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브릴] 전생 애인썰 궁예로 쥐어 짜내 써보기
* 전생 애인이었다는 궁예로 함 써봄(참고로 전생에서 브릴은 태브릴이고, 남가라는 아무것도 모름 @_@)
*짧음
그건 아주 오래되어, 이제는 떠올릴 수조차 없는 과거였다.
키가 어떠했는지, 머리카락은 무슨 색이었는지, 이목구비가 어떠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곁에 인간 여자 하나를 둔 적이 있었지 정도로 간신히 떠올릴 수 있을 만한 그런 기억.
하지만 돌연 마모되었던 그것이 형태를 되찾아가는 걸 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제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상황. 어울리지 않는 대화.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었다.
이건 과거가 맞나. 인간을 곁에 둔 적이야 있었지만 정말 이런 추태를 부렸던가. 그저…. 미쳐서 했던 헛된 망상이 아닐까.
서너 번쯤, 더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을 했던 것도 같지만 소용없었다.
선득한 고통이 가슴을 헤집고, 가루 된 기억이 질척하게 뭉쳐 머릿속에 들러붙었다.
***
첫 만남 같은 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 때는 마음대로 인간계로 건너올 수 있었고, 저와 같은 존재를 신봉하는 인간들도 많았던 때였다. 그러니 설령 저를 신봉하지 않는 존재라 할지라도 가까워질 기회가 많았다.
꽃을 건넨다거나 그저 곁에 있어준다던가, 손을 잡아주거나….
뭐, 그런 걸 종종 했던 것 같긴 한데 또 생각해 보니 강제로 곁에 묶어두기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간에 그의 입장에선 꽤 만족할 만한 관계였던 것 같다.
“아, 또 그런 눈.”
…그녀 입장에서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짙은 어둠이 드린 시간이었다.
나뒹구는 잡동사니들을 치울 생각도 못한 채, 그는 저를 지친 듯 바라보는 그녀를 보며 잇새를 사리물었다. 거친 호흡이 차오른다. 어둠에 침잠한 눈동자에선 쉽게 감정을 읽어낼 수 없었다.
“왜 그래? 뭐가 맘에 안 드는데?”
“너한테 말해봤자….”
그는 서슴없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일부러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으며 그가 되물었다.
“너한테 말해봤자? 그럼 누구한테 말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대답 대신 침묵했다. 흐려진 눈동자가 자신이 아닌 허공 그 너머를 향한다.
누굴 생각하는 걸까. 생각할 만한, 마음을 줄 만한 존재 따윈 하나도 없게 만들었는데도. 도대체 누굴….
그는 몹시 불쾌해졌다. 그는 잡은 손목에 힘을 주었다. 새빨간 흔적이 아닌 시퍼런 멍이 남도록. 그녀는 늘 그렇듯 신음조차 내지 않았고 반사적으로 손을 떤다거나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너는 아니야.”
그가 싫어하는 눈을 한 채, 여전히 그가 아닌 이를 본다.
그가 싫어하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여전히 그를 부정하는 말을 한다.
너는 아니야ㅡ.
그 짧은 말에. 그 별 것도 없는 짧은 말에.
깨닫고 만다.
속절없이.
“똑바로….”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아 올리며, 그는 으르렁거렸다. 붉은 눈동자 위로 도는 안광이 야차처럼 흉흉했지만 입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똑바로 봐. 지금 네 앞에 있는 게 누구인지. 네가 죽을 때까지 곁에 있는 게 누구인지.”
가슴이 드글거렸다.
눈앞의 여자는, 그의 연인이었다. 그는 그녀의 평생을 얼룩질 존재였다. 짧디 짧은 순혈 인간의 삶. 그에겐 눈 깜빡하면 지나가버릴 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그 짧은 시간, 자신만을 바라보고 생각하기에도 모자라다.
“너 따윈 아무것도 아냐…! 내가 널 선택했어! 그게 아니면 너는 아무 의미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고!”
그가 모르는 누군가가 아니라, 그를. 오직 그만을.
그렇게 만들기 위해 몰아붙였던 시간을 생각해서라도 그녀는 그래야했다.
“…그래. 내가 죽으면, 너는 잊겠지.”
그런데.
“보란 듯이 나를 잊고 살겠지. 너나 나나, 어차피 가장 소중한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그러니 아무렇지 않게 살겠지…….”
한숨처럼 가볍게 그녀는 덧붙였다.
“그래서 네 곁에 있었던 거야.”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귓가에 내려앉는 말이 뱀처럼 그를 옭아매었다.
“알고 있었잖아.”
…그래. 알고 있었다.
어딘가 묘하게 부유하고 있던 그 눈동자를, 처음 봤을 때부터.
바라보고 있되 바라보고 있지 않다. 곁에 있되 곁에 있지 않다. 그 기이한 거리감이 마음에 들어,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때때로 그 눈동자가 저를 바라볼 때, 다르게 변하면 그것이 꽤 재미있겠노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설령 자신에게 매달리게 되더라도, 상처 입은 눈동자는 우습겠지 싶었다. 장난으로 던지는 돌멩이에 맞아 죽는 개구리의 사정 따윈 그가 알 필요 없었으니까.
그런데 도대체.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가랑비에 옷이 젖어들듯. 늪에 빠져들듯.
“…하!”
…이건 미친 거야. 미친 게 틀림없어.
어떻게 내가 너 따윌…! 너 같은 인간 따윌….
숨 쉬기가 괴롭다.
저릿하게 아픈 가슴의 둔통에, 그녀를 움켜쥐던 손을 놓친 그는 이를 악물었다. 짧은 단말 같은 숨소리에 그녀가 묘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렸지만 그것조차도 달갑지 않았다.
매달리지 않을 거면 그딴 얼굴을 하지 마.
안겨오지 않을 거면 더는 가까이….
그는 괴롭게 눈을 감았다.
그 뒤로, 모든 것이 암전이었다.
***
코끝을 스치는 피 비린내에 그는 눈을 깜빡였다.
살려뒀던가. 죽였던가.
모래처럼 버석한 기억은 제멋대로 진흙처럼 뭉쳐 옛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더니, 정작 가장 중요한 끝은 보여주질 않았다.
하지만….
그는 손을 놓았다. 손바닥으로 거멓게 삭아가는 살점이 묻어나왔다.
“뭐, 이미 모두…. 늦어버렸나.”
덤덤하게 생각하며 그는 눈앞의 여자를 내려 보았다. 붉은 머리칼, 붉은 눈동자. 오랜 기억 속의 여자도 비슷했던가? 알 수 없다. 여전히 제대로 떠오르진 않았다.
다만 그 눈동자….
메마르고, 괴롭고 한편으론 안쓰럽고 몽혼하던 그 눈동자만은 추억과 똑같았다.
똑같아서….
“그리웠어.”
그는 나른하게 웃었다. 깜빡, 깜빡. 눈꺼풀을 깜빡일 때마다 흐려지는 표정은 여전히 미소 같기도 했고 굳은 것 같기도 했다.
…그 감정, 보잘 것 없다 매도하고 아니라 부정했던 그 감정은.
옛 기억 속에 묻어두는 것이 마땅하다. 추억조차도 남지 않는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남겨두는 것이 마땅하다.
뒤늦은 깨달음으로 추억이 더 괴로워지기 전에.
그럼에도 그것이 끝내 형태를 가진 것으로 뭉쳐, 지금의 그를 잡아먹기 전에.
겨우 찾아온 그녀의 행복이, 아름답게 끝을 맺기 전에.
이 사랑은, 우리는 비극이 어울리니까.
그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직감했다.
그리웠던 그 옛날.
그는 끝내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fin
남브에 내가 묻었어도 남브는 고귀하다 ㅎㅇ....
전생연인 참트루라 과거회상 나오길 빈다 ㅠㅠㅠㅠㅠ젭라
팬픽 진짜 오랜만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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