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뽕과 신장암 이야기
저는 2012년에 신장암을 선고받고 살아온 인생의 3할 정도를 항암치료에 받쳤습니다
먹성좋고 활발하던 저는 6개월도 채 되지않아 정신적 신체적으로 무너져 내려갔고
비대해진 몸뚱이에 비해 조막만하던 멘탈이 더욱이 빨리 무너졌습니다
병상 생활을 하면서 몇번이나 자살을 꿈꿨는지 모르겠습니다
반년이 더 지나자 저는 스스로는 자살기도 조차 할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몇번의 겨울이 더 지나고
혀는 축 눈은 쾡 팔이랑 다리는 축 축 같은 좀비같은 상태가 되었을때
교포였던 형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없었고 일용직으로 5일 일하고 5일 노는 막장 인생을 살고 있었고
생활비가 부족할때마다 해외에 나가있던 형에게 손을 빌렸습니다
형은 딱히 자애심이 강한 성격은 아니었을겁니다
형이나 저나 우릴 버린 부모에게서 나온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형이 처한 환경이 나와는 달랐기에
형이 저를 챙겨준건 애착이나 동정이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정해둔 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념 같은거지요 심리는 모르겠으나 형 입장에서는 제 생활이 유지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던거라 생각합니다
출장 전에 마지막으로 형에게 보인 제 모습은 죽고 싶다며 찡찡거리던 모습일겁니다
터질것 같은 불만은 그래도 살 만하고 버틸만 할때 나오는 거에요
형이 반년만에 본 동생의 얼굴은 아마 삶을 달관한 땡중이랑 같은 모습이었을겁니다
그들이 끝에 기다리는건 비로자나불의 광명이고 저는 비루한 죽음이겠지만 피상적으론 비슷하잖아요
제 상태를 본 형은 간호사와 몇 마디를 나누고 아무 말 없이 병실을 나갔습니다
다음날 돌아온 형은 저에게 버거킹 포장지를 건내줬습니다
안에는 감자튀김 몇 조각과
케첩봉지 대신 들어있는 지퍼백에 감싸진 하얀 결정들과
고릴라 같은 우락부락한 보디 빌더들이 자기네들 엉덩이에 꽂아넣을때 쓰는듯한 굵은 주사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병원식을 결식했습니다
신장암 환자가 하루에 마실수 있는 물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병원식은 나트륨이 없어 짜진 않지만
대부분의 찬이 퍽퍽해 먹고나면 목이 메입니다
저는 그날 새벽 소등된 병신을 나와
쟁여둔 물을 들고 공동화장실로 향했습니다 다른 손에는 버거킹 포장지를 들고요
남의 눈에 띄인다면 병원식에 지친 환자의 가벼운 일탈 정도로 보였을 겁니다
쟁여둔 물에 결정들을 녹이고
거대한 주사기에 녹인 물을 넣습니다
제 야윈 손목과 대비되어 주사기가 더 커보입니다
떨리는 손으로 정맥을 찾고 그대로 찔러넣어
그때까지도 확신없던 용액을 제 몸속으로 집어넣습니다
이후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집니다
방금 막 치유된 시각장애인이 처음으로 본 시야가 이런 느낌일까요
시신경과 해마 사이의 무언가가 망가져서 뒤죽박죽, 시야에는 실제 사물뿐 아니라 제 상상인지 모를 것들도 비춥니다
세로토닌이 활성화돼서인지 나름 창작적인 활동도 하고싶습니다
휴지로 종이접기도 해보고 손가락으로 벽에 그림도 그려보며 헤실거리다가
팟 하고 영감이 떠올라 자위를 합니다 그것도 존나게 합니다
마치 암 같은건 감기정도가 아닐까? 라고 생각될 정도로 압도적인 쾌락에
시간의 흐름 같은건 상관없이 제 아들들을 수십 번이나 배출하고 난 후
약빨이 떨어지고 나타나는건
육체적 고통 같은게 아니라 압도적인 현실감
뇌가 필로폰에 취해서 다다른 낙원에서 얻어지는건 행복도 상실도 아닌 원래 느껴야했던 현실의 무게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전두엽의 도파민 수용체가 망가져
일분 일초가 억겁의 시간인것마냥 지루하고 느리게 흐릅니다
수 초조차 집중할 수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수 제한때문에 나머지는 따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