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참변 관련해서 홍범도는 상해파 공산당 원한 살만 했음
러시아공산당 극동국 한인부가 상해파 공산당을 밀어주면서 상해파 공산당의 주도로 독립군 통합한다고 함. 홍범도도 여기에 찬성하며 상해파 공산당 중심으로 독립군 통합하자고 함.
근데 이후에 코민테른 극동비서부가 출범하면서 얘네는 모스크바의 코민테른과 연결된 상해파가 아닌 다른 이르쿠츠크파를 밀어줌. 모스크바 코민테른 본부에서 극동지역을 관여하지 않기에 자율권이 있는 코민테른 극동비서부가 이런 행동이 가능했음.
이 때 홍범도는 이르쿠츠크파 공산당 주도의 통합에 찬성한다고 함.
어느 쪽이 통합하든 상관없으니 통합하자고 한 것인데 문제는 상해파 공산당들 입장에선 이게 배신으로 보였을 것임.
거기다가 상해파 공산당들인 사할린부대는 민간인 약탈이 도가 지나치기로 악명이 높아서 다른 독립군들도 이건 너무 심하다 여기며 사이가 안 좋았던 모양임. 그리고 얘네들은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이르쿠츠크파 중심 통합에 반발하여 말로 설득되길 거부하고 그 결과 자유시참변이 벌어져서 36명의 상해파 공산당원들이 사망함.
홍범도는 이 때 학살에 관여하지도 않았지만, 재판위원에 참석해서 50명 중 42명이 방면이나 집행유예로 끝내게 했음에도 상해파 공산당들 입장에선 자신들 지지하다가 코민테른 극동비서부의 말에 따라 이르쿠츠크파로 변절한 배신자로 여긴 것으로 보임.
그런데 또 이르쿠츠크파도 자유시참변 책임 감추려고 홍범도나 다른 독립군들 명의 도용해서 거짓 보고서 올리고 했는데 홍범도가 22년 2월에 자기가 쓴거 아니라고 폭로하고 이르쿠츠크파가 자유시참변 일으킨거 공개비난하고 모스크바에 직접 해당 보고서를 제출하기까지 하면서 이르쿠츠크파는 22년 10월에 있던 고려공산당 연합대회나 1923년 국민대표회의에서도 상해파에게 밀리는 일이 벌어짐.
레닌도 원래부터 친모스크바 세력인 상해파에 손을 들어주고.
상해파 공산당들은 이르쿠츠크파가 주도권을 잡는 것을 반대하다가 동료가 36명이나 죽은 사건 당시에 홍범도가 이르쿠츠크파 지지로 바뀐 것을 두고두고 앙심 품었던 모양. 그래서 아예 상해파 공산당 소속의 사할린부대원 생존자 둘이 홍범도를 암살하려다가 2명이 역으로 당하기도 했음.
공산당 내부파벌 싸움에 불과한 자유시참변은 진실이 좀 널리 알려지고 공산당의 추한 권력다툼에 의한 무력분쟁임을 좀 다들 알았으면 하는...죽은 놈들은 잘 죽은 빨갱이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