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규 눈 내리는 저녁
아직은 이른 저녁
참으로 이런 눈은 오래간만이라서
집으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어서
한 잔의 생맥주를 혼자서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길을 첫 번째로 꺾게 하고
다시 눈 내리는 숲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길을 두 번째로 꺾게 했다
그동안 내가 겪었을
눈 내리는 밤의 다른 추억들도
내리는 눈으로 다 지워지고
그렇게 눈 내리는 숲으로만 갔다
그렇게 가서 나도
한 그루 가문비나무로 서 있게 되었다
붙박이로 서 있게 되었다
눈 내리는 숲이 되었다
즐겁게 그쪽 몸이 되는
즐겁게 그쪽 몸이 내 몸이 되는
아름다운 굴종을 알았다
네가 어서 와서
그렇게 나를 안아주길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