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풀어놓는 저녁 무렵 - 강연옥
한낮 한 줄기 빛조차
가슴에 받지 못한, 그리하여
그대 그림자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메마른 돌멩이에 촉촉이
검은 이끼 드리우는 저녁 무렵은
슬·퍼·지·는 시간입니다
세상 모든 색들
제 빛깔 물들인 후 돌아와
서로 몸 비비고 섞이며 제 색 벗고
한 몸 되어 가는 저녁 무렵엔
가지 끝에 달린 마지막 감 하나
쪼아대는 새 한 마리가 성급해집니다
내 뜰을 벗어나 돌아앉은
햇살의 뒷모습 사라지고 나면
새의 흔적도 없습니다
슬픔을 돌돌 말아 가슴에 묻고서
창문 닫지 못하면
길 잃은 바람이 달려와 슬픔 풀어놓는
저녁 무렵은
그런 저녁 무렵은
슬·퍼·지·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