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균 - 성호부근(星湖附近)
Ⅰ
양철로 만든 달이 하나 수면(水面) 위에 떨어지고
부서지는 얼음 소래가
날카로운 호적(呼笛)같이 옷소매에 스며든다.
해맑은 밤바람이 이마에 나리는
여울가 모래밭에 홀로 거닐면
노을에 빛나는 은모래같이
호수는 한 포기 화려한 꽃밭이 되고
여윈 추억(追憶)의 가지가지엔
조각난 빙설(氷雪)이 눈부신 빛을 발하다.
Ⅱ
낡은 고향의 허리띠같이
강물은 길―게 얼어붙고
차창(車窓)에 서리는 황혼 저 머얼리
노을은
나어린 향수(鄕愁)처럼 희미한 날개를 펴고 있다.
Ⅲ
앙상한 잡목림(雜木林) 사이로
한낮이 겨운 하늘이 투명한 기폭(旗幅)을 떨어뜨리고
푸른 옷을 입은 송아지가 한 마리
조그만 그림자를 바람에 나부끼며
서글픈 얼굴을 하고 논둑 위에 서 있다.
-<조선일보>(1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