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自我, EGO) 스펙
여기 무적의 캐릭터가 있다.
당신이 그것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당신을 규정했고, 그것은 곧 당신 그 자체다.
그것은 당신의 모든 생각의 주체이나, 당신의 생각으로부터 나왔으며, 당신 생각 안의 모든 것에 대한 원인이 된다.
당신은 결코 그것을 더 만들 수 없고, 어떠한 생각으로도 지울 수도, 죽일 수도 없으며, 그것을 지우면 당신이라는 것도 지워지고, 그것을 죽이면 당신이라는 것도 죽는다.
그러한 무적의 캐릭터가 정말 있을까?
있다. 바로 당신의 자아다.
그것은 생각으로부터 나왔으나 생각의 모든 것이 그것으로부터 나왔고, 생각 속 다른 모든 것과 스스로를 구분할 수 있다.
내가 내 자아보다 강한 것을 생각해도 내가 그것을 이기길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기고 부수고 없앨 수 있으니 나, 곧 자아는 내가 만든 다른 어느 캐릭터보다도 강하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의 자아가 캐릭터란 말인가?
우리는 소설이나 연극 따위에 등장하는 인물. 또는 작품 내용 속에서 드러나는 인물의 개성과 이미지를 캐릭터라고 한다.
소설, 영화, 연극, 만화 등은 결국 작가의 생각 속에 이미 있는 대상을 외부에 보여주기 위하여 그것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이야기와 배경, 캐릭터는 이미 창작자의 머릿속에 존재하고 다만 그것을 글, 그림, 영상, 소리로 '담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대상이 소설이나 연극에 등장하기 위한 조건은 시시하게도 단 하나인데, 작가가 그것을 생각할 수만 있으면 된다.
고로 자아는 그 자체로 캐릭터가 된다. 왜냐면 자아의 정의는 '자기 자신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아를 모티브로 했다거나, 자아의 아바타라거나, 자아의 모습을 투영한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아니다.
우리의 자아 그 자체가 이미 우리가 만든 하나의 캐릭터다.
인간의 자아는 대략 15개월 경부터 나타난다. 갓 태어난 유아는 자신과 세상을 구분하지 못하는데, 15개월 이후부터는 세상과 자기 신체를 구분하면서 신체적 자아가 출현한다. 그리고 15~24개월부터 아기는 자신의 이름을 통해 자신을 알게 되며 내 것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자아가 '나타난다'는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자아가 없었던 시절엔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자아가 없었던 시절의 나도 분명 생각의 주체였다. 나는 감각을 느끼고 욕구를 표현하며 이해의 범위를 넓혀나갔다. 그래서 필자는 '나'라고 하는 것은 본래 존재했으나, 15개월 이전의 인간은 나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고 그것을 인지하여 이름 붙인 것이 자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그저 필자의 견해일 뿐, 자아는 아직 현대과학으로 그 실체를 완전히 밝혀내지 못했기에 아쉽게도 우리는 자아의 본질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자아의 실체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대상으로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실체로서의 정합성이 규정되지 못했을 뿐이라면, 이는 없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이해되지 못한 것에 불과하다.
설렁 자아가 우리가 만들어낸 존재하지 않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러한 허상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모든 허상들 중 최강의 허상일 것이다.
그렇기에 자아는 한 인간이 만들, 만든, 만들 수 있는 가장 강한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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