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오후에 - 박건삼
하지(夏至)를 하루 앞둔
1995년 6월 21일 퇴근길
비는 오락가락하는데
아파트 입구 한 귀퉁이
한뼘만한 공간에
알록달록한 '잡표' 신발을 팔던
쉰두어살 쯤된 아줌마가
애잔한 하루의 삶을 거두고 있었다.
검은 콩 한 됫박에
산나물 두어 묶음
두부 몇 모를 팔던 할매는
오늘따라 어딜 갔을까?
할매가 없는
아파트 입구 그 자리에
'나이키'도 '아식스'도
'리복'도 아닌
이름모를 '잡표' 신발을 파는 아줌마는
비내리는 하늘을 원망하듯
서러운 전(廛)을 거두고 있었다.
TV 저녁 뉴스에는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 동포에게
15만톤의 쌀을 가져 준다는데
이렇게 옹색한 이웃의 삶엔
우리는 왜 이토록 무심탄 말인가?
식량 부족에 허덕이는 북녘 동포나
'잡표' 신발을 파는 우리 아줌마도
내핏줄 내동포인데
비내리는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는
'잡표' 신발 아줌마의 눈빛이 서럽다
얼마를 팔았을까?
쌀 두어되 사고
막내놈 풀빵값이나 벌었을까?
지친 하루를 소매하고
삶의 전(廛)을 거두는
체념의 눈빛 속엔 북녘땅으로 실려갈
15만톤 쌀부대가 어린다
그래
우리 모두
인도주의
휴머니즘에 박수를 보내자
'정치가 가난한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라면
지금 당장
네 가까운 이웃부터 사랑하자
그리고 15만톤
150만톤
1500만톤이라도 나누어 먹자
비오는 퇴근길 오후
'잡표'신발을 파는 아줌마의 삶에서
나는
서글픈 인도주의에 목이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