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디저트)[에반게리온] 5. 인류 보완 계획 : 이카리 겐도우 타입
*시작하기전에 이글은 Daum 루리웹 애니게시판 "엄디저트"님이 연구,작성하신글임을미리밝힙니다*
[에반게리온] 5. 인류 보완 계획 : 이카리 겐도우 타입
유이가 죽고 나서 생각을 지탱할 힘을 잃은 겐도우가, 인류 보완 계획이 본래 지니는 '최소한의 개념'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유이를 이어 그녀의 사상을 받쳐 주는 후유츠키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그는 겐도우 옆에서 제법 용감한 의사 표현을 꽤나 했다.) 잠깐 TV판 12화의 한 장면을 보고 가자.
후유츠키 "어떠한 생명의 존재도 허락치 않는 죽음의 세계, 남극. 아니, 지옥이라고 해야 하나?"
겐도우 "그러나 우리 인류는 여기 서 있네. 생물로, 산 채로 말이네."
후유츠키 "과학의 힘으로 지켜져 있으니까 말이네."
겐도우 "그 과학이 바로 인간의 힘이다."
후유츠키 "그 오만이 15년 전의 세컨드 임팩트를 일으킨 거네.
그 결과가 이거지. 벌 치고는 너무 무시무시해. 이건 죽음의 바다 그 자체 아닌가."
겐도우 "그렇지만 이것이야 말로 원죄의 더러움이 없는 정화된 세계이다."
후유츠키 "난 죄 투성이가 되어도 인간이 살아 있는 세계가 되길 바라네."
여기서 이것을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마지막 후유츠키의 대사가 제레가 원하는 인류 보완 계획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가장 중요한 대립 기준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초호기 속의 이카리 유이의 생각 그 자체이기도 하다.
본론으로 가서, 그렇다면 유이의 소실이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이카리 겐도우의 생각을 바꾸게 한 것일까? 이를 위해 우리는 이카리 겐도우의 캐릭터를 잠깐 살필 필요가 있다. 그에 대해선 다음에 더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지만 그의 인류 보완 계획을 알기 위해서는 몰라선 안 되는 설정이니까.
이카리 겐도우, 본명은 로쿠분기 겐도우로 유이의 남편이자 신지의 아버지(최소한 생물학적으로는) 되는 사람이다. 작품 내내 그는 시크한 태도로 일관하여 냉철한 인간상을 보이고 있지만, 그 드러나는 방식이 다를 뿐 누가 부자 관계 아니랄까봐 겐도와 신지는 아주 비슷하다. 특히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말이다.(유이의 소실 뒤 겐도우가 마음을 여는 유일한 상대가 ‘만들어진 인형’인 아야나미 레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라.) 단일한 생명체로 환원한다는 것은 유이의 경우 인간의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취지였지만 겐도우의 경우 그저 타인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차원이었다. 결과론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의도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유이의 생전에는 그 의견 대립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 같지 않지만, 유이가 초호기에 흡수되고 나서 인류 보완 계획이 겐도의 손에 들려 있었을 때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겐도우가 인류 보완 계획을 더러 ‘부족한 마음의 보완’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의 인격적 하자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겐도우가 발안한 인류 보완 계획! 벌써 17차 중간 보고서.
어쨌든 유이의 소실 후, 겐도우는 본격적으로 인류 보완 계획을 명시화하여 제레에 제출한다. 그 내용은 앞서 오리지널 타입에서 본 것과 같은 형태로, 집단적 존재로서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인간을 완전한 형태로 만들자는 것으로, 사도들을 무찌르는 것은 목적에서 전제 조건으로 바뀌게 된다. 제레의 생각은 겐도우의 것과 조금 달랐지만 전체적으로는 같은 맥락(불완전한 인간을 완전하게 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승낙했다.
후유츠키도 분명히 유이를 '사랑'했다.
그러나 겐도우가 이것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시기적으로 볼 때 유이의 죽음이 분명하며, 이를 통해 겐도우의 진정한 목적은 에바 초호기 안에 있는 이카리 유이의 영혼과 재회하여 그녀와 융합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오리지널 타입의 보완 계획과 같이 ‘완전한 릴리스가 되자’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자세히 언급하겠지만)제레와 같이 ‘우리 스스로의 의지로 릴리스를 봉인하여 속죄 의식을 치르자’는 것도 아닌, 아주 개인적인 방향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처음에 겐도우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후유츠키조차 전력을 다해 겐도우의 계획에 참여한 것도, 그 또한 이카리 유이에 대하여 보통이 아닌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레, 애초에 겐도우를 고용한 것 자체가 판단 미스였다.
물론 인류 보완 계획이 저런 개인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레가 알면 안 되었다. 하지만 계획 실행을 위해 초국적 집단인 제레의 힘과 경제력은 반드시 필요했고, 때문에 겐도우가 발안한 인류 보완 계획은 제레의 입맛에 맞는 버전이었다. 동시에 이것이 후에 겐도우와 제레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제레에게 제시한, 또 제레가 원하는 보완 계획은 어차피 미래가 없는 인류가, 속죄 활동을 통해 ‘스스로 멸망’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사도의 내습으로 멸망할 운명이지만 그런 타의적인 멸망이 아니라 ‘스스로 명예롭게’ 그 운명을 택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류는 새로 태어나 온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제레는 생각하기 때문이다.(제레의 생각에 대해서는 곧 자세히 언급할 것이다.)
인간, 그 이상이라 함은….
하지만 실제 겐도우의 보완 계획은 달랐다. 우선 짚어 둘 것은, 그의 목적은 이카리 유이와의 영혼과 ‘동등한 위치에서 융합’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한데, 하나는 유이가 있는 초호기를 중심으로 임팩트가 발발해야 한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동등한 위치에 있기 위해서 자신이 단순한 인간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슬프게도, 그에게 있어 유이의 사랑을 듬뿍 받는 신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 외엔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참 위험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조건을 달고 나타난 그의 보완 계획을 쉽게 말하자면 ‘아담과 릴리스의 융합’이라 할 수 있다. 재생된 아담의 육체를 ‘자신의 몸 안’에 심고, 그것을 릴리스의 영혼을 가진 레이 안에 넣은 후, 레이와 함께 릴리스 안으로 간다. 그렇게 하면 릴리스의 육체와 유이의 영혼이 담긴 초호기 안에서, 자신은 아담의 이름을 가진 채로 유이와 함께 인류의 신생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었다. 즉, 간단히 말해서 겐도우는 새로운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를 그 자신과 유이에 대입하고 싶었던 것이었다.(미리 말하자면 그 계획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레이에 의해 거부된다. 유이와 겐도우의 미묘하게 다른 두 계획이 각각 신지와 레이에게 거부된 것을 상기해 보자.)
제레의 의장 킬 로렌츠. 그가 원하는 인류 보완 계획이란 무엇인가?
아무튼 제레의 입장(‘진정한 릴리스로의 진화’가 아닌 ‘아담의 정당한 재래를 통한 속죄 의식’을 행하고자 하는)에서 보면 이런 방식은 겐도우가 스스로 신이 되겠다는 의지 표현을 하는 것과 같으며, 순수한 속죄와 인류 재생을 원하는 제레 입장에서 그런 ‘더러운 처사’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레는 또 이것과 별개의 인류 보완 계획을 희망했던 것이다.
[에반게리온] 6. 인류 보완 계획 : 제레 타입 A/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