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앞에 나는 - 김경호
그대 앞에 나는 - 김경호
그대 앞에 나는
한 포기 들풀이어도 좋다.
갈밭에서건
봄뜰에서건
나는 혼자여도 좋다.
목숨처럼 삼아온 일도
사랑처럼 지녀온 일도
멀리 바라보면서
이 가을에는
갈대처럼 서 있고 싶다.
버리며 사는 일과
주고 사는 일과
가끔은
잊고 사는 일에
한 때는 표절된 그림처럼
멋적은 시간도 있었지만
묵은 잡지의 때 지난 이야기처럼
눈물 같은 얘기 하나
간절한 말 한 마디도
모를 일로 하고
이 계절에는
혼자서, 나 혼자서
텅 빈 마음이고 싶다.
그리하여 겨울이 오는 날
그대 앞에 나는
마지막 잎새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