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 신동엽
오늘은 바람이 부는데
하늘을 넘어가는 바람
더러움 역겨움 건들이고
내게로 불어만 오는데
음악실 문 앞
호주머니 뒤지며
멍 멍 서 있으면
양주 쓰레기통 속
구두통 멘 채
콜탈칠이 걸어온다
배는 고파서 연인(戀人) 없는 봄
문 닫은 사무실 앞
오원짜리 국수로 끼니 채우면
그래도 콧등은 간지러운
코리아
제주로 갈거나
사월(四月)이 오기 전
갯벌로 갈거나, 가서
복쟁이 알이나
주워먹어 볼거나
바람은 부는데
꽃피던 역사(歷史)의 살은
흘러갔는데
폐촌(廢村)을 남기고 기름을
빨아가는 고층(高層)은 높아만 가는데
말없는 내 형제(兄弟)들은
광화문(光化門) 창밑, 고개 숙이고
지나만 가는데
오원짜리 국수로 끼니 채우고
사직공원(公園) 벤취 위
하루 낮을 보내노라면
압록강 철교같은 소리는
들려오는데
바다를 넘어
오만은 점점 거칠어만 오는데
그 밑구멍에서 쏟아지는
찌꺼기로 코리아는 더러워만 가는데
나만이 아닌데
쭉지 잽히고
아사(餓死)의 깊은 대사관(大使館) 앞
걸어가는 행렬(行列)은
나만이 아닌데
이젠
안심하고 디딜 한 평의 땅도
없는데
지붕마다
전략(戰略)은 번식해만 가는데
버스 정류장 앞
호주머니 뒤지며
멍 멍 서 있으면
늘메미 울음 같은
아사녀의 봄은
말없이 고개 숙이고 지나만 가는데
동학(東學)이여, 동학(東學)이여
금강(錦江)의 억울한 흐름 앞에
목 터진, 정신이여
때는 아직도 미처 못다 익었나본데
소백(小白)으로 갈거나
사월(四月)이 오기 전
야산(野山)으로 갈거나
그날이 오기 전, 가서
꽃창(槍)이나 깎아보며 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