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그리고 비극
어째서 1권에서 카네키의 소설[삶]은 비극인가?
139화에서 비극의 막이 오른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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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구울에는 많은 소재들이 오마쥬 되어 있습니다.
체스[말,흑백 격자무늬의 의미]
타로카드[각 숫자의 의미]
거울 나라의 앨리스[도쿄구울의 전체적 흐름]
창세기,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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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같은 경우는
소설 '일상'편에서 첫 챕터가 '성경'이며
최근 50화 부분들은 모두 '성서'와 관련된 내용이 주가 될 뿐만 아니라
에토와 카네키가
이브와 아담에 대입되는 역할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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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에토]는 선악과[죄,악]를 먹어버립니다.
후에 부끄러움[지식,진실]을 알게된 이브는 자신만 혼이 날까 두려워
아담[카네키]에게 선악과[죄,악]을 먹게하고
둘은 신에 의해 낙원에서 추방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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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창세기의 내용이 아담이 이브 덕에 타락하는 것이듯
53화 내용이 카네키의 타락일 것이라는 내용일 거라 생각했었고 이는 들어 맞았습니다.
자신이 곁에서지 못하는 이와 함께 있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1. 자신이 그와 같은 곳까지 올라가는 것
2. 그를 자신이 있는곳으로 끌어내리는 것
에토 사고방식 상 후자를 고를 건 자명한 이치였지요.
거기다 무려 적나라한
에토 = 이브 표현 까지 있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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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비극'은 무슨 의미일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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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비극은 누구의 비극일까요?
카네키?
에토?
구울?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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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카네키가 CCG에 들어간다는게 어째서 비극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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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시 창세기로 돌아갑시다.
창세기의 낙원은
도쿄구울에서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 간단하군요.
인간과 구울이라는 피식과 포식의 순환이 깨어지고
두 진영이 함께 걸어나가는 것 말고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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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카네키는 반구울로서 '구울'들의 비극과 애환을 공감하고 이해합니다.
구울들은 카네키를 받아 들입니다.
하지만
2부에서는?
CCG는, 인간은, 카네키를 받아들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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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도쿄구울이 최소 3부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도쿄구울은 결국
구울과 인간의 공존하느냐 마느냐가 중점이고
1부는 구울을 이해하고
2부는 인간을 이해하고
3부는 V기관또는 흑막을 쓰러뜨리고 둘이 화합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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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부에서 카네키가 인간을 이해 했을까요?
인간은 카네키를 받아들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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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139화의 비극의 의미는
카네키는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은 카네키를 받아들이지 못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CCG에 들어가게 된 것, 그자체가 비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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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작품 전체적으로
구울들과 공감하고 소수지만 그들에게 받아들여진 카네키는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여지지 못했는데
인간과 구울의 화합을 주장할까요?
작중 언급된 구문이 떠오르는 군요.
인간관계는 화학반응 한번 작용해 합쳐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
융,카를 구스타프 -스위스의 정신 의학자.심리학자 (1975~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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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도쿄구울은 카네키 개인으로서도
작품 전체의 주제로서도
비극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화로 카네키는 인간을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카네키의 인간성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부모. 아버지와 어머니
아리마 키쇼는 히나미에 대한 건만 봐도 분명 카네키를 배려하지만
그의 수사관으로서 교육방침은 잘못되었습니다.
[망상이든 현실이든 상관 없습니다. 그가 보는 모습이 그가 아리마를 바라보는 모습이니까요]
어머니는 분명 자상하며 훌륭한 분이라는 표현을 하다가
53화에서 카네키에게 폭력을 가했다는 사실이 나오지요.
1부의 모습이 현실도피인지, 1부의 모습과 53화의 모습이 같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53화 마지막 발언 ─꿈은 이제 됐어, 라는 표현을 봤을때 53화만 실제 있었던 일이고 1부는 현실도피 같습니다.]
53화의 표현으로 카네키는 어머니[인간성]을 포기했습니다.
카네키의 아버지[아리마]와 어머니는 모두, 카네키를 키우는데[인간을 이해시키는데] 실패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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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전에 썼던 거울나라의 앨리스와 중첩시킬 경우,
우로부치 뺨을 자진모리장단으로 후려치는 비극이 되어버립니다.
몇 부분들이 수정되겠지만, 정말 최악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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