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몬 파워 밸런스를 받아들이는 자세

디지몬에서의 최강자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항상 변해왔다.

극 초창기의 디지몬은, 진화 세대에 궁극체가 없어서 완전체인 디지타몬과 완전체급 파워드라몬이 최강자로 군림했으며,

펜들럼 이후부턴 최초의 최강 궁극체인 파워드라몬을 필두로 최강자의 위치가 쉴새없이 변했다.

디지몬 세계관이 확립되고 나서부터 초기~중기까지는 디지몬의 설정을 총괄하는 프로듀서 [키타가와라 명인]이,

해당 시즌의 최강 디지몬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찝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벽돌 시즌에는 디지타몬, 펜들럼 시즌에서는 파워드라몬,

어드벤쳐 시즌에는 오메가몬이, 파워디지몬 시즌에서는 황제드라몬이,

테이머즈때는 듀크몬과 베르제브몬, 프론티어때는 스사노오몬을 가리켜 최강자라고 명확하게 언급했으며,

이후 디지몬 크로니클에서 등장한 알파몬:왕룡검은 디지몬 역사상 마지막으로 최강이라는 단어가 쓰인 디지몬이 되었다.

그러나 키타가와라 명인의 뒤를 이어, 디지몬이라는 컨텐츠의 실질적 총괄자가 된 [마에카와 유스케]라는 사람이 등장한 뒤에는

디지몬이라는 컨텐츠 전반에서 [최강자]라는 단어의 언급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마에카와 등판 이후의 디지몬들이, 이전 최강자들보다 약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새로 등장하는 모든 디지몬들의 설정이 하나같이 거창하고 화려해졌으며, 저마다 최강자라고 해석해도 될 정도의 강력한 디지몬들을 쏟아냈다.

이전 역대 최강의 디지몬들 조차도 용량이 100 GB를 넘지 않았지만,

디지몬 최초로 1,073,741,824 GB(1EB/엑사바이트)라는 천문학적인 용량을 갖고있는 엑자몬이 그랬으며,

여태까지 X항체 디지몬은 같은 X항체 디지몬으로만 상대가 가능하다는 인식을 깨부수기라도 하듯,

X항체가 없는 일반 디지몬인 카오스몬은, 무적의 성기사라고 평가되던 오메가몬X와 비교되면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마에카와 유스케는 디지몬이라는 컨텐츠에서 서사적인 묘사가 등장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설정이 딱 정해져 버리면, 누가 최강인지, 이 디지몬이 얼마나 강한지, 유저들이 직접 상상하는 재미가 반감된다나 뭐라나...

덕분에 공식상의 최강자가 명확히 정해지지 않게 되어, 유저들 사이에선 디지몬 최강 논쟁이 끊임없이 불붙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이것을 나쁘게만 보지는 않는다.

특정 디지몬의 팬들만이 기뻐하는 [공식 최강자]보다는, [각자 생각하는 디지몬이 최강]이라는 식의 여지를 만들어 두는편이,

더 많은 팬들을 기쁘게하는 데에는 훨씬 적합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최강 타이틀을 핑계로 내세운채, 알파몬:왕룡검이 최강이라고 이악물고 우겨댔던 팬들이 10년가량 존재했었다는게 웃기는 일이지만...

혹여, 어린시절 자신은 오메가몬X가 좋은데, 사람들은 알파몬:왕룡검보다 약하다고 해서 불쾌했었던 기억등이 있는 사람들은 위 말에 공감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마에카와 유스케조차도, 디지몬 탄생 20주년이 되는 해에 등장시킨 [어떤 캐릭터]에는 기어코 최강자라는 설정을 명확하게 집어넣고 말았다.

바로 [네오]다.

이전까지 [무슨무슨 몬~]하면서 불리던 디지몬들을, X항체고 로열나이츠고 나발이고 통채로 구 디지몬 취급하며,

구 디지몬은 궁극체라고 할지라도 차세대 디지몬인 네오의 앞에서 무력하다고 설명한다.

이토록 명확하게 캐릭터들간에 선을 그어놓으면서 상하위 격차를 나누어 놓은 경우는

지금까지 서사적 묘사를 싫어하며 최강언급을 꺼려왔던 마에카와 담당의 디지몬 역사에서도 특이한 경우다.

물론 네오는 구 디지몬이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는 차세대 디지몬이기 때문에,

세계관 최강자이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디지몬중에서의 최강자는 아니다.

보통 디지몬이라함은, 차세대 디지몬인 네오가 아니라 [무슨무슨 몬~]하는 구 디지몬들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 디지몬의 경우에는 어떠할까?

10주년 기념으로 등장했던 아폴로몬(코로나몬)과 디아나몬(루나몬)의 융합체인 그레이스노바몬.

10th + 10th = 20th 이라는 뜻일까?

그레이스노바몬은 무려 체내에서 빅뱅급 에너지를 구축하여, 스스로 독립된 은하로써 존재하는 은하형 디지몬이라는

전례가 없던 역대급, 최대급의 설정을 갖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공식 최강자 타이틀을 보유했던 알파몬:왕룡검조차도 이 정도의 위상은 없었다.

일개 궁극체 1체분의 모든 전투력을 고스란히 공격력으로 휘두른다는 왕룡검조차도, 그 전투력이 은하급에 비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미력하다.

아니, 왕룡검 뿐만 아니라, 그레이스노바몬 등장 이전까지 존재했던 모든 디지몬들을 통틀어서 은하급에 비견 될 만한 디지몬은 전무하다.

그나마 빅뱅급 위력의 자폭을 일으킨다는 세라피몬이 존재하긴 했지만, 이조차도 이미 체내에서 동급의 에너지를 생성중인 그레이스노바몬에게는

사실상 그다지 위협적일것 같지는 않다.

자폭을 한 순간 이미 세라피몬은 사망하여 승리 할 수 없다는 전제조건이 붙기도 하고...

디지몬 덕후들은 전부 설정 덕후들이다.

제작사도 포기한 오와콘이라서 설정이라도 파지 않으면 즐길거리가 거의 없고, 즐기는 의미도 없는 컨텐츠가 바로 디지몬이기 때문이다.

설정 덕후들은 정확한 설정에 집착한다. 이들에게 공식상의 언급은 진리이며, 바이블이다.

오타쿠 찐따중에서도 중증의 씹찐따들만이 판다는 세계관 설정을, 준 메인급 컨텐츠로 삼는게 디지몬 팬들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공식상에서 역대 최강급으로 설정된 네오와 그레이스노바몬은 최강자가 아니라고 우기는걸까?

물론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고, 네오는 2008년경 코믹스에서 최초로 등장했기에, 그 당시 최강자들과 동급이라고 우기며,

그레이스노바몬은 로열나이츠급 디지몬 2체(아폴로몬&디아나몬)가 융합했기 때문에,

역시 로열나이츠급 2체(오메가몬&황제드라몬)가 융합한 황제드라몬 팔라딘 모드와 동급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자칭 설정 덕후라는 작자들이 공식상의 설정(신 디지몬&은하급 파밸)을 외면하면서, 유치하게도 설정의 꼬투리를 잡아물고 있는 것이다.

조그마한 꼬투리라도 있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자신들이 좋아하는 10년전 디지몬이 최강이라고 이 악물고 아득바득 우겨댄다.

무려 나이 20살이 넘는 어른들이 말이다.

상식적으로 십 수년 동안 시리즈가 이어지는 와중에 최강자가 변하지 않는 컨텐츠가 존재할 수 있다고 보는가?

손오공 무안단물이라는 드래곤볼조차도, 최근에 와서는 손오공을 밀어내고 최강자가 변했다. 바로 전왕과 파괴신의 등장이다.

물론 이러한 꼬투리 잡기에는, 나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도 있을것이다.

서로의 신상까지 털어가며 진흙탕 싸움을 했고, 아직까지도 그 원한이 채 풀리지 않았는데,

이러한 상대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은 나이가 몇살이든 간에 사람으로써의 자존심이 있는 이상 사실상 불가능 할 것이다.

하지만 자존심은 자존심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십 수년 전 캐릭터가 아직까지도 최강이라는 식의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은, 이제 슬슬 그만 할 때도 되었다.

아집과 권위주의에 휩쌓여 언제까지 고집을 부릴지는 본인들의 자유겠지만, 그 기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점점 더 추해져 간다는 사실은 알아두는게 좋을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