군이 없겠지.'라고 생각하고 맘놓고 고공비행하다가(산사이로 다니면 위험하고, 비행에도 부담되니까) 당한 케이스가 많다. 한편, 6천미터 이상 고산지대에서는 발사고도가 올라가는 만큼 고정익 항공기도 위험했다.

SA-7의 차세대형 SA-16 이글라의 실전투입은 1990년대부터 확인되는데, 1991년 1월 걸프전쟁에서는 이라크군이 영국군 토네이도와 A-10, 심지어는 F-16C까지 잡았다. 저공침투 임무를 수행했다면 맨패드에 걸리기 좋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1995년 보스니아 사태에서 프랑스군의 미라주 2000이 세르비아군의 이글라에 당한 예가 있다.


4. 기능[편집]


격추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맨패즈에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사전에 아군으로 부터 통보받는 적기위치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나 다름 없으며, 성능 또한 제대로 된 공대공 이나 지대공 미사일에 비해서 사정거리며, 도달고도며, 타격능력이며, 폭발력이며... 모든 면 에서 열세를 보인다. 특히 4km가 채 못되는 도달고도의 한계 때문에 적기로서는 그 이상의 고도에서만 날아다녀도 맨패즈의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용되는 이유는 현재까지 일반 보병들이 항공병기에 대항할 유일한(혹은 나쁘지 않은) 방법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가성비가 생각보다 괜찮은 편이다.(맨패즈 한발이 최신예 전투기와 가격비가 1 : 1000을 넘는다.) 당장에 위협이 되는 항공기를 격추하면 땡잡아서 좋고, 격추 못해도 고공비행을 강요해 다른 방공체계의 밥으로 만들던가, 위협을 가해 폭격 등의 임무를 방해하는 역할이다. A-10은 이것과 대공포 때문에 원래 역할을 포기하고 매버릭 셔틀로 전직해야 했으며, 고성능 전투기인 미라주 2000도 맨패즈에 격추당한 바 있다. 하다못해 맨패즈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적군의 지상공격에 대한 소요를 늘릴 수 있으며 지상군의 천적인 공격헬기를 위협해 원활한 작전이 힘들어지게 만드는 효과도 기대할수 있다.

도달고도가 낮고 즉응성이 미약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조기경보 레이더나 HUMINT의 도움을 받거나 그냥 차량거치하면서 소형 레이더를 달기도 한다. 수십 년 전에 공여되어 수명이 진작에 끝났다고 판단된 미사일의 배터리와 냉각재를 보조원이 들고 다니는 외장 장비에 연결하거나 차재화해 장수만세하기도 한다. 맨패즈의 센서 성능과 특히 로켓의 성능이 2010년대에 크게 향상되고 있다.


5. 대비책[편집]


최근에는 군용기뿐만아니라 민항기를 향해 맨패즈를 쏘는 테러가 일어나는데 민항기 입장에선 날라오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대비책도 있다. 한가지는 레이저를 쏴서 유도장치를 망가트려서 다른곳으로 보내버리는 방식이 있는데 이를 지향성 적외선 대응시스템 일명 'DIRCM'이라고 부른다.[10] 대표적으로 노스롭 그루먼의 네메시스랑가디언 그리고 엘빗 시스템즈의 MUSIC, 그리고 러시아에서 만든 프레지던트가 있다. 또 한가지는 플레어를 쓰는 방법이 있는데 물론 이 방법은 군용기에는 있지만 민항기에는 없는 방법이다. 그래서 IAI의 계열사인 엘타에서 만든 플라이트 가드라는 장비를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다.
최근에는 비록 VIP 전용이긴하지만 ?IL-96에 맨패즈 기만 체계를 달았다 라는 기사가 나왔다. 해당 기만 체계는 President-S라는 이름으로 수출도 한단다.
그런데 뉴질랜드 공군 관계자로부터 들은말로는 뉴질랜드 공군에서 맨패즈 방어법들 (CM[11])을 실험했었는데 낮고 느리게 비행하는 (헬기나 이착륙하는 민항기) 비행체가 맨패즈로부터 자신을 보호 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플레어와 같은 여러가지 방법들을 실험해봤는데 맨패즈를 기만할수가 없었다고...
(출처필요)


6. 한국[편집]


한국군이 조선인민군을 상대로 하는데 주의하지 않을수 없는 무기 체계이기도 하는데 한국군의 항공우세에 대항할 수단으로 저고도 방공무기 체계를 극단적으로 증강해온 북한군이라 북한산 맨패즈 화승총을 만 단위 수량으로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고도 운용이 기본인 고정익기라면 몰라도 헬기에게 있어 이는 심각한 위협이다. 다만 맨패즈 자체가 빠른 속도의 항공체에 대해서는 즉응성이 아예 없다시피 한 무기이다보니 헬기가 작전도 못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한국군, 미군도 이걸 알아서 개전 직후 가장 먼저 북한군 레이더부터 다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선의 맨패즈 운용병들에게 항공기 접근을 통보해 줄 북한군 레이더 시스템이 개전 직후 대부분 폭격받아 못 사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맨패즈가 고정익기 항공력 저지에 큰 효용을 발휘하게 되리라는 예상에는 회의적인 시선이 대부분이다. 한국 공군은 중동에서의 이스라엘 공군, 미 공군의 전례를 보고 저고도 방공망 돌파에 매우 힘쓰고 있다. 초음속 비행과 고고도에서의 정밀폭격을 이용한 근접항공지원을 통해 생존률 향상을 노리는 FA-50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물론 맨패즈가 즉응성이 약하다지만 아주 못 쏜다는 뜻은 결코 아니므로 방심은 금물이다. 국군 역시 방심하지 않고 나름대로 여러 방법을 통해서 북한 맨패즈를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으나, 세계 곳곳의 전장에서 헬기나 CAS기들이 방심한채로 비행하다 적 게릴라들이 어떻게든 근성으로 발사한 맨패즈에 맞아 격추되는 사례가 심심찮게 보고되고 있는만큼 아무리 조심해도 결코 과하진 않을 대상이다. 앞 소티가 지나간 길을 따라가다 놓치고 열받은 녀석들에게 당할 수 있다. 게다가 이탈하거나 아니면 병력을 후송하는 헬기들은 당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기 때문에 소모전을 강요당할 수도 있다.

한국군에서 이 무기체계를 가리키는 말로 휴대용 대공 미사일을 줄여서 '휴샘(휴대용 SAM)'이라 부른다. 이 표현이 민간에 대대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다름 아닌 워게임: 레드 드래곤. 개발사인 유진 시스템즈에서 유닛의 현지 명칭을 알파벳으로 그대로 적는 입장을 고수하는지라 외국에서도 그대로 Hyu-sam으로 알려졌다.


7. 목록[편집]


미국제

레드아이


스팅어

 


유럽제

플리거파우스트 (루프트파우스트) -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미스트랄 - 프랑스


블로우파이프 - 영국


재블린 - 영국


스타스트릭 - 영국


RBS 70 - 스웨덴


그롬 - 폴란드

 


러시아제 (우측은 나토코드)

9К32 스트렐라-2 / SA-7


9К34 스트렐라-3 / SA-14


9К310 이글라 / SA-16


9К38 이글라 / SA-18


9К333 베르바

 


한국제

KP-SAM 신궁 대공미사일

 


일본제

91식 지대공유도탄

 


중국제

HN-5


QW-1 뱅가드[12]


QW-2 뱅가드 II


QW-3


FN-6

 


기타 국가

미사흐[13]

 


[1] 사실 이러한 자기방어 무장의 경우, 적기를 격추하는것 다음으로 그 기세를 주춤하게 만드는것 또한 주요한 목적이다. 보병용 대전차 로켓의 명중률이 결코 백발백중이라 할수는 없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적 전차는 저항도 없이 아군 보병을 유린할 것이고, 맨패즈조차 없다면 적 헬기는 느긋하게 탄을 비우고 갈테니까.

[2] 정규전에서의 정상적인 맨패즈 운용은 단독으로 포착해 쏘는 게 아니라 아군 레이더 기지나 조기경보기 등이 탐지한 적기 정보를 인계받은 다음 미리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가 적기가 지나가면 쏘는것이다.

[3] 보통 5km 내외

[4] 어벤저처럼 차량에 거치하기도 하고

[5] 배터리/냉각가스는 일단 작동시키면 45초 밖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따로 분리하여 보관한다

[6] 다만 거치식의 경우 유사 시 안전장치만 풀면 바로 발사할 수 있는 상태로 대기하기 때문에 즉각 대응할 수 있다.

[7] 그나마 유도성을 갖춘 무기래봐야 Fritz X같은 대함 미사일이 전부였다. 당장 연합군 폭격기를 격추하기 위해 백방으로 날아다녔던 전투기들도 무유도 로켓을 여러발 퍼붓는 식으로 공격하곤 했다.

[8] 지금시대에 맞게 바꿔보자면 테러리스트들이 드론 잡을라고 RPG-7을 다연장으로 묶어서 쏘는거랑 거의 똑같다.

[9]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에서도 아랍진영이 맨패즈를 사용했으나 고속, 고공비행 이스라엘기를 상대하기에는 효과적이지 못했다. 당시 이스라엘 공군을 위협한 아랍측 주력 방공무기는 ZSU-23-4 쉴카 자주대공포와 중거리 대공미사일 SA-2 및 SA-6였다.

[10] 물론 군용 수송기에도 사용할수있다.

[11] Countermeasure의 약자다

[12] Vanguard

[13] Misagh-1/2 이란산, 발음 추가바람

 

 

모가디슈 전투


Battle of Mogadishu.


목차

1. 개요

2. 발단


2.1. 시아드 바레의 22년 독재


2.1.1. 빛

2.1.2. 어둠

2.1.3. 소말리아 혁명

2.2.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

2.3. 밥그릇 쟁탈전 개시

2.4. 평화유지군 파병

2.5. 아프리카의 뿔

2.6. 희망 회복 작전

2.7. 클린턴 발을 빼기 시작하다

2.8. 다국적군 투입

2.9. 대형사건 발생

2.10. 지속되는 교전과 각종 사건사고들

3. 태스크 포스 투입


3.1. 최초의 블랙 호크 추락

4. 작전명 고딕 서펀트


4.1. 작전 개시

4.2. 블랙 호크 다운

4.3. P-3의 우울

4.4. 슈퍼 64 추락

4.5. The Lost Convoy

5. 구조 작전

6. 피해


6.1. 고딕 서펀트 작전의 문제점과 또 다른 문제점들

7. 결과


7.1. 훈장 수여자

7.2. UN군의 뻘짓

8. 기타


1. 개요[편집]

리틀 빅혼 전투 어게인


소말리아 내전 중인 1993년 10월 3일, 소말리아에 파견된 미군이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군벌 요인 납치 작전을 벌이다 발생한 QRF(Quick Reaction Force. 신속 대응군)간의 전투. 작전중에 2대의 UH-60 블랙 호크 헬기가 민병대의 RPG-7 공격을 받아 모가디슈에 추락하는 바람에 그들의 유해와 생존자를 수습하려는 미군과 민병대 사이에서 이틀동안 교전이 벌어졌다.


이 전투를 다룬 책/영화 블랙 호크 다운이 있는데, 영화 쪽이 더 유명하다.


2. 발단[편집]

2.1. 시아드 바레의 22년 독재[편집]

2.1.1. 빛[편집]


1969년 시아드 바레(Siad Barre) 장군이 무혈 쿠데타[1]를 일으켜 공산국가인 소말리아 민주공화국을 세우고 친소련 정부를 출범시켰다.

또 재미있게도 시아드 바레는 공산국가 지도자들과 자주 만남을 가졌고 공산국가에도 자주 갔었다. 개중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있었다

이런 모든 이야기가 1970년대 이야기이며, 1980년대 들어서는 미국, 중국과 교섭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 실제로 재미있게도 시아드 바레 정부는, 아프리카에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다면 교과서로 삼아야할 민주주의 정부라며 서방권 국가들의 지지를 받았었다. 심지어 미국도 소말리아를 지지했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며 친소국가가 되어가던 에티오피아를 침공했고, 소련과의 우호협력조약까지 폐기했기 때문이었다. 오가덴 전쟁의 패전이 소련 때문이라고 보고 소련과 단교하고 친미국 정책을 펼친 것이다. 연도를 고려하지 않아서 무슨 국공합작을 이룬 것처럼 적어놨지만, 실제로는 소련과 관계가 틀어지자 별 수 없이 미국에 손을 내밀었던 것이므로 전향에 가깝다.

하지만 이 시아드 바레라는 인물이 그다지 긍정적인 인물이 못된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골 때린 것은 친미국 성향으로 알려진 시기야말로 시아드 바레의 막장짓이 제대로 빛을 발하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아이디드를 까기 위해서인지 시아드 바레의 문제점에 대한 언급이 상당히 적은 경향이 있으며, 시아드 바레가 물러나던 시기에 친미지도자를 자처했기 때문에 뭐라고 하기 더 어려운 감이 있다.

우선 시아드 바레는 초기에는 부족주의와 과거의 악습에 대한 개혁을 선포하고 사회주의적인 노선으로 나갔다. 최초 5년 동안은 사회 개혁도 하고, 부족주의 타파도 한다고 하고, 공공사업도 벌였다. 이 시기까지는 평판이 좋았다. 애초에 무아마르 알 카다피건 사담 후세인이건 막장짓 한 참 시작하기 전에는 나름대로 인기가 좋은 시절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게 유지가 안되고, 속으로는 곪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2.1.2. 어둠[편집]

그런데 급격한 부족주의 해체를 포함한 개혁조치들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고 부족의 권한을 줄이는 것에 대한 반발로 쿠데타와 암살시도가 이어지면서 흑화가 시작되었다. 집권 22년중에서 괜찮았던 초반 5년이 끝나고, 17년간의 암흑기가 시작된 것이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집권 6년차인 1975년에는 치안법원을 설치해서 사법권을 군사법원으로 만들어버렸고, 이에 반발하는 이슬람 지도자들을 처형하면서 악명을 쌓았다. 그리고 1976년에는 소말리아 사회주의 혁명당을 창당하면서 일당독재를 확립했다.

그리고 여기에 박차를 가한 것이 1977년에 시작된 에티오피아와의 오가덴 전쟁이다. 시아드 바레는 범소말리아주의를 주장하면서 전군을 동원하여 에티오피아를 침공하였고, 소련이 소말리아보다 에티오피아의 손을 들어주면서 소련과도 단교했다. 당연히 오가덴 전쟁은 소말리아의 패배로 끝났고, 미국과 관계가 개선된 것이 이 때문이다. 1980년에는 미군에 바르바라 항구와 사용권과 공군기지를 제공하면서 3000만 달러의 경제원조와 4000만 달러의 군사원조를 받기도 했다.

오가덴 전쟁 패전의 영향으로 1982년부터 반정부 단체의 활동이 거세졌다. 오가덴 전쟁의 패전은 다른 지역에 살던 소말리 난민의 이동을 불러왔다.경제는 더더욱 엉망이 되었고,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으로 피해를 본 소말리아 북부에 있던 부족들은 대놓고 정부에 반발을 시작했다. 이렇게 되니 시아드 바레는 과거에 천명했던 부족주의 타파를 정면으로 역행해서 오히려 자신이 소속된 약소 부족이었던 '마레한(Marehan)'소부족[2], 범소말리아주의의 중심에 있었던 '오가덴(Ogaden)족', 그리고 '둘가한테(Dhulbahante)족'을 자신의 측근세력으로 삼아서 중앙정계로 끌어들여 권력을 독점했다. 이 세력을 영어 약자를 따서 M.O.D.라고 부른다.

사실 그 전에도 지역의 주도권을 쟁취하려고 파벌간의 싸움이 자주 있었으며 범 국가적이었다. 내전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파벌간 싸움이 항상 있어왔으므로 시아드 바레는 당연한 것으로 판단하고 전혀 간섭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가덴 전쟁의 패전은 소말리아 정부에 대한 반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리비아의 지원으로 1978년 등장한 '소말리아 구원 민주전선(Somali Salvation Defense Force, 약칭 SSDF)'였고, 이어서 소말리아 국내에서도 시아드 바레 반대 게릴라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중 대표적인 것이 이자크(Isaxaaq) 부족이다. 이자크 부족의 주요 거점이 어디냐면, 시아드 바레가 미군에게 넘겨준 바르바라 항구였다. 이자크 족이 이후의 소말릴란드로 이어진다. 이 이자크 부족이 결성한 것이 '소말리아 국민 운동(Somali National Movement, 약칭 SNM)'이다. 하지만 이 세력은 일단 1978년 시아드 바레 군의 강력한 무력진압으로 1978년 일시 소강된다.


2.1.3. 소말리아 혁명[편집]

하지만 1986년부터 시아드 바레가 자신의 친위세력인 레드 베레[3]를 동원해서 다른 지역을 공격하면서 이제는 상황이 중부와 남부로 번져서 이른바 소말리아 혁명이 시작된다[4]. 여기에 전염병이 돌아서 축산업이 무너지면서 인플레이션을 포함한 경제위기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시아드 바레는 당연히 발악을 했다. 1988년에는 이자크 족의 중심도시인 하르게이사와 부라오를 공격해서 완전한 내전 상황이라는 것을 입증했고, 1989년 7월에는 수도인 모가디슈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대시위를 탄압하고 반정부 지도자 2000명을 체포하였고, 1990년 1월에는 축구장에서 관중들이 정부에 야유를 한다는 이유로 대통령 경호원들이 무차별 발포해서 60여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런 행동으로 시아드 바레 정권은 UN에게 아프리카 최대 인권침해 국가로 완벽하게 낙인찍힌다. 1989년에는 소말리아 애국운동(Somali Patriotic Movement, 약칭 SPM)이 다른 곳도 아니고 오가덴족을 중심으로 결성되었고, 1990년에는 마침내 소말리아 최대 부족인 하비야부족의 통일 소말리아 회의(United Somali Congress, 약칭 USC)가 결성된다. 이런 전개에 대해서 유엔 개발계획(UNDP)은 시아드 바레의 21년 독재가 아프리카 최악의 인권침해사례로 꼽았고, 국제 엠네스티 역시 시아드 바레 정부의 국가보안국(National Security Service, 약칭NSS)이 재판 없는 투옥, 전기고문을 포함한 고문과 강간 등을 일삼고 있다고 보고서를 내놨다. 이 때문에 1990년부터 소말리아에 대한 국제지원이 끊어진다. 이후 시아드 바레의 영향력은 급격히 축소되어서 수도인 모가디슈 중심으로 축소되었다. 1990년 3월에는 모가디슈에도 반군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5월에는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10월 연료값 인상 시위에 대해서도 발포로 대응했다.

결국 1990년 인근 지역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던 아이디드의 USC가 12월에는 모가디슈마저도 함락하면서 시아드 바레 정권은 사실상 종말을 맞이했다. 모가디슈에서 밀려난 시아드 바레는 협상요청과 2회 정도의 수도탈환 시도 정도로 저항했지만 결국 실패, 1991년 1월 26일 완벽하게 포기하고 나이지리아로 도주하면서 시아드 바레 집권기는 끝난다. 이후 시아드 바레는 1995년 나이지라아에서 사망한다.

2.2.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편집]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이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Mohamed Farrah Aidid)이다. 이전에 이 항목에 적혀 있는 내용의 시간대가 엉망이었을 정도로 한국내에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1934년 생인 아이디드는 소말리아 최대 부족[5]인 하브예 부족에 속하는 하브 지디르 소부족 출신으로, 소말리아가 당시의 이탈리아 식민지였기 때문에 이탈리아 로마에서 군사교육을 받았고, 소말리아에서 이탈리아 경찰로 일했고, 1960년 소말리아가 독립한 이후에는 소련에 건너가서 모스크바에서 군사를 배운 인물이다. 이후 시아드 바레에게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시아드 바레의 쿠데타 이후에는 수석보좌관에 임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 체포되어서 6년간 투옥 생활을 했다[6].

이런 상황이 변화된 것은 오가덴 전쟁이 시작된 이후이다. 시아드 바레는 아이디드를 석방해서 준장 진급, 육군참모총장 임명이라는 루트를 거쳐서 오가덴 전쟁에 투입했고, 여기서 공을 세우면서 다시 시아드 바레의 신임을 얻었다. 이후 아이디드는 이후 시아드 바레 정권에서 인도 대사, 정보기관 등의 요직을 거친다.

하지만 시아드 바레의 MOD 우대정책이 본격화 되고 실정이 거듭되면서 부족간의 내전이 격화되었고, 이 때 아이디드가 소속된 하브예 부족이 USC를 결성하면서 아이디드가 이 단체의 군사부분을 총괄하게 된다.

이 당시 파라 아이디드는 까트를 구하려고 USC 소유의 무기를 모조리 처분토록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카트를 사람들에게 뿌려 USC의 지지도를 높이면서 동시에 USC의 단원으로 끌어들였다. 단원이 되는데 조건은 없었으므로 어린이도 USC의 단원이 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으로 USC의 단원은 순식간에 불어났고, USC는 소말리아내 최대 반정부 단체가 된다.

또한 파라 아이디드는 성인 남자에게 총을 쥐어주고 우리나라로 치면 부사관에 해당되는 계급을 부여했고, 남자 어린아이에에게는 사병에 해당되는 계급을 부여해 역시 총을 쥐어줬다. 즉 군대를 만든 것이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가 파라 아이디드는 군대의 지휘관이었기 때문이며, 계급논리같은 게 없던 마흐디와 아토도 이런 방식을 받아들이긴 했다.

그리고 여자와 여자아이는 까트 농사를 지어서 까트를 판매하며 돈을 벌었다. 물론 까트 농사만 짓은 것은 아니었다.

이후 1991년 1월, 파라 아이디드가 이끄는 USC가 모가디슈를 공격해 시아드 바레를 축출하고 임시정부를 세웠다.

이후 소말리아가 워낙에 지옥이 되어서 차라리 시아드 바레 시기가 나았다는 소리도 나오는데, 이건 한국전쟁이 터지니까 차라리 전쟁은 없는 일본 식민지 시기가 살기 좋았다고 하는 수준의 이야기다. 소말리아 혁명이 소말리아 내전이 되면서 상황이 개판이 된 것과는 전혀 별개이다.

2.3. 밥그릇 쟁탈전 개시[편집]

시아드 바레 축출 후, 명목상으로는 알리 마흐디 무하메드가 임시 대통령이 되고 1992년 3월 군벌이 휴전에 합의하면서 UN감시단이 입국하게 된다. 이제까지가 소말리아 혁명이라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소말리아 내전기에 접어들게 된다.

우선 소말리아 군벌중에서도 최대세력이었던 USC의 근간을 이루던 파라 아이디드의 무장세력, 마흐디의 무장세력, 아토의 무장세력이 이번에는 자기들끼리 정권을 차지하려고 싸우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시아드 바레를 축출하려고 뭉친 USC가 정권 차지를 목적으로 이젠 갈라진 것이다. 이 배경은 또 부족간의 문제이다. USC는 원래 하브예 부족 최대의 분파인 아브갈 소부족의 지도자인 알리 마흐디가 의장의 자리에서 정치적 지배자 위치에 있었고, 전쟁을 실질적으로 지도한 것은 하브 지디르 소부족 출신이지만 군 경험과 정부내 세력이 있었던 파라 아이디드였고, 아토는 군수품을 제공한 자금원이었다. 그런데 알리 마흐디가 정권을 쥘 상황이 되니 실질적 지도자로 자처하던 아이디드가 반발한 것이다.

결국 대립은 임시 대통령 알리 마흐디와 군사적 경험이 풍부했던 파라 아이디드로 갈라졌다. 그리고 이 와중에 역대급 가뭄까지 겹치며 420~500만 명에 가까운 민간인이 죽으면서 소말리아는 생지옥 그 자체가 됐다. 하지만 USC 내에서의 밥그릇 싸움이 계속 진행됐고, 소말리아 전역에 있는 파벌과 가문들도 파라 아이디드, 마흐디의 무장세력에 합류하고 갈라지면서 사실상 무정부 상태의 내전이 진행됐다.

2.4. 평화유지군 파병[편집]

파벌간의 미칠듯한 민간인 학살과 환장할 정도로 빠르게 늘어나는 아사자 수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지라 UN에서 임시정부에게 연합정부를 세우고 민간인부터 챙기라는 권고조치를 내렸다. 이 조치를 듣기만 했지 일단 정권을 차지해야 그러거나 말거나 할 노릇이라 실제로 행해진 것은 없었다.

1992년 1월에는 UN에서 733 결의안을 통과시켰는데, 이 내용이 소말리아에 대한 무기금수 조치였다. 솔직히 별 실효는 없었던 것이 1980년대 시아드 바레 정권 말기에 이미 군벌화와 내전이 진행되면서 무기는 이미 충분히 소말리아 내부에서 돌고 있었고, 금수결의안을 통과시키거나 말거나 수입될건 다 수입되고 있었다. 애초에 소말리아 군벌들은 특정국가에서 무기를 정식으로 수입하는게 아니라 아토와 같은 무기 밀매상에게 무기를 유통했으니 무기 금수 결의안이 나온다고 해서 변할 것은 없었다.

결국 1992년 4월 21일, UNOSOM-1(United Nations Operation in Somalia I)으로 명명된 작전이 시작되었다. 사실 애초에 UNOSOM-1의 원래 목적은 군벌간의 휴전협정이 이뤄졌으니 이걸 감시하기 위해서 UN이 옵저버 50명을 파견해서 감시한다라는 것이었다. 이 때 파견된 인물이 파키스탄의 임티아즈 샤힌 준장이었다.

하지만 사태가 악화 일로로 가면서 8월 27일 무장병력 3000 명이 투입된 것이고, 소말리아 기근문제가 심각해지면서 9월에 1000여명의 보급부대가 추가되면서 인원은 4,219명의 병력과 50명의 옵저버라는 대규모 인원으로 증폭된 것이다.

결국 이 파견 배급부대에서 식량배급을 하면서 1992년 한 해에만 소말리아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 약 200만 명의 아사자는 최종적으로 많이 줄어들었으나 어린이 아사자는 그럼에도 발생돼 7~8만 명의 어린이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세력의 강화와 지지도 확보를 위해 무장세력이 식량을 탈취하는 일도 발생했으며, 불과 한 달도 안돼 무장세력에 의한 식량탈취는 사실상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아사자 문제가 어느정도 안정된 10월 28일, 아이디드는 UN철군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실 내전기간 동안에 실전을 겪은 아이디드는 USC 내부에 파벌을 두고 있었고 이 파벌은 '소말리아 국민동맹(Somali National Alliance, 약칭 SNA)'를 개설했는데 USC의 주도권을 이 SNA가 장악하게 되면서 내전이 진행되면 결국은 아이디드의 승리로 끝날 상황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확실한 성공 대신에 불확실한 투표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아이디드는 소말리아 주의를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이 때 명분은 '모가디슈 공항이 UN군의 관할에 있는데 이게 부당하다'라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진짜 사고는 이후에 나오는데, 11월 13일에 파키스탄군을 공격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상자가 나온 UN은 미국에 미군 파병을 요청한다. 이것이 12월 3일에 나온 794 결의안이다.

2.5. 아프리카의 뿔[편집]

친미 정책(과 동시에 친중국 정책)을 펼치던 시아드 바레가 반란군에 의해 축출을 당해 나이지리아 망명길에 오르자 미국의 발등에 특히나 불이 떨어졌다.

소말리아 북쪽에 위치한 아덴 만을 건너면 예멘이고 동시에 중동이다. 다시 말해 산유국과 가까우며, 그 산유국 중에 하나가 바로 쿠웨이트를 침공했다가 호되게 얻어맞아 엉엉 울고 있던 이라크다. 1년 전 걸프전처럼 중동에서 유사시 즉각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의 주둔지로는 소말리아가 최적이었다. 중동에 미군을 주둔시키기 힘든 데에 결정적인 이유가, 그 당시 이스라엘이 레바논과 전쟁 중에 있었으며 이스라엘 자국 내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영토 분쟁이 진행중이었다. 즉 중동 내부에서의 전쟁 불씨가 미군에게까지 번질 우려가 있어서 소말리아말고는 딱히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원래 시아드 바레 시기 미국은 바르바라 항구를 조차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즉 원래 소말리아 주둔이 가능했었다. 문제는 걸프 전쟁이 벌어지던 1990년대에는 미군 주둔이 문제가 아니고 소말리아 내에서도 시아드 바레 정권이 무너지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바르바라 항구도 원래 거주민인 이자크 부족이 점거했고 미국과 시아드 바레의 협정은 무시되었다. 미국이 시아드 바레를 실드 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더군다나 소말리아는 아프리카의 동쪽 끄트머리에 있으며, 인도양으로도 바로 진출할 수 있는 아프리카의 뿔이었다. 지리학적으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소말리아를 안정시키면 나쁠 것도 없거니와 인도양 한복판에 깃발을 꽂을 수 있기도 하여 소말리아의 치안을 확보하는 것은 소말리아에게도 좋지만 미국에게도 있어 중동과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더 나아가 오세아니아 일대 패권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더구나 UN 평화유지군과 별도의 전투부대 파병은 클린턴 정부 시절이지만, 파병안이 통과된 시절은 아버지 부시 정부였다.

조지 부시는 이미 재선 실패가 확정되어서, 1개월이 지나서 1993년이 되면 클린턴 행정부가 바로 들어서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조지 부시는 아무런 부담도 없이 소말리아 파병을 결정할 수 있었다. 애초에 공화당의 이념에도 맞지만, 일이 잘되면 자신의 공적이 되는 것이고 혹시나 잘못되더라도 이듬해면 이미 자신은 대통령이 아니니까 그 책임을 질 필요는 없어진다. UN이 숙이고 들어온 것을 거절해서 인권에 부정적이란 인식을 줄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었다.

결국 부시의 판단이 얼마나 신속했느냐하면, 앞서 언급한 794 결의안이 UN에서 체택된 것이 12월 3일인데, 미군 해병대 원정단이 처음 모가디슈에 상륙한 것이 불과 1주일 후인 12월 9일이었다.

전형적인 후임자 엿먹어봐라 정책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 엿이 이정도 지옥이 될지는 아마 부시도 모르지 않았을까.


2.6. 희망 회복 작전[편집]

여하튼 앞서 언급한대로 1992년 12월 9일, UN의 물자수송로 안전 확보, 식량 배급을 담당하는 군대와 배급을 받는 민간인의 안전 확보, 상황발생시 교전 임무를 띠고 미 해병대 1800명[7]이 선봉대로 모가디슈 인근 해안에 상륙했다. 그러니까 전투부대가 투입되었다는 얘기다.

걸프전 이후 미국의 두 번째 전투부대 투입이라는 특종이었던 까닭에 인근 국가는 물론 소말리아 인근 국가에서 활동하는 미 방송국 소속 특파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와 생중계로 해병대 상륙을 보도했고, 해병대의 상륙이 미국에 생중계되는 황당한 일도 발생했다. 긴장한 상태로 상륙하는 해병대원들을 미리 대기하고 있던 CNN을 포함한 기자들이 카메라 조명과 플래시로 맞이하는 굉장히 엽기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파라 아이디드를 비롯해 USC의 세력들이 생중계를 안 봤을 리가 없다.


실제 생중계 영상.

 

이 병력이 모가디슈 공항을 인수[8]한 뒤에는 제3강습상륙대대, 제10산악사단[9] 등이 추가로 투입된다. 결국 1993년 3월까지 파병 미군은 25000명으로 증가된다. 이것을 '희망회복작전'이라고 부른다.

미군의 진주로 소말리아의 상황은 급격히 안정되기 시작한다. 사실 미군에 잘못걸리면 엿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알리 마흐디와 파라 아이디드가 미군 해병대 선봉이 상륙한지 3일만에 휴전협정을 체결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993년 1월에는 UN의 제안으로 소말리아 평화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 USC 핵심세력들이 참석해 내전 조기종식 회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UN이 소말리아에 간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평화유지군의 무장해제 및 철수를 요구한다"며 평화유지군의 무장해제 요구를 파라 아이디드가 거절했다.

그래도 미군 덕택에 식량배급이 어느정도 안정을 찾으면서 내전도 소강에 접어든 것은 사실이었다. 식량 배급 차량이 지나는 길목마다 장갑차가 배치돼 무장세력의 공격을 사전에 봉쇄했고, 더 위험한 곳에는 전차와 공격 헬리콥터가 동시에 투입되는 등 안전확보에 대단히 공격적으로 나섰다.

모가디슈 시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무장세력의 무기를 압수하고, 소규모 교전으로 무장 세력을 해산시키는 등(부상자가 발생했지만 전사자는 없었다) 미군의 적극성 덕택에 민간인들은 드디어 평화가 찾아온다는 희망에 젖었다. 그리고 소말리아 내 친미 세력이 잠깐이나마 흥하기도 했다.

그렇게 미군의 활약이 잠깐이나마 흥했다. 잠깐이나마…….


2.7. 클린턴 발을 빼기 시작하다[편집]

이렇게 상황이 좀 안정되자 기근이 좀 소강되었을 때의 아이디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태도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일단 급한 불이 꺼졌다고 판단하고 그 이후 미국이 얻을 수 있는 국익과 미래의 역할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위에 나오는 아프리카의 뿔 항목은 조지 부시 시기의 미국 공화당의 입장이다. 하지만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에게는 이야기가 좀 달라지게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상황에서 득을 보는 것은 조지 부시 전임 대통령이고, 클린턴은 설거지 하는 입장에서 딱히 이득이 없다는 것도 물론 한축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권한과 책임을 가진 자가 변하면 국제정세 인식도 달라지기 마련인 것에 있다.

물론 소말리아가 지정학적 위치가 천혜의 요충지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미국이 여기에 관심을 가질 때 이야기다. 1980년대 신냉전 시기라면 이 곳의 중요성은 이루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야'를 외친 클린턴 행정부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우선 중동에는 제 1차 걸프전쟁을 거치면서 이집트,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친미세력이 확보되어 있었고, 인도양과 아프리카, 중동을 아우르는 권역이라면 차고스 제도의 디에고 가르시아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소말리아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렇게 손해는 아닌 상황이었다.

결국 클린턴 행정부는 발을 빼기로 결정한다.

1993년 3월 26일 UN 안보리는 814 결의안을 체택하는데, 이 중심내용을 간단히 말하면 UNOSOM-2의 시작이었다. 즉 소말리아에서 평화유지를 담당할 주체가 미국에서 다시 UN으로 넘어간 것이다. 주요 내용은 군벌의 무장해체와 정국 안정화, 추가적인 구호 활동 등이었다. 이 때 중심인물이 되는 인물은 원래라면 UN 평화유지군 사령관인 터키육군 세비크 비르 중장이 되어야겠으나, 이때 UN특사로 파견된 인물이 더 중요하다. 바로 미 해군의 조너선 하우 제독이다.

하우를 파견한 것을 마지막으로 미군은 단계적 철수를 시작해서 해병대는 다 빠져나갔고, 5월 4일이 되면 미 제 10 산악사단 병력 1150명만이 소말리아에 남아있었지만 이것도 신속대응권이라는 명목으로 후방 배치된다.

2.8. 다국적군 투입[편집]

UN은 UNOSOM-2(United Nations Operation in Somalia II)에 따라서 1993년 5월 미군의 철수와 함께 다국적군 약 28,000명[10]을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리아, 방글라데시, 벨기에, 보츠와나, 캐나다, 이집트, 피지, 핀란드, 프랑스, 독일, 그리스, 인도, 인도네시아, 아일랜드, 이탈리아, 쿠웨이트, 요르단, 말레이시아, 모로코, 뉴질랜드, 나이지리아, 노르웨이, 파키스탄, 스페인, 대한민국, 루마니아, 사우디아라비아, 스웨덴, 튀니지, 터키, 아랍에미리트, 영국, 미국, 짐바브웨가 소말리아에 군대를 파병했다.

미국은 일부를 제외하면 주도 세력에서 제외되었으나 UNOSOM-2 지원을 위해 모가디슈 인근 해역에 함정도 파견하여 후방에서 지원했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파병 부대인 상록수 부대는 특수전사령부 산하 특전여단에서 차출한 병력이 상당수며(자이툰 부대도 특전여단에서 차출한 병력이 상당수다), 소수의 기계화보병, 대형 교전이 있을 것에 대비한 실제 중무장 특수부대[11], 타 국가 파병부대와 교류를 위한 병력도 포함되어 있었다.

UNOSOM-2에 참여한 다국적군의 목적은 평화유지였고 임무는 초동조치부대였다. 즉 군벌세력의 무장을 완전히 해제시켜버린다라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그래서 식량 배급 차량이 지나는 길목마다 장갑차는 둘째 순위로 밀렸고 무조건 전차가 투입됐으며, 좀 안전하다 싶은 곳에도 중무장 병력과 장갑차가 함께 배치됐다.

이 UNOSOM-2의 진행을 아이디드 군의 민간인 공격과 UN군 공격이 원인이다라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USOM-2의 발동이 확정된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군의 철수가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그 공백을 UN군이 이어받기 위한, 유엔 안보리 결의 814에 의한 것이었다. 기존의 소규모 병력으로는 소말리아 치안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이 확정되었으므로, 일단 미군이 급한 불을 끄고 발을 빼게 되자 이 빈 자리를 UN 평화유지군이 메우는 형태로 진행된 것이다.

이런다고 카트 배급과 선전으로 점점 실세가 되어가는 파라 아이디드가 쫄 리 없었다. 파라 아이디드의 무장세력도 점점 중무장이 진행되는 중이었고, 다국적군을 상대로 교전을 해도 안 밀릴 정도였다. 특히나 안방에서 싸워왔던 터라 전술적으로는 파라 아이디드가 훨씬 우위였다. 미군이 빠지고 UN군이 상대가 되면서는 보다 호전적이 되어서, 미군 3명과 이탈리아군 1명 등 4명의 전사자가 발생했고 56명에 달하는 부상자도 생겼으며, 조너선 하우 제독은 아이디드 제거를 위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2.9. 대형사건 발생[편집]

1993년 6월 5일, 파키스탄군이 주축이 된 UN평화유지군과 아이디드군이 정면 충돌하는 초대형 사건이 발생했다.

시작은 UN 평화유지군에 불만을 가지고 자신이 지배하고 있던 라디오 방송으로 비난하는 성명을 내보내던 아이디드군에 빡친 UN군이 칼을 뽑아들은 것이었다. UN군은 아이디드 군이 점령하고 있던 선전기구로 활용되던 라디오 시설과 언론사, 무기 시장을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파키스탄군 경기갑 여단을 파견했는데, 거꾸로 아이디드 군의 매복에 당한 것이다. 이 결과로 파키스탄군 24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부상당하는, UN 평화유지군 사상 최악의 참사가 벌어졌다. 그리고 죽은 파키스탄군의 일부가 시체훼손이 되면서 끌려다니는 것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CNN에 보내고 UN 철수를 요구하는 초대형 사건이 발생한다.

다음 날인 6월 6일,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의 찬성으로 채택된 안보리 837 결의안이 나온다. 요는 발을 빼고 있던 클린턴에게 UN이 아이디드는 나쁜 놈이니까 미군 파견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사실상 UNOSOM-2는 평화유지니 초동조치니 뭐니 다 집어치우고 일단 파라 아이디드를 상대로 싸우는 전투 작전으로 변질됐으며 다국적군도 완전 전투부대가 됐다.

엄청난 사건에 충격도 받았지만 평화유지 작전이 전투작전으로 변질될 것까지 예상을 못한 파키스탄은 핵심 전투병력을 모조리 철수시켰고[12], 짐바브웨와 루마니아, 스웨덴도 이러리라곤 예상을 못해 병력을 철수시키자 이어 다른 나라들도 덩달아 병력을 철수시키기 시작다.

이런 상황 변화에 클린턴은 어쩔 수 없이 공격헬기 몇대와 AC-130 건쉽을 파견했다.

기세가 등등해진 파라 아이디드는 이걸 또 선전하면서 자칭 소말리아의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마흐디와 아토의 무장 세력과 여전히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 두 세력은 겨우 목숨을 연명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가장 상황이 좋지 않았던 아토 세력은 싸우길 포기하고 나중에 아이디드의 무장세력으로 완전히 흡수된다.


2.10. 지속되는 교전과 각종 사건사고들[편집]

걸프전에서 승리한 미군을 상대로 싸우면서 성과를 내는 파라 아이디드를 체포하고, 파라 아이디드가 이끄는 무장세력을 완전 해산시키기 위한 공격이 수시로 진행됐다.

이 공격의 주도자는 조너선 하우 제독이었다. 사실 조너선 하우 제독은 미국에 델타포스 1개 팀을 요청했다가 거절된 상황이었다. 클린턴은 여전히 떨떠름해했던 것이고, 이후의 활동은 사실 미국의 주도라기 보다는 조너선 하우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벌인 것이다.

우선 6월 17일, 무지하게 신사적인 방법이 동원된다. 우선 헬기에서 '경고방송'을 해서 민간인들의 대피를 유도한 다음에 프랑스, 모로코, 파키스탄 군이 아이디드의 측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뒤진 것이다. 당연히 어린이에게도 통할지 장담못할 장난질이었고, UN군에게 망신만 더해줬을 뿐이었다.

이 장난에 대한 불만을 주도한 것이 UN군 사령관 세비크 비르 터키 장군과 미 육군의 토머스 몽고메리 장군이었다. 결국 이 주장대로 1993년 7월 12일, AH-1 코브라 등을 동원하여 은신처를 공격해서 무장 세력, 동조자 등을 사살하는데 성공했다. 민간인을 대규모[13]로 죽인 건 덤이었다.(...) 그리고 목표물을 잘못 설정하는 바람에 민간인 오폭이 이어졌다.

파라 아이디드는 미군의 오폭을 선전해 효과적으로 이용했으며 덕분에 무장세력을 격파하고 치안을 확보해 평화를 유지한다는 다국적군, 특히 다국적군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미군의 이미지는 부정적이 되었다.

그리고 이 오폭으로 이전까지는 온건파로 존재하였던 반 아이디드 파 부족과 군벌들이 아이디드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소말리아인들을 살육한 것으로 판단하면서 이 상황을 UN평화유지군과 아이디드의 대립이 아니라, 미국과 소말리아의 전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여론 변화로 인해서 이 상황을 취재하던 기자4명이 소말리아 군중에게 살해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와중에도 이상주의자였던 조너선 하우는 아이디드를 국제법정에 세우는 것이 최상이라고 판단해서 미국 정부에 끊임없이 델타포스 파견 요청을 하고 있었고, 이게 거절되자 미친척하고 아이디드에게 25000달러의 현상금을 걸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 아이디드가 소속된 하브 지디르 부족은 현상금이 너무 적다라는 이유로 아이디드에 대한 모독이라고 판단해서 조너선 하우에게 100만달러의 현상금을 걸어서 조너선 하우를 엿먹였다.

8월 8일에는 험비가 원격통제지뢰에 피격돼 미군 헌병 4명이 사망하며, 2주 후인 8월 22일 똑같은 방법으로 7명이 부상당했다.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자 빌 클린턴 대통령은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다. 그래서 이 상황을 단숨에 끝내버릴 작전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3. 태스크 포스 투입[편집]

8월 22일, 미합중국 육군 소장윌리엄 F 개리슨 장군이 지휘하는 JSOC(Joint Special Operations Command)가 소말리아에 파병된다. 파병된 부대는 레인저 3대대 B중대, 델타포스 C분견대, 160특수전항공연대 "나이트 스토커"(The Night Stalkers) 예하 헬리콥터 16대(MH-60 블랙호크, MH/AH-6 리틀버드)와 조종사 및 정비병, DEVGRU[14], 제24 특수전술대대 소속 CCT와 항공구조사의 총인원 450여명이 파견되었으며,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모가디슈 바로 앞 바다에 CVN-72 에이브라함 링컨 항공모함과 항공모함 소속 제11 비행단도 배치됐다.

사실 이들이 얼마나 자신만만했느냐 하면 모든 작전이 3주로 끝낸다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첫 1주일 동안에 병력을 소말리아에 전개하고, 2주차에는 아이디드를 색출해서 검거하고[15], 3주차에 아이디드의 잔존 세력과 지휘체제를 붕괴시킨 다음에 깔금하게 소말리아를 떠난다라는 것이었다. 평화유지와 치안확보는 아직 철수하지 않은 제10 산악사단을 주축으로 추가파병될 병력과 후속 파병될 평화유지군의 임무였다.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는 JSOC는 계획보다 다소 이르게 전력 전개가 끝나면서, 8월 30일 새벽 2시에 첫 작전을 시작했다. 개리슨 장군이 지휘하는 레인저와 델타 포스팀이 패스트로핑을 했고 전범 9명을 체포했다. 다만 다음날 이들이 전범이 아니라 국제구호단체 요원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개망신을 당하게 된다. 이후 이들은 4번이나 더 출격했으나 번번히 허탕을 쳤다. 그렇게 목표인 3주의 시간이 모두 흘러갔다.

그러다가 투입 한 달 만인 9월 21일, 아이디드 지지 세력으로 합류한 오사만 알리 아토를 체포하는데 성공한다. 영화에서처럼 블랙 호크를 탄 델타 포스 저격수가 움직이는 차량을 저격해서 체포한 건 아니다. 헬기 레펠로 깔끔하게 내려가서 아토만 잡아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 작전이 대낮에 한 강습작전이라는 것이다. 5번을 연속 실패한 나머지 눈에 뵈는게 없던 것이었다.


3.1. 최초의 블랙 호크 추락[편집]

아토를 체포하자 화가 치민 파라 아이디드는 미군이 보이면 생포고 뭐고 다 필요없고 무조건 죽이고, 미군의 차량은 무조건 파괴하라고 지시한다.

때마침 9월 25일, 모가디슈 남쪽 공업지대(New Port Facility) 상공을 유유자적 비행하던 제101공중강습사단 소속 블랙 호크를 무장세력이 포착한다. 수십 발의 총격을 받은 헬기는 조종불가 상태에 빠졌고, 이후 최초 발사한 RPG-7에 한 방에 격추돼 3명의 승무원이 사망한다.

아이디드는 이걸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본인이 직접 라디오에 출연하기까지 해서 자기가 직접 격추시켰다고 말하기도 했다.

참고로 후술할 내용을 미리 말하자면, 9월 25일 추락한 블랙 호크가 유일하게 한 방에 격추된 블랙 호크다. 10월 3일, 고딕 서펀트 작전 중 격추된 다른 두 대의 블랙 호크는 중기관총의 대공사격과 100여 발 이상의 RPG-7 로켓탄의 추격을 받다가 격추됐다.

이 부분은 블랙 호크 다운 영화에서 완전히 생략됐다.


4. 작전명 고딕 서펀트[편집]

파라 아이디드의 집권을 원치 않던 세력과 파라 아이디드 세력 내 정보원으로부터 파라 아이디드의 스케줄을 미리 받고 있던 JSOC는, 9월 25일 발생한 블랙 호크 다운 사건으로 파라 아이디드 체포에 속도를 내기로 결정한다.

주변인들을 차례대로 체포해 세력의 힘을 약화시킨 뒤 파라 아이디드를 체포한다[16]는 기존 계획에서 조금 더 나아가, 파라 아이디드의 참모인 오마르 살라드 엘미(Omar Salad Elmi)와 명목상 내무장관이자 정치고문인 모하메드 하산 아왈(Mohamed Hassan Awale)을 먼저 체포하기로 결정한다.

하브 지디르 부족은 매주 미군 반대 집회를 가졌는데, 이 집회에 연사로 오마르 살라드가 연사로 참석한다는 것과 이 집회 이후에 하산 아왈레가 모여서 하와들 하브예 부족과 만남을 가질 것이라는 첩보를 CIA가 감청으로 얻어냈다.

JSOC는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집회에 참석한 살라드를 미행했고, 살라드가 EH-60헬기와 EP-3C 정찰기의 추적을 받으면서 이동해서 하산 아왈레와 만나는 것을 소말리아 정보원을 현장에 투입시켜서 확인했다. 이 정보원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자동차가 고장난 것처럼 이 모임이 있는 건물 앞에 자동차를 주차시킨 다음 차가 고장난 것처럼 보닛을 열어놓아서 목표물을 만들었다.

9월 29~30일 사이에 개리슨 장군은 펜타곤에 조기경보기, AH-64, AC-130, M1 에이브람스, 브래들리 장갑차를 요청했다. 작전 지역이 적의 본진 정중앙이고, 상대해야 할 적의 수가 너무 많아서였다. 하지만 펜타곤은 거절했다. 작전의 규모가 너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작전명은 고딕 서펀트(Gothic Serpent)로 확정됐다. 이하 작전 내용을 설명하자면


모가디슈 공항에는 경비병력만 남는다. 총 쏠 수 있는 모든 병력이 들어가서 하산 아왈과 살라드 엘미를 체포한다.


아홉 대의 험비와 석 대의 M939 5톤 트럭에 탑승한 지상군(호송대)이 먼저 출발해 목표건물 인근에서 기다린다.


델타 포스는 MH-6 리틀버드를 타고 목표 건물로 이동해 실내로 직접 침투한다.


레인저는 MH-60L 헬리콥터에서 패스트 로프로 투입돼 목표 건물의 모서리 쪽 코너(총 4곳)에 자리를 잡고 목표 건물을 방어한다.


상공에서 지상엄호는 AH-6 리틀버드가 담당한다.


델타 포스가 목표를 획득하면 지상군이 목표 건물로 움직이며, 동시에 레인저는 목표 건물로 철수한다.


델타 포스와 획득한 목표물이 지상군의 차량에 탑승한다.


가장 마지막에 합류할 레인저도 지상군의 차량에 탑승한다.


그리고 철수한다.


30분이면... PROFIT!

 

블랙 호크로 투입될 레인저는 총 4개 분대이며 마이클 D. 스틸 대위(Cpt. Michael D. Steele)가 지휘한다. 스틸 대위의 호출부호는 줄리엣 64(Juliet 64)이다. 마찬가지로 각 분대의 분대장도 줄리엣 호출부호지만 번호는 2x번대다.

초크 원(Chalk One) : 지휘관 래리 페리노 중위, 목표 건물의 남동쪽 코너 방어. 스틸 대위가 이 분대에서 레인저를 지휘한다.


초크 투(Chalk Two) : 지휘관 톰 디토마소 중위, 목표 건물의 북동쪽 코너를 방어. 이 분대엔 M203 유탄사수가 두 명, M60 사수가 한 명이었다.


초크 쓰리(Chalk Three) : 지휘관 션 왓슨 중사, 목표 건물의 남서쪽 코너를 방어.


초크 포(Chalk Four) : 지휘관 맷 에버스만 하사, 목표 건물의 북서쪽 코너를 방어. 이 분대엔 M60 사수, M249 사수가 한 명씩 있었다.

 

위의 분대가 탑승하는 블랙 호크와 상공 엄호 및 다른 임무를 가진 블랙 호크의 호출부호는 아래와 같다. 참고로 영화에선 모조리 미니건을 부착하고 나오는데 레인저가 탑승한 헬리콥터만 미니건을 부착했다. 다른 헬리콥터는 50구경 중기관총과 M60D 기관총을 부착했다.

슈퍼 61(Super 6-1)[17] : 클리프 월콧 준위(CWO), 도노반 브라일리 준위(CW3)가 조종한다. 기관총 사수 1명, 델타 포스 저격수인 대니얼 부쉬, 짐 스미스 등 조종사 외 3명이 탑승했다. 편대장 기체다.


슈퍼 62(Super 6-2)[18] : 마이크 고피나 준위가 조종하며 부기장, 게리 고든, 랜디 셔가트, 기관총 사수 2명, CCT 1명, 항공구조사 3명 등 총 10명이 탑승했다.


슈퍼 64(Super 6-4) : 마이클 듀란트 준위(CWO), 레이 프랭크 준위(CW4)가 조종한다. 이 외에 기관총 사수 2명(윌리엄 클리블랜드, 토마스 필드)과 초크1도 탑승했다. 때문에 스틸 대위의 호출부호가 줄리엣 64.


슈퍼 65(Super 6-5) : 리차드 윌리엄스 대위가 조종한다. 초크2가 탑승했다.


슈퍼 66(Super 6-6) : 스탠 우드 준위(CW3), 게리 풀러 준위(CW4)가 조종한다. 초크3가 탑승했다.


슈퍼 67(Super 6-7) : 제프 니콜라스 준위(CW3), 샘 섐프 준위(CW2)가 조종한다. 초크 4의 헬리콥터다.


슈퍼 68(Super 6-8) : HH-60M 메디벅 호크(Medevac hawk) 기종이다. 댄 졸로타 준위가 조종한다. 이 외에 부기장, 기관총 사수 2명, 군의관 3명, CCT 2명, 델타 저격수 1명이 탑승해 SAR 임무를 수행하는 헬리콥터다.


로미오 64 aka C-2(Romeo 6-4 aka Command & Control-2) : 지휘 헬리콥터다. 영화에서 'C-2' 하는 게 바로 이 헬리콥터다. C-1(씨원)은 모가디슈 공항. 톰 매튜 중령과 개리 하렐 중령이 탑승하며 각각 헬리콥터 지휘와 지상군 지휘 및 길앞잡이 역할로 나뉜다.

 

델타 포스는 킬로(Kilo)라는 호출부호를 사용하며, MH-6 리틀버드는 바버(Barber)라는 호출부호를 사용한다. 총 4대의 MH-6 리틀버드와 16명의 델타 포스가 투입됐다.

 

MH-6 리틀버드와 같이 투입돼 AH-1, AH-64 역할을 한 AH-6 리틀버드의 호출부호는 스타(Star)이다. 보다시피 투입된 헬리콥터들 가운데 호출부호 넘버링이 4로 제일 앞자리다. 작전 종료 후에는 성난 무장세력이 모가디슈 공항에 쳐들어올 것으로 예상돼 미리 반격하려는 등의 초계 활동 이유로 모가디슈 상공을 며칠간 비행할 예정이었다. 때문에 가장 앞자리 번호가 주어졌고, 제대로 된 공격 헬리콥터도 없는지라 그만큼 중요한 편대였다.

 

대니 맥나이트 중령(Ltc. Danny McKnight)이 지휘하는 지상군(호송대)의 호출부호는 유니폼 64(Uniform 64)이다. 맥나이트 중령이 탑승한 지휘차량에만 무전기가 있고, 다른 차량에는 무전기가 없다. 지상군에 SEAL팀 x명과 델타 포스 x명이 동승해 같이 투입됐다.

아이린(Irene)은 체포할 요인을 지칭하는 암호명이면서 동시에 작전개시 암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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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호텔. 목표 주변에 있던 건물이다.[19]

목표 건물이 있는 블럭은 흑해(Black Sea)라는 암호명으로 명명됐다. 해당 건물은 큰 특징이 없기 때문에 맞은편에 있는 올림픽 호텔(Olympic Hotel)이 실제 목표 건물을 지칭하는 암호명으로 지정됐다. 잠깐... 저게 호텔이라고? 그래서 올림픽 호텔을 지칭하면 올림픽 호텔이 아니라 목표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흑해의 북서쪽과 남동쪽에 각각 암드 포스 거리(Armed Forces Street)와 내셔널 거리(National Street)이 있었으며,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무기 시장(바카라 시장)이 바로 암드 포스 거리를 가운데에 두고 좌우에 걸쳐있다. 그리고 북동쪽이 할와대그 거리(Hawlwadag Street)다.

앞서 말한 슈퍼63 지휘헬기와 함께 투입된 조기경보기라는 것이 실제로는 대잠초계기인 P-3이다.


4.1. 작전 개시[편집]

1993년 10월 3일 13시 50분, 소말리아 정보원에 의해 살라드 엘미가 목표 건물에 들어온 게 확인됐다. 하산 아왈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먼저 입장한 것으로 추측됐다. 14시 49분에는 다른 무장 세력 가문의 수장과 두 명의 보좌관이 입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하여 15시 32분에 지상군과 C-2 헬기가 내셔널 거리로 가장 먼저 출발하고 다른 헬리콥터는 몇 분 후에 이륙한다.

험비와 트럭 무리가 모가디슈 시내로 들어온다는 소식이 민간인을 통해 무장 세력에 빠르게 전파됐다. 이미 미군에 대한 불신이 쌓일대로 쌓여 자체적으로 무장한 민간인, 즉 민병대들은 모가디슈 거리 곳곳에 쓰레기 더미와 불타는 타이어 등을 쌓아 지상군의 접근을 사전에 봉쇄해 내셔널 거리 방향이던 것을 암드 포스 거리로 돌렸다. 다시 말해 민병대가 함정을 판 것이다.

이걸 알 리 없는 지상군은 길이 막혔다고 징징댔고, 하늘에서는 거리를 잘 볼 수 없고 동시에 타이어가 불타면서 발생시킨 연기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아 더 남서쪽에 있는 비아 아그포예(Via Agfoye) 거리로 돌렸었다가 P-3 기가 다시 길을 가르쳐 줘 암드 포스 거리로 되돌아갔다. 결국엔 시작부터 꼬였다. 이런 와중에 민병대들은 메가폰을 들거나 해서 시민들에게 "나와서 너희 집을 지켜라!"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소말리아어로 "Kasoobaxa guryaha oo iska celsa cadowga!"("Come out and defend your homes!")이다.

먼저 대기하고 있어야 했던 지상군은 헬리콥터가 현장에 도착한 15시 40분경에 암드 포스 거리에 도착했다. 사실 델타 포스와 레인저가 탑승한 헬리콥터도 목표 건물에는 굉장히 늦게 도착한 것이다. 중기관총과 소총 등을 무차별적으로 쏘아대며 대공화망을 만드는 바람에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았고, 여기에 RPG-7도 헬기가 보이기만 하면 되는대로 쏴대는 통에 고도를 낮추기도 쉽지 않았다.

특히 슈퍼67이 많은 총격을 받아 아예 총격이 덜 한 곳, 그러니까 처음 예정된 곳보다 훨씬 북쪽까지 올라가서 초크 4를 하차시킨다. 이 와중에 토드 블랙번 일병[20]이 밧줄을 놓쳐 그만 21m 상공에서 추락을 해 첫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곤 깨알같은 Elf down! 영화에선 RPG-7 때문인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론 블랙번 일병이 실수로 밧줄을 놓쳤다. 같은 시각에 초크1, 초크2, 초크3는 목표지에 패스트 로프로 착륙해 목표 건물을 에워쌌으며, 15시 42분에 델타 포스도 목표 건물 진입에 성공하며 공식적으로 작전이 시작됐다.

투입하고 2~30분 가량은 총격전이 일절 없었다. 구글링을 하면 나오는 실제 모가디슈 전투 당시 땅에서 찍힌 사진이 모두 이때 찍혔다.

다만 목표 건물에 들어가 섬광탄 등을 이용해 방을 수색하고 다니던 델타 포스를 도망치려는 민병대 또는 목표물로 오인해 초크1, 초크2에서 델타 포스를 향해 발포했다. 그리고 델타 포스도 응사했다.(...) 레인저와 델타 포스간 총격전이 10분 가량 이어졌으며, 델타 포스가 먼저 아군의 오인사격임을 알아채고 쏘지 말라고 무전을 보낸 덕에 사격이 멈추게 됐다.[21]

그러나 이 총격전 소리를 자신들에게 쏘는 것으로 오인해 성난 민간인이 목표 건물 일대로 몰려오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총격전은 없었다. 초크4에서 부상자가 발생했고, 애초에 방어하기로 한 지역보다 더 먼 곳에 갔음을 확인한 C-2는 험비 3대를 차출해 블랙번을 후송시키기로 결정하고, 초크4도 목표 건물로 철수시켰다가 방어 지역으로 재투입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따라 초크4가 목표 건물로 철수를 진행하며, 블랙번을 호송할 험비 3대가 먼저 목표 건물로 출발한다.

15시 58분, 델타포스의 요인 체포를 기다리며 암드 포스 거리에서 대기하던 지상군 행렬 중 가장 후미에 있는 5톤 트럭 한 대에 RPG 로켓포가 날아와 25명의 부상자가 동시에 발생한다. 이들이 다른 트럭에 탈 수 있도록 하차해서 엄호를 하다가 2명이 추가로 부상당한다.

16시, C-2 헬기와 P-3는 모가디슈 곳곳에서 목표 건물 일대로 모여드는 민병대를 포착한다. 그러나 이미 목표 건물 일대에 민병대가 있었는데, 워낙 많은 민간인 무리에 섞여있어서 누가 무장을 했는지 파악을 할 수 없는 통에 그냥 싸잡아 민간인으로 판단을 내려버리곤 목표 건물 일대에서 아직 총격전이 진행되진 않는다고까지 판단했다. 간헐적이지만 총격전이 진행되고 있기는 했다. 블랙번을 데리고 목표 건물로 철수하던 초크4와 암드 포스 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초크2에서 총격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16시 02분에 목표물이 확보됐다. 체포한 사람은 하산 아왈과 살라드 엘미를 비롯해 무려 210명에 달했다. 같은 시각, 블랙번을 데리고 초크4가 목표 건물에 도착했다. 목과 척추 등에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2분 후에 험비도 도착했다. 험비는 즉시 블랙번을 데리고 철수했고, 초크4는 방어 지역으로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지상군의 목표건물 도착이 늦어졌다. 길목이란 길목이 죄다 막혀서 목표 건물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길을 알려줘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안 보이는 까닭에 막힌 길만 알려줬고, 목표 건물로의 접근이 늦어지자 낮은 고도에서 관측하기 위해 슈퍼61과 스타42, 스타43이 고도를 낮춰 지상군 엄호 등을 하며 막히지 않은 길을 대신 지상군에게 알려주며 지상군의 길을 터줬다.

C-2가 고도를 낮추지 못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이미 모가디슈 상공은 RPG-7과 무차별적으로 쏘아대는 중기관총으로 만들어진 화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영화처럼 헬기가 멈춰있던 게 아니라 매우 높은 고도에서 계속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지상군의 진입이 늦어진 이유는, 블랙번을 데리러 목표 건물로 향하던 험비 3대가 지나친 길을 민병대가 또 막아버려서다. 블랙번을 태운 험비 3대도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다가 막혀서 우회를 했다. 그러다가 스타 41 헬기의 지상 지원을 받으면서 모가디슈 북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10월 21일 거리(21 October Street)를 통해 겨우겨우 시내에서 빠져나오는데, 이 과정에서 제프 스트러커 하사가 운전하는 험비의 기관총을 잡고 있던 도미닉 필라 하사가 머리에 총탄을 맞고 즉사하고 말았다. 첫 번째 전사자가 발생했다.

16시 15분이 되어서야 지상군이 목표 건물에 도착해 목표물과 델타 포스를 함께 태우기 시작했다. 이미 트럭 한 대를 잃은 마당이라 남은 두 대의 5톤 트럭은 물론 험비에까지 정원 초과 현상이 일어났다.

16시 17분, 가장 끄트머리의 험비에 있던 클레이 오딕 일병이 AK-47을 쏘면서 달려오는 민병대를 포착하고 50구경 기관총을 쏘려고 험비의 거치대에 올라가다가 총격을 당해 부상을 입는다.

16시 18분, 레인저에 교전 중지 명령이 하달되고 목표 건물로 철수 명령이 떨어진다.


4.2. 블랙 호크 다운[편집]

16시 20분, 아무거나 맞으라며 민병대가 무차별적으로 쏘아대던 RPG-7 로켓에 슈퍼 61이 진짜로 맞아버린다. 영화와 달리 실제로는 꼬리의 회전익과 충돌하며 폭발해 꼬리 자체가 사라졌다. 그래도 명색이 대전차무기인데 영화처럼 폭죽 효과 좀 일어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슈퍼61은 목표 건물로부터 북동쪽으로 3블럭 정도 떨어진 곳에 추락한다. 말이 3블럭이지, 거리상으론 280~450m 사이이다. 클리프 월콧과 도노반 브라일리 준위가 그래도 최대한 가까운 곳에 추락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기 때문에 이 정도.

16시 21분, 슈퍼 61의 추락지로 민병대가 몰려가기 시작했다.

16시 23분, 목표물 탑승이 아직 끝나지 않은 지상군 호송대 쪽에서 부상자 2명이 발생했다.

16시 24분경, C-1(모가디슈 공항)은 현장의 병력 전체가 추락지로 이동해 민병대의 접근을 봉쇄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같은 시각 트럭에 RPG-7 직격탄이 날아와 꽂혀 부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체포한 요인 상당수도 부상을 당한다. 결국 목표 건물 앞에 트럭을 버리고 남은 트럭 하나에 탈 수 있는 모든 병력과 요인이 뒤섞여서 탑승한다.

16시 26분, 목표물을 모두 태운 지상군 트럭, 험비 무리가 추락지로 이동을 시작했다. 지상군 차량에 초크 1,2,3,4가 다 탈 수 없어 스틸 대위는 뛰어서 추락지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한편 마이클 듀란트와 레이 프랭크가 조종하는 슈퍼 64가 상공을 배회하면서 슈퍼61의 추락지를 1차적으로 봉쇄하면서 대니얼 부쉬, 짐 스미스 델타 포스 측 저격수 두 명의 생존을 확인한다. 스미스는 슈퍼61 안에서 추락지를 방어했고 부쉬는 영화에서처럼 밖으로 나와 사격했다.

16시 27분, 스타41이 현장에 도착한다. 스타41은 지상에 완전히 착륙하지 않았으며, 대신 케이스 존스 준위가 뛰어내려 슈퍼 61에 접근해 부쉬와 스미스를 데리고 조종사의 전사와 승무원의 중상까지 확인한 다음 스타41로 돌아왔다. 그때까지 스타 41에 혼자 남은 칼 마이어 준위는 한 손으로는 사이클릭 조종간을 잡고 헬리콥터의 자세를 유지하면서 신속하게 이륙을 준비하고 다른 한 손으로 MP5K 기관단총을 쏘아대는 다급한 상황이었다.(...)신컨 존스 준위, 부쉬, 스미스 일행이 왔을 때 비로소 착륙했으며, 조종사 두 명 말고 탈 공간이 없을 AH-6에 두 저격수를 태우고 유유히 모가디슈 공항으로 복귀하려는데, 추락지 인근에서 고전하는 초크2의 지상지원을 해주고, 총격을 받아 휘청이는 슈퍼65와 함께 복귀했다.(...)

16시 29분, 추락지 근처에 도착한 슈퍼68에서 군의관과 항공구조사가 내려서 추락지로 접근했다. 영화에서처럼 추락지 한 가운데로는 접근하지 못했다. 이들은 슈퍼 61 내부에서 중상을 당한 승무원을 치료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슈퍼 68도 RPG-7 로켓에 피격됐으며, 조종석 창문이 반쯤 깨질 정도로 격렬한 총격을 받았다. 다행히 추락은 하지 않고 간신히 모가디슈 공항에 복귀했으나 총격으로 인한 유압상실과 엔진출력 저하로 모가디슈 공항 활주로에 거칠게 불시착[22]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탑승자 전원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헬기가 파괴되지 않고 버텨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슈퍼68은 이후 다시는 모가디슈 상공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같은 시각 바버 51과 바버 52가 모가디슈 공항에서 총알과 전투식량을 갖고 모가디슈로 날아갔다. C-1에선 교전이 30분 내에 끝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 이어 바버 54와 슈퍼 66도 모가디슈 공항에서 총알과 현장에 투입되지 않은 델타 포스 측 저격수를 추가로 싣고 날아갔다.

16시 30분, 톰 디토마소 중위가 이끄는 초크 2가 추락지에 도착했다. 추락지가 워낙 가까웠기 때문에 초크 2는 그냥 직선으로 달리다가 추락지가 보이자 좌회전 한 번 하고 도착했다. 16시 32분에 맷 에버스만 하사가 지휘하는 초크 4도 추락지에 도착했다. 초크 4 역시 쭉 달리다가 좌회전해서 다시 쭉 달리니까 추락지였다.


4.3. P-3의 우울[편집]

16시 30분부터 본격적으로 P-3가 지상군이 가야 할 길 C-2에 보고하고, C-2가 지상군에 보고하는 과정으로 지상군의 이동이 개시됐다.

헌데, P3는 대잠초계기다. 대지상전용 조기경보기 용도로 쓰기엔 뭔가 부족한 게 많다는 말. 그래도 어느정도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일단 앞서 말한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면, P-3가 스캔한 지상 상황을 전송받은 ▶ C-2는 새 명령을 받으려고 ▶ C-1에 보고하고 ▶ 상황확인 뒤 새로운 계획을 세워 명령을 보내면 ▶ C-2는 지상군에게 보고를 하는 방식이다.

이런 복잡한 과정이 복잡한 시가지에서 계속해서 빠르게 변하는 교전 상황을 전혀 따라가지 못했고, 실제 지상군에 명령이 도달할 때쯤이면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는 사태가 계속 된 것이다.

이러다보니 민병대가 미처 막지 못한 길을 제때제때 찾을 수 없어서 공중에 있는 헬기에 의존해야 하는 지상군으로선 추락지로 들어가고 싶어도 막상 해당 위치에 도착하고 나면 막힌 길에 도착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헬기의 도움을 받거나, C-2의 고도를 낮춰서 육안으로 지상을 내려다보게끔 하자니 화망은 여전하고 눈 먼 RPG-7 때문에 위험했다. 그래서 C-2도 더 높은 고도에서 지상을 한 눈에 들여다보는 P-3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알려달라는 건 다 알려줘서 P-3도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덕분에 지상군은 같은 길을 계속 왔다갔다 반복하면서 추락지 주변을 싹 다 돌았다. 영화처럼 길을 잃은 적은 없다. 추락지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막혀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다니느라 움직인 것. 이러다보니 사상자가 늘어나고, 눈치로 P-3와 C-2의 통신이 느려서 지상군에 도달하는 통신도 느리다는 것을 알게 된 맥나이트 중령은 "P-3와 우리를 직접 연결시켜달라"고 요청했다. 그리하여 직접 연결이 돼 P-3 측으로부터 "최대한 빠르게 알려주겠다"는 대답을 들었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하면 또 막힌 길.

답답하기는 지상군을 엄호해주던 스타 42와 스타 44도 마찬가지였고, C-2나 C-1도 자기들대로 답답하고, P-3는 열심히 알려주고 있는데 현장으로부터 쌍욕까지 먹으니 잘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엄두도 못 내게 됐다. 심지어 상대 쪽의 무전기 잡고 있는 사람이 중령(...)이며 중계소 역할 해주는 C-2에서 무전 받는 사람도 중령(...). 후라이팬에 기름 두르고 불 위에 올려서 뜨겁게 달군 다음 손바닥을 10분 동안 올려놓으면 왜 욕이 나오는지 알 수 있다.

보다 못해 개리슨 장군이 P-3에 직접 연락을 해서 "안 막힌 길은 전부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16시 35분에 지상군이 도착했으나 역시 막힌 길. 민병대의 로켓포 공격과 저격에 사상자를 내는 와중에 초크1과 이들을 따라 이동하는 델타 포스는 실제로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심지어 당시 CIA 국장의 사위였던 얼 필모어(영화에서는 윌리엄 피츠너가 연기한 샌더슨[23]이 던진다.)가 건물 창문으로 수류탄을 던지다가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레인저의 두려움이 한 층 증가됐다.


4.4. 슈퍼 64 추락[편집]

16시 38분, 초크2, 초크4가 방어 중인 슈퍼 61 추락지에 바버 51과 슈퍼 65가 날아와 탄약과 전투식량, 수통을 보급했다. 같은 시각 스타 41이 기관포와 로켓포로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고 슈퍼 62가 항공구조사와 CCT를 추가로 투입한다.

16시 40분, 추가 지상지원을 위해 슈퍼64가 추락지로 날아가다가 그만 RPG-7 로켓에 피격된다. 이 역시 하늘에 있는 헬리콥터를 보고 조준도 안 하고 대충 쏴대 날아다니던 것에 맞은 것이다. 슈퍼 64는 목표 건물에서 500여m 남쪽, 추락지에선 무려 850여 미터나 되는 곳에 추락을 했다.

모든 병력이 슈퍼 61 추락지에 묶여있는데 또 추락을 해버리니 개리슨 장군은 해당 기체에 대한 구조를 포기한다. 어차피 다 죽었을 거니까. 더군다나 민병대 무리가 또 몰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게리 고든과 랜디 셔가트는 슈퍼 64의 추락을 목격했으며, 때문에 C-2에 슈퍼 64 추락지 투입을 요청한다. 그러나 C-2는 허락을 안 해줬다. 어차피 다 죽었을 거니까.

16시 41분, 지상군도 헬리콥터가 또 추락했다는 무전을 받는다. 맥나이트 중령은 C-2에 "슈퍼 64 추락지에는 갈 수 없다."고 말한다.

파일:attachment/f0083218_5120bd7a56619.jpg

사진은 '슈퍼 64' 실제 추락 사진. 바로 이곳으로 두 델타 포스 저격수가 자원해서 내려간다. 슈퍼 64가 추락하면서 이미 주변 지형지물을 싸그리 쓸어버렸다. 그래서 보다시피 적들은 포위가 가능하지만 방어는 불가능한 곳이 됐다.

16시 42분, 게리 고든과 랜디 셔가트의 추락지 투입 요청이 계속되자 C-1과 슈퍼 62가 연결됐으며, 죽을 수도 있다는 개리슨 장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투입 허락을 받아낸다.

16시 43분, 슈퍼 64의 추락지에 랜디 셔가트와 게리 고든이 투입됐다. 윌리엄 클리블랜드와 토마스 필드, 레이 프랭크의 전사를 확인하고 마이클 듀란트의 생존을 확인한 그들은 슈퍼 62와 스타 41의 지원을 받으면서 시체를 인근 가옥에서 수습한다. 영화에서 마이클 듀란트와 랜디 셔가트가 나눈 대화는 실제이다. "호송대는 어디 있습니까?"라는 듀란트의 물음에 셔가트는 "더 이상 구조대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하고 헬기 조종석에 꽂혀있던 MP5k 기관단총과 레이 프랭크 준위가 착용하고 있던 권총, 그리고 자신의 탄창(M1911 탄창)을 건네줬다.

영화에서처럼 둘이서만 치열하게 싸운 것은 아니다. 슈퍼 62는 RPG-7 로켓에 맞아 파키스탄 다국적군이 주둔하는 모가디슈 운동장 인근 지역에 불시착했다. 스타 41은 계속 상공에 남아서 민병대의 접근을 봉쇄했다. 나중엔 슈퍼 61 추락지에 있던 스타 43과 교대로 날아다니며 방어를 했으며 슈퍼 67이 탄약을 보급해주는 등 족히 한 시간에 달하는 17시 40분까지 버텼다.

이 전인 17시 00분경, 토드 블랙번을 데리고 철수했던 험비 3대가 슈퍼 64의 추락지로 출발했다. 17시 41분, 게리 고든의 사망 후 17시 42분 랜디 셔가트가 사망한다. 마이클 듀란트는 포로로 생포된다.

원래 이슬람교 전통에 따라 시체 훼손은 엄격히 금지되고 24시간 안에 매장해야 되나 오폭과 선전, 그리고 교전으로 울분이 폭발한 군중들은 시체를 끌고 다닌 것으로도 부족해 거꾸로 매달아 오물과 돌을 던지기까지했다. 나중에 사우디아라비아 다국적군이 시체를 수습하려다가 수천 명의 성난 군중에 쫓겨나게 된다.[24] 다행히 둘의 시체는 사우디아라비아를 통해 본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시체를 끌고 다니며 훼손하는 장면을 파라 아이디드 무장 세력의 인물로 보이는 사람이 녹화해 인근 나라에 있는 미 방송국 특파원에게 전달했고, ABC가 특종으로 보도하면서 아침에 생방송으로 가정에 송출됐다. "델타 포스도 죽는구나."라는 말이 이때 나온 말.


4.5. The Lost Convoy[편집]

한편 16시 43분, 할와디그 거리에 막히지 않은 길이 있다는 C-2의 보고를 받고(그리고 C-2는 P-3에서 보고를 받았다.) 할와디그 거리로 돌아왔으나 막히지 않은 길을 찾지 못한 지상군은 다시 할와디그 거리를 질주한다. 그러다가 RPG에 집중 피격을 받아 마지막 한 대 남은 트럭이 격파된다. 이 피격으로 델타 포스 측 티모시 마틴의 허리가 반토막이 났고[25], 운전대를 잡고 있던 리차드 코왈레스키 일병의 허리에는 불발탄이 꽂힌다. 사상자 수습을 위해 전 병력이 할와디그 거리 한복판으로 쏟아져 나와 총격전을 벌였고, 케이시 조이스 하사가 사망하고 로렌조 루이스 하사가 중상을 당한다. 스타 42, 스타 44는 물론 슈퍼 61 추락지를 방어하던 스타 43까지 투입됐으나 몰려드는 민병대가 헬기에 대한 공격을 중단한 적이 없었고 화망도 여전히 만드는 중이었다.

수습은 16시 52분이 되어서 끝났다. 시체를 더 이상 담을 공간이 없어 탄창, 수류탄, 수통 등 필요한 것만 챙기고 전투현장에 시체는 모조리 버렸다. 그리고 16시 54분, 맥나이트 중령이 "임무 종료" 무전을 보내오며 지상군의 임무는 실패(The Lost Convoy, 실패한 호송대)했다.

16시 56분 지상군은 철수 명령을 받았다. 모가디슈에서 나가는 것도 그냥은 불가능해서 스타 41과 스타 42의 근접 지원을 받았다. C-2도 이번엔 직접 지상 낮은 고도까지 내려와서 길을 직접 보고 지상군에 길을 알려줬다.

17시 34분, 슈퍼 64 추락지로 들어갈 길을 찾지 못한 험비 3대가 지상군과 함께 모가디슈 공항으로 돌아간다. 같은 시각, 슈퍼 61 추락지에서 초크4 소속 제임스 스미스 상병이 민병대에 둘러싸여 총격을 받는다.


5. 구조 작전[편집]

17시 46분, 지상군 전체 병력이 모가디슈 공항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약 99명의 병력이 슈퍼 64 추락지에 묶여 있었다. 스미스 상병의 부상이 심각했으나 슈퍼 64 추락지로 스타41, 스타43, 스타44 외엔 투입이 불가능했다. 사람으로 치면 곧 사망판정을 내려야 할만큼 모든 블랙 호크가 심한 피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16시를 기점으로 교전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는데, 그 이유는 너무 어두워서 야간전투가 없을 것으로 예상해 야간투시경을 가지고 오지 않은 레인저와 델타 포스 눈에 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민병대도 마찬가지라 양측 모두 자리만 지킬 뿐 교전은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17시 08분, 슈퍼 66이 물, 탄약, 응급의료 약품 등을 슈퍼 61 추락지에 보급했다. 이 과정에서 RPG-7에 또 피격됐지만 다행히 어떻게든 버텨냈다. 슈퍼 66이 내려놓고 간 보급품도 스미스 상병의 부상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결국 20시 27분, 제임스 스미스 상병은 사망한다.

UN 다국적군과 협의로 관할지역내 발생이 예상되는 우발사태에 대한 군사적 요구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작전을 훨씬 확장시켜 모가디슈 시내에서 모든 전투 병력을 탈출시키는 새로운 작전이 구상된다. 그리하여 JSOC 소속 지상군의 차량이 중무장을 하고 다시 모가디슈 시내로 투입됐고, 이 뒤를 말레이시아, 독일 다국적군 소유의 100여 대가 넘는 장갑차와 파키스탄 다국적군 소유의 M48 전차가 따랐다. 10산악사단 소속 블랙 호크와 코브라 공격헬기의 지원을 받았으며, 10산악사단 전체 병력과 14보병연대 예하 2대대, 그리고 말레이시아와 파키스탄 UN 다국적군 등으로 이루어진 구조대 병력이 23시 23분에 모가디슈 공항과 모가디슈 운동장에서 출발했다.

모가디슈 공항에서 출발한 일부 병력이 다음 날인 10월 4일 01시 55분경에 슈퍼 64의 추락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듀란트는 물론 시체도 찾을 수 없었다.

02시경, 슈퍼 61 추락지에도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구조대가 도착했다. 그 전부터 스타 41, 스타 42, 스타 43, 스타 44가 지속적으로 슈퍼 61 추락지를 비행해서 진입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그래도 공격은 계속 돼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다국적군에서도 사상자가 발생했다.[26] 그리고 말레이시아 다국적군 소유의 장갑차 한 대가 RPG-7에 격파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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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임대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장갑차가 맹활약을 하는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파키스탄 다국적군 소유의 M48 전차가 대활약을 했다.

03시에 월콧 준위의 사체를 마지막으로 꺼내며 구조 작전이 종료된다. 그리고 시내에 남겨둔 시체 등을 찾느라 밤 내내 모가디슈 시내를 들쑤시고 다닌다. 몇 구의 시체를 제외하고 다 찾지 못했지만 재정비를 위해 05시 30분부터 모가디슈 시내에서 파키스탄 다국적군이 주둔하고 있는 모가디슈 운동장으로의 탈출이 시작됐다.

실제로 장갑차며 트럭이며 수거한 시체와 잔해 등으로 꽉꽉 차서 몇 명의 레인저가 차량에 탑승하지 못했다. 몇 명은 천장에 타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응사를 하다가 머리를 맞고 험비 안에 나뒹구는 동료를 하루종일 봤는데 과연 천장에 레인저가 탔을까? 블랙 호크 다운 영화 후반부에 두 발로 뛰어서 모가디슈 시내를 탈출하는 장면은 극적인 연출이 아니라 실제이며, 모가디슈 운동장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교전이 계속 됐지만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이 뛴 길은 '모가디슈 마일'(Mogadishu Mile)이라고 부른다.[27]

6. 피해[편집]

공식적인 발표에 따르면 미군은 18명이 죽고 73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1명이 포로가 되었다. 말레이시아군에서도 1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당했으며, 파키스탄군 역시 1명의 사망자, 2명의 부상자가 나왔다.[28]

소말리아의 경우 아이디드 쪽의 발표에 따르면 315명이 죽고 812명이 부상당했다. 하지만 이후 미국과 UN의 자체조사에 따르면 약 1500에서 3000여명 정도가 사망 혹은 부상당했다고 한다. 일단 21명의 소말리아 민병대가 포로가 된 것은 확실하다.

사망자 18명 + 부상자 73명은 월남전 이후 벌어진 마야게즈 호 승무원 구출작전의 실패[29] 다음으로 미군에게 큰 피해 규모였고[30], 전면전인 걸프전에서조차 50만 명의 미군 중 294명이 전사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뼈아픈 피해였다. 또한 그 18명이라는 사망자가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의 특수부대인 델타포스, 미 육군 최정예 보병인 레인저, 그리고 야간 침투가 전문인 정예 강습 조종사인 것을 감안하면 '20명에 근접하는 사망자'는 씻을 수 없는 상처이다.

이후, 2011년 8월 5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공격으로 미군 헬기가 격추, 네이비 씰에서도 최정예인 DEVGRU 대원 25명을 비롯한 미군 31명(과 아프간 정부군 7명 포함 모두 38명 즉사)이 전사하면서 헬리콥터 격추 피해로 이 전투의 피해를 넘어섰다.


6.1. 고딕 서펀트 작전의 문제점과 또 다른 문제점들[편집]

작전에 문제가 많기는 했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것은 현지에 주둔 중인 JSOC인데, 제대로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고딕 서펀트 작전을 승인해버렸다. 그 결과 야간 잠행이 특기인 특수부대와 야간 비행이 특기인 특수전 조종사들이 대낮에 헬기를 띄워서 지옥의 한 가운데로 몰려갔다.

거기다 위에서 말한대로 160 특수전항공연대는 부대 별명이 '나이트 스토커(Night Stalker)'로 불리던 부대로, 미 육군에서도 야간 항공 작전에서 특출난 실력을 지닌 조종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나이트 스토커의 훈련 중에는 달도 안 뜬 컴컴한 밤에 맨눈으로 저고도 비행을 하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과 장비들을 주간 작전에 투입했음은, 결과가 좋았어도 개판이 당연히 예상되는 것이었다. 회담 시간이 낮이기는 했지만, 회담 시간을 알아냈으니 목표물 미행을 통해 야간에 데리고 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 전에 아토를 잡았을 때는 대대적으로 싸울 준비를 하고 밤에 쳐들어가서 아무 일도 없이 데리고 왔었다. 그만큼 밤이 어둡고, 월광에 기댈 만큼의 가치가 없는 동네라 제아무리 소말리아 사람들이더라도 미군 상대하기엔 굉장히 껄끄러운 시간대. 아토를 잡았을 때 교훈을 무시하고 대낮에 특수부대를 지옥에 던져놨으니 작전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있나?

사실 이런 지시를 내린 데에 이유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시 클린턴 미 정부는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보리스 옐친의 쿠데타 진압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정치·외교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는 중화기 투입은 사리고 있던 상황이다.

그리고 지상에서 차량과 합류하여 되돌아온다는 부분은 말로만 대단했다. 블랙 호크 같은 몸집의 헬리콥터가 모가디슈에 착륙할 공간이 마땅치 않고, 착륙에 성공하더라도 그 순간이 가장 취약한 순간이라 험비를 선택한 것.

하필이면 선택지가 험비 말고 없었다는 것이다. AC-130, AH-64 아파치, M1 에이브람스는 고사하더라도 M2 브래들리라도 보내줬어야 했다. 하지만 개리슨 장군이 이 요청을 너무 늦게 한 것도 문제였다. 빨리 했더라도 브래들리가 왔을까 싶지만 애초에 경보병 부대만 덩그러니 보내놓고 "특수부대니까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오인한 펜타곤에게 더 큰 문제가 있다.

특수부대는 개개인은 강하다. 하지만 일당백으로 싸우면 다 이기고, 정면으로 부딪히면 다 이기는 천하무적이 아니다. 이들의 강점은 어디까지나 몰래 접근해서 목표물만 치고는 다른 적에게 반격 받기 전에 빠지는 것이다. 그 점에서 특수부대만 던져놓은 것은 삽질이나 다름없다. 예전처럼 해병대를 다시 데려다 놓거나, 10산악사단이라도 원상태로 되돌려 놨으면 무리는 있겠지만 안 죽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델타 포스의 시체를 보는 충격은 없었을 터.

즉, 결과만 놓고 정리하자면 사실상 화력지원은 거의 없다시피한 상황에서 오직 보병과 험비만으로 사방에 중화기로 무장한 적진 한가운데를 대낮에 대놓고 들어갔다 나오는 임무였던 것이다.

더구나 계속된 미국의 압박과 적십자위원회원 54명 체포, 아토의 체포 등, 겪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해 풍부한 경험으로부터 파라 아이디드는 자기가 어떻게 잡힐 것이란 예상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모습을 감추면서 라디오를 통한 선전만 해댄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너선 하우 UNOSOM 지휘관과 파라 아이디드의 대결 양상이 치열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디드가 미국을 상대로 싸우는 소말리아 유일의 인물이란 이미지가 생겼다. 본인이 이런 이미지를 잘 이용하기도 했다.

이라크 전쟁에서 후세인에게도 이런 이미지가 있는데, 파라 아이디드의 이미지를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답습했다. 그야말로 외부의 적에 대항해서 내부를 결집시키는 형태로, 미군이 스스로 상대를 최악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총 하나 들고 미군에 쏘아댄 사람이 모조리 아이디드의 세력이 아니라 무장한 민병대인 점도 이 때문이다.

이후 JSOC의 중장비 요청을 거절한 레스 애스핀 당시 국방장관은 클린턴에 의해 해임됐다. 그런데 레스 애스핀 장관도 이 꼴이 날 줄 몰랐을 것이다. 작전계획안을 보고 "이야, 이거 제대로 꿀 빨다 오겠구만?" 했을 텐데 작전보고서를 받고 "이야, 이거 제대로 꿀 빨고 왔네?" 했을 사람(……).

더욱 심각했던 문제는, 아토를 체포한 것외에는 별 다른 작전이 없었고, 무장 세력의 공격도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JSOC가 목표는 아니라서 모가디슈 시내에서 점점 피해가 발생해갈 때까지 JSOC 병력들이 대단히 방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전 정찰이 적었는지 아니면 정말 민병대가 건물 지붕에서 사격한다는 점을 몰랐는지, 지붕에서의 사격에 병사들이 죽거나 큰 부상을 입었다. 공격을 성공시키는 데 필요한 조건이 바로 위에서 아래로 공격하는 것인데, 본인들만 위에서 아래로 공격할 줄 안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다.

전투 당시 빠른 전투를 위해 몇몇 장비를 챙기지 않았다. 그 결과 슈퍼 61이 추락하면서부터 뭔가 큰 문제가 있음을 깨닫긴 했지만 몸처럼 생각도 가벼워 뭐가 잘못됐는지 깨닫질 못했다. 모가디슈에 고립돼 탄약이 떨어지자 헬기로 탄약 보급을 받았을만큼 필수품이 부족한 상황.

그런데 이런 가정하에서 미군 vs 민병대 사상자 수를 비교하면, 오히려 미군의 피해는 적고 민병대는 도륙을 당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상 미군 한 명, 한 명이 백발백중으로 민병대를 쓰러트린 것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래저래 이들의 전투력은 뛰어났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보고서도 몇 종류 있다.

물론 제대로 훈련을 받은 정예부대와 민병대라는 차이도 있겠지만, 민병대들이 민간인들을 총알받이로 쓴 것도 있다. 게다가 카트를 거하게 빤 민병대들이 제정신일리 없으니 아군 오사도 꽤 있었을 것이다.


7. 결과[편집]

이 사건 이후로 미국은 두 번 다시 약소국의 내전에 끼어들지 않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작전 이후 미국은 소말리아에서 완전히 손을 떼버렸고, 르완다나 보스니아에 평화유지군 파병도 꺼리게 된다. 나비효과랄지 서방세력과 함께 개입하지 않았던 르완다 내전에서 약 80만 명이 죽었다. 정작 여기는 그냥 제노사이드고 투치족에게 권력을 줘도 보복할 힘이 없어서 미군이 작정하고 갈아엎어도 전혀 문제가 안 됐는데도 말이다.[31]

1994년 3월 아이디드와 알리 마흐디가 다시 휴전에 합의 되었고, 1994년 11월 UNOSOM-2의 종료가 결정되면서 1995년 3월을 기점으로 소말리아에서는 UN군을 비롯해 모든 다국적군이 철수를 한다.

모가디슈 전투 이전에 미군에 잡혔던 오스만 아토는 이후 아이디드를 떠나서 알리 마흐디 파벌에 합류했다.

이 사건의 영향도 조금은 있겠지만, USC의 시아드 바레 축출 이후로 소말리아는 사실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됐다. 아이디드는 이 사건 이후 빌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차 미국이 보내준 수송기를 타고 워싱턴 DC로 오기도 했으며[32], 1995년 6월에는 소말리아 대통령을 자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는 못했고, 지역 군벌에 대한 통제력도 없어서 결국 모가디슈를 중심으로 알리 마흐디와 지배력을 다투는 상황으로 회귀했다.

그리고 1996년 7월말에 모가디슈에서 다른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았고[33], 8월 2일 사망했다. 생각해보면 자업자득이다. 자기 배만 채우며 난민은 없는 사람 취급을 하고, 도리어 학살까지 하면서 소말리아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벌은 받은 셈.

진짜 골 때린 것은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의 후계자로 셋째 아들 후세인 파라 아이디드가 추대되었는데, 이 경우도 좀 복잡하다. 후세인은 16세에 자신의 모친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미국에 귀화했다. 심지어 미군에 자원입대를 했기 때문에, 소말리아에 미군 해병대가 처음 투입된 희망 회복작전에 참여하면서 소말리아에 미군 신분으로 파견되어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모하메드 아이디드가 사망한 다음에 하브 지디르 부족에 의해서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물론 후세인도 대통령으로 인정은 받지 못했지만, 캘리포니아에서 대학을 나와 미군에 들어간 미국인인 관계로 모하메드와는 달리 소말리아를 국제사회에 편입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중.

마이클 듀란트를 납치했던 사람은 훗날 미국으로 망명해서 관련 다큐멘터리 등에 가끔 등장한다.


7.1. 훈장 수여자[편집]

영화가 배경이 된 전투 이후 미 국방부에서 병사들에게 수여한 훈장들은 영문 위키에서 확인가능하다.

마이클 듀란트는 결국 구출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군중이 아닌 그나마 이성적인 아이디드 직속 병력의 손에 넘어갈 시간을 벌었다.[34] 그리고 그럭저럭 괜찮은 대우를 받다가 11일 뒤에 석방됐으니, 결국 게리 고든과 랜디 셔거트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두 명의 델타포스 대원에겐 사후에 미군 최고의 훈장인 의회 명예 훈장이 추서됐다. 이는 베트남 전쟁 이후 21년 만에 추서된 것이었다.


8. 기타[편집]

셔거트와 고든 모두 미 해군의 수송함 T-AKR-295(랜디 슈거트), T-AKR-296(게리 고든)의 함명으로 붙었다.[35]

훗날 2002년 알 카에다의 기지중 하나에서 게리 고든의 GPS 추적기가 발견되었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동명이인인 헬기 조종사의 것으로 밝혀졌다.


[1]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피가 흐르긴 했다. 시아드 바레가 배후에 있었던 것으로 거의 확실시 되는 대통령 암살이 먼저 있었고, 그 다음이 쿠데타로 이어졌기 때문.

[2] 다로드 부족이라는 거대 부족의 일부였다. 시아드 바레는 마레한 소부족만을 지원했기 때문에 다로드 부족은 반대파에서 활동했다.

[3] 소말리아 식으로는 Duub Cas.

[4] 이 시기를 소말리아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시아드 바레 정권을 몰아내는 것은 미국 정도를 제외하면 서구권에서도 지지를 받았다. 시아드 바레 정권이 워낙에 개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이후에 소말리아 내전으로 변하면서 평가가 다시 다운된다.

[5] 소말리아의 부족은 하브예 25%, 이자크 22%, 다로드 20%, 라한웨이 17%로 이어진다. 시아드 바레가 소속되어서 중용한 마레한 소부족이나 오가데니는 다로드의 일파.

[6] 아이디드의 투옥 원인은 확실하지 않은데 '아이디드가 재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설'과 '부족주의 타파를 내걸은 바레가 하브예 부족에 영향력이 큰 아이디드 제거했다는 설'이 공존한다. 뭐 둘 다일 수도 있고.

[7] 여기에 당시 투입된 해병대 병력은 제15해병원정단, 제7해병연대와 제11해병연대 각각 1개 대대였다

[8] 이걸 점령이라고 하는데 원래 모가디슈 공항은 아이디드의 요구사항에도 나오는 것처럼 UN군 영향하에 있었다. 영화상에서 나오는 미군 본부가 바로 모가디슈 공항이며, 해병대가 철수하면서 인수했다.

[9] 누가 번역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상에서 '10번째 산'이라고 자막에 나오는 게 바로 제10산악사단이다. 스타41의 콜사인도 구분을 못해 구조헬기(…). 도대체 스타 포원을 어떻게 읽으면 저렇게 창조할 수 있는거지?

[10] 전투병력 20000, 후방 지원병력 8000으로 구성되었다.

[11] 특전사 한 개 대대급이 파병됐으나 공식 발표는 없었고, 다행히 실제 교전도 없었다. 때문에 중무장 경비부대, 5분 대기조로서의 역할이 더 컸다.

[12] 마지막까지 전차부대가 남아있었다. 추가로 앞서 설명한 안보리 결의 837호의 내용이 파라 아이디드를 체포하는 전투작전이다보니 파키스탄은 반대표를 던졌다.

[13] 아이디드 측은 여자와 아이 포함 73명 사망, 수백의 부상자로 발표했고, 미국은 남자 20명으로 발표했다. 적십자사의 발표는 54명 사망에 부상자 196명이었다.

[14] 델타포스와 DEVGRU는 팀원부족 등의 사유가 발생하면 서로 지원을 해준다. 이 작전엔 DEVGRU 소속 5명 1개팀이 참가했다.

[15] 이들의 목적은 무조건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를 체포해서 법정에 세우는 것이었다. 이게 안 되면 사살이었지만 2순위였다. 아이디드를 국제전범재판에 세운다는 것은 조너선 하우의 절대적 지론이었다.

[16] 왜 파라 아이디드부터 체포를 하지 못하냐면, 파라 아이디드를 먼저 체포해버리면 그 세력 내에 다른 간부가 지휘권을 물려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해 피라미드의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밑에서부터 올라가는 것.

[17] 영화에선 초크4의 헬리콥터로 등장한다.

[18] 영화에선 초크1 또는 초크2의 헬리콥터로 등장한다. 실제로는 엄호 헬리콥터였다.

[19] 흔히 이 건물이 목표 건물이라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주변 건물과 달리 흰색에 층수가 높은 건물이라 눈에 띄어서 일종의 표식으로 사용된 건물이고, 목표 건물의 특징이 없어서 목표 건물을 부르는 암호명으로 지정된 것이지 절대 목표건물이 아니었다. 논픽션 블랙호크 다운은 물론 각색된 영화, 심지어는 위키피디아에서도 이 건물이 목표였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다.(위키에는 설명이 부족해서 좀 혼동될 수 있다.) 사건 관련 정보나 논픽션에서는 이 건물이 일종의 기준점이고 목표 건물은 그 주변의 건물이란 언급이 엄연히 나온다.

[20] 캐리비안의 해적과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올랜도 블룸이 이 병사를 연기했는데, 후송되는 장면 이후 등장이 없다(…). 그래서 배우 팬들조차 나왔는지를 모를 정도다.

[21] 블랙 호크 다운 영화판의 무삭제 버전에서도 등장하는 장면이지만 레인저의 명예실추 등을 이유로 삭제됐다. 응사를 하지 않고 쏘지 말라고 무전을 보내는 델타 포스 대원들과 달리 무작정 쏴대는 레인저의 모습이 일품이다.

[22] 호버링 후 수직착륙이 아니라 고정익기처럼 수평비행상태로 활주로에 터치다운

[23] 모티브가 되는 인물은 폴 하우.

[24] 사우디는 UN 소속이지만 소말리아의 적으로 간주되지 않았는데 이들이 차를 타고 와서 수습하려고 하다가 그 광경을 보고 분노했다. 사우디 장교 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죽은 사람한테 왜 이런 짓을 하는거냐? 이러고도 너희가 사람이냐?" 성난군중 왈: "너희들 그 시체 건드리면 죽여버린다.그러니 그냥 가라!" - 당시 소말리아 대중들의 미군에 대한 적개심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고작 10명 정도 차량 2대에 탄 사우디군은 쫄아서 물러나야 했지만 사우디군 장교는 죽은 이를 건드리는 게 이슬람교에서도 금기시하는 거 아니냐며 욕설을 퍼부으다가 부하들이 말려서 그도 물러났다.

[25] 현장에서는 생존했지만 독일 다국적군의 야전병원에서 결국 전사한다.

[26] 파키스탄군 2명 부상, 말레이시아군 7명 부상, 1명 전사.

[27] 하지만 영화에서는 차이가 있다. 실제로 영화에서 주인공이였던 매트 에버스맨의 경우엔 맥나이트의 수송대의 험비에 탑승했던 관계로 그때 철수 명령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철수하였다.

[28] Rick Atkinson (31 January 1994). The Washington Post.

[29] 1975년 5월 12일 미국에서 캄보디아 크메르루즈 정부에게 나포된 마야게즈호의 승무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해병대를 보냈다가 정보 부족으로 41명의 미군 사상자를 비롯해 96명이 부상당하거나 포로로 붙잡힌 사건. 정작 마야게즈호의 승무원들은 다른 곳으로 이송되어 나중에 석방되었다.

[30] 1983년 레바논 베이루트 미군기지에서 자폭 공격으로 미군 241명이 때죽음 당한 것도 있지만 이건 전투라고 볼 수 없으니 제외.

[31] 실제로 폴 카가메는 권력을 잡은 뒤에도 후투족에게 직접적인 보복을 하지 못했다. 물론 일부가 총살되긴 했지만 그것도 제노사이드 재판을 열어 범법자를 처단하는 형식이었고 그나마도 악질이 아닌 일반 가담자는 전부 마을 재판으로 넘겨서 가볍게 처벌했기 때문에 그 수가 얼마 안 됐다.

[32] 그런데 이때 명령으로 아이디드를 경호한 사람들이, 불과 얼마 전 아이디드의 부하를 잡으러 갔다가 지옥을 경험한 델타포스 대원들(!)이었다. 당시 델타포스 대원들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33] Novalogic사의 게임 '델타 포스 : 블랙 호크 다운'에서는 마지막 미션으로 모가디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개고생한 주인공이 반 아이디드 세력이 시간을 끌어주는 사이에 아이디드의 비밀 벙커에 잠입하여 암살하는 것으로 나온다. 무기는 MP5SD와 클레이모어 2개와 수류탄 몇개 뿐이다. 그걸로 플레이어는 모든 것을 혼자서 스스로 해결해야한다. 들켜서도 안되며 지원 그런 거 없다. 말 그대로 Black Operation.

[34] 제3세계의 전쟁에서는 흔한 일이다. 군중을 내세워서 전투를 치른 뒤 상대편에서 중요한 인물을 포로로 잡으면 직속 부대원들을 투입해서 군중을 강제로 해산시키는 것이다. 아이디드가 잔혹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예 기본 판단력조차 없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수준의 광신자는 아니었다.

[35] 미 해군측 작명법 중에서 기록할만한 수준의 공을 세운 사람의 이름도 짓기도 하며 잘 보면 함명 중에 이등병의 이름이 붙기도 한다.

 

 

블랙 호크 다운


목차

1. 개요

2. 시놉시스

3. 등장인물

4. 영화 내 논란


4.1. 소말리아인 학살?

4.2. 무유도 로켓에 격추된 헬리콥터?

5. 기타


5.1. 짤방


1. 개요[편집]

 

현대전판 라이언 일병 구하기

 

[1]

1993년에 벌어진 모가디슈 전투를 소재로 쓴 논픽션 책과 그 책을 원작으로 하여 만든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Black Hawk'는 미군이 운용하는 헬리콥터 'UH-60 블랙 호크'[2]를 뜻한다. 'Down'은 '비행기 등의 추락'을 나타내는 영어 표현이다.

원작인 논픽션 책은 '마크 보우든'이라는 기자가 참전 병사들을 인터뷰해서 썼다. 영화에서 중점이 되는 이야기보다 훨씬 전의 이야기부터 다루며, 교전 중 포로로 생포된 마이클 듀란트의 이야기도 자세하게 나온다.

이후 영화화 과정에서 마크 보우든이 대본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으나, 재미를 위해 실제와 조금씩 다르게 각색됐고, 때문에 전개도 조금씩 달라졌다. 또한 일부 인물에 대한 설명도 다른데, 특히 델타포스 쪽이 그렇다. 전사자의 경우에는 전사자 가족 측에서 실명 사용을 허락해주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가명을 쓰기도 했고, 당시 생존해서 영화제작이 진행될 때도 복무 중인 델타포스 요원도 있어서, 이들도 모두 가명으로 대체됐다.[3] 전역자의 경우 당사자가 허락을 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명으로 대체되기도 했다[4]. 하지만 영화감독의 고질적인 암기력 문제 때문에, 비중이 있는 몇몇 인물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이름이 한 번 불리거나 한 번도 불리지 않는다.

앞서 말한 영화감독은 바로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등으로 유명한 리들리 스콧이며, 촬영 말미까지 배우 또는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의 이름을 잘 못 외웠고, 캐릭터와 배우의 이름을 혼동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촬영현장에서 화이트보드에 배우와 극중 배역 이름을 적어놓고 촬영을 했다.

제작비는 9,200만 달러. 총 흥행수입은 1억 7,300만 달러를 기록해 극장 흥행은 실패했다. 본전치기를 거두자면 2배 정도 벌어야 하기 때문. 그나마 2차 매체 시장 흥행 수익같은 추가 수익이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전투 장면은 이후 현대전을 다루는 매체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게임부터 영화, 드라마 등등 영향을 안 받은 매체가 없다. 차이점이 있다면 영화 속 미군의 장비가 점점 더 최첨단화 되어가는 정도.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가 이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무전 교신 소리, 레이더 영상 모두 《블랙 호크 다운》의 시청각적 요소를 게임 내에서 구현했다. 《블랙 호크 다운》의 OST를 맡은 한스 짐머는 모던 워페어의 후속작인 《모던 워페어 2》에서도 OST를 담당했다. 또한 위에 나온 리틀버드의 터치다운 장면을 오마쥬했다. 《배틀필드 3》의 주인공 헨리 블랙번과 《배틀필드 4》의 개리슨 대령도 이 영화에서 이름을 따 왔다.

2. 시놉시스[편집]

 

전세계 최강의 블록버스터 드림팀! 제리 부룩하이머 제작, 리들리 스콧 감독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본다(Only The Dead Have Seen The End of War)" - 플라톤(Plato)

1992년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몇년 동안의 부족간 전쟁은 대기근을 가져왔고, 그로 인해 30만여 명이 굶어죽었다.
수도 모가디슈(Mogadishu)의 통치자인 강력한 군벌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Mohamed Farrah Aidid)는 각국에서 보내온 구호물자들을 빼앗았고, 굶주림은 그의 무기였다. 세계가 이에 대응하여 미 해병대 병력 2만여 명을 투입시키자 식량은 제대로 전달되고, 상황이 호전되는 듯했다. 1993년 4월, 미해병대가 철수하자 아이디드는 곧바로 남아있던 UN 평화유지군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6월 아이디드의 민병대는 24명의 파키스탄군 병사들을 사살하고, 미군에게도 공격을 시작했다. 늦은 8월, 미국의 특수부대인 델타포스(Delta Force), 레인저(Army Rangers), 그리고 160 특수비행단(160th SOAR) 등이 아이디드를 체포하고 평화를 되찾는 임무를 받고 모가디슈로 보내진다.
원래 3주 예정이었던 임무가 6주를 넘어서자 워싱턴에선 조바심이 나게 된다.

1993년 10월, 최정상의 미군부대가 UN 평화유지작전의 일환으로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로 파견된다.
그들의 임무는 소말리아를 황폐화시키고 있는 내란과 기근을 진압하기 위한 작전으로서 소말리아의 악독한 민병대 대장인 모하메드 파라 에이디드의 두 최고 부관을 납치하는 일이다. 동 아프리카 전역에 걸친 기아는 UN에 의해 제공되는 구호 식량을 착취하는 에이디드와 같은 민병대장으로 인해 30만 명이라는 대량 사상자를 내었다.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닌 다수의 생명을 살리려는 의지를 품고 소말리아에 도착한 미국의 정예부대. 육군 중사 맷 에버스만(조쉬 하트넷 분)은 이상적인 젊은 유격군으로서 목표한 건물을 지키기 위해 할당받은 4지점 중 하나를 지휘하면서 자신의 용기와 의지를 시험받게 된다. 군사 서기관이지만 항상 모험을 동경해왔던 유격군 특수병 그림스(이완 맥그리거 분)는 이번 전투를 통해 그의 오랜 희망이기도 했던 실제 전투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작전은 10월 3일 오후 3시 42분에 시작하여 1시간 가량 소요될 예정이었으나, 20분 간격으로 무적의 전투 헬리콥터인 '블랙 호크' 슈퍼 61과 슈퍼 64가 차례로 격추되면서 임무는 '공격'에서 '구출'과 '생존'으로 바뀌면서 절박한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고립된 젊은 유격부대와 베테랑 델타 부대원들은 구조 호위대가 그들을 찾으러 올 때까지 18시간동안 폐허가 된 모가디슈의 한 구역에서 부상당한 채 갇혀있어야 했다. 도시 전체는 미군이 완전무장된 소말리아 민병대로부터 공격을 받으면서 완전 쑥대밭이 된다. 극도의 팽팽한 긴장감과 전우를 잃어버린 허탈감 속에서도 군인들 사이에선 서로간의 협조가 이루어지고 전우애와 인간애의 진정한 면모를 배우게 되는데.

 

3. 등장인물[편집]

4. 영화 내 논란[편집]

4.1. 소말리아인 학살[편집]

영화는 모가디슈 전투에 투입된 미국 군인들의 전우애와 고생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지만,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자막으로 올라가는 말 한마디가 미군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게 만들었다.

 

이 전투에서 19명의 미군과 천 명이 넘는 소말리아인이 사망했다.


이 부분은, 미군의 우월한 전투력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 전장의 모두가 피해자라는 의미가 강한 문구이다. 지적 수준이 낮은 단편적인 관객들은 이 문구를 보고, '미군들이 소말리아인들을 학살했다.'라고 생각하지만, 작중 표현되는 여러 사건들을 보면, 이 모가디슈 전투는 영웅도, 가해자도, 학살자도 아니다. 모두가 피해자이다.라는 메시지가 거듭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그 전에 이 소재는 소말리아 반군을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절대 선인 미군은 이 악마들을 퇴치하며 구원하는 영웅을 만들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5]

하지만 이 영화는 미군을 영웅으로만 만들지도 않았고, 소말리아 반군을 선역만 맡기지 않았다. 전후사정을 알고 나면, 특히 파라 아이디드의 마약 선동과 학살, 그리고 아프리카의 뿔이 현재 세계 최악의 막장 오브 더 막장 국가가 된 원인이, 파라 아이디드와 더불어 무장세력들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아프리카의 막장 상황의 책임이 독재자들에게도 있지만, 그 이전에 아프리카 국가들을 지배했던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책임이 크다는 점, 미국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2차대전 후 세계질서를 제 1 세계와 제 2 세계, 그리고 제 3 세계로 규정내려 그들의 정의로 세계를 둘러싸고 제 2 세계의 주축이 된 소련과 함께 세상을 좌지우지하면서, 미국에게 직접적 위협이 되지 않는 제 3 세계의 독재자들에게 무관심하거나, 때로는 제 1 세계의 부강을 위해 한편을 먹기도 했다는 점 등을 들면, 미국을 항상 정의를 표방하는 국가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국가는 국민의 이익이 제 1 순위니까. 다만 20세기 열강 출신 국가중 미국처럼 고통받는 약자를 위해 의도야 어찌되었든 자국의 청년들의 피를 기꺼이 흘리게 하는 나라는 없다. 상술했듯, 국가란 국민이 제 1 순위인데 누가 자국민의 피를, 그것도 한창 창창한 국가발전의 주축이며 국가의 향후 100년의 흥망성사를 결정할것이고 값비싼 공교육을 받아가며 노심초사 키워온 20대를 전쟁터에 내보내는가? 그 어느나라 정치인이 미쳤다고 유권자들의 아들 딸을 전쟁터에 내보낼까? 그 어느나라 국민이 미쳤다고 병역거부를 안하고 기꺼이 전쟁터에 나가 싸우고 그걸 자랑스러워 할까? 이 세가지를 다 따지면 반미 계열 인사들이 마르고 닳도록 부르짖는 무기판매 계약서나 유전 개발권리 계약서같은 하찮은건 덤프트럭으로 쏟아부어줘도 모자라다. 근데 미국은 많은경우에, 자국에 이익이 되는가 판단하여 사실 손해더라도 어느정도 해볼만 하다 싶으면 그런짓을 기꺼이 한다.

유럽이 난민을 받는 가장 큰 이유가, 제 3 세계를 개판으로 만들어놓은데에 대한 배상적인 개념인데도 불구하고 2016년 현재 유럽은 이슬람 난민들의 부적응으로 촉발된 몇몇 사태로 인해 유럽이 몸살을 앓는다며 극우정당에 투표나 하고 앉아있다. 이들이 UN 치안유지활동에 힘을 크게 쓰냐구? 절대 아니다. 오히려 아무 상관없는 미국이 UN 파병에서도 항상 1순위고, 경제원조도 1순위고, 에볼라와 AIDS의 아프리카 침략도 미국이 주축이 되어 막고있다. 이 모든걸 다 따져보면 미국이 침략자니 제국주의자니 하는건 옆동네 바둑이가 짖는 소리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을정도다. 이타적이고 가면 갈수록 폐쇄적으로 변하는 세계에서, 미국을 세계의 경찰로 만든 독트린이 끝난지 오래임에도, 여전히 미국은 제 3 세계에 힘을 쏟는 국가중 주축을 담당하고 있음을 섣불리 비판하기전 알아야 한다.

일단 민간인 학살에 대해 확실한 점은, 1,200명이 넘는 소말리아인 중 상당수가 아이디드 세력에 의해 아이디드 세력의 방패막이로 전락한 민간인이라는 점이다. 더군다나 여기에 어린이가 껴있으며, 뭣도 모르고 총을 들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파라 아이디드의 극악무도함에 기함(氣陷)할 수밖에 없다. 다만 종교적으로 감화된 것일 수도 있다. 미군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르게, 이전부터 아이디드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은 미군에게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도 비슷하게 재연됐다. 당시 소말리아 민중들은 수차례 벌어진 미군과 UN군의 민간인 오폭 때문에, 미군 쪽에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아이디드 세력에 합류했거나, 혼자서 미군을 공격한 민병대라는 지적도 있다. 많은 제3세계 국가에서 민중들은 독재정권과 외세를 둘 다 배격해오곤 했다. 그래서 그놈이 그놈이라는 인식을 극복하는 것이 게릴라전의 첫 번째 과제이다.

그리고 미군 측의 18명은 전사자이며[6], 부상자는 자그마치 84명이다. 사실상 1개 중대가 궤멸 당했다고 봐도 무방한 손실 규모다.

그나마 가져간 탄약량이나 장비 수준에 비하면, 아이디드 세력과 여기에 동화된 민병대 세력을 상대로 양호한 전투력을 발휘했다는 점이 위안일지 모르겠다. 상부는 개삽질을 했을지언정 병사 개개인은 우수했다는 것일 테니. 특히 책에 묘사된 델타 포스의 전투력은 엄청나다. 포어맨이라는 델타포스 대원은 험비를 몰면서 속도를 낮추지도 않고 한 손으로 무기를 발사해 세 명을 쏴 맞힌다.

영화 크레딧이 나오면서 같이 나오는 게리 고든 상사의 편지가 감동적이다.

 

My love, you are strong and you will do well in life. I love you and my children deeply. Today and tomorrow, let each day grow and grow. Keep smiling and never give up, even when things get you down. So, in closing, my love… Tonight, tuck my children in bed warmly. Tell them I love them. Then hug them for me and give them both a kiss good night for daddy.

내 사랑, 당신은 강하니깐 인생을 잘 이겨낼 거요. 당신과 아이들을 깊이 사랑하오. 오늘도 내일도, 나날이 쑥쑥 자라려무나. 사는 게 힘들다 해도, 항상 웃으며 살고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마지막으로 내 사랑… 오늘밤, 아이들을 따뜻하게 재워요. 그리고 애들에게 내가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그리고 날 대신해서 애들을 안아주고, 아빠를 대신해서 두 애들에게 뽀뽀도 해줘요.

4.2. 무유도 로켓에 격추된 헬리콥터?[편집]

영화에서처럼 무유도 발사체로 저공에서 고속으로 날아다니는 헬리콥터를 한방에 맞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실감이 안난다면 배틀필드를 해보자. 다 빗나간다.

모가디슈 전투에서 아이디드파가 헬리콥터를 맞히려고 RPG를 미친 듯이 쏴댔는데, 화망구성을 해놓고 수백 발을 쐈지만, 추락한 헬리콥터는 겨우 두 대뿐이었다. 물론 그 전에 101공중강습사단 소속 헬리콥터를 RPG-7 한 방에 맞히면서, 민병대가 이런 미친 짓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이런 시도를 하게 한 결정적인 원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총은 사람만 쏘라고 있는 물건이 아니다. 하물며 무기시장에 중기관총 세워둘 삼각대 하나 없을까? 복잡한 시내에서는 대공용 기관총이 옥상에만 있는 게 아니라 골목길에도 있기 때문에, 사격 방향을 확인하고 회피기동의 기준을 그곳으로 맞춘다는 게 힘들다. 총알이 한두 군데서 날아오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몇 발 맞고 방탄 성능으로 버티면서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을 하다가, 막무가내로 쏴대는 로켓포가 우연치 않게도 블랙호크를 맞혀서 떨어뜨린 것. 그것도 한 대가 아니라 두 대씩이나….

여기에다가 이미 지상에서 뭔가를 계속 태워[7]하늘은 새까맣게 변했고, 그래서 조종사들이 시야를 제대로 확보할 수도 없었다. 연기 뚫고 맞은편으로 나오니까 눈앞에 RPG-7 로켓들이 미친 듯이 하늘로 솟구치니 피할 방도가 없었다.

전투 이후, 아이디드 세력은 기존에 보유한 RPG 로켓의 재고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다른 세력과의 전투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운 좋게 명중시키긴 했어도, 맞히긴 더럽게 힘들긴 매한가지였던 모양이다. DVD에 실려 있는, 당시 전투 참전용사의 음성 해설을 들어보면, 헬기를 명중시키려 쏜 로켓을 직접 본 것만 500~600개는 된다고 한다. 그래서 투입된 모든 헬리콥터가 이미 총탄에 엄청 피격된 상태라 재투입을 할 수 없는 헬기도 있었고, 로터에 맞아 연기를 내뿜는 헬기도 있었다.

그리고 이외에도 후폭풍 문제도 빼놓을 수 없는데, RPG-7을 하늘을 향해 들면, 후폭풍이 땅바닥에 반사되어 사수를 덮치게 된다. 그러니 영화처럼 쏘면, 당연히 뒤에 있는 사람과 함께 사수는 저 세상 사람이 된다. 이렇게 되면 땅에서 어떻게 쏘느냐가 문제가 되는데, 민병대는 땅에 후폭풍을 받아줄 구덩이를 파놓은 다음, 일정한 지점에 화망을 구성했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쏘는 방법은 원래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CIA 요원들이 탈레반에게 전수했던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탈레반은 다시 아이디드 파에게 전수했으며, 시간이 흘러 아이디드 파는 이 방법으로 미국 헬리콥터들에게 대항하였다.

딴지일보의 이재진 과학전문기자가 자신의 책 《과학 교과서, 영화에 딴지 걸다》 초판에서, 이 RPG 사격장면이 말도 안 되는 구라라고 했다가 가루가 되도록 까인 다음에 수정했다는 훈훈한 미담이 있다. 솔직히 이재진 기자가 건 영화의 오류 지적이 오히려 오류인 경우도 엄청나게 많다.

또한 영화에서는 슈퍼 61과 슈퍼 64만 RPG에 피격당하고, 슈퍼61의 추락지점까지 CSAR 팀을 수송했던 슈퍼 68이 소총탄에만 피격당한 것으로 나오는데, 책에서는 슈퍼 61, 슈퍼 64뿐만 아니라, 슈퍼 68 역시 RPG에 피격당해서 메인 로터 덮개와 엔진 냉각 시스템이 고장 나, 기지에 60노트의 속도로 불시착해야 했다. 또한 게리 고든과 랜디 슈거트를 슈퍼 64의 추락지점에 내려준 슈퍼 62도, 상공에서 지원사격을 하고 군중들의 접근을 저지하던 중 RPG에 피격당해 아군 지역에 불시착했다. 게다가 고립된 병사들에게 식수와 탄약 등을 보급해주기 위해 호버링하던 슈퍼 66 또한 피격 당했다.

5. 기타[편집]

방심하면 강자도 약자에게 당한다는 게 이 영화의 교훈. 또한 전쟁의 실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이 조국의 명예 같은 것에 연연하는 영웅들의 모습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영화 초반부를 보면, 레인저 대원들이 작전이 짧게 끝나니까 식수나 필수장비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전쟁터에선 어떤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 철칙이다. 그때 가서 후회하면 이미 총 맞고 질질 짜는 상황일 것이다.

영화에서 듀란트가 생포되기 직전까지 가져가려고 애를 썼던 가족사진은 사실 후트 역을 맡은 에릭 바나의 것이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추락한 블랙호크의 잔해를 소이탄으로 폭파하는 장면이 나온다.[8] 이는 기밀 유출 방지를 위한 것이다.[9] 이 전투에서 사용된 블랙호크는 최신형 MH-60K로, 원래는 야간 침투 작전을 위한 기종이었다.

영화에서 조이스가 방탄복 등 쪽에 들어가는 방탄판을 빼고 출전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착용한 방탄복은 방탄판 없이도 9mm 권총탄까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민병대는 소총을 사용했다. 그리고 영화에서 결국 조이스는 나중에 등 쪽에 총을 맞아 죽는다. 책에서는, 나중에 조이스의 방탄복을 벗겼을 때, 그의 등을 관통한 총알이 앞쪽 방탄판에 박혀있다고 나온다. 개리슨 장군의 "30분" 발언도 JSOC가 방심하게 된 데 한 몫을 한다. 금방 끝나니까 이번에도 아토를 체포할 때처럼 쉬울 것이고, 그래서 가볍게 뛰어다니려고 탄약이나 식수를 챙기지 않았다. 실제 모가디슈 전투에서도 야간투시경 등은 실제로 대부분 빼놓고 갔다.[10]

영화에서는 5.56mm탄이 사용되는데, 이게 마약 먹은 민병대에게 약빨이 잘 안 먹혀서, 7.62mm탄을 다시 써야 하나 검토했다고 한다. 방탄복을 입은 상대를 상정하고 제작한 탄환인데, 맨몸에 쏘니 충격을 안 받고, 관통되거나 또는 충격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 민병대가 공격했기 때문.[11] 당시 전사한 델타포스 대원 중 한 명인 랜디 슈거트 중사만은 7.62mm 탄을 쓰는 M14를 사용했는데, 평소에 동료들이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M14를 쓴다고 놀렸으나[12], 이 전투 후에는 하나같이 "사실은 그가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이 영화를 보고 소말리아의 석유를 점령하려고 했던 미국의 패권주의적 야욕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더 어이없는 건, 해당 영화를 자국 찬양영화라고 까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블랙 호크 다운 이전에, 미군이 해병대 2만 명을 철수시켰던 것 따위는 관심도 없을뿐더러, 당시에는 소말리아에는 석유가 없었다[13]는 점을 모른다. 정말 미국이 소말리아의 석유를 노리고 온 것이었더라면, 애당초 아이디드를 잡으려고 하기보다는, 손잡고 뒤에서 이것저것 지원하면서 석유개발을 진행시키는 게 훨씬 빠르고, 간편하고, 안전한데다 국제적인 주목도 적게 받는다. 실제로도 미국, 러시아 같은 강대국들은 이전부터 북아프리카, 중동 쪽의 독재정권에게 알게 모르게 이런 협력관계를 많이 만들어두기도 했다. 예외라고 해봐야 주변 3강국+북한 말고 신경 쓸 여력이 전혀 없는 한국[14]이나 과거사 문제 때문에 기본적으로 대외관계 자체가 극히 소극적인 독일과 완전중립국 스위스 정도.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만든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영국인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 이하 《블랙 호크 다운》 촬영에 참여한 스탭들은, 또 다른 미국우월주의 영화 운운하는 소리에, 영화를 뭐로 본 거냐고 매우 분노했다고 DVD 스페셜 피처에 담긴 인터뷰에 나온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소말리아에서 미국이 패권주의처럼 보인 것은 결과물에 가깝다. 애초에 하는 짓이 일반적인 미 패권주의의 양상과 전혀 다르다. 소말리아의 미군을 보고 패권주의라 비난하는 사람은, 그냥 미군이 투입되면 패권주의라 주장하는 사람일 뿐이다. 소말리아에서 패권주의 짓을 했다기보다는, 이미 이미지가 소말리아 내부에서 이미 굳어지고 있었고, 이게 아이디드와 미국의 전쟁을 소말리아와 미국의 전쟁처럼 만들었다. 다만 어느 나라든지 자국의 일에 타국가가 간섭하는 걸 좋아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 나라의 이미지가 자국에서 매우 좋지 않을 경우, 그에 반대하는 세력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것을 수습하지 못하고, 그냥 강자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다루려고 한 것은 패권주의라고 넓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실제 민간인 사살이 종종 벌어졌다. 독재자 아이디드를 체포하려는 와중에 실수로 생긴 일이지만[15] 민간인을 오폭한건 소말리아인들에게 많은 반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설상가상 그렇게까지 하고도 결국 아이디드를 못 잡았다. 그러니 소말리아 민중들의 초기 지지가 적대감으로 돌변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똑같이 폭력적인 두 군사조직이 있다면, 민중은 자신들과 더 가깝고 닮은 쪽을 편들게 된다.[16] 이건 대(對)게릴라전의 철칙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마크 보우든의 원작 논픽션에서는 꽤 자세하게 다루었으나, 정작 영화에서는 사건 자체에 집중하느라 다루지 못했다. 영화에서는 시간상의 문제로 초반에 자막으로만 간략히 나온다. 이 부분은 《블랙 호크 다운》 영화에 대한 비판점이기도 하다. 사실 영화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도와주러 온' 미국군을 소말리아 민중들이 앞장서서 죽이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자칫하면 소말리아 민중들이 멍청해서 저런다로 보일 수도 있다. 해당 작전 바로 전에 있었던 아이디드 소탕 작전에서 아이디드는 잡지도 못하고 민간인 60명을 사살해버린 건 초창기 미국을 지지하던 민중들을 등 돌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군 입장에선 좀 억울한 점도 있는 게, UN 평화군이 군벌들의 지속적 테러에 빡쳐서 공격헬기로 시장터를 밀어버린 사건도 미군이 뒤집어 쓴 일화도 있었다.[17]

슈퍼 61의 생존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던 리틀버드 스타 41이 활짝 열린 개활지에 착륙하는데, 이는 사실상 자살행위다.[18] 책에서는 조금만 움직여도 메인 로터가 벽에 부딪칠 것 같은 좁은 구석에 착륙했다. 또한 영화에서는 험비의 기관총 사수 도미닉 필라가 전사하는 장면에서, 민병대가 RPG를 쐈다가 험비는 못 맞히고 민병대를 끔살시켜버렸다. 이건 오사라기보다는 험비가 운 좋게 피했다에 가깝기는 하다.

여담으로, 이 항목은 오랫동안 영화 《블랙 호크 다운》과 모가디슈 전투의 내용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었고, 《블랙 호크 다운》 항목인데 영화 내용은 거의 없는 진풍경이 펼쳐졌지만, 모가디슈 전투 항목이 신설되면서 실제 역사에 집중한 내용들은 그쪽으로 옮겨갔다.

당시에는 별로 인지도가 적었지만 지금은 인지도가 높아진 단역들이 몇 있다. 트로이, 뮌헨으로 유명해진 에릭 바나, 그리고 톰 하디, 올랜도 블룸이 대표적. 저 문장이 적힐 때까지도 한국엔 무명이던 니콜라이 코스테르발다우도 이후 왕좌의 게임으로 유명해졌고 그 외에도 제이슨 아이삭스나 이안 그루퍼드[19]처럼 꽤 이름 있는 배우들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5.1. 짤방[편집]

위 장면은 마이크 스틸 대위가 자신을 성대모사하며 놀린 필라를 데려다가 경고하는 장면이다. 헤드락 당하고 있는 인물이 도미닉 필라 병장으로(순직 이후 하사로 승진), 이 작전 당시 영화에서도 그랬지만 실제로도 최초 전사자였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자기를 성대모사하며 놀렸던 필라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스틸 대위가 비통해하기도 했다. 또한 실제 작전 당시에도 스틸 대위 휘하의 부하들이 너무 많이 전사하여 슬픔을 감추지 못하였다.
영화 초반부에서 도미닉 필라 병장은 저렇게 헤드 락 당해 끌려가면서도 오른손으로 fuck you 모양을 만드는 등 개그 캐릭터였는데 가장 먼저 사망하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그 충격이 배가 되었다.
패러디 예시

파일:attachment/블랙 호크 다운/GRYB.jpg
이 영화가 남긴 짤방 2. 참고로 원래 대사는 아토를 잡았기에 아이디드가 곤경에 처할 것이란 것으로 전혀 다르다.

참고로 마이크 스틸 대위 역의 배우는 제이슨 아이작스란 영국배우로, 주로 악역 전담을 많이 했는데 실제로는 가정적인 역도 많이 했다. 사악하기 그지없는 역할이 뇌리에 강렬해서인 듯하다. 요즘 세대에게 유명한 작품을 뽑으라면 말포이의 아버지인 루시우스 말포이. 하지만 네이버 프로필 사진을 보라. 동일인으로 안 보인다. 여기에서는 죽은 병사를 슬퍼하는 훈훈한 장교 역을 연기한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성질은 조금 더러워 보이더라도 부하들을 아끼고 솔선수범하는 알고 보면 좋은 양반의 표본.


[1] 영상 중간에 RPG를 오드리 진으로 번역했다.

[2] 엄밀히 말하면 일반 블랙 호크가 아니고, 특수전용으로 개조된 MH-60 계열이며 'Pave Hawk'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3] 가령 폴 하우 라든가

[4] 예를 들어 이완 맥그리거가 연기한 행정병의 본명은 스테빈스였지만, 전역 후 페도필리아 혐의로 교도소에 가는 바람에 '그라임스'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5] 보통 영화는 소재가 되는 당국의 눈치를 봐야한다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레벨이 되는 선에 한해서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쉽게 말해, 미국 헐리우드가 중국 눈치는 볼 수 있어도 지구최빈국이자 정치적 영향력은 0이 아니라 마이너스를 파고드는 소말리아따위는 애초에 무시해도 상관없었다는 것이다.

[6] 영화에서는 19명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 한 명은 매트 라이어슨이라는 델타 요원으로, 저 사건으로부터 이틀 후 쯤에 민병대가 미군 기지에 실시한 박격포 공격으로 사망한 것이다.

[7] 영화에서는 미군이 타이어를 왜 태우냐고 동료에게 물었다.

[8] 실제로는 C4를 비롯한 전용 폭약을 사용했다. 소이탄의 위력이 강하기는 하지만, 블랙호크 기체를 제거하기에는 화력이 약하다.

[9] 사실 적에게 노획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신 기체가 아니더라도 가능하면 이렇게 폭파하며, 굳이 항공기가 아니더라도 전투불능 상태가 된 장갑차, 전차 등이 모두 처리 대상이 된다.

[10] 이 부분은 영화로도 표현되었는데, 존 스테빈스(영화에서는 존 그라임즈)가 물을 챙기려 하자 넬슨이 챙길 필요 뭐 있냐며 곧 돌아올건데? 라고 말했으며, 그 외에 야시경을 챙기려 했을 때도 툼블리가 어두워지기 전에 올 거라며 맥주나 챙기라는 소리를 했었다.문제는 그 말을 옆에서 들은 귀 얇은 에드워드 유럭 하사도 그 말 듣고 야시경을 두고 갔다가 후에 만난 넬슨&툼블리 두명을 만나서 이에 관련된 '야시경 두고 온 거 니 때문임ㅋ'이라며 개그 토크를 했다는 거...... 또한 실제 사망한 케이시 조이스의 경우도 무겁다며 뒷쪽 방탄판을 빼면서 무겁다며 '곧 올건데 뭐?' 이랬다가 결국은 등에 총을 맞으면서 전사하고 말았다.

[11] 원작에서 5.56mm 탄약의 탄두에 텅스텐 관통자가 쓰인, '그린팁'이라는 신형 탄약이 당시에 사용되었다고 언급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당시 쓰인 탄약이 대인용인 M855가 아니라, 철갑탄 계열인 M995이었을 것이란 추측이 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원작의 설명대로라면, 당시 쓰인 탄약은 대인용인 M855가 맞다. M855는 탄두끝이 녹색이며, 실제로 텅스텐 관통자가 쓰인다. M995는 탄두 끝이 흑색인 블랙팁이다.

[12] 소설 언급에 따르면 혼자서 베트남전때나 썼던 무기를 쓴다며 놀렸다고 되어 있었다. 다들 신형 화기를 쓰고 있는데 혼자서 구형 화기를 쓴다고......

[13] 정확히 말하면 개발된 석유자원이 없다. 지정학적 위치상 석유자원이 있을 가능성은 있었으며, 1980년대에 U.N./세계은행의 공동 조사결과에 따르면, 앞으로 산유국이 될 가능성이 2위로 높은 나라였다. 참고로 1위였던 수단은 이미 1999년에 산유국이 되었다. 2008년에는 소말리아 국영 석유 회사도 설립되었기에, 이젠 소말리아도 산유국이 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14] 한국 말고도 주변이 불안정한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해외에서 자국민을 보호하는 문제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대신, 자국민이 막장 짓을 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15] 아이디드가 있는 줄 알고 건물에 포격을 퍼부었는데, 나중에 보니 민간인들만 있었다거나….

[16] 당장 한국만 해도 갑신정변 당시 개혁파들이 끌고 온 일본군에 대한 민중의 반발심이 상당해서, 청군이 들어오자 백성들이 길에서 환영행사를 벌이기도 했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17] 이 사건은 프랑스군이 주도한 작전이었다.

[18] 참고로 영화에서 이 장면을 촬영했던 헬기 조종사 중 한명이 실제 참전했었던 키스 존스 본인이었다.

[19] 초반에 간질로 본국에 후성된 빌즈 분대장.

[20] 사실 자막은 오역이 있다. 원래 대사는 "Cause if I ever see you undermining it again, you'll be cleaning latrines with your tongue til you can't taste the difference between shit and French fries."로 해석하자면 "한번만 더 날 웃음거리로 만들면 똥과 감자튀김의 맛이 구분이 안 갈 때까지 혀로 변소를 닦게 해주마"라는 의미.

 

 

나바론의 요새


목차

1. 개요2. 스토리3. 등장인물4. 그외


1. 개요[편집]

원제는 The Guns of Navarone.(직역하면 나바론의 대포들)
1961년 최고 흥행영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작가는 여왕폐하의 율리시즈호의 작가인 알리스테어 맥클린(Alistair MacLean,1922~1987). '미군만세!!'인 헐리우드 영화들과 달리 영국 작가의 원작답게 영국군의 활약을 그린 2차대전 전쟁영화다. 감독은 J. 리 톰슨. 제작사는 콜럼비아-트라이스타 픽쳐스. 당시로서는 저렴한 제작비인 600만 달러로 만들어졌고 2900만 달러 가까운 흥행을 거둬들였다.

캐스팅은 하나같이 당대의 톱스타들인데다가 주인공 맬러리 대위 역의 그레고리 펙이 굉장한 미남파워를 뽐낸다. 특공대 영화류의 걸작인데다 일종의 모델이 되어 특수부대 대위, 엔지니어, 군인 등등 개성넘치는 인물들이 소수로 잠입하여 다 때려부수는 영화류에 큰 영향을 끼쳤다. 50년이 훌쩍 넘은 지금 다시 봐도 재미있는 고전 전쟁영화의 명작이다.


2. 스토리[편집]

2차대전 당시 그리스 케로스 섬에 포위된 영국 육군 2천명을 구하기 위해 영국 해군은 함대를 파견하지만 나바론에 있는 최신형 레이더 연동 요새포에 막혀서 구원선들이 격침당한다. 구원선들도 최소한 구축함이었지만 영화 속에 묘사되는 독일군의 요새포는 영락없는 구스타프 열차포라 화력면에서도, 방어력면에서도 너무 딸려서 이 대포를 없애지 않으면 섬에 접근도 못하는 상황이다.

비행대를 동원해 나바론을 폭격해 봤지만 절벽 중간에 터널을 만들고 포격시에만 장갑셔터를 여는 구조로 만들었는지라 항공대는 치를 떨면서 임무를 거부한다. 영화 첫 시작이 그래도 결국 강제로 임무를 수행한 항공대가 전멸하고 부상병들이 실려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1] 결국 특수임무를 수행했던 맬러리 대위에게 임무가 배당되고 소수의 특공대가 나바론으로 파견되는데...

일단 실제 역사를 어느정도 반영했다. 다만 영화처럼 특공대가 출동하지는 않고 그냥 고립된 영국군이 싸그리 항복하는 것이 실제 역사다. 현시창


3. 등장인물[편집]

키스 맬러리 - 그레고리 펙이 분한 장거리 사막 전대에서 특수임무를 수행하던 대위. 원작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질랜드 출신의 산악인이다. 이름이 영국 이름답지 않은데 영화에서는 그냥 닥치고 영국인이다. 실존인물인 에베레스트 등정대장인 조지 말로리가 연상되는 캐릭터이다. 지난 임무를 끝으로 그리스 전역에서 떠나서 다른 임지로 가려고 했지만 마지막으로 맡은 임무가 나바론 요새의 폭파가 되었다.
특수임무 수행자라 그런지 독일어는 물론 그리스어 등에도 유창하며 특공대에 들어온 이유가 전쟁전에 유명한 암벽 등반가였기 때문에 나바론으로 가는 절벽등반로를 개척하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원작에서는 국제적으로 너무 유명한 등반가였기 때문에 변장한 상태에서 독일군에게 정체가 걸렸다. 뭐여 아무리 까면 까라는 군대라지만 너무하잖아?
솔직히 그레고리 펙이 너무 잘 생겨서 특수임무 수행자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윌리엄 홀덴이 캐스팅되었지만, 출연료를 많이 요구해서 바뀌었다. 그레고리 펙은 촬영장에서 시나리오 작가에게 이런 농담을 던졌다. "이건 비극적인 게이 영화같군요. 맬러리는 스타브로스키를 사랑하고, 밀러는 프랭클린을 사랑하지만, 마지막에 스타브로스키는 마리아와 맺어지고, 맬러리는 밀러와 맺어지네요." 그러자 시나리오 작가는 "이런, 눈치챘군!"

안드레이 스타브로스키 - 저 유명한 안소니 퀸이 분한 그리스 레지스탕스 대원. 원래 그리스군 대령 출신이다. 키스 맬러리가 이전에 수행한 임무때문에 독일군의 보복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잃게된 악연이 있고 네놈은 내가 죽이겠다고 공언한 사이다. 하지만 왠지 히이로 유이가 떠오른다. 날 죽이러 와요 키스 맬러리 못지 않은 굉장한 사격 솜씨로 작중에서 일당백을 상대한다.

밀러 하사 - 데이빗 니븐이 연기했다. 역시 그 당시에는 톱스타였지만 어떻게 봐도 미스 캐스팅. 키스 맬러리보다 늙어보이고 심지어 스타브로스키보다도 연장자로 보이는데 하사다. 원작에서는 까칠한 미국인인데 영화에서는 그냥 영국인으로 나온다. 실제 나이로도 두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고 한다. 원작에서는 영국 공군에서 근무하다 파견된 캐릭터다.
작중 별명은 프로페서. 폭약 전문가이기 때문에 특공대에 가담했다. 원래 굉장한 실적과 학력으로 장교가 되는걸 제의받았지만 '저는 책임지는거 싫은디요.' 하면서 장교가 되는걸 거부했다고 한다. 그렇게 따져도 할아버지 상병이라니! 다른 영화에서 별명이 '프로페서'인 만능 엔지니어가 나온다면 이 캐릭터의 오마주이다. 이전 대사를 통해서 전쟁 전에는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고 프랭클린과 절친이라고 한다. 절친을 속임수로 잡히게 한 일때문에 맬러리에게 앙심을 품는다. 후술할 안나에 대한 처리를 두고 맬러리와 하는 설전은 영화의 명장면이다.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의 고민을 담는다는 점에서 격조높은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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