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갤 문학] 버섯 포자 -5
그는 과학자 강연이었다.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나는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만큼 그는 개성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마침 강연도 나를 알아봤는지 그 검은 썬글라스를 몇번 만지더니 이내 들고있던 하얀 모자를 머리에 얹고는 나에게 다가왔다.
"아니 이보게, 자네 플라타느 아닌가? 정말 오랜만이군!"
"하하 박사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나의 물음에 박사는 호쾌하게 웃었다.
"잘 지내고말고. 체육관 관장직을 연임하면서 그럭저럭 잘 살고 있지. 그것보다도 자네의 논문은 아주 흥미롭게 읽었네. 자네가 '메가 진화'라고 정의내린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진화의 형태는 아마 학계와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진보중 하나일거야. 이것이 전부다 자네의 결과물이지."
"과찬이십니다. 저야말로 박사님의 유전학개론을 읽을때마다 항상 새로운 감명을 받곤 합니다."
"거참 말도 잘하는 친구로군!"
나의 말에 강연은 다시 크게 웃었다.
강연과의 첫 만남은 정기적으로 열리는 세계 학회에서였다.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 강연이 설명하였던 유전학개론은 어릴적 나에게 크나큰 감명을 주었고, 내가 진화학에 입문한 계기가 되었다.
"그건 그렇고, 배는 아직 멀었는가?"
그의 물음에 나는 시간표를 바라봤다.
"네. 이 지방에서 자주 다니지 않는 배이기도 하고, 무슨 사고가 있었는지 늦어진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자네, 식사라도 하고 가는게 어떤가? 관동지방에 온 손님인데 내가 대접하지 않을 수가 없군."
그렇게 말하는 강연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생각보다 큰 갈색시티의 레스토랑이었다.
'이건 좀 부담스러운데'
자리에 앉자 첫번째로 버섯 스프가 나왔다.
"버섯 스프를 싫어하는가?"
내가 잠시 수저를 들지 못하자 그가 물어왔다.
"아뇨. 좋아합니다. 정말 좋아했는데, 물론 지금도 좋아합니다. 잘먹겠습니다."
"그래그래. 먹기 좋은 턴은 2턴이니 식기전에 맛있게 먹게나."
음식은 순서대로 분주히 나왔고, 나는 기대 이상의 후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마지막 요리를 끝낸 뒤에 나는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강연에게 말했다.
"오늘 정말 잘먹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 후식이 기다리고 있으니 천천히 기다리게.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
강연은 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었다.
"기다려 피카츄!"
창 밖에선 아이들이 포켓몬과 뛰어놀고 있었다. 눈부신 햇살은 하얀 테이블을 밝게 비추었고, 주위의 사람들은 기분좋게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 어느때와 다름없는 평화였다.
'이렇게나 평화로운데'
창 밖에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에 안식이 찾아왔다. 검은 안경 너머로 밖을 쳐다보고 있는 강연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즐기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참! 기다리라니까 피카츄!"
아이들은 꺄르르 거리며 뛰어다녔다.
"어린아이 목소리가 참 크네요."
나는 창 밖을 바라보던 강연에게 말했다.
"아이들은 다 그런 법이지."
그의 명쾌한 대답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강연씨는 무슨 일로 나오셨나요?"
"그냥 휴가 차 나왔지."
"그렇군요."
나는 그의 대답을 들으며 다시 창 밖을 지켜봤다. 창 밖은 밝은 햇살이 가득했다.
"피카츄 왜 그래? 왜 자꾸 숨는거야?"
나는 아이의 목소리에 이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여전히 피카츄와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피카츄 나무 그늘에 숨지말고 나와! 나랑 놀자!"
'그늘?'
그 순간, 내 눈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하나 들어왔다. 그것은 단순히 술래잡기가 아닌, 피카츄는 엉금엉금 기어 자꾸만 나무 그늘에 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두운 그늘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아, 나는 또다시 봐선 안될것을 보고야 말았다. 피카츄의 검은 줄무니 위로 작게 솟아난 그것은, 그것은 환영이나 착시 따위가 아니었다. 등줄기를 타고 작게 피어난, 그것은 분명히 파라섹트의 '버섯'이었다.
"자네도 봤군"
갑작스런 말에 그를 바라보니, 그가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검은 안경을 접어 내려놓는 그의 눈빛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말이지."
검은 안경 너머에 숨어있던 눈동자가 나를 매섭게 쏘아붙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었다.
"나를 도와주겠나?"
그의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기분좋게 미소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쉽게도 후식은 먹지 못하게 되었군,"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내려놓는 메이드를 뒤로한 채, 그는 썬글라스와 지팡이를 챙겨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