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일 ― 1945년, 또다시 네거리에서 - 임화
조선 근로자의
위대한 수령의 연설이
유행가처럼 흘러나오는
마이크를 높이 달고
부끄러운
나의 생애의
쓰라린 기억이
포석(鋪石)마다 널린
서울 거리는
비에 젖어
아득한 산도
가차운 들창도
현기로워 바라볼 수 없는
종로 거리
저 사람의 이름 부르며
위대한 수령의 만세 부르며
개아미마냥 모여드는
천만의 사람
어데선가
외로이 죽은
나의 누이의 얼굴
찬 옥방(獄房)에 숨지운
그리운 동무의 모습
모두 다 살아오는 날
그 밑에 전사하리라
노래부르던 깃발
자꾸만 바라보며
자랑도 재물도 없는
두 아이와
가난한 안해여
가을비 차거운
길가에
노래처럼
죽는 생애의
마지막을 그리워
눈물짓는
한 사람을 위하여
원컨대 용기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