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 산문시
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 산문시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는 오로래 정드리고 살다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 에, 앵도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
다섯 붙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가에 나는 어디로 향을 해야 너는 마주 서는 게냐. //
달 밝으면 으레 뜰에 올라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서른 각도 너는 못 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침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 서면, 어어이 어어이 소리 높여 부르는 나의 음성도 너는 못 듣는다. //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여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너이 형 아우 총총이 돌아오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누이도 돌아오고, 너와 나와 자라난, 막쇠도 돌이도 복술이도 왔다. //
눈물과 피와 푸른빛 깃발을 날리며 오너라. ······ 비둘기와 꽃다발과 푸른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 ······ //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어서, 철이야, 너는 늴늴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싯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딩굴어 보자. //
* 감상 : 광복 공간이 되었다고 완전한 광복이 아니라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동포들이 삶의 터전으로 다시 돌아와 예전처럼 민족 공동체로서의 삶을 영위할 때 가능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