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나이 - 박노해
때늦은 나이
- 박노해
오늘로 내 나이 서른다섯인가
부러진 칠십이라 하던가
상처만큼 살았고 겪어온 나이
찬 마룻바닥에 짬밥을 놓고
구매한 되지훈제 한 봉지 사과 한 개 걸게 차려
나이만큼 절실한 생일식사 기도를 드리니
강하고 깃발 날리는 것보다 부드럽고 나직한 것이
더 힘차다는 것을 아는 나이
뜨거운 열정, 철저한 헌신성, 불타는 투혼에 묻혀진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을 아는 나이
말 한 마디 글 한 편 결정 하나에
묻고 확인하고 다시 돌아보고 또 검증하며
젖먹이 아가를 품은 듯 운동한다는 것이
두렵고 두려운 것임을 아는 나이
한 시절 모든 것이 선명했던 투쟁 속에서
깨질 것은 깨어지고 무너질 것은 무너져내려 이제는,
스스로 창조의 걸음 내딛는 때늦은 나이
서른다섯 생일날, 오 ‘이제와 우리 죽을 때’
맑아지고 밝아진 마지막 미소 한 떨기
나를 아는 모든 이에게 남겨줄 수 있도록
뎌 겸허하고 더 성실하게 투쟁하게 하소서
더는 늦지 않게 서둘지 말고
새벽 종울림으로 울어나 흐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