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변소
제가 부산 **대학교 다닐 적에 겪은 일입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동네마다 공중변소가 있었습니다.
당시 공중변소는 요새 공중화장실이 아닌, 말 그대로 변소(便所)여서 위생이 상당히 열악했습니다. 소변기도 없이 벽에다 소변을 누면 그대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소의 벽은 암모니아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더 심한 건 대변을 볼 때였습니다. 앞뒤로 다섯 칸 씩 다닥다닥 붙은 뒷간의 똥통은 깊이도 파서 그 안에는 인분을 주식으로 살아가는 쥐들이 돌아다녔기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습니다.
천장에는 시커먼 왕거미집이 너덜너덜하게 있어 상당히 보기 안 좋습니다. 문짝도 다 떨어져나간 상태고 똥통의 발받침은 나무로 만들어져 밟을 때마다 삐걱거립니다. 밤에 오면 천장에는 일반 백열등도 아닌 저가용 소형 백열등이 희미하게 깜박거립니다. 그나마 그거라도 꺼지기 일수라 밤에는 초를 키고 대변을 봐야 합니다.
그 날 밤 선배들이랑 삼겹살과 소주를 거나하게 먹고 87번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집은 범천동 87번 버스 종점 근처이어서 두어 정거장만 더 가면 되는데, 갑자기 범일6동의 산동네를 지날 때 배에서 신호가 오는 것입니다. 간만에 삼겹살을 먹어서 배탈이 난겁니다.
급했습니다. 배에선 천둥소리가 들려오고 뺨에는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것이 도저히 참을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버스가 정류장에 서자마자 서둘러 변소를 찾아 갔습니다. 근처 지리는 다 꿰고 있기에 공중변소가 아직 있기를 바라며 달렸습니다. 역시 허름한 공중변소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깜깜한 밤 희미한 조명에 의존하여 급한 대로 볼일을 보고 있는데, 한여름인데도 스산하게 추위가 느껴지는 것입니다.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그래도 애써 무시하고 볼일을 다 보고 옷을 여미며 일어서는데 순간 뒷머리가 좍 일어섰습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느낌이 오는 대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전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귀신을 보는 순간 비명을 지릅니다. 그거 다 거짓말입니다. 귀신을 보면 독사 앞의 개구리처럼 얼어붙어 꼼짝 못합니다. 전 숨이 컥 막히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변소 천장의 거미줄이 가득한 구석에는 영감이 쭈그리고 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쭈글쭈글하며 노란 피부, 움푹 꺼져서 보이지도 않는 눈, 귀신이면서 누런 삼베상목을 입고 망건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 영감은 나를 한참 바라보다 검은 콩 같은 치아가 두 개 박힌 입을 천천히 열면서 뭔가 말하려는 것 같았는데, 점점 흐릿해지며 사라졌습니다.
영감이 사라지자 하마터면 맥이 빠져 똥통에 빠질 뻔 했습니다. 다리에 힘이 빠져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몇 번이나 휘청댄 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날의 경험은 무섭다가 보다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