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어둠속을 가로등 불빛이 스포트라이트처럼 비췄다.
그곳에 그녀가 서있었다.
「잘도 여기까지 도달하셨네, 칭찬해줄게」
처음 만났을때와 같은 검은옷 차림으로
어디서 들어본적있는듯한 거만한 대사를 읆어댔다.
어떻게 여기와있는거지?
딱히 여기온다고 말한 기억도 없는데...
하지만 조금도 신기하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느꼈다.
이제서야 겨우 서로 통하고 있다는 확신이 섰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대사구나」
「그렇네」
우리들은 서로 미소를 띄었다.
「추억담 하자고 온게 아니야. 네게 하고싶은 말이 있어」
「...응」
고분고분한 대답은, 그시절 그녀가 진심이었다는 표식과 같았다.
「...나는」
그녀와의 추억이 마구 떠올랐다.
되돌아보면 정말 즐거운 일상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백받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친구가 생기고
들뜬나머지 밤새 잠못이룬 기억들...
그녀의 마음이 드러난, 그 검은 노트에 쓰여진대로 매일같이 데이트도했었다.
첫데이트때.. 이녀석 범상찮은 복장으로 나타나서 깜짝놀랐지만 정말 귀엽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나도 정상은 아니었지...
그 시절의 나는... 고코우루리라는 여자아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녀의 결점도 전부 포함해서 사랑스러웠다.
부끄럼타서 손잡는것만으로도 얼굴이 홍당무가 됬던 루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주워들은건 많아서 적극적으로 에로에로한 유혹은 해오지만
곧장 새파란 얼굴로 거부하려드는 루리.
요리에 재능이 있으면서도 도시락엔 야채만 잔뜩 넣어오는 루리
동생들 앞에선 엄격하면서도 다정한 언니지만...
그치만 조금 뭐랄까... 아니 무지 전파끼 있는 4차원 소녀.
함께 전자상가도 가고 책방에도 가고 서클활동도 하며 오락실도 다니고
집에 불려간적도... 수영복사서 수영장에 간적도 있었지...
아참, 성천사 카미네코님께서 검문당한일도 있었지
「으...우...」
뭐랄까... 사귄건 겨우 보름정도뿐인데...
안개연기가 눈에 들어온건지 시야가 희미해서 앞이 안보인다.
눈을 감으면 푸른 여름 경치가, 짜증나는 매미소리가... 바람소리가
파릇파릇한 풀냄새가...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때처럼..
「우..우...」
「어라? 울어버리다니 한심하네... 나한테... 이야기가... 있는게... 아니었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루리또한 콧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제와서야 그녀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것같다.
착각이 아니야
「으응, 그랬지」
원래는 좀더 빨리 전해야 했었다.
여기까지 끌고와버린건 그 여름날이 너무도 즐거웠기때문에...
순수하게 연애하던 날들이, 정말정말 자극적이고 행복으로 넘쳐났기때문에...
끝내고 싶지 않았던것이다.
실패뿐인 서툰 사랑을... 조금더 이어나가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리가 없어
그렇치만 이제 인정해야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결심한 시점에서... 그 여름날들은
이제 두번다시 돌아오지 않는단 것을...
그녀가 꿈꾸던 "이상의 세계"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전생의 약속도, 미래로의 운명도... 영원한 사랑도... 전부 배신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내 바램, 내 모든걸 걸어서라도 이루고 싶은 이상의 세계야』
확실히 그 시절 우리 둘은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그녀가 꿈꾸던 이상의 세계, 우리둘의 미래의 모습.
나와 루리, 키리노, 사오리가 함께 사이좋게 웃는 광경
세나랑 부장, 마카베군이 놀러올지도 모르고...
그리고 좀더 먼 미래에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을지도 모르지.
실은 이름까지 생각해뒀다고. 정말 바보같지?
그녀의 네이밍센스랑은 안맞아서 다툴지도 모른단 망상까지 해서는...
그 해결책으로 아이가 둘이면 될거라고 정말 부끄러운 생각들이었지만
결국 그녀석들은 못보게 됬구나...
「루리」
「왜? 쿄우스케」
우리들은 마지막이 되서야 처음으로 연인다운 호칭을 주고받았다.
아마도 더이상 서로 이름으로 부르는 일은 없겠지...
아니면 두번다시 만날수 없을지도 모른다.
「루리... 나... 나는...」
모든걸 각오하고 나는 외쳤다.
「나는 너와 사귈수 없어! 좋아하는 애가 있어!」
그리고 나는 길고긴 고백을 시작했다.
「...」
나는 모든것을, 있는 그대로 전했고,
루리는 마지막까지 눈을 피하지않고 들어줬다
「...」
그녀는 조용히 들어줬다.
이걸로 그녀에게 무슨 욕을 먹든 각오는 이미 되어있다.
모든 설명이 끝난 뒤, 그녀는 눈꺼풀을 닫고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추위에 타는 기척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 또한, 그런 그녀가 반응을 보일때까지 계속 기다린다.
이윽고 그녀는...
「으후....후... 쿠쿠쿡...」
태연히 웃기시작하면서 얼굴을 들었다
「나의 패배야...깔끔하게...라고 해둘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란듯한 확고한 웃음
「그런 고백, 당신외엔 아무도 못할거야」
「훗, 정말이지... 아무래도 바보짓한 보람은 있었던 모양이야」
맞아죽어도 이상하지 않을정도로 엄청난 고백을 해버렸음에도
그녀는 일말의 동요조차 보이지 않았다.
미소를 띄며 나를 배려하는듯한 대사조차...
「이제 당신에게 어둠의 권속으로써의 자격은 없어, 그 성스런 검을 들고
세계를 구하도록해... 내 첫사랑을 분쇄해버린 당신이라면 분명 가능할거야」
어느샌가 루리는 검은 노트를 들고왔다.
"데스니티노트"... 이전 예언서였던 그것은..
이제 우리들의 추억의 덩어리다.
그것을...
「!... 너,」
루리는 쫙쫙 찢어버렸다
「무슨짓을...」
그게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의 나는 성천사"카미네코" 어둠의 권속에서 새하얀 천사로 전생한 존재야』
【...선배와 데이트를 한다】
그녀와 웃고떠들던 추억이, 찢겨떨어진다.
『선배... 오늘... 재미없었어?』
『후후... 고마워. 상냥하네 선배』
【선배가 나를 알도록 한다】
지금껏 몰랐던 그녀의 수많은 모습들을 알게해준 그것
포근한 기억들이 무참히 찢겨 사라진다.
『기개가 없네 선배』
『루리언니 남친이닷!』
【선배를 우리집에 부른다】
따스한 양달과 같은 차분한 공간, 왁자지껄한 자매들
새롭게 손에넣었던 소중한것들이 손에 닿지 않는곳으로 달아나버린다.
그리고...
『닉네임... 쿠로네코야』
【선배와 수영장에 간다】
『이거... 줄게』
【선배와 전생의 모습을 성찬】
【선배와 어둠의 성전을 열람한다】
『끈질겨?』
『지루했어?』『죽여버리고 싶어졌어』
【선배와 가상의 바다위에 신세계를 구축한다】
『그치만 그건 그거라구』
『카구야공주같아』
『아...그게아니야』
【선배와 헤어진다】
우리들 둘이 건너온 의식의 파편들이,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 쌓아온 일상들이
잘게찢겨 사라져간다.
그 광경을... 나는, 그저 멍하게 바라만봤다. 막을 권리따윈 없었다.
쿠로네코는 자신이 무슨짓을 하는지 완전히 이해한채로 잘게 또 잘게
담담히 또 담담히 추억들을 찢고있다.
이윽고 모든것이 끝났다.
「저주는 풀렸어」
우리들 둘의 보물은... 미래는... 젖은 지면에 떨어져... 축축해져선
읽을수 없게 되었다.
그걸로 끝.
「당신은 이제 자유야. 현세도... 미래도... 이제 영원히 우리들이 맻어지는 일은 없어... 그걸로 됬지?」
「...쿠로네코」
호칭이 예전으로 돌아갔다.
「그래... 처음부터...」
뚜르륵...
「이런... 이런 결말이라니...」
뚜르륵 뚜르륵 눈물이 넘쳐흘렀다.
「알고 있었...는...」
그 흐느낌은 점점더 커져서는...
「...흐...흑....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예언서에 써있던대로의 통곡.
시선을 피할수 없었다. 고통을 표현할수도... 함께 울어줄수도 없었다.
그런 자격은... 더이상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아아아아아아....우아아아아앙아...흐..흑...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또다시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통곡하는 쿠로네코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우아아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으....우....으....」
쿠로네코는 울던 얼굴 그대로...하지만 마음을 다잡고는
「세계는 어둠에 삼켜졌어」
중2병틱한 평소의 말투는 어느정도의 허세로 이루어진걸까
「내 이름은!」
다빠진 기력을 쥐어짜선 기아한 포즈와 함께 소리높여 외쳤다.
「내 이름은 복수의 천사 "야미(어둠의)네코" 세상의 모든 사랑을 부정하는 자」
그것이 너무나도 가슴아파서 저주의 지팡이가 내 가슴깊은곳을 후벼파는 느낌이었다.
「저주가 있으리! 사랑하는 자들사이에 저주가 있으리!
성야에 저주가 있으리! 이세상 모든것에 저주가 깃드리!
모든 리얼충들에게 파괴의 철퇴를!」
울부음치며 저주를 뿌리는 쿠로네코는 내 얼굴에 손가락을 겨누며
「내 생애 최대의 저주를... 한번 맛보도록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내앞에서 사라졌다.
그것이 크리스마스 직전... 12월 20일의 일이었다.
그녀의 『생애 최대의 저주』가 열매를 맻는건 4일뒤...
내가 키리노에게 고백한 당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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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대신 불을 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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