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x세리 단편팬픽
"네 마음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겠다."
그녀에게 했던 말이다.설희를 처음 만난 날 그 애의 부러질듯한 허리를 감싸안으며 했던 말.
난 그 날 설희에게 첫눈에 반했다.
설희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여자들과 달랐다.여자들은 오직 내 돈만 보고 달라붙었었다.내 앞에 얼쩡거리며 알랑방귀 끼는 년 뿐이었다.
분명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그 미소는 나를 향한게 아닌 내 돈을 향한 미소였다.참으로 역겹기 짝이 없었다.
때문에 여자를 멀리했다.내 재력이면 얼마든지 여자를 살 수 있었지만 내 돈만 보고 달려드는 년들과 자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여자를 멀리한지 어느덧 36년.이미 내 나이는 30대 중반이었지만 난 이렇다 할 여자 경험이 없었다.한 마디로 쑥맥인 것이다.
내 생에 여자와의 인연은 없는걸까...라고 절망하던 중 설희를 만났다.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한마디로 여자 끼고 노는곳이었다.
다만 여러 가지 서비스가 있는 고급 업소였다.톡 까놓고 말하면 나도 남자기에 여자가 그리워서 간 것이었다.하지만 흙 속에도 진주가 있는법.설희를 만난 것이다.
난 그곳에서 일하는 여자들에게 썩 좋지 않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그러나 설희는 달랐다.한 눈에 그녀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넌 좀...다른 것 같은데?"
난 양 볼이 상기된 체로 말했다.
"네? 뭐가요?"
"귀걸이,반지 하나 없이 들어온 건 네가 처음이야."
"어머! 죄송해요.이런 일이 처음이라.저도 언니들처럼 예쁜 옷 입고 꾸미고 들어올게요.
설희는 부끄러운듯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참을 수 없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네?"
그 애의 손목을 붙잡았다.그녀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정말이지 아름답고 맑은 눈동자였다.
"여기 다니면서 처음으로 설레는 여자를 만났어."
"어..."
설희의 턱을 잡고 입맞춤을 하려고 했다.
"앗!"
"뭐야?"
"죄...죄송해요.이런 거 처음이라."
그녀는 고개를 돌려 거부했고 처음이라고 말했...잠깐.처음이라고?
"처음?"
"다른 언니 보내 드릴게요.정말 죄송."
역시 설희는 다르다.이곳에서 일하는 다른 여자들과는 달라.키스는 못했지만 상관 없었다.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그만이다.무엇보다...설희를 눈 앞에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다른 애는 필요 없어."
"네?"
난 그녀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살며시 안았다.기다릴게.기다릴테니...언젠가 마음을 열어주길 바래.
내가 설희를 좋아하듯 설희 역시 날 좋아했는지 날 줄곧 기다리곤 했다.마치 이몽룡을 기다리는 춘향이처럼 나만을 기다렸다.
그런 그녀가 점점 좋아졌고 내 마음은 커져만 갔다.우리 둘은 점점 가까워졌고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아가던 중 설희가 말했다.
"오빠. 저랑 함께 해요."
그녀는 사실 흑수회 소속이었고 내게 흑수회로 들어오라고 권했다.배신감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듯 아팠다.난 널 믿고..모든 걸 말해줬는데...네가 두현파의 적이었다니...
그런데도...설희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이미 이 여자에게 흠뻑 빠져버린 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서양이고 두현이고 다 버리고 흑수회의 일원이 되었다.두현파에서의 지위를 잃고 돈을 잃어도 상관 없었다.설희...설희만 있으면 돼.
줄곧 탐색전을 이어오던 두현과 흑수회.두 조직은 마침내 충돌했다.설희...아니,성희는 두 파벌의 전쟁에 휘말렸다.
안 돼.연약한 성희가...다칠 지도 몰라...위험해.
"성희야!!"
와락! 우당탕!
난 몸을 던져 성희를 구했다.우리 둘은 바닥을 굴렀고 난 성희의 뒷통수를 감싸안아 보호했다.
"오...오빠..."
성희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항상 거짓된 표정만 보여주던 성희.그녀가 처음으로 연기가 아닌 진심이 담긴 표정을 보여주었다.그 때부터였다.성희가 내게 마음을 연 시점 말이다.
그녀는 내게 호감을 품기 시작했고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이 깊어지듯, 성희가 내게 품고 있는 연심도 점점 깊어졌다.
허나 세상은 나와 성희를 내버려두지 않았다.배신자의 최후답게 장동욱은 날 두들겨 팼다.난 전투불능이 되버렸고 샤오민은 필요 없어진 날 제거하려고 했다.
샤오민은 까오린기를 시켜 날 다진고기로 만들었다.칼날이 내 몸을 썰어버렸다.
"돼지 두루치기가 되버렸군."
샤오민은 죽어가는 나를 내려다 보며 비웃었다.그리고 날 버리고 가버렸다.
"일수 오빠!"
성희가 내게 달려왔다.그녀는 내 몸을 끌어안았다.성희의 얼굴은 눈물로 적셔져 있었다.
"...성희야..."
난 떨리는 손으로 성희의 뺨을 어루만졌다.그녀의 볼이 내 피로 얼룩졌다.슬픈 눈으로 날 바라보는 성희가 너무 좋아서...너무 안고 싶어서 참을 수 없었다.그러나...그녀를 안을 수 없었다.
이미 내 몸은...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울지 마..."
후들거리는 손으로 힘겹게 성희의 손을 잡았다.
"흐흐흑..."
성희는 내 손길에 화답하듯 내 손을 꽉 쥐었다.
우리...한없이 순수하고 고결한 성희...
너랑 함께 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만났는데...
드디어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는데...
내 의식이 점점 흐려졌고 성희의 얼굴이 점점 흐릿해 졌다.
...성희야...다음 생에는 우리 둘 다 평범하게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자...
...안녕...
"오빠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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