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과 담쟁이 - 강연옥
그대가 벽이라면
나는 담쟁이입니다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만큼
아주 가까이
있고 싶습니다
깊이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들
잎사귀 수만큼 달아놓고
스치는 바람에도 떨었습니다
어떤 날에는
시간의 풀칠로 벽에 엉킨 뿌리를
풀고싶어, 그대를 떠나려 했습니다
또 어떤 날에는
바람에 심하게 흔들려도
홀로 뿌리내린 들꽃이
되고싶어, 그대를 떠나려 했습니다
세월은 떠나려는 마음만큼
넝쿨줄기를 키워내고
꽃을 피우지는 못해도
태양이 내리쬐면
내 그림자 그대에게 박히고
비가 오면 내 위를 흐른 눈물로
그대를 씻을 수 있어
차마, 차마 그대를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영혼의 줄기가 흐름을 멈추는 날
내 삶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었음을
미리 속삭이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