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 설정식
만(萬) 생령(生靈) 신음을
어드메 간직하였기
너는 항상 돌아앉아
밤을 지키고 새우느냐.
무거히 드리운 침묵이여
네 존엄을 뉘 깨트리드뇨
어느 권력이 네 등을 두드려
목메인 오열(嗚咽)을 자아내드뇨.
권력이어든 차라리 살을 앗으라
영어(囹圄)에 물러진 살이어든
아 권력이어든 아깝지도 않을 살을 저미라.
자유는 그림자보다는 크드뇨.
그것은 영원히 역사의 유실물(遺失物)이드뇨.
한아름 공허(空虛)여
아 우리는 무엇을 어루만지느뇨.
그러나 무거히 드리운 인종(忍從)이여
동혈(洞穴)보다 깊은 네 의지 속에
민족의 감내(堪耐)를 살게 하라
그리고 모든 요란한 법을 거부하라.
내 간 뒤에도 민족은 있으리니
스스로 울리는 자유를 기다리라.
그러나 내 간 뒤에도 신음은 들리리니
네 파루(破漏)를 소리없이 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