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덕준 시 6편 모음
가시가 달렸다는 남들의 비난쯤은
내가 껴안을게
달게 삼킬게
너는 너대로
꽃은 꽃대로
붉은 머릿결을 간직해줘
우주를 뒤흔드는 향기를 품어줘
오늘 달이 참 밝다
꽃아, 나랑 도망 갈래?
/서덕준, 장미 도둑
눈을 감고 누웠는데 글쎄, 아니 정말 눈꺼풀을 내렸는데
눈 앞으로 불쑥 네가 나타나. 나를 쳐다봐.
너는 어떻게 어둠 속에서도 빛이 나? 어떻게 이렇게도 아름다워?
눈물이 나는데도 너는 흐려지지 않지.
진짜 내 앞에 있다고 말해주면 안돼?
사무치게 아름다운 그대야.
내 손 잡아줘, 같이 가자 응?
내 꿈으로 같이 사라지자.
터지는 네온사인처럼, 반짝이는 물거품처럼.
/네온색 다이너마이트, 서덕준
당신이 깊은 밤 홀로 삶의 덤불을 허우적일 때
뺨 위로 밝은 유성우가 네게 손짓하듯 마중하듯
난 그토록 빛나는 별이었으면 해
어느 누구도 찾지 않는 사막에 당신이 홀로 있을지라도
나는 초승달이 저무는 소리가 되고
바람들이 허공에서 춤추는 음악이 되어
너의 빈손을 가만히 잡아줄 수 있었으면 해
눈을 멀게 할 빛나는 별들이
네 손과 깍지를 끼는 음악들이
지금 모두 너에게로 달려간다.
/별과 노래의 질주, 서덕준
너의 얼굴을 가만히 읊어보겠어
과꽃이 지고 바람에 네 살결의 향수가 실리던 때를 기억해
네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가만히 건반을 두드리며
너의 음계를 훔치던 내가 있어
짙은 밤 네 눈의 우물에서 낮달처럼 비치던 내가 있어
우리 인연은 호흡처럼 짧아서 너는 내게 한숨이야
너의 눈썹에는 미처 부치지 못한 내 엽서가 날아들고
눈꺼풀에 내가 아닌 누군가가 출렁이고 있어
내 질투로는 차마 파문을 일으킬 수 없는
네 살구색 뺨에 언젠가 내가 기대었다는 것을 너는 기억해?
내 마음엔 녹슨 대문이 울며 열려있고 너의 신발은 없어진 지 오래
내게는 가장 아름다운 손님이었지
이미 네 발자국 소리는 내 것이 아니야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해
누구와 있더라도
너는 행복한 영화야
내 찬란한 장미야
/찬란한 장미 예찬론, 서덕준
누가 그렇게
하염없이 어여뻐도 된답니까.
/능소화, 서덕준
당신 사진 옆에
슬픔 한 줌 내려놓고
좋아한다는 고백 하나
꺼내 보았습니다
서랍에 담겨 있던 이 고백은
시간에 덮여 먼지가 앉았는데
허나 조금도 바래지 않은 사진 속 당신 모습에
나의 가슴은 하염없이 삐걱거렸습니다
아무도 없는 새벽 밤
당신 얼굴에 조용히 입을 맞추고
나의 추억이 세월 속에 빼앗기기를
다만 당신의 서랍에도 내가 담겨 있기를
소매에 눈물 하나 놓고
기도했습니다
/낡은 고백, 서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