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녘에 듣는 브란덴부르크 합주곡 - 최동일
나른한 시간들이
축 늘어진 빨랫줄에 나란히 앉았다
날까 말까 망설인다
갈 길을 잃었나?
그들의 생각은 모두 잿빛으로 젖어있고
깃털이 빠진 화살들은 하나 둘씩
하품하는 항아리 큰 입 속으로 던져진다
노을은 투호 놀이를 마친 열여섯 살
궁중 여인들의 색 고무신처럼 곱고 아득하다
군데군데 어혈진 구름 조각들은 연신 헛기침을 하고
아침에 흩어졌던 뜬소문들이 다시 모여
스펙트럼으로 색색이 버무려지고 있을 때
나는 창백한 얼굴을 들어
현기증이 아지랑이로 피어오르는 먼 지평을 본다
발자국이 어수선하게 흐트러진 개펄 위엔
행진곡과 진혼곡이 혼성 4부 합창으로 한 데 아우러지고
우리들 함성이 듬성듬성 빠져나간
성긴 하늘의 틈 사이로
불우한 시절 즐겨 듣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흐른다
음악보다 더 감미롭게 맑은 물이 고인다
바이올린 오보에 플루트는 서둘러 연주를 시작하고
또다시 트럼펫 소리에 맞춰 털갈이를 하는 시간들
그때 B 플랫 장조로 끊임없이 흘러 넘치는 강을 건너
땅거미 속에서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광기 어린 눈빛으로 악보를 새로 적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