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은 밤마다 길을 떠난다 - 최동일
암자의 깊은 시름 속에
자정을 알리 듯 풍경이 흔들린다
이때쯤 원효사 계곡의 새 소리 물 소리 모두 잠 재우고
무등은 몰래 버선발로 길을 떠난다
능선마다 걸친 검푸른 만장을 벗고
나무들 깊은 잠에서 깨운 뒤
조금씩 나래를 편다
여러 날의 떠남으로 연골이 닳아
통증이 가슴 속 깊이 밀려온다
나무들 잔 가지들 어루만져
따스한 호흡을 불어넣는다
어린 굴참나무 가지 끝에서 바람이 인다
잎새마다 아물지 못한 상처의 아픔
상흔은 가지 끝에 얼룩져 말이 없다
골짜기마다 잠들어 있는 어눌진 메아리
혹은 야생화의 애련한 향기
벼랑에 매달린 잎새들 여린 눈빛이 하늘에 닿아있다
클록 클록 기침소리 잦아들고
생채기 투성이의 팔을 저어
온 몸에 칭칭 감긴 어둠을 한 겹씩 벗겨낸다