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셰스 입장
"그냥 죽이는 것이 나을까..."
어렴풋이 들리는 소리. 지친 목소리 처럼 들리기도 하였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어두운 공간. 어머니 라는 '미친 것'이 날 두고 앞으로 어떤 고문을 할지 고민하는 소리였다. 셰스는 더 이상 생각할 힘조차 없었다. 옛날 그가 날 '상급자에 대한 증오'를 열쇠삼아 날 성장시키려고 하였던 날 처럼 '미친 년'이라는 욕을 내뱉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다. 점점 빛이 꺼저가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얼마나 끔찍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러나 '그 것'이 내게 다가오는 일은 없었다. 꽤 오랜 시간이였다. 셰스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발소리를 두려워 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무슨 일이였을까. 거진 20년 만에 날 찾아온 '그 것'은 날 앞에서 처다보기만 할 뿐. 내게 어떠한 위협도 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발에 감겨있는 족쇄를 묶은 쐐기를 걷어차곤, 오랜 시간 내 앞을 가로막던 벽을 부수고는 비틀거리며 걸어 나갔다. "수라도로 돌아와라" 그 한마디만 남긴채 그것은 방을 떠나였다. 눈이 부셨다. 이건 또 무슨 고문일까. 셰스는 그 점을 두려워 하며 움직이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후로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셰스는 두려움을 삼킨채 빛의 줄기로 걸어나갔다.
... ...
멍하니 바깥을 처다보았다.
대지가 있었다. 빛이 있었다. 하늘이 있었다. 바람이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자신을 방해하는 것은 없었다.
흐붓한 꽃이 들판을 가득 메우고 선선한 바람은 귓가를 스쳤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남루하고 헐거운 것은 오직 나 뿐이었다. 세상에 동경심을 품었다.
그러나 그 것 또한 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감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분노가 치밀었다. 밟고 싶었다. 똑같이 되돌려주고 싶었다. 날 고문하고 밟은 그를. 똑같이 만들어 주고 싶었다. 과거에 그가 내게 떠든 것 처럼.
어디 해보렴 어디 해봐! 힘만 있다면 저 미친년을 짓밟은 수도 있을 텐데!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내게 했던 일을 그대로 되갚아 줄 수 있는데! 그럼 어디 해보렴. 성장해서 날 밟아 보라고! 성장해서!
그러나 그럴 순 없다. 내겐 힘이 없다. 설령 성장한다고 해도. 킨나라족의 2인자를 꺾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세상은 그의 행보를 심판하겠지.
아무리 수라라고 해도 무작정 잔악한 이를 좋아하지 않으니. 어릴 시절 들었던 간다르바 처럼.
그 것은 미친 사람이니 분명히.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수억 년 만에 나온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과 많이 달랐다.
킨나라족은 중립 종족이 되어있었다. 상대적인 열세를 도운다는 명분 하에 균형을 지키는.
그리고 이를 수호하는 것은 그것... 어머니였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여전히 나를 경멸하셨지만, 공적인 회의에 처음 불리었을 때 나를 공개적으로 모욕할 것이라 생각해 벌벌 떨었던 것과는 다르게, 동급 4단계 수라중에선 나를 가장 좋게 대우하였다.
나스티카 사이에서 라크샤사가 대우받으면 얼마나 대우받겠느냐만.
더 이상 끌려가 고문을 받는 일은 없었다.
억울 하였다. 나의 울분 따위는 아무도 모르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드디어 누리게 된, '어머니의 재량'으로 누리게 된 이 작은 행복이나마 잃고 싶지 않았다.
참 아이러니 하였다.
그 후의 삶은 객관적으로 말해 나쁘진 않았다.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나를 노리는 수라도 없었다. 심지어는 때로는 신들 마저도 나를 못 본 척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어머니는 다른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였고, 어머니는 세상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마치 나만이 이 세상에서 이질적이라는 듯. 난 어머니의 세상에 홀로 떨어졌다.
처음부터 내 자리는 없었다는 듯이.
훗날 알게 되었지만 어머니가 날 찾아 오지 않았던 20년 동안 야크샤님께서 아수라님께 살해당했다고 한다.
그것이 나를 풀어준 이유일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머니는 이후 날 최측근으로 삼으시고 생존에 필요한 이것 저것을 알려주었지만, 알 수 없었다. 내게 본인의 이야기를 말씀하신 적은 없었다. 그러니 나도 관심가지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나의 일은 알 바가 아니였기에.
그리고 본인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내게 사적인 이야기 따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때때로 잊을 수 없는 따스한 손길이 기억난다.
그러나 그게 누구였을까.
습작입니다... 저도 글 잘 써보고 싶은데.
킨나라편도 있는 데 이건 연작이여서... 어찌 될련지는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