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마천령 - 박세영
장마물에 파진 골짜기,
토막토막 떨어진 길을, 나는 홀로 걸어서
병풍같이 둘린 높은 산 아래로 갑니다.
해 질 낭*이 멀었건만,
벌서 회색의 장막이 둘러집니다.
나의 가는 길은 조그만 산기슭에 숨어버리고,
멀리 산아래 말에선 연기만 피어 오를 때,
나는 저 마천령*을 넘어야 됩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저 산을 넘다니,
산을 싸고 도는 길이 있으면, 백리라도 돌고 싶습니다.
나는 다만 터진 북쪽을 바라보나,
길은 기어이 산 위로 뻗어 올라 갔습니다.
나는 장엄한 대자연에 눌리어,
산같은 물결에 삼켜지는 듯이,
나의 마음은 떨리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빠삐론* 사람처럼,
칼을 빼어 든 무녀(巫女)처럼,
산에 절할줄도 몰랐습니다.
나는 기어이 고개길로 발을 옮겼습니다.
불긋불긋 이따금 고갯길 토막이 뵈는 듯 마는 듯,
이몸이 어디로 가질지도 모르는, 사로잡힌 마음이여,
이리구도 천하를 근심하였나, 스스로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갑옷을 입은 전사(戰士)와 같이,
성난 이리와 같이,
고개길을 쿵쿵 울리고 올라갑니다.
거울 같은 산기슭의 호수는 나의 마음을 비처 보는 듯,
올라가면 오를수록 겁나던 마음이야 옛일 같습니다.
나는 마천령 위에서 나의 오르던 길을 바라봅니다.
이리 꼬불, 저리 꼬불, W자, I자, N자,
이리하여 나는 승리의 길, WIN자를 그리며 왔습니다.
모든 산은 엎디고,
왼 세상이 눈 아래서 발버둥칠 때,
지금의 나의 마음은 나를 내려다보든 이 산이나 같이 되었습니다.
이 장쾌함이여,
이 위대함이여,
나는 언제나 이 마음을 사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