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맞이대회] (소설) 녹아버린 어린 시절의 겨울
소설이지만 자전적인 이야기이며 코로나 시대, 스마트폰 중독 등 요즘 애들 볼때 저때의 '낭만'이 안느껴진다는 꼰대 마인드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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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타를 믿지 않은건 꽤나 빨랐던 것 같다.
그러나 아무렴 어떠냐, 누구나 크리스마스는 기대됐다.
산타의 정체가 부모님인걸 알았어도, 역할놀이처럼 일부러 가상에 몰입하고는 했다.
그러면 정말 산타가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정말로 산타를 믿던, 나보다 유치했던(?) 아이들 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뭐랄까... 비유하면 종교에서 진심의 차이와 비슷하다 볼수도 있지 않을까.
정말로 날때부터 신을 믿는 사람과, 신이 없다고 생각해도 다양한 이유로 믿어보려 노력하는 사람의 차이.
전자 만큼은 아니어도 의도적인 몰입도 의미가 있다.
나는 축제의 전통이나 의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일부러 몰입하려 노력했다.
연인에겐 고백을 하는 날일수도,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 없는 날일수도 있다.
어린 아이인 나로서는 선물을 기다리는 날.
그것이 사회가, 시대가 나'들'에게 바라던 모범적인 즐기는 자세였을 것이다.
이제와서 옳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추석도 반드시 송편을 만들었고, 명절이나 축제는 그때그때의 의미를 살리려 노력했다, 우리 가족은.
내가 어른이 되며 더 이상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지 않게 됐다.
추석 때 더 이상 송편을 만들지 않고 친척끼리도 잘 모이지 않게 됐다.
추석, 설날이야 지금 할머니도 요양병원에 계시고 자연스레 친척들도 와해된 것이다.
부처가 말했듯 누구나 살고 죽는 과정, 생로병사 중 하나인 '로'이다.
허무하지만, 어른들이 늙고 죽어가는 건 당연한 이치기에 이유를 알긴 안다.
부모님 세대도 전부 돌아가시면 우리는 또 부모가 되어있을테고 그땐 지금 당장은 친한 사촌은 커녕 형제도 볼까말까 하지 않을까.
그러나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지 않는건 결이 달랐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하는 등의 이유로 더 이상 만날 이유가 없어지는 것과 다른 문제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다시는 어린시절처럼 즐길수 없는 것인가.
내가 어른이 되고, 그저 휴일에 불과한 날이 된 것인가?
축제 의도가 바라던 대로 억지로나마 다분히 노력하던 낭만도 없어진 것인가?
그저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이유로?
그래,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런 어린 시절을 녹여 나를 만드신게 아닐까.
나도 내 나름의 낭만을 계승할 후세를 위해 두근거리고 유치하던 마음을 전부 녹인 것일까.
그러나 나의 크리스마스는 더이상 계승되지 않았다.
거리에서 캐롤은 더 이상 들리지 않고, 마스크를 쓰며 서로를 가리게 되었다.
아이들은 산타를 나보다 빨리 졸업했고, 동요 대신 아이돌 노래를 부른다.
스마트폰을 쓰며 틱톡 유튜브 등에서 각종 영상을 찾아본다.
나와 전혀 다른 유년기는 어쩌면 나의 부모님이 느꼈던 그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가끔 컴퓨터가 뭐가 그리 재밌냐, 밖에 나가서 뛰놀고 옥상에 올라가 별보던게 그립다 하셨다.
나 역시 스마트폰이 뭐가 그리 재밌냐, 유튜브보다 싸이월드가 낭만있었다 하면 모순적인 것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처럼 시대와 사회가 바라던 축제 의도에 억지로나마 몰입하려는 아이들이
한명도, 단 한명도 없을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시대'가 크리스마스에 바라는게 변했다.
추석과 설날과 수능과 방학까지 바라는게 변했다.
그 옛날 정말로 가을 풍년에 감사하던 명절과 가족 보러 가는 명절이 의미가 다르듯
시대가 달라진다 해도 이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이해 가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의도가 있을 것이다. '지금의 어린이'들만 알 무언가가.
그렇다면 내 녹은 겨울은 어디갔을까.
내 녹은 어린 시절은 다시 양초로 굳지 못했다.
어쩌면 화석이 되어 박물관에 전시될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산타를 믿는게 미덕이었노라고 하면서.
저 시대 사람들은 저런 걸 믿었대!
깔깔대는 아이들과
감상에 젖은 선생,
나,
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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