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릿대가 고산으로 간 이유 - 강연옥
지구 온난화의 채찍질로,
제주 조릿대 군락이 한라산 고지를 향해 밀려 올라
가 땅을 뒹굴며 자라는 양지식물 시로미를 에워싸
숨통을 조이고 있다. 시로미는 고산의 비바람에
부딪히며 햇살에 제 몸 섞여야 까맣게 단물 들거늘
제 그림자 땅에 묻으려 잎새 비비는 조릿대에 눌
리어 실성하다 시들고 마는 현실, 아프고 서럽다
이제 시로미의 살길이란 척박한 돌밭에 기어오르
거나 더 추운 고지를 향해 허겁지겁 오르는 일 뿐.
더 이상 핏물 마를 것 없는
창백한 구상나무 고사목
굶주림의 상처인 냥
허연 뱀 껍질을 뒤집어 쓴 채
계절을 맞고 있고
백록담 분화구엔 영생의 꿈처럼
하얗게 서리가 내려도
돌매화는 의지의 입술 깨문 채
여위어만 간다
삶에 있어서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가?
들판을 휘젓고 다니며 꽃을 따는
애 밴 이유 모르는 백치 소녀처럼
정작 조릿대는 알지 못한다
고산으로 가게 된 이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